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푸팬더2' 감독, 한국계 제니퍼 여 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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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1.04.23 02:58

      미국서 '강가딘'을 본 아이… 늘 무언가를 그렸던 소녀… 애니메이션의 거물로 컸다
      "관객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 감동의 첫번째 조건이죠"

      성공하는 스토리
      일단 마음 가는 인물을 창조하고 나면…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공감 얻어…

      관객보다 내 만족이 우선
      내가 좋아하면 누군가는 좋아해도… 나도 마음에 안들면 아무도 마음에 안들 것…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건
      창의성이 아니라 '분명한 커뮤니케이션'… 아이디어에만 골몰하지 말고… 직원들 움직일 영감 줘야…

      4살 한국 소녀가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1976년이었다. 어린 소녀는 3살 터울의 언니를 따라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 있는 서점을 자주 찾았다. 서점에는 그녀처럼 태평양을 건너온 한국 청소년 잡지와 만화책이 진열돼 있었다. '소년중앙', '새소년', '어깨동무' 같은 청소년 잡지였다.

      '황금날개'와 '강가딘' 같은 한국 만화를 좋아했던 소녀는 30여년 뒤 미국 애니메이션계의 거물(巨物)이 됐다. 제니퍼 여 넬슨(Jennifer Yuh Nelson·39·한국명 여인영).

      여 감독은 드림웍스(Dreamworks)가 만든 '쿵푸팬더2'(5월 26일 개봉)의 감독을 맡아 제작을 지휘했다. 드림웍스는 애니메이션 '슈렉'으로 유명한 미국의 영화사. 그녀는 백인 남성 일색이었던 드림웍스 내의 첫 아시아계 감독이자 여성 감독이다. 드림웍스나 픽사(Pixar)처럼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업계에는 전 세계에서 창의적인 인재들이 몰려든다. 아시아계도 많다. 끈기 있고 손재주가 좋은 한국인도 꽤 있다. 하지만 여 감독처럼 모든 직원을 총괄하고 한 작품을 완성한 경우는 드물다.

      흔히 애니메이션은 꿈을 파는 산업이라고 한다. 하지만 꿈을 꾼다고 모든 작품이 성공하고, 꿈이 있다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여 감독도 캘리포니아주립대(롱비치)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한 뒤 작은 회사를 전전했다. 애니메이션 작업을 처음 했을 때는 몇달을 독하게 매일 밤 야근을 했다. "최대한 빨리 일을 익히고 싶었어요. 적어도 동료나 상사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거든요."

      여 감독은 2002년 '스피릿'에서 주인공인 말을 그리며 드림웍스에 입성한 뒤, '신바드'(2003), '마다가스카르'(2005)를 거쳐 2008년에 이야기 전개를 총괄하는 스토리 총괄(head of story)로 승진했고 속편에서는 감독으로 발탁됐다. 드림웍스 내에서도 고속승진으로 평가받는다. 그녀의 상사인 드림윅스 CEO 제프리 카젠버그(Katzenberg)는 "드림웍스 전 직원 가운데 가장 조용하고 세련된 사람이지만 (결과물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 감독은 자신이 단지 '독한 아시아계'였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라고 했다.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쿵푸팬터 2'의 감독을 맡은 제니퍼 여넬슨(한국명 여인영씨)이 작업실에서 스케치를 하고 있다. 여 감독은 한국에서 태어나 4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갔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제공
      "(20여년 전) 처음 애니메이션 작업을 맡아 밤샘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함께 일하던 프로듀서가 와서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게 답이 아닐 수도 있어. 성공은 휴식(rest)과 명확성(clarity) 그리고 독창적인 생각(original thinking)이 필요하다고.' 이 말이 제 머리에 '콱'하고 박혔죠. 그때부터 무조건 밀어붙이기보다 일에서 재미를 찾기로 했습니다. 그런 변화가 지금의 저를 팀에 보탬이 되는 존재로 만든 것 같습니다. 제가 독불장군이었다면 반대였겠죠."

      그녀는 쿵푸팬더2를 제작하면서 20개 넘는 국적을 가진 300여명의 직원을 지휘했다. 관리자로서 그녀는 커뮤니케이션(소통)을 강조했다. "당신을 흠뻑 빠져들게 할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야 하지만 동시에 다른 직원들에게 영감을 주고 분명한 커뮤니케이션으로 그들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차로 1시간쯤 떨어져 있는 드림웍스 패서디나 스튜디오는 지중해의 어느 휴양지처럼 보였다. 분수가 뿜어 올린 물이 햇빛을 받아 하얗게 부서졌고, 길가에는 올리브나무가 그늘을 드리웠다. 점심때를 맞아 회사 정원에 차려진 뷔페에서는 직원들이 음식을 고르고 있었다. '슈렉' '쿵푸팬더' '드래곤 길들이기' 같은 작품을 내놓으며 승승장구한 애니메이션 제국의 창의성은 이런 멋진 환경에서 나오는가 싶었다.

      하지만 여인영 감독의 작업실은 애니메이션 산업에 필요한, 또 다른 요소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혹독한 노력과 완벽주의. 레이크사이드(lakeside·호숫가라는 뜻)라는 이름의 건물 4층에 있는 그녀의 방은 마치 골방이나 수도승의 방처럼 보였다. 2평(6.6㎡) 남짓한 방은 그림 한점 걸려 있지 않았다. 사무실 한쪽의 화초는 잎이 반쯤 말랐다. 예술가의 작업실치고는 휑해 보인다고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지난 3년간 사무실에 앉아 있을 시간이 거의 없었어요. 너무 바빠서."

      성공하는 스토리의 핵심은 캐릭터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스토리는 어디에서 시작되나?

      "당신이 좋아하고 마음쓰는 캐릭터(인물)를 찾아내고, 그들에게 입혔을 때 진실한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게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이야기는 무(無)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감동적이고 좋은 이야기란 당신이 좋아하는 캐릭터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서 시작한다. 영화관에 가서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캐릭터와 데이트를 한다고 생각해보라. 성공하는 스토리의 핵심은 캐릭터다."

      이번에 그녀가 감독한 쿵푸팬더2에서는 전편에 없었던 악역(惡役) '셴'이 핵심 캐릭터였다. 여 감독은 팀원들과 회의를 해서 1편에 나오는 근육질의 악당(호랑이)과는 정반대의 악당을 만들기로 했다. 날카롭고 기만적이며 위험한 악당. 흥미로운 점은 캐릭터도 여 감독 혼자가 아니라 전체 팀원들이 만들었다는 점이다.

      처음 악당을 공작새로 하기로 했을 때 여 감독은 '별로 위협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여 감독은 직접 하얀 공작을 스케치하고 눈을 붉게 칠했다. 여기에 팀원들의 아이디어가 덧붙여지자 여 감독은 그제야 '쿨하다(멋지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 의견은 캐릭터 디자이너에게 전달되고, 또다른 디자이너는 이 이미지를 3D(3차원)로 만들고 애니메이터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공작에 움직임을 준다. 공작은 깃털 하나까지 따로 움직이도록 디자인됐다. 여 감독의 작업대에는 공작 깃털이 2개 꽂혀 있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지난 3년간 수없이 들여다봤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쿵푸팬더2'의 주인공들과 제니퍼 여 넬슨 감독(가운데). /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제공
      ―아이디어는 어떻게 발굴하나?

      "대부분 내가 무엇인가를 하다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뭔가 쿨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아이디어가 저절로 나온다."

      ―그렇게 쿨하다고 느끼는 순간을 찾기 위해 어떻게 하나? 독서, 여행?

      "거의 모든 일이다. 어디에서건 올 수 있다. 책을 읽다가 떠오를 수도 있고, 차를 몰고 가다가 떠오르기도 한다."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이번 작품을 만들기 위해 중국 쓰촨에 여행을 갔었다. 거기서 산에 올랐는데, 안개가 산을 따라 내려오는 장면을 봤다. 나뭇잎은 기본적으로 녹색이지만 안개가 나무를 스쳐 지나갈 때는 같은 녹색이라도 완전히 다른 색처럼 변한다. 그 관찰 경험을 실제 작품에 반영했다."

      그녀는 3년간 300~400명과 함께 일했다. 10~50명 정도가 한 팀을 이룬다. 여 감독은 이 중 15명인 팀장들과 매일 얼굴을 맞대고 작업을 진행했다. 여 감독의 일정은 일간, 주간, 월간 회의로 빽빽이 채워져 있다고 한다. 회의 때는 작업 진행 상황을 직접 팀원들과 함께 보고 수정하기를 반복한다. 조명(영화 장면에 빛을 그려넣는 것) 담당인 리사 김씨는 "한 장면당 4번 이상을 감독과 함께 봤다"고 말했다. 캐릭터 기술감독으로 참여한 김현승씨는 "드림웍스 감독들은 100%가 아니라 110%를 추구한다"고도 했다.

      여 감독은 "내가 감독이지만 실제 내가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며 "대신 우리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며, 각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정확히 공유하기 위해 회의를 한다"고 말했다.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창의성인가?

      "아니다. 분명한 커뮤니케이션. 당신을 흠뻑 빠져들게 할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야 하지만 동시에 다른 직원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들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편당 제작비용은 1억~2억달러(약 1100억~2200억원)이다. 이렇게 막대한 비용이 들지만, 콘텐츠 산업은 표준화가 어렵고 결과를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쿵푸팬더(매출액 6억3000만달러), 마다가스카(5억3000만), 신밧드(8000만달러), 스피릿(1억달러) 식으로 흥행의 편차가 컸다.

      직접 돈을 투자하진 않았지만 감독 입장에서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어떤 스토리는 박스오피스에서 환영을 받고, 또 어떤 스토리는 외면을 받는다. 어떤 스토리가 성공할지 미리 알 수 있나?

      "그런 것은 예측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이야기 안에 좋은 캐릭터가 있다면 사람들이 보고 싶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나머지는 어쩌면 모두 운(運)일지도 모른다."

      ―이번 작품이 성공할 것이라고 보나?

      "내가 영화를 만들면서 스스로 하는 질문은 '이 영화가 성공할까'가 아니다. 내가 하는 질문은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나'는 것이다. 이 작품이 보고 싶은지, 혹은 영화 내의 특정한 장면이 정말 좋은지 같은 것은 순수하게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렸다. 저기 밖에 있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내 생각이 중요하다. 관객을 만족시키고 싶나? 그럼 우선 당신을 만족시켜야 한다. '관객은 좋아할 거야' 같은 생각은 잘못됐다. 당신이 좋아한다면 누군가도 좋아할 것이다.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세 자매가 모두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일해

      드림웍스 패서디나 스튜디오 전경. / 박수찬 기자
      ―방금 당신이 감독한 쿵푸팬더2를 봤다. 주인공인 '포'가 어릴 때 "엄마"하고 말하는 것 같던데, 한국어를 의도한 것인가?

      "아니다. 그냥 아기가 내는 소리다. 포가 그 장면에서 진짜 아기니까."

      ―어릴 때부터 만화책을 자주 봤다고 들었다.

      "우리 자매들은 어릴 때부터 만화 잡지를 즐겨봤다. 구독을 한 것은 아니고 만화 가게에 가서 한두 권씩 사서 집에 가져와 읽었다. 당시에는 한국 만화 잡지가 많이 들어와 있었다. 잡지 제목은 정확히 기억 안 나지만 '황금날개', '강가딘', '마징가Z', '에이트맨' 같은 만화를 많이 읽었다."

      ―이민을 간 한국인 부모들은 그 교육이 더 엄격한 것이 일반적이다.

      "부모님들은 우리를 세심하게 챙기셨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해' '저것은 하지 마'라고 일방적으로 말씀하시진 않았다. 우리 자매가 모두 아티스트가 된 것도 그 덕분이다. 부모님은 우리가 학교 공부를 잘하기만 하면 만화책을 읽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하시지 않았다. 그리고 다행히도 우리 자매들은 공부를 썩 잘했다(웃음)."

      여 감독의 큰 언니는 TV 애니메이션, 둘째 언니는 여 감독과 같은 드림웍스에서 일한다. 둘째 언니인 여인경씨는 애니메이션 '메가마인드'에서 스토리 총책임을 맡았다.

      ―한국에서는 지금도 아이가 만화를 읽으면 부모들이 걱정한다.

      "균형의 문제다. 어떤 것이 지나쳐서 다른 일까지 해치지 않는다면 만화책을 읽고, 비디오 게임을 하는 것은 놀이로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걸 무조건 나쁜 것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 자기가 맡은 일만 한다면 말이다. 우리 어머니는 숙제하라고 다그치는 대신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딸들은 착한 아이들이지? 누가 숙제하라고 하지 않아도 숙제를 하는 아이들이지'라고. 마찬가지로 누가 우리 보고 만화를 보라고 해서 본 것도 아니고, 그림을 그리라고 해서 그림을 그린 것도 아니다."

      ―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어릴 때부터 스토리보드(story board·이야기의 전개를 그림으로 그린 것)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영화 만들기에도 관심이 많았다. 물론 과학이나 다른 예술을 선택할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있었고 하고 싶었던 분야(일러스트레이션)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일부러 결정했다기 보다는 늘 나와 함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부모님들이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으셨나?

      "전혀. 부모님은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길 원했다. 그리고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선택지가 많았다. 학교 성적이 좋았고 학교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런 여러 가지 경험 가운데서 예술(일러스트레이션)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캐릭터는?

      "타이그리스(쿵푸팬더에 나오는 호랑이 캐릭터). 터프하면서 쿨하고 능력도 엄청나게 뛰어나기 때문이다."

      ―당신과 비슷해서?

      "나보다는 훨씬 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