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아이디어에 No를 외친다" 경영학을 뒤집는 '애플 경영'

입력 2012.03.24 03:05

재정 부서는 딱 1개뿐 - 아이팟·아이패드 등
애플 전 제품의 실적을 오직 한 부서에서 관리… 타 글로벌 기업과 정반대
디자인이 애플의 중심 - 산업 디자인 부문은 독립 부서로 최우선 대우
CEO 1명이 모든 걸 통제… 현지화 전략도 허락 안 해
엄격한 비밀주의 - 회사 전체가 블랙박스
신제품 회의는 창문 없는 밀폐된 곳에서 정보 유출되면 즉시 해고

"우리는 훌륭한 아이디어에 매일같이 '노(no)'라고 말하는 회사다(We say 'no' to good ideas everyday)."

팀 쿡(Cook)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고 있던 2010년 한 애널리스트 대상 설명회에서 말한 이 문장은 '애플 웨이(Apple way)'를 상징한다. '많은 것을 포기한다. 대신 선택한 분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그리고 거기서 세계 최고가 된다'.

실제로 애플이 판매하는 제품은 딱 5종뿐이다. 단순·집중으로 요약되는 창업자 스티브 잡스(Jobs)의 경영 철학은 지금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시(市)에 있는 애플 본사와 해외 네트워크를 관통하는 애플의 유전자이다. '소비자·주주와 적극 소통하라' '여러 제품으로 위험을 분산하라'는 현대 경영학 이론에 정면 도전하는 '애플 경영'의 핵심 기둥은 무엇인가.

144조원 매출을 단일 부서가 관리, 'One P&L' 구조

애플은 지난해 총매출 1276억달러(약 144조원)를 올렸다. 이 중 절반 정도가 아이폰 한 제품에서 나왔고, 아이패드와 맥PC의 비중은 20% 정도였다. 한때 애플 총매출의 절반 이상을 올렸던 아이팟은 10%대로 떨어졌다. 여느 기업이었다면 아이폰과 아이패드 담당 임원의 고과(考課) 평가는 크게 오르고, 아이팟 담당 임원은 문책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애플에는 이런 일이 없다. 각 부문장은 개발·운영만 맡을 뿐, 실적 관리는 최고재무책임자(CFO·수석부사장급)인 피터 오펜하이머(Oppenheimer) 몫이기 때문이다. 오펜하이머 아래에는 재정과 지출을 담당하는 부사장이 1명씩 있다. 전 세계 임직원이 7만명이 넘고 연간 매출이 대한민국 1년 예산의 절반에 이르는 애플의 손익(損益·Profit & Loss) 체제를 단 한 개 재정 부서가 관리하는 것이다. 대다수 글로벌 선진 기업이 조직의 긴장감과 경쟁 촉진을 위해 부문별 독립채산제 등을 도입하는 것과 정반대이다.

블룸버그
디자인 최우선·CEO 1인 집중 '중앙 통제형 조직'

애플 조직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산업 디자인 부문(Industrial Design Group)'이다. 조너선 아이브(Ive) 수석부사장이 이끄는 이곳은 수많은 시(試)제품을 만드는 혁신의 산실(産室)이다. 제품 포장 상자조차 수백 샘플을 만들어 몇 달이고 테스트한다. 애플 디자인팀은 제품별로 나눠져 있지 않고 단 하나의 독립된 부서로 돼 있다. 디자이너는 각 사안을 CEO에게 직보(直報)할 만큼 독립 권한을 인정받으며, 엔지니어·마케터 등과 연석회의하면서도 최우선 발언권을 부여받는다.

디자인을 제외한 애플의 조직 구도는 철저한 기능 중심이다. 개발 부서는 iOS(아이폰·아이패드 운영체제)·맥PC·아이튠스 등 핵심 상품·서비스 단위로 구분되며, 하드웨어 개발과 마케팅은 독립 부서로 하나씩 있다. 기능 융합을 위해 복잡한 매트릭스 조직을 권장하는 최신 경영 조류를 역행하는 꼴이다. 명령 체계도 본사 직원 2만여명이 만든 결과물이 CEO 1명에게 집중되는 '중앙 집중식'이다. 이런 방식은 해외 지사 운영에도 적용된다. 중앙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는 탓에 애플의 해외 지사장들은 권한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아시아 국가 법인 대표는 "현지 문화에 맞춘 현지화 전략을 선보이겠다"고 발언했다가 해임됐다고 한다. 애플의 글로벌 정책에 균열을 가했다는 게 이유였다.

애플 본사는 정보의 '블랙박스'… 엄격한 비밀주의

대부분의 기업은 제품 발매 전에 여러 미디어 채널을 활용해 정보를 흘리고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려 애쓰지만, 애플은 제품 세부 사양까지 절대 비밀에 부친다. 쿠퍼티노의 애플 캠퍼스 내부를 둘러본 외부인도 손꼽을 정도다. 일반인은 물론 투자자·경영학자·저널리스트, 심지어 거래처 직원도 극히 제한된 회의실만 들어갈 수 있다. 회사 전체가 블랙박스인 셈이다.

애플의 비밀주의는 실리콘밸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은 사석에서 회사 얘기를 하며 아이디어를 주고받지만 애플은 예외다. 회사 밖에서 한마디도 회사 얘기를 할 수 없다. 애플 종업원이 페이스북·트위터 같은 SNS에서 회사 흉을 봤다가는 당장 해고다. 사내 정보 단속도 살벌하다. 핵심 신제품 회의는 창문도 없는 밀폐 공간에서 한다. 도청 방지를 위해서다. 수석부사장들도 자기 분야 얘기를 마치면 회의장을 떠나야 한다. 회의 정보가 유출되면 즉시 해고는 물론 피해 보상 소송을 감수해야 한다.

하드웨어·소프트웨어·소비까지 장악하는 '애플 생태계' 파워

이달 4일 애플의 온라인 응용프로그램(앱) 장터인 '앱스토어'는 총 다운로드 수 250억회를 돌파했다. 2008년 아이폰용으로 처음 생긴 앱스토어는 아이패드·맥PC로 영역을 확장했다. 애플의 앱스토어는 전 세계 기업을 통틀어 가장 성공적인 온라인 장터 모델이다. 애플의 장터는 소비자들에게는 믿을 수 있는 앱 백화점을, 개발자들에게는 거대한 글로벌 시장을 제공했다.

애플은 음악·영화·전자책 등 온갖 콘텐츠도 쥐고 있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콘텐츠까지 전부 장악한 기업은 전 세계에서 애플이 유일하다. 소비자의 모든 경험을 틀어쥐고 있는 데서 애플의 막강한 시장 권력이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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