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다 히토시 회장 '아사히맥주 신화'를 말하다

입력 2010.11.27 03:00 | 수정 2010.11.27 12:02

회사 입맛 맞추지 말고 고객 입맛 맞춰야 산다

일본 맥주산업의 역사는 지금까지 둘로 구분됐다. '수퍼드라이 이전과 이후'다.

아사히맥주가 1987년 발매한 맥주 수퍼드라이는 세 가지 역사를 다시 썼다. 첫째, 업계 판도를 바꿨다. 기린맥주를 끌어내고, 경영난에 휘청거리던 아사히맥주를 일본 맥주시장의 제왕 자리에 올렸다. 둘째, 맛을 바꿨다. '쓴맛'으로만 인식되던 맥주에 '고쿠(풍성함)'와 '기레(산뜻함)'라는 생소한 미감(味感)을 추가했다. 세계가 인정하는 일본 맥주의 다양성은 수퍼드라이 이후에 시작됐다. 셋째, 맥주를 일본의 국민 술로 만들었다. '드라이 전쟁'이라고 불리는 업계의 전면전이 맥주시장을 비약적으로 키운 것이다.

이런 일본 맥주산업이 지금 전혀 생소한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시장이 정점을 지나 급속도로 축소되는 우울한 시대다. 맥주는 자동차와 함께 저출산·고령화 현상에 의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산업 중 하나로 꼽힌다.

오키다 히토시(荻田伍·68·사진) 아사히맥주 회장은 영업맨이다. 1965년 대학 졸업과 함께 아사히맥주에 입사해 줄곧 맥주를 팔았다. 1987년 시작된 수퍼드라이 신화를 현장에서 일군 주역 중 한 명이다. 적자 계열사였던 아사히음료에 2002년 들어가 바로 이듬해 회사를 흑자로 바꾸고 복귀한 경영의 달인이기도 하다. 도쿄 아사쿠사의 아사히맥주 본부 빌딩에서 그에게 일본의 맥주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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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제자리를 맴돈 회사

―아사히맥주는 상당한 기간 동안 경영난을 겪었다.

"전후 가정용 맥주 수요가 급속히 늘어나던 시대에 아사히맥주는 고객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아사히맥주의 일본 맥주시장 점유율이 사상 최저인 9.6%로 떨어진 것이 1985년이다. 내가 입사한 1965년과 판매량이 달라지지 않았다. 3500만 상자(1상자당 633mL 20병) 정도."

독일에서 맥주 기술 배워와서 우리가 만드는 게 최고로만 알아
“고객은 맛을 몰라” 오만하기까지… 영업·제조 직원 교류하며 달라져

―재기의 계기는.

"(주거래은행인) 스미토모(住友)은행 출신으로 아사히맥주에 들어온 무라이 쓰토무 사장(村井勉·1982년 취임)이 우리 회사에 뭔가 빠져 있다고 했다. '경영 이념이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었다. 사원들 모두가 확실하게 지향해 가는 방향을 말한다. 그래서 전사적 품질관리(TQC)를 도입했다. 작은 소그룹으로 나뉘어 어떻게 하면 회사를 개선할 것인가를 논의했다. 당시 우리는 10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100년 동안 생존한 기업이 혹시 무너지지 않을까라는 위기감을 갖고 있었다. 1981~82년 (경영난으로) 사원 500명을 강제로 내보낸 일도 있었다. 그런 일까지 겪은 회사였다. 다음 100년을 앞두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표어와 아이디어를 모집해 '뉴 센추리 계획(1986년)'에 착수했다. 지금까지의 아사히맥주에서 벗어나자, 새로운 아사히맥주를 만들자는 기운에 넘쳤다. 새로운 얼굴을 고객들에게 보여주자는 뜻으로 CI(통합된 기업 이미지)를 도입해 상표도 바꿨다."

■"고객들은 미묘한 차이를 알고 있다"

―TQC나 CI는 많은 기업이 도입한다. 하지만 모두 도약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얼굴을 바꾸는 것만으로 아사히맥주의 이미지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맛이다. 아사히맥주의 맛은 고객의 지향점에서 벗어나 있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아니 인식했어도 경영의 표면에 내세우지 않았던 현실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기린맥주가 압도적으로 팔린 것은 기린맥주가 제안하고 제공한 맛이 세상의 고객에게 맞았기 때문이다. 당시엔 일반 사람들은 맥주 맛을 잘 모른다는(맥주 맛은 그것이 그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맥주 맛은 미묘하게 다르다. 중요한 것은 고객들이 미묘한 차이를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만약 맛의 미묘한 차이를 몰랐다면 점유율에서 그렇게 큰 차이가 생길 수 없었다. 기술적으로 맥주의 내용물 분석을 하면 성분의 수치는 같을지 모른다. 하지만 소비자의 감각의 세계에선 다르다. (같은 성분이라도) 기린맥주가 좋고, 아사히맥주가 싫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감각의 판단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아사히맥주가 정체된 동안 다소 세상이 변해서 고객의 지향점에도 변화가 일어났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찾았다. 지향점이 달라지면 당연히 맥주 맛도 변화를 요구받는다. 식생활이 변하면 맥주에 대한 고객들의 요구도 당연히 바뀐다. 소비자가 요구하는 맛은 어떤 맛일까. 5000명을 조사했다."

"일본선 맥주 소비 줄고 있지만 해외시장 진출 통해 성장할 것"

―결론은 무엇이었나?

"첫째 고쿠(コク). 마셨을 때의 넉넉한, 풍요로운 미감이다. 둘째 기레(キレ). 산뜻하고 정갈한 맛이다. 고객은 이 두 가지 맛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런 결론을 통해 실행 계획을 수립했다. 1986년 '고쿠키레 맥주'를 발매했다. 9.6%였던 시장점유율이 그해 10.1%로 올랐다. 하지만 '기레'의 미감이 튀었다. 다소 위험성이 있다는 판단에서 (수위를 조정해) 1987년 발매한 것이 '수퍼드라이'다."

―고객이 지향하는 미감을 아사히맥주는 그때 처음 조사했나?

"물론 처음이 아니다. 장기간 맥주가 안 팔렸으니 당연히 경영자는 매년 조사를 했을 것이다. 따라서 고객이 맥주에 대해 어떤 감각을 가지고 있는가를 당연히 알고 있었다. 모를 리가 없다. 이전과 다른 점은 그 결과를 경영자가 확실히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상품 개발로 연결했다는 점이다."

■"위기의식이 지혜를 끌어냈다"

―전에는 왜 알고도 변화하지 못했나?

"아사히맥주가 탄생했을 때 우리는 기술자를 세계 최고 수준인 독일의 뮌헨대학에 보내 최고 기술을 익히도록 했다. 생산 파트는 우리 맥주가 독일류의 최고 맥주를 배워 만든 맥주이니까 늘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고객은 최고라고 느끼지 못했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벌어진 차이는 대체 무엇일까? 영업과 제조 파트의 직원들이 교류하면서 서로 목소리를 들었다. 어떤 맥주를 만들 것인가를 논의했다."

―책임을 공유하지 못하면 논의가 힘든데.

"당시 우리는 '이대로는 미래가 없다' '이대로는 틀림없이 무너진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위기감이 '귀'를 열었다. 물론 소비자를 설득하지 못한 마케팅도, 상품을 제대로 팔지 못하는 영업도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최후 지점에 있었던 아사히맥주의 문제는 맛이었다. 만드는 쪽만 생각했다. 누구도 고객의 시선을 향하지 않았다."

―수십년 동안 안 되던 조직이 갑자기 일류가 될 수 있을까?

"팔리지 않는 상품을 취급하는 영업맨은 행동도 점점 (소극적으로) 바뀌어 간다. (안 되는 회사는) 작은 조직에서부터 작은 성공을 거듭해 성공 체험을 누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거리의 맥주 자동판매기에서 성공 체험을 시작했다. 그리고 식당 한곳 한곳을 개척해 가는 작은 성공을 모아갔다. 그러자 생각이 바뀌고 행동도 달라졌다. 그리고 전체가 바뀐 것이다."

―개혁 시점(일본이 거품경제에 진입하던 시기)이 아주 좋았다는 평가도 있다. 소비자는 호황기에 변화를 잘 받아들인다.

"경영자가 대단했다. 그때(1986년) 히구치 히로타로(�C口廣太郞·아사히맥주를 중흥시킨 경영자) 사장이 취임했다. 1987년 판매량이 5296만 상자였다. 88년 9010만 상자(수퍼드라이드라이가 7500만 상자)로 늘었다. 89년엔 1억 상자를 넘었다. 압도적으로 설비투자를 단행했다. 거품경제가 시작될 무렵이니 금융(완화)의 배경도 있었다."

■"기업의 최대 목표는 살아남는 것"

―지금 일본의 경영 환경은 엄청나게 변했다.

"수퍼드라이를 만들고 23년이 지났다. 맥주 분야에서 점유율 1위 자리를 차지한 것이 1998년이다. 발포주와 제3의 맥주(일본의 맥주 규정보다 맥아가 적게 들어간 술. 맥주를 포함해 '맥주류'라고 통칭)를 포함한 전체 시장에선 2001년 1위에 올랐다. 우리의 정점이다. 하지만 맥주라는 상품의 정점은 일본에서 1994년이었다. 맥주 판매량이 1994년 725만kL에서 작년 600만kL로 125만kL 줄었다. 1억 상자 정도 안 팔린 것이다. 일본에서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정점을 친 것은 1995년이었다. 맥주를 소비하는 인구의 커다란 덩어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20년'이다."

―어떤 인터뷰에서 "기업의 최대 목표는 존속(存續)"이라고 말한 일이 있는데.

"이런 경영 환경에선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가 문제다. 먼저 국내 시장에서 압도적인 기반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힘든 상황이지만 상품 개발과 마케팅, 영업 능력을 동원해 고객에게 더 다가가야 한다. 맥주시장은 정점을 쳤고 시장 상황은 더 안 좋아질 수도 있다. 그럴수록 더 새로운 제안을 고객들에게 내놓아야 한다. (시장이 축소돼도) 역시 중요한 것은 일본 주류산업에서 확실한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주류만으로는 (성장의) 한계가 있다. 다음은 음료, 식품과 같은 분야에서 국내 기반을 확대하는 것이다. 음료 분야에서 우리는 시장점유율 8~9% 정도로 아직 5번째다. 식품은 겨우 시작한 단계다.

“술은 인간관계 유효한 통로”
세계 맥주시장은 계속 확대… 中시장, 일본의 7배로 커져

“음료·식품분야 기반도 확대… 글로벌 식품社 톱10 들 것”

세 번째는 역시 해외다. 국제적으로 시장을 확보해 성장과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이를 통해 회사 매출을 2015년 2조~2조5000억엔(2009년 1조5000억엔)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지금 자본과 인적 자원이 성장하는 신흥국으로 가고 있다. 그리고 세계 맥주업계는 격렬한 과점화가 진행되고 있다. 인베브(벨기에의 세계 최대 맥주업체)가 안호이저 부시(버드와이저를 만드는 미국 맥주회사)를 매수해 세계 맥주시장의 23%를 확보했다. 사브밀러와 하이네켄, 칼스버그 등 대형 4개사가 세계 시장의 절반을 확보하고 있다. 일본에 언제 상륙할지 모른다. 위기감을 사원 모두가 공유하면서 사업구조를 변혁하고 해외 M&A, 인재와 자원을 얻는 데 노력하고 있다. 우리 목표는 세계 식품회사 톱10에 진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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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여전히 인간관계의 유효한 통로"

―요즘 일본에선 젊은 세대가 맥주를 마시지 않는 '맥주 이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흥미의 범위가 여러 갈래로 확대되고 있다. 통신기기, 게임기기 등 돈을 투자하는 범위가 예전보다 넓어졌다. 일본엔 술의 중계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전통이 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전통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연결, 인간관계는 어떤 시대에도 필요하다. 일본은 지금 경쟁이 약화된 측면이 있다. 직장 선후배, 동료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그다지 하지 않아도 회사 안에서 지위를 확보한다. 가정 안에서도, 친구 사이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세계는 다르다. 여러 경쟁 속에서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여전히 술은 (인간관계의) 유효한 통로다. 한국은 폭탄주까지 마시지 않나. 우리가 매력이 있는 상품을 소비자들에게 계속 제안하면 일본 젊은이들 역시 (맥주시장에)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30대, 40대가 되면 소비 행태가 달라질 것이란 조사도 있다."

―맥주가 가장 많이 팔리는 시대가 가장 활력이 넘치는 시대가 아닌가 생각한다. 신흥국의 판매 확대로 일본의 소비 감소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세계적으로 맥주시장은 여전히 넓어지고 있다. (연간) 4~5% 정도. 특히 중국, 브라질, 동남아시아에선 두 자리에 가까운 성장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압도적이다. (연간 맥주 소비량이) 4200만kL 정도다. 일본의 7배로 시장이 커졌다. 한국은 200만kL 정도다. 대(代)가 바뀐다고 할까. 역시 성장하는 시장으로 진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에서도 롯데와 '롯데아사히'라는 판매회사를 설립했다. (수퍼드라이가) 올해 수입 맥주 중 최고를 바라보는 위치까지 왔다."

■한국 맥주 vs 일본 맥주

―한국 소비자들에게 "일본 맥주는 맛있다"는 인상이 있다. 일본에서 맥주를 마신 상당수가 일본 맥주와 비교하면서 한국 맥주를 비판한다.

"일본은 맥아를 67% 이상 사용하지 않으면 맥주라고 말할 수 없다. 이상한 제도라고 생각하지만. 일본과 한국 맥주는 원료 차이가 거의 없을 것이다. 같은 맥아와 원료를 쓰니까. 다만 일본이 생맥주를 개발한 속도가 빠르지 않았나 생각한다. 가열이라든가, 저온 살균 기술 등 생맥주를 만드는 기술이 앞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맥주는 효모, 맥아, 숙성, 온도, 호프의 투입 등 여러 기술적 요소가 중첩돼 맛을 낸다. 미묘한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일본 맥주는 독일 맥주와 비교하면 차갑고 투명한 느낌을 받는다.

"독일 맥주는 맥아가 100%이니까 그런(일본 맥주보다 짙은) 느낌이 있을 수 있다. 수퍼드라이를 예로 들면, 보통 맥주보다 약간 차갑게 하는 것이 더 맛있다고 생각한다. 1~2도 정도 더 차갑게 마시면 좋은 미감을 얻을 수 있다. 올해는 영하 2도까지 온도를 내리는 '익스트라 콜드'라는 생맥주도 만들었다."

―무엇보다 일본 맥주는 다양하다. 포장도 계절마다 바뀌고.

"국내 시장이 여기까지 축소됐으니까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일본 맥주업계는 오리온맥주(오키나와 지역 맥주)를 제외하고 4개사다. 과점이란 소리를 들었지만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품질이 좋아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맥아의 양에 따라 세금이 다른 주세(酒稅) 체계도 발포주와 같은 신(新)장르를 만들고 기술력을 성숙시키는 데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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