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는 이단 정치인을 낳고, 이단 정치인은 전쟁을 부른다"

입력 2019.08.09 10:40

세계로 번지는 포퓰리즘 광풍… 석학 애덤 투즈 교수가 본 '경제 위기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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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차 세계대전에 따른 경제난과 대공황,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낳은 정치 이단아들. ①베니토 무솔리니(왼쪽) 전 이탈리아 총리와 아돌프 히틀러 전 독일 총통 ②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③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④알렉시스 치프라스 전 그리스 총리/게티이미지·블룸버그
지난달 공식 사퇴한 메이 영국 총리는 마지막 연설에서 후임자 보리스 존슨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저격했다. 그는 "포퓰리즘(populism·대중영합주의)과 절대주의(absolutism·군주제)가 분열의 정치를 만들고 있다"며 "지도자 역할은 지킬 수 없는 걸 약속하거나, 듣고 싶어 하는 걸 말하기보다는 진짜 우려를 해결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신임 보리스 존슨 총리는 의회 첫 연설에서 "영국을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로 만드는 걸 목표로 하겠다"며 "영국의 황금시대를 다시 열겠다"고 외쳤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세 현장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쳤던 모습과 판박이다.

금융위기 후 급증한 '정치 이단아'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본격화한 포퓰리즘 광풍은 이제 전 세계로 번지고 있다.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 헝가리 등 유럽을 넘어 브라질, 콜롬비아 등 중남미로 확장하는 중이다. 프랑스에선 '프랑스의 트럼프'란 별명을 가진 극우 정당 대표 마린 르펜이 2017년 대선에서 결선에 올랐다. 브라질에선 '열대 트럼프'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이 됐다. 모두 자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이민자나 국제기구 등을 적대시한다. 터키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 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되면서 '21세기의 술탄(이슬람 제국 최고 통치자)'으로 불리고 있다. 그리스는 급진좌파연합 '시리자'의 대표인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총리에 당선되면서 IMF와 EU 구제금융에 뒤따르는 경제개혁 조치에 반대하다 더 가혹한 압박을 받게 됐다.

언제부터 글로벌 정치에서 중도가 위축되고, 국가주의·민족주의·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운 '정치 이단아'들이 득세하게 된 걸까. WEEKLY BIZ는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제사를 가르치는 석학 애덤 투즈(Tooze·52) 교수를 뉴욕에서 만나 그 해답을 구했다.

투즈는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의 궤적을 역사적 관점에서 꼼꼼하게 추적하고 분석한 책 '붕괴(Crashed)'를 지난해 8월 출간, 학계 주목을 받았다. '붕괴'는 뉴욕타임스와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혔다.

투즈는 "지난 10년간 전 세계적으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유럽 포퓰리즘 정부의 등장,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 강제 합병, 중국의 급격한 부상 등 정치·외교·사회적으로 격변이 많았다"며 "이는 대부분 글로벌 금융위기 후유증"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전 세계 경기를 얼어붙게 하면서 기존 정치 체제를 무력화했고, 그 결과 정치적 무질서와 '정치 이단아'들을 낳았다는 설명이다.

미국과 유럽 정부는 몰락한 금융시스템을 구제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대중들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대중들은 자신들 삶의 질이 하락하는 걸 막지 못하는 기성 정치인들을 불신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정치적 이단아들이 득세하게 됐다는 얘기다.

이는 1914년 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난과 1929년 대공황의 격변 속에서 무솔리니(이탈리아)와 히틀러(독일) 같은 정치 이단아가 탄생했던 역사적 사실과 유사하다. 그래서 그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이단적 이념 앞세우며 경제 전쟁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 지 11년이 된 지금, 향후 전망은 어떨까. 투즈 교수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은 금융위기가 터졌던 11년 전에 비해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고 진단했다. 세금을 동원한 은행 살리기, 빈부 격차의 심화, 자산 거품의 형성 등 고질병은 그대로 남아 있고 체질 개선에 실패했다고 본다. 그래서 "위기의 진앙은 오히려 2008년 때보다 더 깊어졌고 진폭은 더 커졌다"고 했다.

투즈 교수는 세계 3차 대전은 '경제 전쟁'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 사례로 미·중 무역 전쟁을 들었다. 트럼프가 현재 무역전쟁에서 잠시 유리한 국면을 맞더라도 결국 모두를 패자로 만들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또 현재의 흐름으로 볼 때 규제 완화와 자유무역을 골자로 하는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정치인은 당분간 나오지 않고, 보호무역주의와 반세계화, 국가의 시장 경제 개입을 강화하는 정치세력이 활개할 것으로 예상했다. 11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가 낳은 세계 정치 격변을 심층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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