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답지 않은 백화점 日다이신, 지역 매출 1위 비결

    • 도쿄=선우정 Weekly BIZ 에디터

입력 2011.08.13 03:05

반경 500m 석권주의 8개 공룡라이벌을 꺾다
김밥 한쪽, 삼겹살 석줄, 쥐덫도 팔아… 걸어올 수 있는 거리內 노인 고객 싹쓸이

도쿄 오타(大田)구 오모리(大森)역 주변. 부자에서 서민까지 18만명이 밀집한 도쿄의 대표적 생활 경제권이다. 이 역을 나서면 격전장이 펼쳐진다. 소비 감소와 장기 불황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거대 유통기업의 시장 쟁탈전이다.

일본 철도재벌 도큐(東急)그룹의 도큐스토어, 세계 최대 유통기업 월마트의 세이유(西友), '일본의 이마트' 이토요카도, 대형 수퍼체인인 오제키와 세이조이시이(成城石井). 역 주변에 다닥다닥 붙어 매일 파상적인 가격전을 벌이고 있다. 역에서 남쪽으로 1.5㎞. 이곳에도 철도 재벌인 도부(東武)그룹의 도부스토어, 종합상사 스미토모(住友)상사와 미국 2위 수퍼체인 세이프웨이가 합작한 서미트스토어가 상권을 다투고 있다.

니시야마 사장이 단골손님을 부르고 있다. 이곳의 최대 강점은 고객과의 스킨십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이상한 평화 공간이 존재한다. 거대 자본이 들어서지 못한 반경 500m 지역이다. 1만2000세대, 소비자 2만2000여명이 사는 핵심 상권임에도 중심부 다이신 백화점을 제외하면, 주변에 수퍼마켓 오제키 한 곳만 들어와 있다.

다이신 백화점은 '백화점' 이름을 달고 있지만 무미건조한 외형은 수퍼마켓에 가깝다. 일본백화점협회에 등록도 못했고, 매장이라곤 본점 한 곳뿐인 로컬 유통업체다. 하지만 이 백화점은 반경 500m로 설정한 자신의 '나와바리(繩張·영역)'를 반세기 동안 철저히 지키고 있다. 8개 공룡 라이벌이 매일 세일 전쟁을 벌여도, 이 백화점의 지역 매출액 1위 자리를 빼앗지 못했다.

'반경 500m, 셰어(share·점유율) 100% 주의(主義).'

콧수염 아저씨, 니시야마 히로시(西山敷·64) 사장은 다이신의 경영 전략을 이렇게 표현했다. 쉽게 말해 백화점 반경 500m 지역을 싹쓸이한다는 것이다. 현재 다이신의 멤버스 등록자는 1만5600명. 경제주간지 닛케이(日經)비즈니스는 회원을 기준으로 다이신이 지역 시장을 70% 점유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2006년 초(超)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 중소상인을 사멸 위기에 빠뜨린 거대 자본의 대(大)상권 시대가 퇴색하고 지역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소(小)상권 시대로 진화하고 있다. 다이신 백화점은 지금 일본 언론이 주목하는 대표적 '소상권 킬러(killer)'다.

반경 500m. 이 숫자에 다이신 백화점의 노하우, 중소 자본의 생존 전략이 담겨 있다. 지난 7월 17일 도쿄 매장에서 니시야마 사장을 만났다.


물건값 안 싸도 없는 게 없다
100년 전 나온 포마드·말털 칫솔… 한 명이라도 찾으면 무조건 갖다 놔

反효율? 이게 소매업의 진짜 서비스
돈 많은 노인 많다… 지갑 안 열 뿐


일본 국토교통성이 2005년 실시한 '전국 도시 교통 특성 조사'가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65~75세 일본 고령자의 도보(徒步) 이동 가능거리는 평균 1㎞다. 생필품을 사기 위해 집에서 가게까지 고통 없이 갈 수 있는 거리는 편도 500m라는 계산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일본 유통기업의 시장 지배전략은 대형화와 대량화였다. 초대형 마트를 세우고 더 넓은 상권에서 손님을 끌어모으는 '대(大)상권 전략'에 주력했다. 하지만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3.1%에 이르는 초(超)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시장의 성공 키워드가 이동 거리가 짧은 고령자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소(小)상권 전략'으로 바뀌고 있다. 대자본의 전성시대가 지역 커뮤니티와 밀접하게 연결된 토박이 중소자본의 시대로 진화하는 것이다.

지금 도쿄의 작은 로컬 백화점 다이신이 주목을 받는 것은 이 백화점이 대자본에 밀려 사멸 위기에 처한 중소 상인들에게 재기 가능성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이 원하면 쥐덫도 판다

다이신백화점 식품 코너에 있는 김치를 세어보니 모두 23종이었다. 인근 라이벌 수퍼마켓인 이토요카도 김치 코너보다 종류가 두 배 많았다. 김치를 포함해 이 백화점이 판매하는 절임 상품은 300종. 된장만 170종을 판매한다. 생활용품 코너에 있는 수세미는 종류를 세다가 포기했다. 원색의 최신 플라스틱 제품부터 야자 열매의 거친 털로 만든 누런 거북이표 수세미까지 있다. 둘러보니 무스와 헤어스프레이 옆에 포마드(pomade), 전동 칫솔 옆에 말털(馬毛) 칫솔이 놓여 있다. 이미 100년 전부터 생산된 아이템들이다. 한구석에서 쥐덫까지 발견했다.

다이신백화점이 판매하는 상품 아이템은 18만종. 압도적인 다양성이다. 오로지 다양한 상품으로 승부를 거는 유명 잡화점 ‘도큐 핸즈’의 아이템과 비슷하다.

니시야마 히로시(西山敷) 사장은 “다이신이야말로 진정한 백화점”이라고 말했다. 손님이 원하는 것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의미(百貨)다. “전기, 수도, 가스 그리고 다이신.” 지역 주민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인프라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화점이 주최한 여름 마쓰리(축제). 허름한 백화점 건물은 현재 재건축 중이다.

다이신백화점이 도쿄 오타구 산노(山王) 3번지에 들어선 것은 1964년. “손님이 이게 필요하고 저게 필요하다고 하면 어떻게든 구해다가 놓았어요. 신제품은 신제품대로 팔고. 그렇게 반세기를 보내니 상품 구색이 이렇게 많아졌네요. 어떤 희한한 물건이 있다면 그건 고객 누군가가 원해서 놓아둔 겁니다. 그 중엔 1년에 단 4개 팔리는 상품도 있어요. 그 상품은 당연히 적자이지요. 하지만 그 상품을 사기 위해 오는 사람은 다른 상품도 삽니다. 어느 날 일생 사용하던 상품이 진열대에서 사라졌다면 얼마나 쓸쓸하겠어요.” 니시야마 사장은 이것을 “소매업의 진짜 서비스”라고 했다.

“옛날 어물전을 생각해보세요. 지역 커뮤니티의 일부였지요. 손님이 와서 ‘어이, 아들 생일에 도미가 필요한데’라고 말하면 도미를 제때 구해다 마진을 얹어 파는 것이 어물전의 서비스였지요. 그런데 지금 대형 수퍼들은 몇 가지 아이템을 대량으로 들여놓고 가격을 내려 ‘살래? 안 살래?’라고 하는 방식이지요. 이게 무슨 서비스입니까? 대형 유통기업은 이런 방식으로 이익을 추구하지요. 일본의 로컬 백화점도 이런 행태를 따라 하다가 경쟁에 밀려 거의 다 망했고.”


반(反)효율주의

다양성에 대한 다이신백화점의 집착을 극단적으로 상징하는 상품이 김밥(한국 김밥보다 두꺼운 후토마키·太卷) ‘한쪽’이다. 한 줄이 아니라 한 줄을 여러 개로 자른 한쪽을 따로 포장해 판매한다. 정육 코너에선 삼겹살 슬라이스 석줄(48g) 포장을, 생선 판매대에선 도미회 네쪽 포장도 발견했다. 소식(小食)하는 노인을 겨냥한 포장이다. ‘대용량을 통한 저가(低價)전략’과 정반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니시야마 사장에게 “이렇게까지 다양성을 확보하려면 경영 효율성은 떨어질 텐데”라고 물었다. “생각해보세요. ‘효율적이면서 좋은 서비스’란 게 정말로 있나요? 소매업은 남이 만든 물건에 마진을 붙여 파는 것이지요. 이 자체에 무슨 큰 의미가 있나요? 소매업의 원점은 서비스이지요. 매장을 임대해 외부에 맡기고 외주(外注)를 통해 상품을 조달하는 것은 ‘원점’을 남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돈을 버니 소매업엔 진짜 경영자가 없다고 욕먹는 거예요. 나는 노모를 30년 동안 간호했어요. 집에서. 당시는 당연한 일이었지요. 요즘엔 돈을 지급하고 집 밖에서 남에게 부모의 간호를 맡겨요. 효율적이지요. 그러나 진짜 서비스가 아니지요. 어머니의 휠체어를 내가 직접 미는 것이 진짜 간호 서비스예요. 소매업도 똑같아요.”


손자같은 직원들, 초밀착 영업
궁금한 것 못참을 때 손님 가장 초조… 눈에 확 띄는 옷 입고 배달까지 척척
지역 주민들, 응원·편애할 수밖에


다이신백화점의 직원 수는 300명. 다이신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12% 이상이다. 닛케이비즈니스에 따르면 일본 중견 수퍼마켓의 인건비 비중은 10.4~11.23%. 다이신은 규모보다 직원 수가 많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한다’는 이른바 ‘지마에(自前) 주의’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백화점에는 서점과 가전 매장도 있어요. 다른 유통기업들은 대개 전문기업에 매장을 맡기지요. 임대하거나 외주를 주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다 해요. 다른 기업들은 상품 조달도 본부가 일괄적으로 하지요. 구매력을 높여야 가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우리는 각 코너를 담당하는 판매사원이 상품을 조달해요. 사실 당연한 일이에요. 매장에서 손님을 대하면서 그들의 의견을 듣는 사람들이 상품을 조달하는 것이 합리적이지요.”

니시야마 사장이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웃고 있다. 고객 눈에 잘 띄기 위한 백화점 여름 유니폼이다.

다이신백화점에 갔을 때 모든 직원은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있었다. 눈에 잘 띄는 원색이다. 일본의 대형 수퍼마켓에선 직원을 보기 어렵다.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상품을 통합 관리하고 직원 수를 계속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이신백화점에선 입구부터 직원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직원들에게 상품을 계속 다시 진열하라고 주문합니다. 매대를 단정하게 하라는 뜻도 있지만 손님이 있는 곳에 직원들을 두기 위한 것이지요. 요즘 수퍼마켓에선 물건보다 직원 발견하기가 더 어렵다고 합니다.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없을 때 손님들은 초조해합니다.”

다이신의 물건값은 어떤 수준일까? “싸지 않아요. 하지만 손님이 무조건 싸다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외관은 서민 백화점이지만 100g에 2000엔짜리 고베규(神戶牛·일본 와규의 종류), 한 벌에 50만엔짜리 모피 코트가 종종 팔려요. 사실 일본 고령자들은 돈이 많거든요. 쓰지 않을 뿐이지. 노인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직원들이 손자처럼 밀착합니다. 옛날 상점처럼 충실하게 설명하면서 지역 커뮤니티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지요. 일본엔 ‘히이키’란 말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교사가 마음에 드는 아이를 편애하는 안 좋은 뜻도 있지만 특정 상점이나 스포츠 팀을 중점적으로 이용하고 응원하는 좋은 의미도 있지요. 다이신은 이곳 주민들에게 ‘히이키’되는 것입니다.”

직원들에게 어느 정도 연봉을 주는지 궁금했다. “360만엔에서 최고 600만엔. 일본에선 낮은 수준이에요. 우리 최고 수준이 일본 상장 기업의 과장 정도이니까.” 이때 옆에 있던 오야마 마사시(大山雅史) 매니저가 끼어들었다. “아니, 주임(고참 평직원의 직급) 수준입니다.”


초(超)지역 밀착형 영업

다이신백화점도 일본의 지역 백화점들처럼 대기업을 흉내 내다가 망할 뻔한 경험이 있다. 다이신을 창업한 다케우치(竹內) 가문은 점포를 7개로 늘렸다가 대기업에 밀리면서 100억엔의 빚을 안고 사실상 무너졌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판한 사람이 상업시설 건축·설계회사를 운영하다 다이신과 인연을 맺은 니시야마 현 사장이다. 그는 은행에서 20억엔을 빌려 창업 가문이 보유한 주식을 사들인 뒤 2004년 ‘오너 사장’으로 취임했다.

“제가 발견한 다이신의 강점은 반세기 동안 직원들이 구축한 주민들과의 친분이었지요. 반대로 말해 다이신의 재산은 달랑 그것뿐이었어요. 그래서 본점만 남기고 모두 없앴습니다. 단 1년 동안 구조조정을 끝내고 빚을 털었지요.” 그는 취임 첫해인 2004년부터 1년 동안 다른 지역에 있던 지점 4곳을 모두 폐쇄했다. 본점에 붙어 있던 가구관과 미디어관도 2008년 모두 문을 닫았다.

1 다이신백화점의 수세미 코너. 최신 제품에서 100년 전부터 판매돼온 거북이표 수세미까지 엄청난 종류를 판다.
다이신백화점의 고령자용 소량 식품과 구식 제품. 2 삼겹살 48g, 3 포마드, 4 김밥 1쪽, 5 도미회 4쪽.

니시야마 사장은 지역 특성을 연구했다. 다이신백화점이 위치한 산노 3~4번지 인구의 60세 이상 비율은 28%. 백화점 고객을 분석해보니 손님의 70%가 50세 이상이었다. 물론 지역의 고령화는 고객의 전체적인 구매력 약화를 뜻한다.

“하지만 이 지역 고령자들은 오래 함께해온 다이신, 손자처럼 대해주는 직원들을 열광적으로 지지했어요. 엄청난 무형 자산이었지요. 이들을 석권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어요. 고령자의 쇼핑 거리를 편도 500m로 설정하고 그 안에서 충분한 편의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대상권에 의존하는 대기업은 흉내 내기 어렵지요.”


대기업 흉내내다 망할 뻔
창업주, 6개 점포 늘렸다 100억엔 빚
유일한 강점은 주민과 친분뿐인데 충성고객 갖춘 본점 빼고 다 없애

도시락 나르고 고령자 안부 챙기며 상점 넘어 지역사회 가교 역할…
우리 성공은 곧 마을의 축제다


첫째 서비스가 2008년 시작된 ‘행복 배달편(便)’이다. 70세 이상 고령자(임산부·장애인도 포함)는 쇼핑을 마친 뒤 집까지 배달을 부탁할 수 있다. 이때도 외부 택배업체가 아니라 다이신 사원이 고객과 이야기하면서 배달한다.

둘째 서비스가 2009년 시작된 ‘다이신 배달 도시락’이다. 지역 고령자가 주문하면 도시락값 500엔만 받고 집까지 배달한다. 메뉴는 매일 바뀐다. 이들은 고령자의 안부를 확인하는 역할도 병행한다. 도시락 배달 때 이상한 점이 발견되면 등록된 연락처에 연락해 안부를 확인한다. 그래서 손자와 할머니처럼 사원과 고객의 특별한 개별 관계가 백화점엔 폭넓게 형성돼 있다. 다이신이 지역을 싹쓸이할 수 있는 힘이다.

니시야마 사장은 “우리는 ‘모노(物·thing)’를 팔기 전에 ‘고토(事·event)’를 판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다이신백화점은 주차장 부지에서 여름축제를 시작했다. 첫해 4000명, 이듬해 1만1000명, 작년 1만3000명이 참가했다. 작년부터 산노 지역의 공식 축제로 발전했다. 백화점이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이신백화점은 농산물을 공급하는 이바라키(茨城)현 농가로 고객을 초청하는 ‘벼 베기 여행’도 실시하고 있다.

“대상권에 의존한 대기업은 이익을 기부를 통해 사회에 환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익을 지역에 바로 환원하지요. 중소 자본이 지역 주민의 지지를 받아 지역을 석권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니시야마 사장은 최종 목적을 “마을의 심볼이 되는 것. 커뮤니티 재구축의 중심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지역 중소업체의 생존 노하우도 여기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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