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는 음식과 와인의 궁합을 '마리아주(mariage)'라고 부른다. 사람의 장내 세균(microbiome)을 분석해 맞춤형 식단을 추천하는 이스라엘 기업 데이투(DayTwo)는 음식과 신체 사이에도 궁합이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에겐 해로운 아이스크림과 흰 쌀밥이 내 몸엔 좋을 수 있고, 건강식으로 알려진 야채 샐러드와 콩이 오히려 내 몸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2017년 7월 서울에서 만난 유발 오펙(Yuval Ofek) 데이투 공동 창업자 겸 회장은 "현대인은 비만·고혈압·당뇨 등 각종 질환에 시달리는데, 잘못된 식습관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래서 어떤 음식이 나와 궁합이 잘 맞는지부터 파악하면 건강관리가 수월해진다고 했다. 그는 "사람마다 고유 장내 세균을 보유하고 있어 섭취 음식마다 다르게 반응한다"면서 "데이투의 목표는 개인별로 궁합이 잘 맞는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을 찾아내 건강관리를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투는 사람의 채변 샘플을 받아 장내 세균을 분석한다. 데이투 사이트에 회원 등록을 하고 질의서를 작성하면 채변 검진 키트가 집으로 날아온다. 데이투 연구소는 채변 샘플 내 장내 세균 DNA를 검사해 40만여 종의 음식이 혈당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파악한다. 혈당 수치를 크게 높이거나 낮추기 위해 피해야 하는 음식,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으니 먹어도 좋은 음식으로 분류한다.
검사 결과는 6~8주 후 데이투 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앱에는 궁합이 가장 잘 맞는 '10대 메뉴'와 '내 몸에 맞는 간식', '피해야 할 10대 음식' 등이 나온다. 아침·점심·저녁 등 시간대별로 섭취하면 좋은 메뉴도 열람할 수 있다. 1회 검사와 검사 결과 열람 비용(검사 후 6개월간)은 299달러(약 35만 원)다.
데이투는 이스라엘 면역학자 에란 엘리나브와 컴퓨터 과학자 에란 세갈의 공동 연구로 설립됐다.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 소속인 엘리나브와 세갈 박사는 2013년 1000명을 대상으로 음식 섭취에 따른 반응을 연구했다. 그 결과 어떤 사람은 빵을 먹고 혈당 수치가 치솟은 반면, 똑같은 빵을 먹고도 아무 반응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세갈 박사는 "특정 음식에 대한 반응을 좌우하는 요소는 운동량, 콜레스테롤 수치 등 137개로 다양했는데 그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장내 세균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엘리나브와 세갈 박사는 개인의 음식 궁합을 측정하는 특수 알고리즘을 개발했고, 사업가인 마리어스 나흐트와 유발 오펙이 맞춤형 식단 추천 서비스를 사업화했다.
2016년 이스라엘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데이투는 2017년 미국 시장에도 진출했다. 창업 2년 만에 미국 제약회사 존슨앤드존슨(Johnson&Johnson),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 등에서 총 1700만 달러(약 199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 존슨앤드존슨의 자회사인 얀센과 연구개발(R&D) 파트너십을 맺었고 메이요 클리닉과도 장 세균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오펙 회장은 "지금은 어떤 음식이 몸에 좋고 나쁜지만 알려주지만, 앞으로는 섭취해야 하는 음식의 양과 시기, 적정 운동량, 수면 시간까지 추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향후 식품회사들이 데이투와 같은 맞춤형 추천 시스템을 기반으로 제품을 만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평균에 의존하는 추천 시스템은 이제 무의미하다. 효과가 없기 때문에 당뇨 환자가 이렇게나 많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 데이투의 서비스 과정을 설명한 동영상 ⓒDayTwo
유발 오펙 데이투 회장 인터뷰
위클리비즈니스(이하 생략): 와이즈만 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사업화한 계기가 궁금하다.
유발 오펙(이하 생략): 첨단 IT 산업에만 30년간 몸담았고, 그중 15년을 헬스케어에 투자했다.* 헬스케어 시장을 바꿀 만한 혁신의 조짐은 보이는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업이나 연구는 없었다. 특히 현대인의 고질병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대사증후군, 당뇨, 비만, 심장병 등을 예방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엘리나브와 세갈 박사의 연구는 이런 질병의 원인을 다뤘고, 데이투는 이를 실행에 옮길 기회였다.
* 유발 회장은 데이투에 합류하기 전 10년간 의료 솔루션 업체 DB모션의 창업자 겸 회장으로 활동했다.
왜 혈당 수치에 집착하는가.
오늘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질환은 대부분 혈당이 원인이다. 혈당을 관리하지 못해 수많은 사람이 비만, 고혈압, 고혈당, 고지혈증, 당뇨 등에 시달린다. 물론 질병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혈당 수치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50년 전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당뇨는 흔치 않은 질병이었다. 오늘날 중국 당뇨병 환자 수는 미국보다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탄수화물 중심의 서양식 식단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대사증후군 인구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문제는 이런 질환에 접근하는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탄수화물은 혈당 수치를 높이고 지방은 낮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평균'일 뿐이다. 개인별로 음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장 세균을 분석해 혈당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야 제대로 된 식단을 만들 수 있다.
혈당을 알고 싶으면 측정기를 사용하면 되지 않나.
당뇨 환자들이 사용하는 혈당 측정기의 단점은 측정 기간 먹은 음식의 반응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장 세균을 분석해야 개인의 고유 신진대사와 혈당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사람마다 장 세균의 종류와 구성 등이 다르다. 개개인의 유전자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현재 앱으로 어떤 정보를 제공하는가.
A~C 등급으로 음식 궁합을 분류한다. A+가 매겨진 음식은 궁합이 아주 잘 맞는 음식으로, 먹어도 혈당 수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C로 분류된 음식은 혈당 수치가 높아지므로 먹어서는 안 된다. 앱에서 원하는 메뉴를 찾을 수 없을 경우, 직접 메뉴를 등록하면 등급을 계산해준다. 검색창에 '베이글', '사과' 등 개별 식재료를 검색해 나와 궁합이 맞는지 확인할 수도 있다.
맞춤형 식단 업체가 많은데 차이점이 무엇인가.
대부분 다이어트나 식단 관리가 작심삼일로 끝난다. 이미 굳어진 식습관을 바꾸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데이투의 장점은 평소 입에 대지도 않는 음식을 몸에 좋다고 무조건 추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추천하는 식단은 다양한 음식을 포함한다. 일례로 아이스크림이 몸에 잘 받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추천 식단에는 아이스크림이 들어갈 수 있다. 나는 버터를 빵에 발라 먹는데, 몸에 좋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라면 식단을 따로 설정해서 음식을 추천받으면 된다. '저칼로리', '고단백 저탄수화물' 등 기호에 따라 설정할 수 있다.
맞춤형 식단이 식품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궁극적으로 식품회사들이 데이투 같은 추천 시스템을 활용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혀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방문한 레스토랑의 메뉴를 데이투 앱으로 내려받거나 스캔하면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메뉴를 추천해주는 식이다. 우리는 식품 사업에 진출하지 않고, 식품·영양 관련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어 데이투의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미국에서는 다이어트 관리업체인 웨이트워처스(Weight Watchers)가 유명하다. 웨이트워처스 계정에 데이투 프로필을 연계하면 고객은 양사의 정보를 활용해 더 효율적으로 식단·체중 관리를 할 수 있다. 이 밖에 레스토랑 예약 서비스, 배달 서비스, 다이어트 업체 등과도 파트너십을 맺을 계획이다. 데이투 정보는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사용자가 허락할 때만 협력업체들이 이를 활용해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데이투를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장 세균의 DNA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과정은 여전히 복잡하고 비싸다. 그나마 첨단 기술을 활용해 합리적인 가격대로 낮출 수 있었다. 현재 299달러인 검사·서비스 가격을 200달러 미만으로 낮추려고 한다. 기술이 더 발전하면 대중이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가격대로 낮출 방침이다. 그렇게 해야 대사증후군, 당뇨, 심장병 환자들이 실제로 혜택을 볼 수 있다. 음식 문화가 다른 해외 시장에 진출할 경우 데이터베이스를 새로 구축해야 한다는 과제도 있다.
현재 데이투는 미국·유럽에서 자주 먹는 40만 개의 음식 데이터베이스를 보유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시장에 진출할 경우 그에 걸맞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하며, 국가별로 많이 섭취하는 음식이 있다면 새로 추가해야 한다.
유전자를 변형해 저항력을 키운 농작물 종자가 각종 생화학 실험으로 효과를 높인 비료의 힘을 빌려 자란다. 작물에 적정한 기온과 습도를 각종 센서가 쉼 없이 측정한다. 위성항법장치(GPS)가 탑재된 트랙터와 드론이 사람 없이 논밭을 누비며 농약을 분사한다. 몬산토(Monsanto), 존 디어(John Deere), 듀폰(Dupont) 등* 농업 분야의 다국적 대기업들은 일찌감치 각종 기술을 총동원해 데이터를 분석하고, 최적의 재배법을 찾고 있다.
* 몬산토는 종자, 존 디어는 농업 장비, 듀폰은 농자재와 비료 등을 주로 취급한다.
생명공학, 정보통신기술,
사물인터넷, 데이터 과학 등이
총동원되는 '처방 농법' 시대
이처럼 글로벌 대기업이 농업 데이터 시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미국 캘리포니아 샌 카를로스에 있는 '파머스 비즈니스 네트워크(Farmers Business Network, FBN)'는 업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연 600달러(약 70만 원) 회비를 낸 FBN 가입자는 자기 농장의 토양 상태, 종자·비료 브랜드와 가격, 작황 등을 입력하면 FBN에 가입한 다른 농장의 다양한 정보를 함께 보며 농사에 참고할 수 있다. 농부 입장에서는 대기업의 일방적인 '재배 처방'만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능동적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2014년 창업 당시 구글벤처스(GV)의 투자로 유명세를 탄 FBN은 이제 5만 제곱킬로미터 이상의 농지 정보를 쥔 농업 데이터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미국의 경영매거진 <패스트컴퍼니(Fast Company)>는 "데이터 다툼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소규모 개인 농가가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한 연결망"이라며 FBN을 '2017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34위로 선정하기도 했다.
FBN 본사에서 만난 찰스 배런(Charles Baron) 공동 창업자는 "정보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개별 농장의 생산성은 물론, 대기업과의 협상력도 완전히 달라져 수익 구조가 크게 바뀔 수 있다"며 "정보 주도권의 방향이 앞으로 농업 생태계를 바꿀 것"이라고 했다.
찰스 배런 FBN 공동창업자 ⓒ조선DB
위클리비즈(이하 생략): FBN이 생기기 전에도 농장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나.
찰스 배런(이하 생략): 농부들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는 네트워크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규모와 정확성이 다르다. 보통은 가까운 지역에 있는 네댓 개 농장 주인들이 모여 대화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한 사람이 '우리 농장 한쪽에 흙이 좀 거칠고 건조했던 곳 있잖아? 거기에 콩을 심고서 이 비료를 며칠 간격으로 줬더니 아주 좋아' 하면 다른 사람이 '오, 우리 밭 흙도 그런데 그 비료 한번 써봐야겠네' 하는 식이다. FBN에 가입한 농장 수가 3200개고, 각 농장의 면적을 합치면 1300만 에이커(약 5만 제곱킬로미터)다. 이를 분석해 나오는 정보의 질과 정확성은 네댓 명이 알음알음 나누던 것과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정보의 질이 어떤 식으로 달라지나.
농업에서는 상상 이상의 많은 변수가 생산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옥수수 같은 경우, 일반적인 파종법은 30인치 간격으로 종자를 심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브랜드 종자인지, 혹은 어떤 토질에 심는지에 따라 20인치, 혹은 12인치로 심을 때 가장 수확량이 많을 수도 있다. 그런 실험을 열 번 하고 나온 정보, 200번 하고 나온 정보 중 어떤 게 더 신뢰도가 높을까. 이런 식으로 적용해 보면 더 많은 농가가 네트워크에 참여해 자신의 정보를 추가할수록 더 좋은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브랜드의 농기계 중 어떤 농기계의 효율이 가장 높은지, 어떤 농약과 비료의 조합이 가장 좋은 결과를 내는지 등 개인 농가에서는 얻기 힘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여러 정보를 입력하는 일이 농가에 오히려 부담을 주는 건 아닌가.
요즘 농장 운영은 매우 과학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농부들이 추가로 해야 할 일은 없다. 가령 미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존 디어의 트랙터는 사물인터넷 기술을 활용해 이용자 농장의 위치, 기상 등 작물 재배 환경 정보를 자동으로 수집해 클라우드망에 저장한다. 이 트랙터를 갖고 있는 농부가 FBN에 가입한다고 치자. 그가 할 일은 존 디어 클라우드에 접속해 자신의 농장 정보를 내려받은 후 FBN의 양식에 맞게 입력하는 것뿐이다.
기존의 농업 분야 대기업도 양질의 정보를 집적해 재배 플랜을 짜주지 않나.
우리는 양방향으로 정보를 공평하게 공유한다는 점이 다르다. 대기업들의 클라우드 서비스는 개별 농가의 정보를 가져간 뒤 자신들이 분석한 처방만 제공하는 식이다. 그러나 FBN은 모든 가입 농장 정보를 익명 처리한 뒤 공유해 정보를 '민주적'으로 이용하게 한다. 개인 농가가 가장 크게 겪던 어려움은 종자·비료의 가격 협상이었다. 종자 시장을 장악한 대기업들은 전국에서 똑같은 가격으로 종자를 거래하는 게 아니라, 농장 규모나 지역에 따라 가격을 달리 책정한다. 농장 규모가 작을수록 가격 협상력도 약해진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농업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전국 모든 농가가 어떤 브랜드 종자를 얼마에 구매했는지 투명하게 밝히고 공개해 각 농가의 협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실제 가입자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독일 바이엘이 몬산토를 인수하는 등 농업 분야 대기업들의 인수 합병이 활발하다. FBN이 다른 대기업에 인수되면 그 정보가 기업에 넘어가지 않나.
그럴 일은 없다. 우리가 이 회사를 세운 목적 자체가 대기업의 정보 독점으로 인한 피해를 최대한 막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최대한 많은 개인 농가를 네트워크에 참여시키고 투명한 농업 경제 생태계를 만드는 데 있다.
최근 애그테크(agtech)* 투자 열풍이 뜨겁다. 앞으로 전망은.
최근 20년 사이에 농업은 급격하게 디지털화됐다. 흥미로운 역사의 전환점이라고 할 만하다. 다양한 기술과 정보 분석이 실전에 적용되면 생산성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 전통적인 농산물 유통 구조 역시 앞으로 10년 동안 완전히 바뀔 수 있다고 본다. 삶의 필수 요소인 데다 성장성이 무궁무진한 분야인 만큼 투자가 많은 것도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