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이 화장의 모든 것" 전세계 여성 홀린 베네피트

입력 2017.03.31 15:08 | 수정 2019.08.15 21:01

광고 모델 없는 美 화장품 회사 베네피트 CEO… 장 앙드레 루조

모델 출신 쌍둥이 자매 '얼굴 고민 상담소'가 사업의 시작
다양한 마네킹들이 스타 모델 자리 대신… 만화 속 한 장면 연출
'수석 눈썹 전문가'란 독특한 직책 있어… 세계인의 고민거리를 사업기회로

경찰 제복을 입은 여성이 권총을 겨누듯 화장품을 내밀며 외친다. "당신은 예뻐질 권리가 있다." 이마·볼·입술 화장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화장품 '파인원원(fine one one)'의 광고 문구다. '긴급출동 911'을 뜻하는 영어 '나인원원'에서 따왔다. 모공을 가려주는 기능의 화장품에는 트렌치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사건 해결을 위해 출동하는 여성 요원이 그려져 있다. 이 제품 이름은 '모공(pore)계의 프로페셔널(professional)'을 뜻하는 '포어페셔널'이다.


모델로 일하던 쌍둥이 자매 제인(큰 사진 왼쪽)과 진이 화장품 가게를 차리게 된 건 절반은 ‘우연’이었다. 자매는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카페를, 뒷면이 나오면 화장품 가게를 내기로 했다. 뒷면이 나왔고, 자매는 화장품 가게를 창업했다. 아래 작은 사진은 왼쪽부터 차차틴트, 포어페셔널, 단델리온, 닥터필굿.
모델로 일하던 쌍둥이 자매 제인(큰 사진 왼쪽)과 진이 화장품 가게를 차리게 된 건 절반은 ‘우연’이었다. 자매는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카페를, 뒷면이 나오면 화장품 가게를 내기로 했다. 뒷면이 나왔고, 자매는 화장품 가게를 창업했다. 아래 작은 사진은 왼쪽부터 차차틴트, 포어페셔널, 단델리온, 닥터필굿. / 베네피트
팝아트 작품을 보는 듯 알록달록한 색의 포장과 광고, 읽으면 피식 웃게 되는 제품명이 베네피트(Benefit Cosmetics)의 트레이드 마크다. 출발은 모델 출신의 일란성 쌍둥이 자매가 1976년 샌프란시스코 한 골목에 차린 42㎡(약 12평) 넓이의 ‘얼굴 고민 상담소’. 자매는 고민을 접수하면 화장품 제작부터 눈썹 다듬기까지 가리지 않고 덤벼들었다. 하루 33달러 버는 게 목표였던 자매의 상담소는 1999년 루이뷔통모엣헤네시(LVMH) 그룹에 인수됐고, 창업 40년 만에 연매출 10억달러(1조원)가 넘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지난 2월 샌프란시스코 본사에서 만난 장 앙드레 루조(Rougeot·59) 최고경영자(CEO)는 “창업자들이 심어놓은 유머러스한 DNA야말로 베네피트의 최고 경쟁력”이라고 했다. 머리가 벗겨진 중년 남성인 루조 CEO의 사무실에도 창업자들의 흔적은 분명하게 남아 있었다. 사방이 온통 핑크색과 인형, 화장품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베네피트의 성장 비결을 물었다.


화장품업계에서 30년 넘게 일한 장 앙드레 루조 베네피트 CEO는 “한국 화장품의 품질이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비슷한 상품이 계속해서 잘 팔릴 뿐 눈에 띄는 변화를 찾기가 어려웠다. 더 참신한 기획과 혁신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화장품업계에서 30년 넘게 일한 장 앙드레 루조 베네피트 CEO는 “한국 화장품의 품질이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비슷한 상품이 계속해서 잘 팔릴 뿐 눈에 띄는 변화를 찾기가 어려웠다. 더 참신한 기획과 혁신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베네피트
Idea 1 |제품에 유머와 스토리텔링을 입히다

베네피트에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스타 모델이 없다. 그 대신 개비, 시몬, 라나, 베티 등 서로 다른 외모와 성격을 가진 마네킹들이 만화 캐릭터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면서 저마다 어울리는 화장품의 대표 모델로 등장한다.

“베네피트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창업자들의 독특하고 유쾌한 정신이다. 창업자였던 진과 제인 자매가 원래 문을 연 매장은 단순히 제품을 늘어놓고 판매하는 곳이 아니었다. 손님이 자신만의 고민을 털어놓고 함께 수다를 떠는 상담소였다. 그래서 베네피트의 화장품은 손님의 고민거리를 몇 분 안에 해결해주는 ‘즉시 해결(instant solution)’이 기본이다. 화장하는 행위를 얼굴 위에 멋지게 덧입히는 ‘메이크 업(make up)’이 아니라 결점을 감쪽같이 속이는 ‘페이크 잇(fake it)’으로 부른다.

손님들의 고민거리를 해결해주면서 두 창업자가 가장 강조한 것은 ‘웃음이 최고의 화장’이라는 모토다. 베네피트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웃음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두 창업자는 내가 만나본 사람 중 제일 거침없고 웃긴 사람들이다. 이들은 새 제품을 만들어 테스트할 때마다 쉴 새 없이 관련된 이야기를 상상해 이름을 붙이곤 했다. 가령 얼굴 결을 매끄럽게 해주는 밤(balm) 형태의 화장품 이름은 ‘닥터 필 굿(Dr. Feel good)’인데, 포장에는 고전 영화의 키스 장면을 그려 넣었다. 환자를 진찰하던 의사가 반해서 키스를 해버릴 만큼 피부가 부드러워진다는 뜻이다. 소비자에게 쉽고 유쾌하게 다가가는 제품 이름과 패키징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베네피트만의 독특한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

베네피트의 대표 캐릭터 개비(위 사진)와 본사 로비에 전시된 베네피트 제품들.
베네피트의 대표 캐릭터 개비(위 사진)와 본사 로비에 전시된 베네피트 제품들. / 베네피트
Idea 2 |고민거리 눈썹을 사업 기회로

전 세계 2100개의 ‘브로 바(brow bar·눈썹 전용 매장)’를 운영하는 베네피트에는 독특한 직책이 있다. CBA, 아름다운 눈썹을 책임지는 눈썹 부문장 ‘수석 눈썹 전문가(Chief Brow Artist)’다. 시장조사기관 NPD그룹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내놓은 베네피트의 눈썹 전용 키트는 눈썹 제품 분야 판매 세계 1위를 기록했다.

“3년 전 일이다. 베네피트를 비롯해 여러 화장품을 판매하는 세포라 지점들을 돌아보며 매장 직원들에게 ‘어떤 질문을 받을 때 제일 두렵나’라고 물었다. 열 명 중 여덟 명꼴로 ‘눈썹에 대해 질문하면 도망가고 싶은데, 매일 눈썹에 대한 질문이 늘고 있다’고 했다. 그때 무릎을 탁 쳤다. 잘 생각해보면 눈썹만큼 지역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고민하는 부위도 없다. 젊은 여성은 세련미를 드러낼 수 있는 눈썹을, 나이 든 여성은 젊어 보이는 눈썹을 원한다. 남성의 경우 화장을 따로 하지 않고도 더 깔끔한 인상을 만드는 최고의 방법이 눈썹 정리다.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장이었다.

그래서 얼굴형, 문화권, 나이, 원하는 인상에 어울리는 눈썹 모양을 연구하고 전문가들도 양성했다. 지금은 전 세계에 포진한 눈썹 전문가가 4000명가량이고, 눈썹 전용 제품도 40가지 넘게 갖췄다. 눈썹 제품 소비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5년 전만 해도 눈썹 전용 화장품을 매일 쓰는 여성 비율이 전체의 5%에 그쳤지만 지금은 25%로 늘었다는 조사도 있다. 브로 바에 대한 호응도 좋아 2015년부터는 이를 사회 공헌 사업에 활용하고 있다. 5월 한 달 동안의 각 나라 브로 바 수익을 해당 국가 여성 지원 단체에 기부하는 것이다. 지난해까지 미국·영국·호주와 스페인·싱가포르·캐나다 등 8개국에서 참여해 630만달러를 기부했고 올해는 한국을 포함한 16개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Idea 3 |신세대 소비자 활동 무대 따라가다

베네피트의 ‘눈썹 번역기’ 실행 모습.
베네피트의 ‘눈썹 번역기’ 실행 모습. / 베네피트
‘눈썹 번역 결과 : 무관심.’

베네피트가 신경과학 전문가와 함께 만들어 지난 1월부터 선보인 ‘눈썹 번역기’의 분석 결과다. 정면 사진을 업로드하면 안면인식 기술을 활용해 눈썹의 각도와 표정을 분석,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보여주는 서비스다. 베네피트는 미국 시장조사업체 L2가 세계 화장품 브랜드 400여 개를 대상으로 매년 조사해 발표하는 ‘디지털 IQ지수’ 순위에서 2위에 올랐다.

“최근 몇 년 사이 디지털 관련 인력을 대폭 늘려 다양한 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 신제품 발표 때는 페이스북 라이브, 유튜브를 통해 메이크업 방법을 소개하고, 소비자가 직접 사용기를 올리는 콘테스트도 연다. 이 시대에 디지털 마케팅에 신경쓰지 않는 브랜드는 뒤처질 수밖에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화장품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인디 브랜드(독립 브랜드)들의 급성장이다. 이런 브랜드의 가장 큰 특징은 디지털 친화적이라는 점이다. 다양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젊은층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가는 법을 안다. 50대 이상 여성들은 백화점에 가서 전통적으로 명성 있는 브랜드 화장품을 찾지만, 20~25세 젊은 여성들은 새롭고 재미있는 제품을 찾아 인터넷 세상을 헤맨다. 소비자가 매장을 떠나는데 점원만 매장에 남아 있으면 안 된다.”


[그래픽] 베네피트 / 베네피트 역사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Fashion Beauty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