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노믹스가 확장 정책이라고? 일본은 결과적으로 긴축 정책 펴온 셈

입력 2016.10.15 03:04

[Cover Story] 폴 크루그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뉴욕시립대 교수

"일본은 앞으로 2~3년간 재정수지를 걱정하지 말고 재정지출을 해야 한다. 일본은 그리스 같은 채무 위기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내년으로 예정된 소비세 인상은 실수다."

폴 크루그먼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이태경기자
지난 3월 22일 일본 도쿄(東京) 총리 관저에서 열린 '제3차 국제금융경제분석회의'에 초청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Krugman·63)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 앞에서 이같이 말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현재 세계 경제 성장세가 미약해지는 상황에서 일본의 경제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면서도 "일본은행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좋은 아이디어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며,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2014년 소비세율 5%에서 8%로 인상 후 개인 소비가 힘을 잃고 있다"며 "일본은 아직 디플레이션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소비세 추가 인상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크루그먼 교수의 조언에 따라 내년 4월로 예정됐던 2차 소비세 인상을 2019년 10월로 연기했다. 당시에는 소비세 인상 연기가 일본 정부의 재정 악화에 따른 대외 신인도 하락, 국채 금리 상승 등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비율이 240%에 달해 위험하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현재는 아베 총리의 연기 결정이 옳았다는 평가가 더 많다.

크루그먼 교수는 대표적인 친(親) 아베노믹스(아베 정권의 경기 부양책) 학자다. 앞서 2013년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서도 "일본의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아베노믹스는 타당한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지난 6일 '위클리비즈 10주년 기념 경제·경영 글로벌 콘퍼런스'에 참석해서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그는 "현재 전 세계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닮아가고 있다"면서도 "그동안 일본의 경제정책이 잘못된 것인 줄 알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선방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상황을 살펴보면 저(低)성장 시대 경제정책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성태윤 교수
성태윤 교수
이날 강연이 끝난 후 크루그먼 교수를 따로 만나 일본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와 한국 경제정책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인터뷰는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와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아베노믹스를 어떻게 평가하나.

"방향은 옳았지만 충분히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아베노믹스의 세 가지 화살(통화정책·재정정책·구조개혁) 중 첫 번째 화살, 통화정책만 시행됐기 때문이다. 두 번째 화살인 재정정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재정 확대 방안으로 (공공사업 확대, 추경 예산 편성 등) 여러 수단을 발표했지만, 그 대부분은 어차피 시행될 정책을 (아베노믹스라고) 다시 분류한 것에 불과하다. 유일하게 시행된 주요 정책이 (2014년 1차) 소비세 인상이었으니, 아베노믹스의 재정정책은 확장적이 아니라 긴축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일본 내부 목소리는 다르다. 재정 확대 정책으로 정부 지출이 낭비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용하지 않은 재정 확대 정책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나오는 부작용이다. 일본은 거대한 규모의 공공사업을 오랫동안 시행했다. 그중 일부는 유용하지 않았다. 차량 통행이 별로 없는 곳에 고속도로를 만들었고,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교량을 건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이 쓸모가 없었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재정정책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유용성, 다른 하나는 수요 증대다. 이런 공공사업은 유용성은 부족했을지 몰라도 수요를 늘려 일자리를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됐다. 비슷한 문제를 경험했던 국가들과 비교해볼 때 일본은 대규모 실업을 모면했고, 따라서 개개인의 고통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것을 피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성공적인 정책이었던 셈이다. 오히려 일본 재정정책을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할 수 있을만큼 충분한 규모로 시행하지 않아서 실패한 것이다. 더 과감하게 재정정책을 시행했어야 했다."

―각국의 경기 부양에서 어느 정도의 정부 지출이 적절한지를 어떻게 알 수 있나.

"나는 정부 지출 규모를 측정할 때 '탈출속도'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투입되는 돈이 '탈출속도'에 도달할 만큼 충분해야만 경기 부양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 부양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로 얼마나 소비가 증가할지다. 재정 확대 정책으로 투입된 자금이 얼마나 지출돼 소비로 이어지느냐가 중요하다.

부자 감세는 대부분 저축될 것이기 때문에 좋은 정책이 아니다. 반면, 인프라 투자를 위한 정부 지출은 경기를 부양하는 데 좋은 정책이다. 사회보험 프로그램과 같은 정책도 실제 지출로 이어질 수 있다. 프랑스는 사회복지 지출을 늘림으로써 경제성장을 유지하는 경우다. 프랑스 경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잘 굴러가고 있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인프라에 투자해 왔지만, 그 규모가 탈출속도에 이를 만큼 충분하지 않아 효과를 보지 못했다. 미국은 인프라 투자가 좀 더 절실한 상황이다. 워싱턴DC 등 대도시의 낡은 지하철 개선, 80년이나 된 제방 보수 등 미국 전역에 공공지출이 필요한 분야가 널려 있다.

물론 인프라 투자와 사회복지 확대 등 돈을 투입하는 정책은 정부 차원에서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 정치권은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는 큰 부담이 있다. 몇 년 전 내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같은 조언을 했더니 '우리에게 수조달러가 드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말을 하지 마라. 우리는 그럴 돈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통화정책으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재정정책은 경제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만들어낸다. 물가상승률이 정상적인 수준으로 회복된 후에 통화정책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지난 9월 금리 동결은 아슬아슬한 박빙 상황이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거의 모든 위원은 연내 기준금리가 인상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이태경기자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 2인자인 스탠리 피셔 부의장이 이달 초 국제통화기금(IMF) 연례 총회에서 한 이 발언은 다시 한 번 미국 증시를 흔들어놨다. 연초부터 시작된 연준의 금리 저울질은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은 듯하다. 연준 내부뿐 아니라 미국 경제학계에서도 인상론자와 동결론자가 팽팽히 맞선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연준의 금리 인상 움직임에 대해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저금리는 쉽게 바꿀 수 있는 정책적 선택이 아닌 전체 수요가 약해진 결과 나타나는 대응적인 정책일 뿐"이라고 말했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왜 실수인가.

"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낮기 때문이다. 특히 임금 상승률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만약 연준이 오랜 기간 금리를 동결해 물가 상승률이 2.5~3%가 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때는 긴축정책을 시행해야 할 것이다. 달갑지는 않겠지만, 그다지 큰일은 아니다. 반대로 연준이 금리를 올려 경제가 침체에 빠져 물가 상승률이 1% 이하로 떨어지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는 연준에 매우 곤란한 상황이다. 기대 인플레이션 하락으로 실질 이자율이 더 올라가는 문제도 발생할 것이다. 이는 되돌릴 수 없는 실책이다. 이처럼 금리 인상 시기와 관련된 위험의 크기에는 커다란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내가 보기에 금리를 서둘러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줄 만한 강력한 근거는 없다."

―하지만 저금리가 가계 부채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신빙성이 떨어진다. 금리 정책의 작은 변화가 가계 부채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저금리 환경에서 사람들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건 금융 감독을 통해 해결해야지, 금리 인상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 내가 보기에 사람들은 '저금리'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저금리가 연금 기금에 문제를 일으키고, 저축하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저금리는 쉽게 바꿀 수 있는 정책적 선택이 아니다. 금리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불만이라면,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해 금리가 낮은 수준에 머물 필요가 없게 하면 된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부채 때문에 경기 부양을 위한 정부 지출을 계속 유지할 수 없다고도 주장한다.

"최근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은 역사적으로 볼 때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다. 영국만 하더라도, 지난 두 세기 동안 부채비율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던 경우가 많았다. 1930년대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여파로 지금보다 훨씬 많은 부채를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 영국 경제학자였던) 존 케인스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투자자들이 여전히 영국을 신뢰하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유로존도 마찬가지다. 5년 전 유럽은 재정 위기로 인한 급격한 부채 증가로 높은 차입 비용을 초래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자, 유럽 채권 시장의 유동성 위기는 사라졌다. 중앙은행이 충분한 대비를 하고 있다면, 선진국의 부채 대처 능력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하지만 정부 부채를 늘려 재정정책을 확대하는 것은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를 가진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 아닌가.

"반드시 다른 나라 통화로 차입할 필요는 없다. 과거 미 달러화로 차입했던 국가들도 이제 상당수는 자국 통화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게 됐다. 최근 40년간 큰 규모의 경상 수지 적자를 기록했지만,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인 나라가 어디인 줄 아는가. 바로 호주다. 호주는 미 달러화가 아닌 호주 달러화로 차입해왔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다. 기축통화의 국제적인 역할은 흥미로운 연구 주제지만, 실제로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기축통화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

―한국은 빠른 고령화 진행 때문에 부채 문제를 더 우려하고 있다.

"어떤 점에서는 고령화 자체가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만들 수 있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지금부터 15년 후의 인구구조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다. 지금 시점에서 약간의 재정 흑자를 더 만드는 것은 별다른 차이를 만들지 못할 것이다. 지금 (재정 확대로) 튼튼한 경제를 만들면 미래에 생산량도 증가하고 인플레이션도 상승해 실질 이자율을 내릴 수 있다.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는 데 훨씬 더 나은 정책이다."

―한국의 수출 중심 경제 시스템은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은 서비스 분야가 극도로 비효율적이라는 문제가 있다. 내수에 더 중점을 두는 정책이 필요하다. 만약 국내 수요를 증가시키는 정책을 추구한다면, 시장은 이에 맞춰 변화할 것이다. 한국은 분명 GDP 대비 수출 비중이 높다. 그러나 이는 숫자가 주는 착시효과에 불과하다. 중간재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GDP 대비 수출의 부가 가치인데, 실제로 이것은 그렇게 크지 않다. 기본적으로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부가 가치 기준으로 70% 이상 고용이 비교역(non-tradable) 부문에서 창출되고 있다. 한국은 이 부분이 성장해야 한다."

―한국 경제 시스템은 주변국 정책에 잘 휘둘린다는 문제도 있다. 아베노믹스도 엔화 가치를 평가절하해 주변국에 피해를 주는 '근린 궁핍화' 정책이라는 비판이 있었는데, 이 정책의 최대 피해자가 한국이라는 말도 있다.

"난 아베노믹스가 근린 궁핍화 정책이라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수요 부진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확장적 통화정책은 통화가치 하락이라는 효과가 있지만, 그것이 유일한 것은 아니다. 만약 모든 국가가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추구한다면 세계경제에 대한 전체적인 효과는 오히려 긍정적일 것이다. 물론 환율을 변화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정책은 문제가 된다. 5년 전 중국이 명시적으로 위안화가 평가절하된 상태를 지속하고자 했던 정책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미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나왔던 버니 샌더스처럼 극단적으로 정부 지출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것인가.

"샌더스의 주장은 재정 확대 차원이 아닌 정부의 역할 확대다. 이는 다른 문제다. 내 오랜 스승인 고(故) 루디거 돈부시(1994년 멕시코의 페소화 붕괴를 정확히 예측한 미 경제학자) 교수는 거시경제학적인 포퓰리즘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 현상은 일부 남미 국가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거시경제학적 포퓰리즘은 선진국에서는 강력한 정치적 세력이 되지 못한다. 선진국 국민에게는 재정 지출의 유혹보다는 재정 적자에 대한 두려움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적절한 수준의 재정 팽창과 포퓰리즘은 어떻게 구분하나.

"정책 시행 전 세 가지 질문을 해보면 된다. 이 정책이 타당한가, 경제 논리에 따른 합리적인 예측으로 정당화되는가, 최종 단계에서 필요에 따라 전통적인 정책으로 돌아올 수 있는가 등이다."

―일부에서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일시적인 효과만 볼 뿐이라고 지적한다.

"난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이 정상적인 상황, 즉 명목 이자율이 제로(0)보다 충분히 높고, 통화정책이 언제나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일시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면 물가가 상승하고 나머지 경기 부양 효과는 사라진다.

그러나 현재 같은 장기 경기 침체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긴축 정책은 디플레이션을 초래하고, 디플레이션은 부채 문제를 악화시킨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볼 때 '장기적으로 보면 (통화·재정정책이) 상관이 없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만약 재정·통화정책은 단기적이라는 생각이 일부 옳다고 하더라도, 케인스가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 모두 죽는다'고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샌더스에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 공화당 대선 후보의 고립주의 경제정책도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트럼프의 주장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자유무역협정 과정에서 저임금 일자리가 줄어들었고, 특정 산업 부문에서 불평등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과거 일이다.

전 세계적 관점에서 본다면 자유무역협정들은 매우 중요하다. 협정은 가난한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줬다. 전 세계적으로 자유로운 무역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면 개발도상국들이 지금 어떤 모습일지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만약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자유무역협정을 파기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것과 관련된 내 걱정 순위에서 4~5번째에 불과하다. 그는 방위협정을 파기할 수도 있고, 그가 싫어하는 국가에 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고, 민주주의를 파기할지도 모른다."

―트럼프가 우려와 함께 많은 지지를 받는 이유로 이민자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의 경우 트럼프 주장처럼 이민자들이 저숙련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노동자들과 이민자들 사이에는 직접적인 경쟁이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다른 직업군에서 일하고 있다. 사실 이민자를 반대하는 논의를 뒷받침할 경제적인 근거는 굉장히 약하다. 이민자들의 소득은 오히려 세금의 원천이 된다. 원론적인 수준에서 볼 때 이민자들에 대한 반발은 일자리와 관련이 없다. 내 생각엔 정체성과 관련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사회의 지배적인 구성원인가와 관련된 것이다. 미국에 사는 백인 남성들은 미국이 자신들의 나라인가 조금씩 의심하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점점 히스패닉, 아시아계 이민자 비중이 높아가고 있으며, 여성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약 50년 전에 민권법(공공장소에서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된 이후로 생겨나기 시작한 (백인 남성들의) 불안감이 이제 최고조에 다다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백인 남성들이 이런 사회적 변화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지금이 정치적인 전환이 이루어질 시점인지도 모르겠다. 난 앞으로 이런 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본다. 20년 전 캘리포니아주(州)에서 일어난 일이 앞으로 미국 사회에 일어날 일들의 축소판이다.

당시 캘리포니아는 매우 보수적인 성향이었다. 이민자에 대한 반발이 거셌고, 강력한 반(反)이민법이 통과됐다. 그러나 그 결과 이민자들, 히스패닉 계열의 표가 집결됐다. 그리고 주 안에서 정치적인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 새로운 정치적 균형에 도달했다. 새로운 정치적 균형은 더 관용적이고 중도 좌파적이다. 이전 캘리포니아는 공화당 성향이었지만, 이제는 민주당 성향을 띠고 있다.

20년 전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던 백인 남성들은 자신들의 사회를 잃어버리고 있다고 걱정했지만, 지금은 어느 주보다도 다들 잘 지내고 있다. 난 이런 경험이 미국 전역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번 선거만 (트럼프가 당선되지 않도록) 잘 넘긴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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