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퍼스트, 인종차별 자극해 집권… 트럼프, 히틀러와 공통점 많다"

입력 2019.08.09 10:36 | 수정 2019.08.09 22:21

[Cover Story] 대공황과 2008 금융위기

애덤 투즈 컬럼비아대 경제사 교수 인터뷰

애덤 투즈 컬럼비아대 경제사 교수

미국 컬럼비아대 역사학과 애덤 투즈 교수는 경제사 분야에서 신진 석학으로 꼽힌다. '황금 족쇄'로 유명한 배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 교수, '무기여 잘있거라'로 세계 경제사를 정리한 그레고리 클라크 UC데비이스 교수에 필적한다는 평가다. 그는 2001년 첫 책 '통계와 독일: 현대 경제 지식의 탄생'에서 현대 독일 통계가 어떻게 국가 경제정책과 연결되는지를 설명했다. 2006년 '파괴의 대가: 나치 경제의 성립과 붕괴'에서는 20세기 헤게모니를 거머쥐기 시작한 미국의 부상에 맞서 히틀러가 치른 전쟁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 투즈 교수의 역작으로 평가받는 2014년 '대재앙: 1차 세계대전과 국제질서의 재편 1916-1931'에서는 1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후 10년 동안 미국의 권력을 중심으로 국제질서가 어떻게 재편되었는지를 서술했다. 지난해 8월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를 역사학자 관점에서 묘사한 책 '붕괴'를 통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같은 정치 이단아들이 왜 금융위기 이후 10년간 속속 등장했는지 추적했다. 투즈 교수는 인터뷰 도중 대놓고 트럼프 대통령을 저격하는 발언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에 대해 얘기를 해야할 때는 실소를 내거나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흔들곤 했다.

경제위기, 정치위기로 발전

―1차 세계대전과 이후 나치 독일의 경제사를 주로 연구하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책을 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최근 위기를 지켜보며 역사가 반복된다는 진리를 새삼 깨달았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발생한 1929년 대공황과 2008년 금융위기는 주택·증시 등 자산 버블에 과도한 대출, 금융 규제 완화 등 측면에서 닮은 점이 많다. 특히 위기의 진앙은 미국인데도 전 세계 경제가 함께 흔들렸고, 결과적으로 미국만 회복하고 있는 점도 비슷하다. 특히 경제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이 정치적·지정학적 위기로 변모·발전한 점이 가장 인상적이다. 과거 이탈리아 베니토 무솔리니, 독일 아돌프 히틀러 등 파시스트들이 이 시기에 절대적인 국민 지지를 얻게 됐다. 현재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가 집권했고 유럽에서도 포퓰리스트가 기승을 부리는 등 정치적 중도파는 설 자리를 잃었다."

―히틀러와 트럼프를 동급으로 취급하는 건 좀 너무한 것 아닌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인종차별주의를 담은 자극적인 발언으로 현재 경기 침체의 원인을 외국인 혹은 이민자에게 돌리며 정권을 잡았다는 점에서 유사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국민의 불만과 분노가 커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트럼프가 히틀러만큼 극단적이고, 무소불위 권력을 가지진 않았다."

미국·유럽의 잘못된 경제위기 대응법

―대중이 분노한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과 유럽의 위기 대처 방법이 문제였다.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은 달러화를 기반으로 한 북대서양의 은행·금융 시스템에 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은 은행과 채권자에게 유리한 정책을 펼치며 결과적으로 부의 양극화를 부추겼다. 미 연준은 수천억달러 국민 세금을 탐욕스런 은행을 살리는 데 투입했다. 덕분에 경제지표는 나날이 좋아졌지만, 대중의 삶은 회복되지 않았다. 지난 10년간 부동산·주가 상승 여파로 불평등 지수는 100년래 최악으로 상승했다."

―2011년 뉴욕에서 촉발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는 효과가 없었나.
"그런 셈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 시스템은 거의 바뀐 게 없다. 오히려 최근 모기지 대출은 다시 빠르게 늘어나고 있고, 대출 심사도 느슨해지고 있다. 미국 정부의 위기 대처 방법이 무조건 틀렸다는 건 아니다. 미 연준이 10년 전 양적 완화 정책을 통해 미 국채를 사들이지 않았다면 금융 위기의 파장은 더 컸을 수도 있다. 연준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 금융 시스템에 달러를 주입했다. 이 때문에 1929년 대공황 때처럼 은행 파산 도미노 현상은 없었다. 2008년에도 실업률이 10%대로 치솟긴 했지만, 대공황 때(25%)와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미국 대공황 시기에 아이들이 노동자연맹 시위에서 ‘왜 아빠에게 일자리를 줄 수 없나요?’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미국 대공황 시기에 아이들이 노동자연맹 시위에서 ‘왜 아빠에게 일자리를 줄 수 없나요?’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게티이미지
3차 세계대전은 경제전쟁될 것

―대공황 시절과 2008년 금융위기가 닮았다는 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얘기인가.
"과거처럼 총칼을 들고 하던 전쟁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 간 분쟁은 이미 치열하지 않나. 무역 전쟁 형태로 말이다. 특히 세계 각국 경제는 1900년대 초반과 다르게 복잡하게 연계되어 있다. 2008년 금융위기가 유럽과 중국 등 전 세계로 도미노처럼 번진 사실로 증명되었듯, 무역 전쟁은 실제 전쟁만큼 파국을 가져올 수 있다. 결정적으로 지난 40여년간 세계 경제의 절대적 가치였던 자유무역과 세계화의 근간이 흔들리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얘긴가.
"그렇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부터 시작한 미국 르네상스의 핵심이었던 신자유주의는 이제 수명을 다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일으킨 원인 중 하나가 신자유주의로 꼽히는 이 시점에 또다시 규제 완화와 자유무역을 골자로 하는 신자유주의를 내세울 정치인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새로운 경제 체제가 등장할 것이다."

―어떤 경제 체제인가.
"국제 정세를 보면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 보호무역주의 기조는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영국은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고, 미국은 중국 등 각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는 등 반세계화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장담할 순 없지만, 앞으로 국가의 시장 경제 개입이 강화될 것으로 본다."

서양에서 동양으로 권력 다시 이동 가능성

―미·중 무역 전쟁은 어떤 결말을 맺을까.
"예측하기 어렵다. 중국의 부상은 과거 미국·유럽의 성장 과정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빠르며, 기술력도 뛰어나다. 현재 중국 부상에 대한 역사적 중요성은 상상 이상이다. 수백년 전처럼 서양에서 동양으로 다시 권력이 이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부 사람은 미국이 끝내 미·중 무역 전쟁에서 승리해 세계 패권(覇權)을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서구가 지배해온 시대만 경험한 사람들의 시대착오적인 착각에 불과하다."

―미국은 여전히 절대적인 군사적 우위를 가지고 있지 않나.
"그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 질서의 기본 축은 여전히 미국이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미국이 단일 국가로 절대적인 정치·외교적 권력을 남용하지는 못할 것이다. 즉, 헤게모니 없이 지배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중국의 부상은 한국에 어떤 의미일까.
"수출 중심 국가인 한국에는 호재가 될 것이다. 특히 한국과 중국은 과학 기술 면에서 역량이 뛰어나기 때문에, 양국이 서로 협력하며 세계적인 기업을 성장시킬 수도 있다."

한국 경제는 선진국 변신 진통 중

―한국 경제가 2008년 이후로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선행 학습했다. 그럼에도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수출 주도 경제체제이기 때문에 한국의 은행들이 달러화 조달을 국제 금융시장에 크게 의존해왔던 점이 문제로 다가왔다. 설상가상으로 원화 평가절하라는 이중고를 겪기도 했다. 한국 금융이 글로벌 금융에 밀접하게 엮여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제 이런 문제를 충분히 극복했다. 역대 최고 외환보유액을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이 고성장세로 돌아설 수도 있나.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최근 국제 산업은 기술 기업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나. 한국의 삼성전자 등은 이미 세계 굴지의 기술 기업이다. 결국 한국에서 얼마나 혁신적인 기술이 개발되느냐에 국가 경쟁력이 달려 있다. 한국을 포함해 동아시아는 앞으로 세계의 중심이 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온 3~4도 오르면 경제 손실 23조달러… 금융위기 불러올 최대 변수는 기후변화"

기후에 따른 총 경제손실
애덤 투즈 교수는 앞으로 세계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요소로 ‘기후변화(climate change)’를 꼽았다. 기후변화가 또 다른 금융 위기를 가져올 중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다소 극단적으로 들리지만 그 저변엔 기후변화가 극심한 가뭄이나 홍수·태풍을 유발하면서 사회 기반 시설을 훼손하고 이로 인해 상품·자산 가격이 변동하고 금융과 실물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투즈는 “현재 환경 규제와 산업 구조를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평균 기온이 3~4도 오르는 순간을 맞으면서 전 세계가 혼돈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미 경제 매체 마켓워치는 평균 기온이 지금보다 섭씨 4도 오르면 이후 80년에 걸쳐 경제 손실이 23조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이후 10년간 가져온 손실(12조달러)의 2배가량 되는 규모다.

투즈는 글로벌 경제와 금융이 탄소경제에 의존하는 정도가 지나치다고 지적한다. 석유나 가스·석탄 관련 기업이 기후변화 충격으로 규제를 받아 활동이 위축된다면 20년간 28조달러에 이르는 매출 손실이 예상된다. 단순 매출 손실에 그치는 게 아니라 에너지 산업 관련 주식·채권 역시 1조~4조달러가량이 허공으로 날아간다. 그뿐 아니다. ‘탈탄소화(decarbonization)’ 후폭풍이 자동차나 건설, 소비재 같은 연관 사업으로 확산하면 전 세계 전체 자산의 3분의 1에 달하는 20조달러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보험사들도 위태롭다. 지난해 11월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사상 최악 대형 산불로 인해 보험사에 청구된 보험금은 최대 114억달러. 미국 13개 연방기관이 공동으로 펴낸 기후보고서를 보면 대형 산불 피해를 입는 지역이 앞으로 2050년까지 지금보다 6배 더 늘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의회예산처(CBO)는 허리케인이나 홍수 등 자연재해로 입는 손실 역시 연 540억달러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고 집계했다. 결국 이런 추세에 대비하지 않으면 금융과 산업계가 다시 한 번 거대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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