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기업' 독일 머크(제약·화학회사) 칼 루드비히 클레이 CEO

입력 2011.02.26 03:05

1668년~ 머크社는 왜 죽지 않는가
"50년마다 큰 위기… 5번은 대변신 통해 죽다 살아났다"
머크 가문이 13대째 소유, 67개국 진출, 4만명 고용
"혁신은 창의성에서 나오고 창의성에는 자유가 필요… 경영자로서 제 역할은 직원의 자유를 관리하는 일"

한 나라도 300년을 넘기기 어렵다. 하물며 기업은 어떨까?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평균 수명은 고작 30여년(상장기업 기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기 올해로 설립 344년째가 되는 기업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제약·화학 회사 머크(Merck) 그룹이다. 머크는 1668년 프리드리히 야콥 머크가 세운 약국(Engel Apotheke·천사약국)에서 시작했다. 1827년 하인리히 엠마뉴엘 머크는 이 약국을 키워 대규모 생산설비를 갖춘 제약·화학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1차세계대전 때 미국 지사(현재 미국 머크사)를 통째로 미국 정부에 빼앗기는 아픔을 겪었지만, 현재도 머크 그룹은 전 세계 67개국에 진출해 4만여명을 고용하고 있다. 작년 매출은 93억유로(약 14조원).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던 경제위기 동안에도 머크의 매출은 계속 성장했다.

더 놀라운 점은 이 회사를 머크 가문이 무려 13대째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머크사 지분의 70%는 머크 가족들이 소유한 E. 머크사(社)가 가지고 있다. 나머지 30%는 개인 투자자와 보험사나 투자회사 같은 기관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다. 과거에는 머크가(家)가 회사 지분을 100% 소유했지만 1995년 투자를 더 확대하기 위해 회사 지분의 일부를 증시에 상장해 외부 투자자를 받아들였다. 머크는 2009년 스위스 IMD(국제경영개발연구원)가 주는 글로벌 가족 기업상을 받기도 했다.

클레이 회장은 머크 가문 사람은 아니지만, 비(非)머크 가문 경영자로서는 가장 오래 회사를 이끌고 있다. 그는“머크 사람들은 오로지 능력이 있는 사람, 그 자리에 적합한 사람을 가족의 대표로 내세운다”고 했다. / 머크사 제공

역사가 오래된 회사는 많다. 독일에 있는 머크의 경쟁사만 보더라도 그렇다. 아스피린으로 유명한 바이엘(Bayer)도 1863년 설립됐고, 제약회사인 셰링(Shering)도 1851년 녹색약국(Gr�jne Apotheke)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셰링은 2006년 바이엘에 팔렸고, 바이엘은 2000년대 이후 여러 차례의 위기를 겪으며 대규모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머크처럼 계속 성장한 경우는 드물고, 창업자 가문이 지금까지도 소유권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는 더 드물다.

경영학자들은 기업을 생명체에 비유한다. 태어나 성장하다가 어느 순간 성장이 정체되고 늙어서 죽는 게 생명체의 운명이다. 기업도 초기에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아 성장하지만 제품의 수명이 다하면 쇠퇴하고 만다. 모든 기업이 혁신을 외치는 이유도 조금이라도 더 살아남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영원한 기업은 모든 기업인의 꿈인 셈이다.

머크는 어떻게 340년이 넘는 기간에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Weekly BIZ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다름슈타트의 머크 본사를 찾았다. 회사 입구는 '블루 피라미드'라고 불리는 유리 건물이다. 기자를 마중 나온 홍보담당인 필리스 카터(Carter)씨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문"이라는 의미라고 했다.

긴 역사만큼이나 머크 본사는 과거와 미래가 뒤섞인 모습이었다. 1.2㎢ 규모인 다름슈타트 본사에는 1903년 지은 벽돌건물과 최신 유리건물이 함께 들어서 있었고, 역사관 건물에는 100여년 전 머크가 세계 최초로 개발·판매한 액정과 1920년대까지 약품으로 쓰였던 미라 가루가 보관돼 있는 반면, 바로 모퉁이를 돌면 최근 완공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연구시설이 모여 있었다.

2006년부터 머크를 이끌고 있는 칼 루드비히 클레이(Karl-Ludwig Kley·60) 회장의 사무실은 100년이 넘는 벽돌 건물을 현대식으로 리노베이션한 건물 5층에 있었다. 회의실에 들어선 클레이 회장은 2010년 실적 발표 기자회견을 마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사무실에 들어온 그는 두 손으로 명함을 내밀었다.

클레이 회장은 머크 가문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비(非)머크 가문 경영자로서는 가장 오래 회사를 이끌고 있다. "머크가 사람들은 임직원을 채용할 때 입양(adopt)한다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저는 11대 사람들의 사촌으로 입양됐죠." 그는 1시간 뒤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상대로 한 회의에 참석하기로 돼 있었다.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창업 이후 3대 이상 생존한 가족 기업이 드뭅니다. 머크가 이토록 오랫동안, 그것도 성공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머크 가문부터 말씀드리죠. 머크가는 아주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가족 사이에 일종의 계약이 있습니다. 지분을 가지고 있는 가족들이 그 지분을 팔고 나가는 것보다 지분을 가지고 배당을 받는 게 더 유리하도록 해놓은 계약이죠(가족의 지분은 가족 내에서만 팔 수 있다·편집자주). 그 때문에 오랜 시간 머크사 가족 사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습니다. 둘째, 회사 경영에 관여할 대표를 뽑는 방식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 어떤 계보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가족을 대표해야 한다는 식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머크 사람들은 오로지 능력이 있는 사람, 그 자리에 적합한 사람을 가족의 대표로 내세웁니다. 셋째, 머크가는 젊은 세대가 일찌감치 가문의 사업에 관심을 갖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머크가의 아이들은 15~20세, 그리고 20~25세처럼 연령에 맞춰 회사의 전반을 알 수 있도록 하는 수업을 듣습니다. 다시 말해 아주 어릴 때부터 가문의 사업을 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머크가는 단지 기다리면서 배당만 챙겨가는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적극적으로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셈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 3가지가 머크가가 그토록 오랫동안 회사의 소유권을 지켜갈 수 있었던 이유라고 봅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사무실을 둘러봤다. 340년이 넘은 기업이고, 창업자 가문이 여전히 대주주인 회사라 어딘가에 머크 가문의 사진이나 그림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머크가의 흔적은 없었다. 책장에 꽂혀 있는 머크가에 대한 책 몇 권이 다였다. 클레이 회장이 웃으며 말했다. "머크가 사람들이 130명이 넘지만 사실 모회사(E. 머크)의 파트너 위원회 사람 5명을 제외하면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합니다. 머크 가문과 회사는 따로 분리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다른 머크가 사람들이 회사 운영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일하면서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어요."

그는 잠시 끊겼던 말을 이어갔다.

“머크라는 회사가 오랫동안 성공할 수 있었던 데도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어떤 기업이 340년 넘게 운영되고 있다면 뭔가 잘하는 게 있었겠죠(웃음). 첫째, 오랜 기간 사업을 해왔지만 머크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지난 6년간 머크사는 2개 주요한 사업을 팔고 2개의 분야를 추가했습니다. 둘째, 혁신과 직원들의 전문성입니다. 길을 가다가 머크 직원을 잡고 물어보세요. 현재 자신이 하는 일을 쉽게 설명해 줄 겁니다. 보통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로요. 머크는 절대 우리가 확실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업을 하지 않습니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현재 이 회사의 지분을 가진 머크가 사람은 130명 정도다. 이들은 가족회의(Partners’ Assembly)를 열어 가족 위원회(Family Board) 위원을 선정하고, 이들이 다시 5명의 파트너 위원회 위원을 임명해 가문의 이익을 대변한다. 이들은 비(非) 머크가 위원 4명과 함께 머크 그룹의 전략을 결정한다. 물론 이들 외부 위원도 머크가에서 임명한다.

기자의 눈에 이런 구조는 상당히 복잡해 보였다. 복잡한 구조는 의사결정의 속도를 늦추고 분쟁의 소지를 늘린다. 당연히 사업 포트폴리오를 빨리 바꾸기에 불리하다. 고개를 갸웃거리자 클레이 회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회사 홈페이지나 논문만 보면 머크의 지배구조가 아주 복잡해 보이죠(웃음). 하지만 사실 아주 단순합니다. 사실 회사의 주요 결정 사항은 E. 머크(머크의 모회사)의 파트너 위원회에서 승인되면 바로 집행할 수 있습니다.”

클레이 회장은 머크에 합류하기 전에 바이엘을 거쳐 루프트한자(항공사)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일했던 경험을 비교해 설명했다.

“회사 경영을 총괄하는 제가 상대해야 할 머크 가문 사람은 5명뿐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오랫동안 머크라는 회사의 비즈니스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에요. 이런 구조는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을 줄이고 빠른 결정을 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는 2010년 미국의 의학·실험 장비업체인 밀리포아를, 한 해 매출에 가까운 70억달러(약 10조원)를 들여 인수했을 때 머크가를 포함한 주주의 동의를 얻는 데 걸린 시간은 4주에 불과했다고 한다.

“많은 기업이 좋은 기회를 보고도 결정을 내리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해 결국 기회를 놓칩니다. 하지만 머크는 대주주인 머크가와 외부의 전문경영진이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나눠왔죠. 그렇게 빨리 결정할 수 있었던 이유도 새로운 사업 포트폴리오의 방향을 꾸준히 논의해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루이뷔통·카르티에 살 돈으로 상속세 낼 돈 모으는 머크가 후손들

회사가 계속 발전하려면 결국 주식을 가진 머크 일가가 사업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가 관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몇 대를 걸쳐 이런 전통을 잇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까? 더구나 가장 어려운 게 자녀 교육 아닌가.

―머크가에서 자녀를 가르치는 특별한 방식이 있나요?

“머크가는 젊은 세대들에게 늘 자신들의 가문이 정확히 어떤 사업을 하는지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는 항암제(얼비툭스)도 파는데, 머크가 사람들은 자기 자녀를 하이델베르크대학에 보내서 암 관련 강의를 듣도록 합니다. 물론 머크가 사람 중에는 의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분들이 강의하기도 하고요. 그 밖에 회사의 인턴 프로그램을 듣게 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기업의 모든 측면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죠. 머크가는 많은 돈을 회사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자녀를 가르치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이 회사 직원들에 따르면 머크가 사람이 회사 신입직원이나 중간관리자로 고용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머크가 사람이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다른 회사에서 경력을 인정받아 임원으로 승진한 뒤 가문의 인정을 받아 머크사에 입사하는 길뿐이라는 것이다. 대주주인 머크가 사람이 정작 회사(머크)에 들어가는 길은 훨씬 더 좁다는 이야기다.

―한 가문이 오래 경영권을 행사하려면 역시 상속이 걸림돌이 됩니다. 상속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합니까?

“네. 이곳에서도 상속세는 중요한 이슈입니다. 머크가에는 미래의 세금(상속세)을 내기 위해 어릴 때부터 저축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회사에서 배당을 받게 되면 루이뷔통이나 카르티에를 사는 대신 저축을 합니다. 사실 이곳(다름슈타트) 주변에는 머크가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만 부(富)를 드러내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머크가 사람들이 개인적인 삶을 어떻게 사느냐는 자유지만 일단 회사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검약과 기업가 정신을 앞세우는 게 머크가의 전통이자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직원에 따르면 현재 머크가를 대표하는 사람 중 한 명인 존 바움하우어(Jon Baumhauer·가족 위원회 의장)는 직원 식당에서 함께 직원들에 섞여 밥을 먹는다고 했다. 따로 자리가 마련된 것도 아니고, 직원들과 똑같이 줄을 선다.

―머크 가문의 이해와 회사 혹은 일반 주주들의 이해가 엇갈리거나 충돌할 가능성은 없나요?

“머크가는 장기적인 이해를 추구하고, 일반 주주는 단기적인 이해를 추구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연구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한다고 했을 때 이해가 나뉠 수 있죠.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 주주들 역시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한 우리 사업의 특성을 이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약 만들다 차를 파는 것만 신사업이 아니야

좋은 지배구조는 영원한 기업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결국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계속 내놓느냐가 기업의 수명을 결정한다.

―역사가 길고 전통이 쌓이면 변화는 더욱 어렵습니다. 외견상 머크는 화학과 제약이라는 두 분야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머크의 성장 전략은 뭡니까?

“우리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꿀 경우에도 우리가 잘 아는 분야에서 합니다. 다시 말해 머크가 가진 제약과 화학이라는 두 분야의 외연을 계속 확장하는 방식이죠. 머크는 내일 당장 자동차를 만드는 식으로 사업하지 않습니다. 혁신이란 게 꼭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업을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약과 화학에서도 우리는 충분히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수 있어요. 그리고 머크는 오랜 시간 축적되어온 전문성과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같은 분야에서도 계속 혁신할 수 있습니다. 외부인들이 우리 직원들을 만나면 전문성이 높아서 놀란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요. 혁신이란 게 꼭 새 사업을 하거나 새 프로세스를 도입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고 저는 믿습니다. 혁신의 핵심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직원들이 혁신할 수 있도록 여유를 줍니다. 모든 것이 규제된 상황에서는 창의성이 나오기 어려우니까요. 창의성에는 자유가 필요해요. 경영자로서 제 역할, 또 조직으로서 회사의 역할은 직원들의 자유를 잘 관리하는 일입니다. 생각해보세요. 혁신이 매년 이뤄지는 게 아니고, 때로는 10년을 연구해도 새로운 발견을 못 할 때가 있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직원들에게 자유를 주고, 그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북돋아주는 게 필요하죠.”

클레이 회장이 말한 전략은 번하드 슈에블러(Bernhard Scheuble·2000~2004년) 회장 시절부터 시작된 집중된 다각화(focused diversification) 전략과 일맥상통한다. 1982년 머크에 연구원으로 입사한 슈에블러는 2000년 회장이 된 이후, 전임 회장 때 사들였던 전기화학 분야 등 비(非)핵심분야를 팔고 제약 연구시설을 통합·확충했다. 경영학에서 자주 쓰는 비유로 보자면, ‘많은 것을 아는 여우보다는 하나의 큰 것(몸을 말고 가시는 세우는 것)을 아는 고슴도치의 전략’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기업의 역사를 보면 때로는 확실히 버릴 줄 아는 게 필요할 때도 있다. 필립스가 의료기기 같은 신규 사업을 하기 위해 ‘필립스의 심장’이라던 반도체 사업부를 버렸듯 때로는 기존의 사업을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결국 머크는 제약과 화학의 범주에만 머문 게 아니냐고 하자 클레이 회장은 곧장 반론을 펼쳤다.

“겉보기에 머크는 제약과 화학이라는 두 축에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사업 모델이 엄청나게 변했습니다(그는 종이에 각 사업 부문을 그려가며 설명했다). 우리가 인수한 밀리포아의 경우 각종 실험 장비를 파는 동시에, 바이오의약품 제조기기 분야에서 선두 업체입니다. 화학과 제약의 양쪽 분야 모두를 포괄한다고 할 수도 있죠. 회사가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느냐는 모든 경영자의 공통된 고민이지만, 각 회사가 내놓은 답은 모두 다른 것 같습니다. 저희도 늘 다음 사업 모델에 대해 고민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내일 당장 차를 만드는 것처럼 전혀 다른 사업을 한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반대로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제약과 화학을 오래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영원히 성공하리란 생각도 안 합니다. 중요한 것은 고객과 시장의 요구를 끊임없이 반영하는 것이에요. 똑같이 약을 만드는 일이라도 고객과 시장에 따라 사업 모델도 늘 새롭게 정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머크의 기원이 된 천사약국. 프리드리히 야콥 머크가 1668년 독일 헤센주 다름슈타트에 세웠다. 지금도 운영되는 이 약국은 머크 본사에서 전차로 일곱 정거장 거리에 있다. / 머크 제공

―제품 유통 부문과 제네릭(복제약) 부문을 팔고 스위스 생명과학 회사인 세로노(2007년)와 미국의 생명과학 및 실험 장비업체 밀리포아(2010년)를 인수한 것은 어떤 이유입니까?

“머크가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검토하고 내린 결정입니다. 원칙은 간단합니다. ‘우리가 힘을 쏟을 분야는 혁신적인 사업이지 범용재(commodity)가 아니다.’ 복제약은 이미 범용재가 됐습니다. 범용재의 경쟁력은 결국 가격이죠. 기업 입장에서는 가격, 가격, 가격 그리고 또 가격을 외쳐야 합니다. 머크가 편하게 느끼는 분야가 아닙니다. 물론 복제약에 대규모 투자를 해서 생산규모를 늘린다면 시장에서 수성(守城)이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혁신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꾸게 됐습니다. 물론 이런 과정이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건 아니고요.”

―가족 기업(가족이 직접 경영하거나 대주주인 기업)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가족 기업은 상대적으로 부채비율이 낮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가족 기업이라는 점이 경영전략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까?

“우리 회사는 최근 3년간 수십억 유로를 들여서 2개 회사를 인수했습니다. 세계적으로 봤을 때 저희는 경제위기 이후 맨 먼저 큰 규모의 투자(기업 인수)를 한 회사입니다. 그런 사실이 가족 기업은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점이 오해라는 걸 증명한다고 봅니다. 물론 재정 건전성은 중요한 이슈예요. 이미 두 번의 큰 인수를 했기 때문에 우리 회사는 아마 올해는 또 다른 인수에 나서지는 않을 겁니다. 앞서 인수를 위해 빌린 돈을 갚으면서 다시 체력을 비축해 다음번 투자에 나서는 것이죠.”

―2006년에 셰링을 인수하려다 경쟁사인 바이엘에 빼앗겼습니다. 셰링은 머크사와 사업 분야가 많이 겹치는 회사지요. 하지만 그 뒤에 인수한 회사(세로노, 밀리포아)들은 분야별로 좀 더 전문적인 회사들입니다. 인수전략에 변화가 있었습니까?

“셰링 인수 시도는 제가 경영을 맡기 이전입니다만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당시 셰링은 인터페론(항바이러스 약품) 같은 바이오의약품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머크는 그런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길 원했죠. 모든 기업 인수에는 그때마다 목적이 있고 따라서 장단점이 있지요. 하지만 (셰링과 그 이후에서) 전략이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즉 규모를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남과 다른 차이를 낼 수 있는 분야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이죠.”

―앞으로 회사를 성장시키기 위한 계획은?

“아쉽게도 그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이해해 주세요(웃음). 다만 OLED 같은 유기광원이나 수처리에 필요한 새로운 물질 개발을 늘려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계속 생명과학이나 바이오 의학에서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가진 능력을 바탕으로, 우리가 차이를 낼 수 있는 분야에 대해 지속적으로 투자하겠다는 것이죠. 그리고 다시 내년부터는 경쟁력 있는 기업을 인수할 수도 있고요. 늘 검토를 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떤 회사라는 걸 말씀 못 드릴 뿐이죠.”

■기업이 극복 못할 도전은 없다

―성공 이야기만 했는데, 머크에 위기는 없었습니까?

독일 헤센주 다름슈타트에 위치하고 있는 머크 본사의 입구. 출입구가 푸른 색 유리창이 여러 개 달린 피라미드 모양이라 블루 피라미드로 불린다. / 머크 제공

“제가 입사하기 전에요? 물론 많았죠. 두 번의 전쟁, 다섯 번의 통화 개혁이 있었습니다. 머크의 역사를 보면 대략 50년마다 위기가 있었고 그런 점에서 머크라는 회사 역시 다섯 번을 매번 새로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45년에는 이곳이 폭격을 당해서 건물 대부분이 무너지기도 했고요(약 75%가 파괴됐다·편집자 주). 다만 이런 위기 속에서 머크가 계속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는 일이 미래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고요. 이 질문 덕에 머크는 언제나 빨리 변했고, 미래를 대비하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머크라는 회사나 우리 회사 직원들의 특징은 늘 미래 성장 분야에 참여하고 싶어한다는 점이에요.”

―경영자로서 리더십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한동안 고민하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입니다. 현대 기업에서 협업과 한 팀이라는 마음가짐은 늘 중요하죠. 하지만 동시에 리더로서 마지막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함께 토론할 때와 결정할 때 사이의 균형을 잘 아는 것이 리더십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균형은 이윤추구와 사회적 가치 사이의 균형입니다. 우리는 자선기관이 아니지만 동시에 사회의 가치를 반영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가 없지요. 세 번째 균형은 시간의 균형입니다. 미래에 투자하는 일은 즐거운 일지만 동시에 단기 이익을 내야 하지요.

저는 기업이란 게 결국 사람이 사람을 위해 만든 지적 구조(intellectual structure)라고 봅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철학 역시 인간에 대한 철학과 같다고 생각해요. 인간사의 모든 것이 음양으로 이뤄져 있듯 기업 역시 그런 균형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머크라는 회사가 다음 100년 동안에도 계속될까요?

“그렇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지금이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라는 말입니다. 그건 헛소리예요. 여기 머크가 가계도를 보세요. 수백 명이 있죠. 340년이 넘는 머크의 역사에서 모든 세대에는 그 나름의 특별한 도전이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매 세대 그걸 극복하고 배웠죠. 기업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기업이 극복하지 못한 도전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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