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고 넘어가야 할 교훈
인위적으로 금리 낮추면 금융시장 복잡하게 할 뿐 경제성장에 도움 안 돼
①저성장의 늪은 깊다
금융 거품을 터뜨리면서 경제가 저성장에서 벗어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경제가 저성장 체제에 오랫동안 머물수록, 경제의 이륙을 방해하는 구조적 역풍은 더 커진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의 경제성장뿐 아니라, 미래의 잠재 경제성장 능력에도 영향을 준다. 그동안 서구에서는 일본의 정책 결정권자들이 시의적절하게 경기 부양을 위한 통화정책과 재정 정책을 구사했다면 '잃어버린 10년'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봤다. 그리고 이런 관점 때문에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지자 미국과 유럽의 중앙은행들은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유럽중앙은행(ECB)은 과거에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동원했음에도 경제성장 속도를 끌어올리지 못했다.
②디플레이션은 무시하지 못할 '리스크'
얼마 전까지 서구 선진국들은 디플레이션(경기 침체에 따른 물가 하락)을 중요한 경제 리스크라고 보지 않았다. 일본은 지난 수십년간 실질 물가 하락과 기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대한 소비자들의 전망) 하락, 이에 따른 투자와 소비의 위축에 맞서 싸워왔다. 서구 선진국들은 일본은 예외적이라며, 일본에서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디플레이션은 ECB의 가장 큰 걱정거리가 됐다. 이 때문에 마이너스 금리를 포함한 실험적 조치를 시행한 것이다. FRB 역시 디플레이션을 리스크로 보고 있다.
③비전통적인 통화 정책은 신중히
대다수 중앙은행은 인위적으로 금리를 낮추면 은행 대출이 늘어나고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론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금리를 낮춰 '포트폴리오 재조정'을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투자자들이 안전 자산인 국채보다는 리스크가 큰 증권으로 갈아타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미미하지만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 다만 중앙은행이 예외적 조치를 거둬들이고 나면 효과가 사라진다. 그러나 일본의 경험을 보면, 비전통적 통화정책 효과에 대해서는 더 면밀히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면서, 일본 경제와 금융시장은 더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게다가 마이너스 금리에 대한 개인들의 반감도 커지고 있다. 중앙은행들은 부담을 안고서라도 부작용이 있는 정책을 계속해서 시행해야 할지 좀 더 고민해야 한다.
④금리 격차의 한계
경제학 교과서 대부분은 세계 경제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중앙은행이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과 금리 격차를 벌릴수록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다고 써 놓았다. 그리고 만약 중앙은행이 돈을 더 풀면 해당 국가의 통화가치는 떨어질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일본 중앙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택한 후 일본 엔화는 평가절하가 아닌 평가절상을 경험했다. 이는 금리 격차가 환율에 주는 영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⑤'두 개의 화살'은 불충분
일본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위기 상황에서는 여러 분야의 정책 결정권자가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세 화살'이라고 부른 통화 완화 정책, 재정 지출 증대, 기업 규제 완화를 떠올려보자. 일본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첫 두 화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일부 분야의 진입 장벽, 인프라(기반 시설) 부족,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노동시장, 과도한 부채 등 경제성장을 방해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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