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림돌' 노키아… 경제성장률 2년 연속 마이너스

입력 2013.12.21 03:04

핀란드 벤처의 우상 '수퍼셀' CEO 파나넨

노키아와 다른 조직으로 승부
"혁신 막는 거대한 관료주의 되지 말자" 개발자 5~6명이 한 팀 이룬 '셀'
모바일 게임 만들어 상업화까지 책임, 캐나다서 테스트… 반응 좋으면 세계로

벤처 창업 붐엔 성공 신화가 필요하다. '노키아 왕국'으로 불렸던 인구 540만명의 핀란드가 '벤처의 성지'로 거듭나고 있는 것도 성공 신화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년 전에 로비오라는 회사가 '앵그리 버드'라는 게임으로 성공을 거둔 데 이어 최근 수퍼셀(Supercell)이란 모바일 게임 회사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이들의 성공 모델을 본받으려는 스타트업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핀란드 벤처의 우상 '수퍼셀' CEO 파나넨
핀란드의 모바일게임 업체 수퍼셀의 일카 파나넨 창업자 겸 CEO(오른쪽)와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이 지난 10월 31일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에 앞서 소프트뱅크는 수퍼셀의 지분 51%를 1조7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 블룸버그
지난 16일 수퍼셀 본사에서 만난 일카 파나넨(Illkka Paananen·35) 창업자 겸 CEO는 최근 핀란드 젊은이들에게 축구 선수 리오넬 메시나 팝스타 저스틴 비버보다 더 인기 있는 인물이다. 수퍼셀은 지난해 발표한 '클래시 오브 클랜(Clash of Clans)'과 '헤이 데이(Hay Day)'라는 모바일 게임 단 두 개로 올해 전 세계에서 1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릴 만큼 대성공을 거뒀다. 게임 자체는 무료이지만, 게임 중에 필요한 아이템은 유료로 구입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 게임 업체들의 부분 유료화 방식과 비슷하다.

수퍼셀은 과거 노키아 R&D센터였던 7층짜리 건물의 6층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었다. 한 층 면적이 1500㎡에 달하기 때문에 130명에 불과한 직원들이 쓰기에는 공간이 넘쳐 보였다. 직원들의 국적이 30개국을 넘기 때문에 사내 공용어는 영어다. 한국인 직원도 2명 있었다.

회사 안으로 들어갈 때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게 특이했다. 핀란드에서는 한국과 비슷하게 집안에서 신발을 신지 않는다고 한다. "핀란드도 한국처럼 사무실에서는 신발을 신는 경우가 많지만, 집에서처럼 자유롭고 편하게 일하자는 뜻에서 회사 안에서도 신발을 신지 않는다"고 린다 아스트롬 홍보 담당이 설명해 줬다.

파나넨 CEO는 헬싱키대를 졸업한 뒤 2000년 수메아라는 게임 업체를 차렸다. 2004년 이 회사를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디지털 초콜릿이라는 회사에 매각한 뒤에도 그 회사에 남아 사장까지 오르며 6년간 일했고, 2010년 친구 4명과 함께 수퍼셀을 창업했다.

―지난 10월 소프트뱅크가 지분 51%를 1조7000억원에 사들였는데, 그 뒤 달라진 것은 없나?

"소프트뱅크가 수퍼셀의 지배 지분을 인수했지만, 경영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손정의 사장이 모바일 사업 분야에 아주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있다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소프트뱅크와 수퍼셀이 협력한다면 앞으로 더 좋은 게임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수퍼셀이 앞으로 내놓을 신작을 더 효과적으로 알리는 데 소프트뱅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북유럽 인터넷 모바일 기업
(참고로 소프트뱅크와 함께 수퍼셀 지분을 인수한 일본 최대 모바일 게임 회사이자 소프트뱅크의 자회사 '겅호온라인'의 손태장 CEO는 일본에 있는 본사를 수퍼셀이 있는 헬싱키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14일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핀란드 본사 이전 문제를 두고 타당성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며 "핀란드는 법인세율이 낮을 뿐만 아니라 스타트업이 활발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동생이기도 한 그는 "핀란드의 법인세율은 올해 24.5%에서 내년에 20.0%로 낮아진다"며 "반면 일본은 세율이 40%에 이른다"고 말했다.)

―노키아의 몰락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갖고 있나?

"어떤 서운한 감정 같은 거 전혀 없다. 노키아의 몰락은 핀란드 스타트업 성장을 위한 최고의 기회였다고 생각한다(고급 인재들이 벤처에 몰려오는 계기가 됐다는 의미·편집자 주). 노키아는 아주 크고 뛰어난 회사였지만, 결국 혁신을 이루기는 어려운 회사가 되어버렸다."

―회사 조직이 특별하다고 들었다.

"게임 회사는 대부분 개발자들이 게임을 만들면 이를 위의 관리자가 승인하는 식이다. 수퍼셀은 다르다. 셀(Cell)이라는 조직이 있는데, 셀 하나는 개발자 5~6명으로 구성된다. 각각의 셀이 저마다 아이디어를 내며, 아이디어가 좋다고 판단되면 게임으로 만들어 본다. 만든 게임을 팀원이 전부 좋아하게 된다면 일단 한정된 시장인 캐나다의 앱스토어에 올려본다. 거기에서 반응이 아주 좋으면 세계시장에 내놓는다."

―어떤 셀에서 만든 게임이 실패하면?

"실패한 팀에 샴페인 파티를 열어준다. 대신 성공하면 맥주 파티를 열어준다."

―실패한 팀을 더 축하해 주는 것 같다.

"실패가 물론 즐거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배우는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실패 자체를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무언가를 확실히 배웠다는 것을 축하하는 것이다. 나도 수퍼셀을 만들고 처음 2년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어떤 실패였나?

"원래 수퍼셀에서 만들려던 게임은 '크로스 플랫폼'을 지향했다. 즉 어떤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에서도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잘 안 됐다. 그래서 아이패드용 게임에 집중했고, 결국 성공할 수 있었다. 잘 안 되는 것은 빨리 중단하고,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했는데 처음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수퍼셀은 연간 매출 1조원을 올리지만 직원은 130명이다. 노키아는 전성기에 핀란드에서만 2만5000명을 고용했는데, 핀란드 게임 산업 전체의 올해 고용 총인원은 겨우 2200명이다.

"맞는 이야기다. 수퍼셀은 수천 명을 고용할 수 없다. 우리는 최고 직원을 뽑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그만큼 직원 한 명을 더 뽑는 것에 신중하다. 하지만 우리는 세금을 아주 많이 낸다. 최근엔 정부 예산 부족으로 개·보수가 늦어지고 있는 핀란드 내 아동 병원의 보수 비용을 수퍼셀이 전액 기부금으로 내기도 했다. 수퍼셀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수퍼셀 같은 기업이 10개, 20개로 늘어난다고 생각해 보라. 충분히 고용을 늘릴 수 있고, 국가나 사회에도 공헌할 수 있다."

―한국도 실리콘밸리나 핀란드의 IT 창업 열기를 배워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

"흠, 글쎄. 그런 말을 듣는다는 게 놀랍다. 한국은 게임 산업의 선구자이다. 실리콘밸리나 핀란드의 어떤 것을 배우겠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나 스스로 넥슨이 만든 게임의 열혈 팬이고, 네이버나 카카오톡 같은 회사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모든 회사를 존경한다. 나는 한국 게임 회사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한국 업체들과 경쟁이 치열해질 텐데 매우 흥분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불안하고 긴장되기도 한다."

―왜 실리콘밸리로 안 가고 헬싱키에서 창업했나.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헬싱키에는 20년 전부터 게임을 개발해 온 작은 기업이 많다. 직원이 수십 명인 회사가 1000명인 회사보다 더 잘할 수도 있는 분야다. 더구나 요즘 모바일 게임은 앱 마켓을 통해 손쉽게 글로벌 시장에 확산시킬 수 있지 않은가. 굳이 실리콘밸리에 가지 않고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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