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A·B·C가 좋은데 당신은?" 협상 잘하려면 속마음 밝혀라

    • 권성우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입력 2016.10.15 03:04 | 수정 2016.10.15 03:24

'윈윈'하는 협상
상대 만족시키면서 나도 만족하려면… 각자의 선호도 밝혀야

권성우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권성우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세계적 베스트셀러 '협상의 법칙' 저자 허브 코언 미국 미시간주립대 교수는 몇 년 전 방한 강연에서 "한국인들은 협상을 너무 못한다"고 일침을 놨다. 그는 "한국인들은 상대방의 도발적 발언에 금세 뒤로 물러선다"면서 "한국 경영자들도 호의를 표시하는 데는 인색한 반면, 섭섭한 감정은 쉽게 드러낸다"고 비판했다.

한국인들이 협상에 취약하다는 것은 국내 경영학계의 주요 이슈다. 각자의 이해관계를 취합해 한 결론으로 이끌어 가는 일을 못한다. 국내 기업인들은 중요한 협상이 있을 때면 외국인 파트너나 변호사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이 오죽 협상에 취약했으면, 지역 간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신공항 결정까지 낯선 프랑스인에게 맡겼을까.

나는 한국인이 협상에 약한 요인으로 먼저 상명하복식 위계 문화를 거론하고 싶다. 이런 문화에서는 윗사람이 이야기하는데 아랫사람이 의견을 개진하기 어렵다. 직장에서 점심을 먹으러 간다고 생각해보자. 상사들이 "뭐 먹으러 갈까?" 하고 물으면, 직원 대부분은 "전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하고 말한다. 직장에서 회의나 회식을 할 땐 상사가 대화를 주도하고, 부하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장단을 맞춘다. 이렇듯 우리는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연습이 부족하다. 어릴 때부터 "학교 가서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라"라는 말을 인이 박이게 들었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발표를 잘해라", "질문을 잘해라" 등의 조언은 하지 않는다.

둘째 요인은 경쟁 사회 속 만연한 불신감이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말하는 것을 '약점을 잡힌다'고 생각한다. 나의 선호도를 밝히면 상대방으로부터 이용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대기업은 납품 업체의 생산 원가를 알아내 가격을 후려치고, 중소기업의 기술을 시연해 보라고 한 다음에 빼앗아 가기도 한다. 심지어 운전 중 차선을 바꿀 때에도 미리 차선 변경 신호를 넣으면 다른 차들이 안 끼워줄까 봐, 차선 변경 직전에 깜빡이를 켜는 차도 많다. 이렇다 보니 협상에서도 자신의 의중을 끝까지 숨기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된 협상이란 상대방을 만족시키면서 나도 만족할 수 있는 방안, '윈윈 솔루션'을 찾는 통합적 협상이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밝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상대방이 내가 싫어하는 인도 음식을 먹자고 하더라도 할 수 없이 따라야 할 때가 생긴다. 왜냐하면 다 잘 먹는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의사 결정 과정은 다음과 같다. "나는 A, B, C가 괜찮은데, 너는 이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좋아?" 이렇게 함으로써 내가 싫어하는 음식점은 배제하고 괜찮은 대안 중에서 두 사람이 모두 선호하는 식당을 선정할 수 있게 된다.

[Weekly BIZ]
/박상훈 기자
자신의 의중을 밝히는 것은 왜 중요한가? 협상자들이 상대방의 선호를 모르면 상대방도 나와 같은 것을 원한다고 가정하게 된다. 그러면 크기가 한정된 파이를 두고 서로 싸운다고 굳게 믿고 파이를 키우기 위한 협력을 할 수 없게 된다.

성공적인 협상을 하려면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것을 '왜' 선호하는지 물어야 한다. 서로의 선호도에 대한 정보 교환을 통하여 상대방에게 더 중요한 이슈에선 내가 양보하고, 나에게 더 중요한 이슈에서는 상대방의 양보를 이끌어 냄으로써 파이를 키울 수 있게 된다.

물론 각자 선호를 밝히는 것만으로 윈윈 솔루션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협상 초기 과정에서는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경쟁과 갈등을 경험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협상 과정 후반에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협조적 행동을 보여야만 모두가 만족하는 협상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을 '차별화 후 통합 원칙'이라고 한다.

한국 정치인들의 문제는 계속해서 싸우기만 하고, 상대를 배려하고 수용하는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것은 극심한 대립을 보이는 노사 협상도 마찬가지다. 협상을 통해 합의하는 합리적 정치인이나 노조위원장을 유약하게 보는 풍토도 고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끝까지 선명성 경쟁을 하는 사생결단식 갈등을 계속해서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내일부터는 점심에 내가 뭘 먹고 싶은지를 분명하게 밝히는 '협상 연습'을 하자. 그것이 협상을 잘하게 되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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