영국 경제판에 다시 소환된 '케인스주의'

입력 2015.05.23 03:03

케인스주의(재정 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 지지)가 영국 총선을 계기로 다시 경제학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지난 7일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 집권 보수당은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예상 밖 대승을 거뒀다.

지난 몇 년간 케인스주의자들은 보수당 정부의 긴축정책이 영국 경제를 침체에 빠뜨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정 긴축은 잘못된 선택이며, 결국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경고였다.

반면, 보수당을 포함한 긴축 정책 지지자들은 적자를 줄여도 경제는 성장하고 일자리는 늘 것이라고 주장했다.

폴 크루그먼(Krugman) 프린스턴대 교수는 영국 총선 직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생각 없는 자들의 승리'라는 칼럼을 통해 "영국은 긴축을 할 만큼 긴박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앞서 집권했던 노동당이 과도한 지출을 했고, 이로 인해 경제 위기가 촉발됐으며, 재정 긴축 덕에 영국 경제가 다시 성장했다는 보수당의 주장 자체가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이번 선거를 '생각 없는' 보수당의 승리라고 깎아내린 것이다. 로버트 스키델스키 워릭대 명예교수 겸 영국 상원의원도 "재정 긴축 때문에 향후 영국 경제 성장률이 하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경제에 미친 영향을 과소평가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재정 지출 확대를 통한 경제 성장 가능성이 간과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반대로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케인스주의자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보수당 정부의 긴축 정책 덕분에 재정 적자는 줄었고, 경제는 성장했고, 실업률은 오히려 낮아졌다고 강조했다. 이번 선거에서 영국 국민들의 선택은 현명했다는 입장이다. 그는 케인스주의가 주장하는 재정 지출 확대는 문제 해결 방법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두 학자의 논쟁은 재정 정책의 효용성에 대한 경제적 논란에, 정치적 입장 차이까지 불거지며 세계 경제학계를 달구고 있다. 퍼거슨 교수와 스키델스키 교수 간 논쟁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로버트 스키델스키 워릭대 명예교수·영국 상원의원
블룸버그

긴축정책으로 경제 성장했다고?
GDP 성장률 손해 어떻게 설명할건가

로버트 스키델스키 워릭대 명예교수·영국 상원의원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을 보면 옥스퍼드 역사학자인 고(故) AJP 테일러가 떠오른다. 테일러는 역사 저술에 있어 진실만을 말한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그는 대의(大義)를 위해 역사적 사실들을 재배치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퍼거슨 역시 훌륭한 역사가지만, 정치적인 주장을 할 땐 테일러 못지않게 사실을 왜곡한다.

퍼거슨은 미국식 네오콘(신보수주의)을 지지하는 동시에 케인스와 케인스주의자들에 대한 강한 혐오를 갖고 있다. 재정 긴축을 옹호하는 그는 최근 영국 총선 결과에 대한 파이낸셜타임스 기고에서 "노동당은 총선 패배에 대해 케인스를 탓해야 한다"고 했다.

퍼거슨의 주장은 가혹한 처벌을 해놓고도 '그래도 살아 있지 않으냐'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퍼거슨은 영국 경제가 작년에 2.6% 성장, G7(선진 7개국) 중 최고를 기록했다는 조지 오즈번 영국 재무장관의 말을 옮겨놓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 과정에서 오즈번 장관이 만들어낸 피해들에 대해선 무시하고 있다.

그 피해에 대해선 현재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오즈번 장관이 정부 거시경제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설립한 독립 기구인 예산책임처(OBR)는 최근 "긴축 정책으로 2010~2012년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2% 감소하는 등 2010년 이후 GDP의 5%가 줄었다"고 밝혔다. 사이먼 렌 루이스 옥스퍼드대 교수 같은 이는 긴축에 따른 손해를 GDP의 15%까지 추정하기도 한다. 최근 영국 경제학자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3분의 2가 "긴축 정책이 영국 경제에 해를 끼쳤다"고 답했다.

이는 영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IMF(국제통화기금)는 2012년 10월에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에서 "재정의 승수(乘數) 효과가 전 세계적으로 평가절하됐다"고 인정했다. 쉬운 말로 하자면 재정 확대를 통한 경제 성장 가능성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잘못된 예측이 순전히 실수였을까? 아니면 완전 고용 상태에서 재정 확대의 결과는 인플레이션밖에 없다는 경제학적 모델에 사로잡힌 탓이었을까? 전문가들은 이제서야 진실이 무엇인지 깨닫게 됐고, 퍼거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퍼거슨 교수의 부도덕한 측면 중 특히 심한 건, 그가 정부 정책의 성과와 기업 투자 심리에 미친 2008년 경제 위기의 영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퍼거슨은 보수당이 집권한 2014년의 성장률 2.6%와, 노동당 고든 브라운 정부 마지막 해인 2009년의 성장률 마이너스 4.3%를 비교했다. 마치 노동당 정부의 실정(失政)이 마이너스 성장을 초래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퍼거슨은 "2010년 5월 이후, 기업신뢰지수는 '재앙'과 같았던 고든 브라운 정부의 마지막 2년의 기록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고 했다. 마치 브라운 정부의 실정 때문에 기업신뢰지수가 붕괴한 듯이 주장한 것이다.

"노동당은 총선 패배에 대해 케인스를 탓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특히 이상하다. 노동당 지도부는 선거 기간 중 케인스주의와 거리를 두려고 최대한 노력했기 때문이다. 퍼거슨의 의도는 아마 '케인스주의를 채택했던 노동당의 과거가 지금의 노동당을 망쳤다'는 정도일 것이다. 그는 "금융 위기 직전과 금융 위기 당시 노동당의 재앙스러운 지도력"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 최근의 노동당 정부는 케인스주의를 택하지 않았다. 통화 정책은 물가상승률 2%를 목표로 했고, 재정 정책은 균형 예산을 목표로 했다. 이는 경제 위기 이전 시대의 표준적 경제 정책이었다.

노동당의 총선 패배를 가져온 주원인은 케인스가 아니라 스코틀랜드였다. 스코틀랜드독립당(SNP)이 스코틀랜드에서 압승하면서, 노동당은 이 지역에서 한 석밖에 못 얻었다. SNP가 선전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결코 긴축 정책에 대한 지지 때문은 아니다.(스코틀랜드에선 보수당 역시 노동당만큼 선거 결과가 나빴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이자 SNP 당수인 니콜라 스터전은 영국 의회 내부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공감대를 '편리한 컨센서스'라고 공격했다. "재정 적자는 경제적 어려움의 증상이지, 경제적 어려움의 원인이 아니다"는 스터전의 주장은 옳다. SNP는 총선 공약에서 '영국 전역의 교육과 인프라 부문에 1400억파운드(약 2200억 달러) 이상을 추가 투자하겠다'고 했었다.

SNP가 케인스주의적인 재정 확장을 내세워서 선거에서 선전한것을 볼 때 노동당 역시 집권 기간의 경제 정책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오즈번 장관의 긴축 정책을 더 강하게 공격했다면 선거에서 더 좋은 결과를 얻지 않았을까?

보수당은 선거 기간 중 "우리는 노동당 정부의 실정을 바로잡고 있다. 긴축 정책이 아니었다면 영국 역시 그리스가 간 길을 따를 뻔했다"는 주장으로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관점은 퍼거슨의 주장과 똑같다.

유권자들은 표로 말했고, 모든 건 이제 역사의 장으로 넘어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수당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건 실수가 될 것이다. 보수당의 주장은 이론상 빈약하고 실행될 경우엔 파괴적 결과를 낳게 될 정치적인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

만약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면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즈번은 재무장관에 유임됐고, 앞으로 5년간 더 지독한 예산 삭감을 약속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 덕분에 긴축 재정은 여전히 유로존의 지배적 독트린이 되고 있다. 따라서 피해는 지속될 것이다. 설득력 있는 반대 논리가 나오지 않으면, 우리는 얼마나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다.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
블룸버그

최고 고용률을 보라… 케인스주의는 틀렸고
긴축 재정 밀어붙인 보수당은 옳았다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

"상황이 달라지면 의견도 달라져야 한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말이다. 오늘날의 케인스주의자들도 새겨봐야 할 말이다.

이달 있었던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은 압승을 거뒀다. 선거가 있기 훨씬 전부터 영국 경제는 이미 달라져(급속히 호전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케인스주의자들은 '긴축 대신 재정 확대 정책을 펴야했다'는 주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로버트 스키델스키는 케인스에 관해 권위 있는 전기를 집필했고, 나는 그를 역사학자로서 존경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 비난을 받을 사람은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스키델스키 역시 크루그먼 못지않게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조지 오즈번 영국 재무장관이 재정 적자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대한 실수'가 될 거라고 전망했었다.

2010년 11월 스키델스키는 오즈번 장관이 재정 긴축을 실시하는 데 대해 "그의 정책은 영국을 끝없는 불황에 몰아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2011년 7월 그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오즈번 장관이 (영국을) 황무지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 당시는 그런 집단 사고(思考)가 만연했다. 스키델스키는 "영국이 대공황 때보다도 못하다"는 크루그먼의 주장을 정당하다고 했다. 그는 "오즈번 장관이 재정 적자를 줄이지 않으면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는 크루그먼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케인스주의자들이 틀렸다는 것은 확실해졌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보면 영국은 이탈리아를 제외한 G7(미국·일본·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 국가보다 경제 회복 시작이 늦었다. 그러나 2012년 이후 회복세가 빨라지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지난해, 영국의 경제 성장률은 G7 가운데 가장 높았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향후 4년간은 미국 경제가 가장 빨리 성장할 것이지만 그 이후에는 영국이 가장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게다가 이 모든 단순 비교는 2010년 당시 영국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는지는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영국은 적어도 네 가지 측면에서 매우 나쁜 상황이었고, 미국보다는 훨씬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첫째, 영국의 국가 재정은 2010년 국제결제은행(BIS)이 조사한 GDP 대비 부채 비율에서 알 수 있듯이 유난히 상태가 나빴다. 둘째, 국가 부채뿐 아니라, 금융 부채, 비금융 부채, 그리고 가계 부채를 모두 고려해봤을 때, 금융 위기 전에도 영국은 레버리지(빌린 돈을 지렛대 삼아 투자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 차입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였다. 셋째, 물가상승률은 영국중앙은행(BOE)의 목표치보다 항상 높았다. 마지막으로, 영국은 다행히 유로존에는 속해 있지 않지만, 미국보다는 2012~2013년 유로존 위기에 훨씬 더 노출돼 있었다.

그렇다면 오즈번 재무장관은 이 버거운 도전 과제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일단 재정 수치부터 살펴보자. 2007년 GDP 대비 38%였던 영국 정부의 순부채 규모는 2010년 69%로 급증했다. 이 증가세는 오즈번 재무장관 재임 기간 내내 유지됐지만, 속도는 조금 느려졌다. 올해 83%로 최고점을 찍고 나면, 이후에는 줄어들 것이다. IMF의 예측이 옳다면, 2020년까지 영국에 비해 재정적으로 견실한 국가는 캐나다와 독일 정도일 것이다.

정부 적자가 빠르게 감소하면서 공공 부문의 부채 감축이 이뤄졌다. 영국의 경우 지난 2009년 GDP 대비 재정 적자 비율이 11% 턱밑까지 갔지만, 지난해 6%까지 떨어졌다.

상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매우 인상적인 성과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어떤 잣대를 대더라도 오는 2020년 재정 적자 비율이 GDP의 4%에 달할 전망이다.

그렇다면 오즈번 재무장관이 재정 안정화에 성공하면서 지불한 경제적·사회적 비용은 무엇인가? 케인스주의자들이 예상했던 더블딥(경기가 반짝 상승하다 다시 침체에 빠지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실업률을 살펴봐도 영국은 꽤 잘해냈다. 금융 위기에도 영국의 실업률은 미국이나 캐나다 수준으로 상승하지 않았다.

일자리 창출 관점에서 봐도 그렇다. 영국의 성과는 최고라 할 만하다. 2010~2014년 고용률은 대략 5%포인트 올랐다.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가 언급했듯, 고용률 측면에서 미국보다 더 좋은 성과를 냈다. 영국의 고용률은 현재 사상 최고인 73%이고, 미국은 59%다.

고통이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평균 실질임금은 2차 대전 이후 그 어느 정부 때보다도 더 하락했다. 그렇다면 케인스주의자들은 실질임금 측면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마거릿 대처 정부에 대해선 인정을 할까? 아마 그러지 않을 것이다.

현 정부가 실질임금의 문제를 잘 해결했는지에 대한 결론은 2015년이 아닌 2020년에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소식은 2014년 9월 이후로 임금이 실제로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당 정권) 고든 브라운 총리 때 시작된 임금 하락은 시간이 지나야 멈추는 것인데, 이제 드디어 끝났다.

폴 크루그먼과 스키델스키는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잘못된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케인스주의자답지 못한 모습이다. 나는 그들이 오즈번 전략의 경제적 결과에 대해서 상당히 잘못된 판단을 했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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