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비즈 창간 4주년 빅4 인터뷰_'직원 우선' 오야마 회장

    • 도쿄=이지훈 Weekly BIZ 에디터

입력 2010.10.16 03:39 | 수정 2010.10.16 10:09

74명의 직원 중 55명이 지적장애인
"직원을 기업에 맞추지 말고 기업을 직원에 맞춰라"

도살장에 소 끌려가는 기분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있다. 직원을 기계의 부속처럼 생각하는 경영자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꼭 한 번 방문해 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기업이 있다. 일본이긴 하지만, 삶을 바꿀 수 있는 경험이라면 해볼 만하지 않은가.

도쿄 시나가와(品川) 역에서 지하철과 택시를 번갈아 타고 약 1시간 걸려 도착한 '일본이화학공업(日本理化學工業)' 가와사키 공장. 택시 기사도 약도를 보고서야 겨우 찾은 소박한 2층 건물이다.

日서 가장 사랑받는 기업의 오야마 회장 "직원이 왕… 사랑을 전하세요"
그래도 73년간 분필을 만들어 온 일본 최대 분필회사다. 가루가 날리지 않는 특수 분필을 만들어 일본 분필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화이트보드가 등장하면서 성장이 둔화돼 매출은 6억엔 정도.

그런데 이 회사를 지난해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가 방문한 뒤 국회 연설에서 장시간 소개했고, 이 회사 오야마 야스히로(大山泰弘·78) 회장은 같은 해 일본의 경영자상 중 하나인 '시부사와 에이치 상'을 받았다.

이 회사는 남다른 특징이 하나 있다. 74명의 종업원 중 55명이 지적(知的)장애인이다. 4명 중 3명꼴이다. 그 중 26명은 IQ가 50이 안 되는 중증장애인이다. 그런 직원들이 분필 재료를 섞고, 건조로에 넣어 말리고, 분필을 자르고, 포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진지하게 작업에 몰두하는 모습은 감동을 넘어 초현실적으로 비쳤다. 공장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기자에게 그들 중 몇 명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벨기에 같은 나라에선 이런 회사의 직원에 대한 최저 임금을 정부가 보조해 준다. 그러나 일본엔 이런 제도가 없다. 그런데도 오직 한 경영인의 의지로 50년 동안 지적장애인을 고용해 왔다. 이 회사에선 영업이나 총무 같은 업무를 제외한 생산 업무는 거의 모두 지적장애인이 담당한다.

사람들은 흔히 지적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회사 오야마 야스히로 회장은 그들로부터 인생을 배웠다고 말했다. '일하는 의미'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이다.

장애인에 '눈높이 일터' 만들어 주니…
돈으로 환산 안되는 '열정'을 내뿜더라

이 회사가 원래부터 장애인을 고용했던 것은 아니었다.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1959년의 일이었다. 당시 대학을 막 졸업한 오야마 야스히로 회장은 창업자인 부친이 병환으로 몸져누우면서 사실상 회사 경영을 책임지고 있었다.

회사 근처에는 지적장애인이 다니는 양호학교가 있었다. 어느 날 이 학교의 선생님이 회사를 찾아와 "학생을 취직시켜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는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닌 사람을 취직시켜 달라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찾아왔다. 세 번째로 찾아온 날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취직 부탁은 다시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내년 3월 졸업을 하는데, 취직을 못하면 보호시설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일하는 것이 뭔지도 모른 채 평생을 거기서 살게 됩니다. 그러니 취직은 아니더라도 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일생에 한 번이라도 경험하게 해주세요."

이 말에는 그도 거절을 못해 14~15세의 소녀 두 명을 실습이라는 명목으로 2주간 일하게 해주었다. 완성된 분필이 담긴 포장용 상자에 스티커를 붙이는 가장 간단한 일이었다.

인간은 일을 통해 행복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오야마 야스히로 회장은 지적장애인들이 그 소중한 진리를 일깨워줬다고 말했다. / 이화학공업 제공
■동정심

두 아이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한 장 한 장 스티커를 붙이는 모습은 진지함 그 자체였다. 그들은 점심시간 벨이 울려도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직원들이 어깨를 두드리며 밥 먹으러 가자고 알려줬다. 그러나 그 다음에도 두 소녀는 벨 소리를 무시하고 계속 일했다. 직원들은 '어제 말해준 것도 잊어버리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소녀들의 행동은 바뀌지 않았다. 그제야 다른 직원들은 깨달았다. 이들은 벨 소리를 못 알아들은 것이 아니었다. 일에 너무 열중해 다른 사람들이 그만 하라고 해야 비로소 그만두는 것이었다.

직원들은 감동했다. 40대 전후의 아줌마 직원들은 이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자녀들을 떠올렸다. 2주간의 실습이 끝나는 날 직원들은 오야마 회장을 에워싸더니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계속 일하게 하면 안 될까요? 저희가 보살펴 주겠습니다"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두 명의 채용이 결정됐다.

오야마 회장과의 인터뷰를 위해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푸른 작업복을 입은, 키 작은 할머니가 차를 내왔다. 낯이 익었다. 안내를 맡은 총무부 직원이 나중에 "오야마 회장이 쓴 ≪일하는 행복≫에 나오는 그 직원"이라고 귀띔해 줬다. 1960년에 지적장애인으로는 처음 입사한 두 명의 소녀 사원 중 한 사람, 하야시 히사코(65)씨였다. 그녀는 60세 정년까지 일한 뒤 촉탁 사원으로 재고용돼 일하고 있다. 오야마 회장이 이룬 성취의 무게감이 오롯이 가슴에 와 닿았다. 지적 장애인을 고용해 50년 동안 일하게 할 수 있는 회사라면 이미 지상(地上)의 회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지 스님의 가르침

다시 50년 전. 두 소녀가 일하는 모습을 쭉 관찰하면서 오야마 회장은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됐다. 만일 그들이 보호시설에 간다면 일 안 하고 보호받으면서 편하게 살 텐데, 왜 매일 아침 만원 전차를 타고 와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하는 것일까?

그는 한 스님에게 이 얘기를 꺼냈다. 스님의 대답은 당시 서른살이던 오야마 회장의 인생을 바꾸었다.

분필 재료통, 색깔별로 구분케 하고
시간 잴 때 모래시계로 이해력 도와…
장애는 편견일 뿐, 업무능력 훌륭해

"장애인, 보호시설 가면 좋아할까요?
일할 때 가장 행복함을 느낀답니다"


"보호받는 것이 인간의 행복이 아닙니다. 인간의 행복은 4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 칭찬받는 것, 도움이 되는 것,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보호시설에서 돌봐 주면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거나, 도움이 되거나, '네가 없으면 안 돼'라는 얘기를 들을 수 없어요. 회사에서 일해야만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장애인이 시설에서 보호받기보다 일하기를 희망하는 것은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이라면 자연스러운 행위입니다."

그는 스님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인간의 행복은 일하는 데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그리고 생각을 바꿨다. '분필을 만들어 대기업을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오히려 지적장애인들에게 일하는 행복을 주는 회사를 만들어 보는 것이 의미 있지 않을까.'

지적장애인들이 진지하게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면 일하는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된다. / 이지훈 기자
■종업원을 기업에 맞추지 말고, 기업을 종업원에 맞춰라

그러나 지적장애인들에게 일을 맡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저울로 어떤 분필 재료를 100g만큼 재야 할 때 지적장애인은 100g이란 단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야마 회장은 장애인의 눈높이로 돌아갔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해력의 범위 내에서 작업을 하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이 교통신호기였다. 지적장애인들이 전철역에서 회사까지 오는 길에 큰 도로가 있어 교통신호를 잘 보지 않으면 큰 사고가 난다. 아이들은 혼자서도 사고 없이 잘 건너다녔다. 글자는 몰라도 빨강이나 파랑 같은 색깔은 구별했던 것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친 오야마 회장은 재료 배합 작업에 색깔을 응용했다. 먼저 재료들을 각각 빨간 통과 파란 통에 구분해 넣었다. 지적장애인 사원들은 재료 봉투에 쓰인 글자는 못 읽어도 색깔을 보고 재료를 구분했다.

재료의 중량을 잴 때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빨간 추와 파란 추를 만들었다. 빨간 통에 들어 있는 재료를 잴 때는 저울 한쪽에 빨간 추를 올리고, 저울 다른 쪽에 빨간 통 속 재료를 조금씩 퍼담는다. 그래서 저울 바늘이 가운데에서 멈추면 오케이다.

이 방법은 성공을 거뒀다. 일을 시키면 쉽게 싫증을 내던 아이가 있었는데, 이 방법을 쓰니 싫증도 내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오야마 회장은 생각했다. '지적장애인도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방법을 궁리하면 비장애인과 똑같이 할 수 있다. 지적장애인들은 일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에 대한 배려와 연구가 필요할 뿐이다.'

그는 지적장애인의 이해력에 맞춰 일을 하게 하는 방법을 계속 고안했다. 예를 들어 재료를 개는 시간을 잴 때는 일반 시계 대신 모래시계를 사용했다. 이렇게 해서 일본이화학공업의 분필은 장애인이 만드는 물건임에도 한국의 KS와 비슷한 JIS(일본공업규격) 마크를 획득했다.

보통 회사에서도 상사는 흔히 "당신, 일 그렇게밖에 못해"라고 질책하기 일쑤다. 그런 사람들에게 오야마 회장은 이렇게 충고했다.

"일이 잘 안되면 흔히 일한 사람에게 능력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주변에서 그 사람에게 맞게 일하는 방법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누구나 열심히 일해서 도움이 되고 칭찬받으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길만 열어주면 그들은 열심히 일할 것입니다. 부하의 육성에 이런 생각이 필요합니다. 지적장애인들이 가르쳐 준 교훈입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오야마 회장은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써주었다. 자신의 다짐이 담긴 글이었다.

'누구라도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일할 수 있는 공생(共生)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지금부터도 열심히 해나가겠습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장애인들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는 길이라고 했다.


일본 이화학공업은…

1937년 설립된 일본 최대 분필 회사 중 하나. 장애인을 50% 이상 고용할 경우 정부가 공장 건설 자금을 저리 융자해주는 제도가 생기면서 지적장애인 고용 회사로는 최초로 그 모델 공장을 1973년 가와사키시에 지었다. 홋카이도에도 공장이 있다. 두 공장에서 하루에 각각 10만개씩의 분필을 생산한다. 가루가 날리지 않는 분필, 창문이나 유리 등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물수건으로 닦으면 지워지는 '키트파스' 등 신제품을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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