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은 관객, 4시간의 색다른 경험 주려 식탁 온도까지 잰다

입력 2015.01.24 03:01

5 Questions 한인 최초 미슐랭 ★★★, 美'베누' 코리 리 셰프
고객은 새로움을 원한다
손님이 오늘 먹은 메뉴 반드시 기록해 뒀다 재방문 땐 다른 음식 대접
맛에 지역色을 담아라
주변에 중국인 많이 살아··· 중식 기술·재료 활용 고유의 맛·문화 완성
사업 제1자산은 직원
함께 커간다는 느낌주려 매년 레스토랑 새 단장··· 일에 자부심 갖게 해 줘야

코리 리(Corey Lee·38·이동민·사진)
한국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처음으로 미슐랭 가이드 최고점인 별점 셋을 받았다. 5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간 코리 리(Corey Lee·38·이동민·사진) 셰프가 4년 전 샌프란시스코에 차린 프렌치 퓨전 레스토랑 베누(BENU)가 주인공이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2015년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점 둘에서 셋으로 승격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별점 셋 식당이 나온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이미 나파밸리의 프렌치 론드리란 식당에서 주방장으로 일하며 별점 셋을 9년 간 받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독립해서 스스로 차린 식당이라 의미가 다르다. 그는 20년 전 뉴욕의 한 레스토랑에서 웨이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돈을 안 받아도 좋으니 주방 보조로 일하게 해달라고 졸랐고, 요리에 입문했다.

그의 식당 베누는 미술관과 갤러리가 밀집한 샌프란시스코의 소마(SOMA) 지역에 있었다. 길가에 있는 현관을 지나 스무 발자국 정도 들어가니 비로소 레스토랑의 입구가 보였다. 베누는 마침 2주간 문을 닫고 공사 중이었다. 매년 한번씩 인테리어를 새롭게 단장한다고 했다.

레스토랑에 들어서니 코리 리 씨가 인테리어 업자와 진지하게 의논 중이었다. 벽에 걸린 사진부터 조명, 가구 하나까지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인터뷰 도중 목수가 식탁 재료로 사용될 원목 샘플 조각을 열 가지 정도 가져오자 하나하나 만져보았다. 그는 "식탁의 촉감이 매우 중요하다. 심지어 온도까지 본다"고 말했다. 뜨거운 음식이 올려지면 식탁이 얼마나 뜨거워질 지를 미리 가늠해 본다는 것이다. 식사 중에 손님의 손이 테이블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레스토랑 베누의 내부. 테이블 위의 그릇은 코리 리씨가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 음식에 더 집중하게 한다.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레스토랑 베누의 내부. 테이블 위의 그릇은 코리 리씨가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 음식에 더 집중하게 한다. / 베누 제공
1 다른 레스토랑과 다른 점이 있다면.

"손님이 단순히 밥을 먹으러 오는 게 아니라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이라고 늘 생각한다. 이런 곳을 찾는 사람이 단순히 식사를 하려고 예약을 하고 두 달을 기다리는 건 아니다. 평생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고, 음식에 대해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맛 뿐만 아니라 시각, 후각, 촉각 등 오감을 만족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관객(그는 관객이란 표현을 자주 썼다)이 레스토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코트를 벗고 테이블에 앉는 과정의 동선조차 베누에서의 경험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베누의 입구가 도로변에서 40피트(약 12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것이다. 시끄러운 자동차로 가득한 길가에서 바로 문을 열고 레스토랑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베누를 경험하기 위해 준비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2 매번 같은 음식을 내지 않는다던데.

"우리 메뉴에는 늘 17개의 요리가 있다. 고객이 베누를 찾을 때마다, 먹었던 메뉴를 기록해뒀다가 다음에 다시 오면 반드시 다른 메뉴를 제공하도록 한다. 베누 같은 레스토랑을 찾는 사람은 늘 새로운 경험을 원한다. 베누를 10번, 20번 혹은 40번 방문한 손님도 있는데, 그들은 음식보다 이 레스토랑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반 고흐의 팬이 있다고 하자. 그러나 고흐의 작품 중에도 더 좋아하는 그림이 있고 덜 좋아하는 그림이 있을 것이다. 항상 똑같은 크기의 애정으로 모든 작품을 좋아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고흐의 팬이다."

3 요리할 때 가장 염두하는 부분은.

"이 음식이 특별(unique)한지, 그리고 이 지역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는가 늘 고민한다. 베누는 샌프란시스코에 있고, 인구의 40%가 아시아계다. 그중에서도 중국인이 많기 때문에 중식 기술과 재료를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요리에 한국 식재료를 쓰긴 하지만, 굳이 미국에서 나지 않는 재료를 한국에서 공수해 오려고 하지 않는다. 이번에 한국에 갔을 때 쪽파와 톳은 미국에서 구할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굳이 이런 재료를 샌프란시스코까지 가져와서 요리할 생각은 없다. 신선한 재료를 가장 중요시하는데, 장거리로 가져오면 변질되기 때문이다. 또한 맛 자체 보다는 음식에 담긴 철학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기 쉽다고 생각한다. 남에게 '맛있다'는 반응을 끌어내긴 어려워도, 내 음식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내가 이 음식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는 좀 더 이해하기 쉽고, 객관적일 수 있다."

4 요리에서 과학을 강조하던데.

"우리 어머니는 김치를 담글 때 소금 중에서도 천일염을 쓰면 더 바삭바삭한 식감을 준다고 알고 있지만 왜 그런지는 모른다. 왜 천일염을 쓸까? 천일염에는 칼슘 등 미네랄이 함유돼 있어 배추 세포의 구조를 강화한다. 나는 과학자들과 협업하며 이런 내용을 배우려 한다. 요리로 표현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을 때 가장 좋은 조리법은 많은 방법을 알고 있을 때 나올 수 있다. 만약 쇠고기를 토마토와 함께 조리할 때 음식이 뜨거우면서 차가운 요소를 동시에 지니게 하고 싶다면, 나는 그걸 실현할 3가지 방법을 알고 있다. 만약 6가지 방법을 안다면 더 좋은 음식을 만들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5 독자들에게 사업가이자 셰프로서 조언을 해준다면.

"사업할 때 가장 중요한 자산은 직원이라고 생각한다. 매년 큰 비용을 들여 레스토랑을 리노베이션 하는 이유도 사실 고객보다 직원을 위한 것이다. 고객은 우리가 리노베이션을 했다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매일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 40명은 확연히 알 것이다. 그들이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항상 발전하고 진화하는 곳에서 함께 성장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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