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마다 한국車…도요타 독무대서 돌풍 일으킨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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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7.08.05 08:00

      [Interview in Depth]
      아시아 韓商 인터뷰 라오스 최대 자동차 제조·판매 코라오그룹 오세영 회장

      지난달 12일(현지 시각)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 중심부 란상(Lane Xang)거리.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해 만든 승리의 문(門) 팟투사이(Patuxai) 옆에 '대한(DAEHAN)'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흰색 1t 픽업트럭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대한의 제조사는 라오스 최대 민영 기업 '코라오(KOLAO)'. 코라오는 2013년 8월 대한을 라오스에 처음 선보였고, 출시 3년 만인 지난해 말 시장 점유율 20.3%(누적 판매량 1만9637대)를 기록했다.

      코라오는 일본 도요타가 독식하던 라오스 픽업트럭 시장에서 30~40% 저렴한 가격과 차별화된 애프터서비스를 무기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대한은 지난해 베트남, 파키스탄에도 출시돼 동남아로 시장을 확대하는 중이다.
      [WEEKLY BIZ] 라오스에서의 'GDP 경영' 20년… 국가 성장 단계별로 필요한 제품 수입… 독자 브랜드로 재탄생

      코라오는 한상(韓商)인 오세영(54) 회장이 1997년 라오스에 설립한 회사다. 이름도 한국(KOREA)과 라오스(LAOS)의 합성어이다.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이한 이 회사는 자동차·오토바이 제조와 판매, 금융, 건설, 물류, 전자제품 유통, 레저, 미디어 등의 사업을 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인구 650만명의 국가 라오스에 본사를 둔 코라오가 지난해 거둔 매출은 10억7000만달러(약 1조1900억원)에 달한다.

      이날 비엔티안의 코라오 본사 8층 회의실에 나타난 오 회장은 활력이 넘치는 표정이었다. 그는 전날 자신이 이끄는 한국 2위 오토바이 회사 KR모터스를 통해 한국 1위 오토바이 회사인 대림자동차 이륜차사업부 인수 소식을 발표했었다. 1990년대 인도차이나반도에서 한국산 중고 대림 오토바이를 팔던 상사맨이 꿈에 그리던 대림 오토바이 인수를 실현하는 순간이었다.

      오 회장의 성공 비결은 뭘까. 그는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라오스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 성장에 발맞춰 필요한 제품을 한국 등에서 가져와 차별화된 브랜드·서비스로 재탄생시킨 'GDP 경영'이 성공 비결"이라고 회고했다.

      1. GDP 300달러 이하

      시장 작아도 경쟁 덜한 곳 택하다

      오 회장은 인터뷰 당일 라오스에서 지방 출장을 다녀왔다면서도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인터뷰 내내 기자의 질문을 적고 생각한 다음 답변을 했다.

      -어떻게 라오스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됐나.

      "한국 대기업(코오롱상사)에서 3년을 근무했고, 회사를 나와 1990년 베트남에서 먼저 사업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수입한 물건들을 팔았는데 결과는 실패였다. 재기 자본을 마련하기 위해 1997년에 라오스를 갔더니 없는 게 너무 많았다. 당시 1인당 GDP가 300달러 수준이었다. 중고차 수입·판매를 시작했는데, 베트남에서 한 번 해본 사업이라 순조로웠다. 라오스는 인도차이나반도 국가 중에 인구가 적다고 기업들이 거들떠보지 않던 나라다. 하지만 베트남 같은 거대 시장은 글로벌·다국적 기업이 경쟁자다. 이익도 박하다. 라오스 시장이 중소기업엔 결코 작지 않다. 작은 시장에서도 1등을 하거나 시장을 독점하면 상당한 이익을 낼 수 있다."

      ―한국과 라오스의 사업 환경은 어떻게 다른가.

      "라오스는 기업과 대화가 되는 나라다. 기업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국가의 미래와 일치한다면 협업이 가능하다. 기업들도 오로지 1등 하는 데 집착하지 않고 같이 시장을 키워 나가려고 노력한다. 국가의 방향성과 정책이 일관되고 지속적이다."

      2. GDP 300~1000달러

      독자 브랜드와 신속 서비스로 차별화

      라오스 사람들에겐 자동차·오토바이가 단순히 교통수단을 넘어 생계 수단이다. 오 회장은 "한국차를 사면 생업에 지장이 없고 서비스 속도가 빠르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고객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매장을 늘리다 보니 건설업(2002년)에 뛰어들었고, 차량을 운반하는 물류 사업(2007년)도 시작하게 됐다. 자동차·오토바이 할부 금융을 위해 금융업(2009년)에도 진출했다. 코라오가 운영하는 인도차이나뱅크는 번호표 시스템 등 라오스에서 볼 수 없는 서비스 혁신으로 민간은행 1위에 올랐다.

      ―창업한 지 20년째다. 언제가 가장 어려웠나.

      "2001~2002년에 중고차 사업이 정체였고 여기에서 멈출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생겼다. 라오스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갈까 고민도 했다. 결국 사업을 계속하기 위해선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제품만 파는 것이 아니라 라오스 국민이 인정하는 브랜드를 키워보고 싶었다. 절박한 위기에서 브랜드 경영으로 전환한 것이 회사가 한 단계 성장한 계기가 됐다."

      ―일본 자동차·오토바이 천국인 동남아에서 경쟁하는 게 쉽지 않은데.

      "라오스 소비자가 '왜 한국차를 타야 하나'라고 물을 때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했다. 도요타는 서비스센터에 차를 맡기면 수리하는 데 3일이 걸린다. 코라오는 무조건 하루 내에 고친다고 못 박았다. 앞으론 4시간 이내로 서비스 시간을 단축시킬려고 한다. 부품이 없다고 고객을 기다리게 해선 안 된다. 급할 때는 다른 차에 있는 부품이라도 뜯어서 고쳐준다는 생각으로 서비스에 임해야 한다. 한국차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고 시장 판도에 변화가 생겼다. 낯선 제품을 마케팅하는 데 중요한 건 제품 자체를 알리는 것보다 두려움을 상쇄시키는 것이다."

      3. GDP 1000~2000달러

      고품질 오토바이 만들려 한국 기업 M&A

      오 회장은 학창 시절부터 독서를 많이 했다고 한다. 그의 집무실에는 지금도 경제·경영·인문 등 다양한 서적이 비치돼 있다. 오 회장은 "최근 일본 전자부품 기업 '교세라'와 관련된 책 4권을 읽으면서 사업 전략과 마음가짐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성공 비결이 무엇인가.

      "나는 천재형 사업가는 아니다.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들진 못한다. 하지만 소비 행태를 분석하면 시장은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먼저 시장에 진출해 기다리고 있으면 언젠가 나라가 발전할 때 물건을 팔 수 있는 기회가 온다. GDP 수준에 따라 필요한 제품이 있는데, 나는 동남아에서 통할 만한 제품을 찾아 현지화시켜 팔았다. 한국 1·2등인 삼성·현대차도 한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더불어 세계적 대기업이 된 것 아닌가. 자동차 보급에 불이 붙기 시작하는 시점이 1인당 GDP가 2500달러를 넘었을 때다. 라오스 대도시는 이미 이 수준을 넘었지만, 지방은 아직 멀었다."

      ―한국 1·2위 오토바이 회사를 인수한 이유는.

      "2003년부터 코라오 브랜드로 오토바이를 만들었는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오토바이는 대중교통 수단이 없는 동남아 국가에선 국민의 필수품이다. 앞으로 시장이 무궁무진하다. KR모터스는 125㏄ 이상 고배기량 제품이 강하다. 대림은 50~125㏄ 제품에 경쟁력이 있다. 두 회사의 제품·기술이 있어야 일본 기업과 경쟁이 가능하다. 나는 한국 제품으로 세계 시장에서 일본과 한번 붙어보겠다는 자신감이 있다.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가 커졌고 이제 '메이드인코리아'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4. GDP 2000달러 이상

      인도차이나반도로 사업 영역 확장

      오 회장은 라오스에서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동남아 개발도상국인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파키스탄 등으로 손을 뻗고 있다. 향후 목표를 이야기하면서 그의 눈은 어느 때보다 빛났다.

      ―2020년까지 인도차이나반도 톱 10 기업이 목표인데.

      "그룹 매출이 이미 1조원을 넘었다. 목표 달성이 쉬운 건 아니다. 1~2년 늦어질 순 있지만 가능할 거라고 본다. 전 임직원이 힘을 합쳐 뛰고 있다. 하나의 사업이나 한 국가의 사업만으로는 절대 달성 못 한다.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에서의 사업 속도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이다."

      오 회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다양한 직업이 있겠지만 지금도 후배들에게 상사맨을 추천한다.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나라에 없는 정보(물건)를 파는 '상사맨'"이라고 말했다. 해외 개척을 꿈꾸는 사업가나 젊은이들이 귀 기울여 들을 만한 조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