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뚫고 훨훨 날다, 별 5개 달고

입력 2020.07.10 03:00

카타르항공 티에리 안티노리 CSTO(최고전략·변화책임자)

카타르항공 항공기가 카타르의 수도 도하 상공을 나는 모습. 카타르항공은 '코로나19' 사태에도 계속 운항하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카타르항공 항공기가 카타르의 수도 도하 상공을 나는 모습. 카타르항공은 '코로나19' 사태에도 계속 운항하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카타르항공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각국이 빗장을 걸어 잠그면서 가장 어려운 분야는 항공업계다. 전 세계 항공사들의 실적은 지난 1월 이후 석 달 만에 10분의 1로 추락했다. 5월 들어 살짝 반등했지만 최근 확진자가 다시 늘어나며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현재 전 세계 노선 10개 중 9개는 운항을 중단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도 계속 비행기를 띄운 항공사가 있다. 대표적인 곳이 항공기에 자주색 아라비아영양을 그린 중동의 카타르항공이다.

영국의 항공 서비스 평가 기관인 스카이트랙스는 매년 항공사 순위를 발표하는데 카타르항공은 최근 10년간 5번이나 1위를 차지했다. 2011년 처음 정상에 오른 이후 줄곧 1~2위를 지켰다. 슬로건은 '세계 5성급 항공사'다. 그들은 어떤 전략을 추구하고 있을까. 카타르항공의 영업·전략을 총괄하고 있는 티에리 안티노리(Antinori·59) 최고전략·변화책임자(CSTO)를 화상 인터뷰했다. 프랑스 출신인 그는 독일 루프트한자항공 부사장, 에미레이트항공 부사장 등을 거친 항공업계 거물이다.

카타르항공 티에리 안티노리 CSTO(최고전략·변화책임자)
카타르항공 티에리 안티노리 CSTO(최고전략·변화책임자)
코로나 사태에도 매일 운항

카타르항공은 최악의 상황에도 항공기 운항을 멈추지 않았다. 같은 중동 항공사라도 에미레이트항공, 에티하드항공, 터키항공은 문을 닫거나 운항을 크게 줄였다. 카타르항공은 세계 6개 도시는 매일 운항을 고집했다. 그 중 하나가 인천(서울)이다. 4월 승객 수송 거리는 13억㎞로 2~5위 항공사를 합친 것보다 길다.

"우리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완전히 나쁜 뉴스는 아니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그는 코로나 사태를 '단지 90%의 위기'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나머지 10%의 기회에 도전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취항지를 30여 곳으로 줄이는 대신 상황에 따라 220기가 넘는 전세기 등을 유연하게 조합하고 화물기 운항을 극대화했다"고 말했다.

티에리 안티노리 / 카타르항공
카타르항공은 코로나 사태로 중동, 아프리카, 인도, 파키스탄 등 고립된 사람들이 있는 곳에 적극적으로 전세기를 투입했다. 다른 항공사들이 바이러스 확산을 우려해 문을 닫을 때 공격적으로 이송 수요를 찾아 나선 것. 그렇게 이송한 인원이 18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는 "항공기는 공항에 세워두기만 해도 고정 비용이 많이 나가는데 그렇게 충격을 완화했다"며 "현금 유출을 최소화해 주주들에게 손을 벌리지도 않았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로 승객은 줄었지만 화물은 의료용품 등 배달 수요가 늘면서 폭증했다. 카타르항공은 화물기 28기를 풀가동하고 여객기까지 화물기로 개조했다. 코로나 사태 초기 유엔난민기구와 함께 중국에 의료용품을 수송하는 등 의료용품만 17만5000t을 날랐다. 이는 보잉 777 화물기 1750대분이다. 여기에 세계적인 저유가 추세는 덤이었다. 덕분에 화물에선 역대 최고 수익을 올렸다. 무엇보다 그는 승객들 사이에서 유연하고 믿을 수 있는 항공사 이미지가 생긴 것을 가장 큰 수확으로 꼽았다.

세계 최고 일등석 늘리는 역발상

지난달 카타르항공은 "새로 도입하는 보잉의 차세대 항공기 777X에 세계 최고의 일등석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바이러스 감염을 우려하는 VIP 승객을 위해 좌석은 4개 정도만 넣는다. 그동안 항공사들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 일등석을 줄이는 추세였는데 오히려 역으로 치고 나가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이후를 대비한 포석이다. 항공 전문가들은 팬데믹(감염병의 대유행)이 장기화하면 항공 시장의 양극화가 심해질 것으로 본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가능한 일등석이나 비즈니스석의 수요가 다시 늘 것이란 전망이다.

안티노리 CSTO는 루프트한자항공 부사장 시절에도 '역발상 경영'으로 위기를 돌파하고 역대 최대 실적을 올린 적이 있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져 모두가 긴축 경영을 했지만 루프트한자항공은 미래에 대한 투자로 개인용 리무진 제트기를 추가 도입하고 공항 라운지를 확충했다. 오스트리아항공 등을 인수하기도 했다. 승객이 줄어든 노선은 아예 없애는 대신 소형 항공기를 투입해 유지하고 왕복 99유로짜리 저가 상품을 내놨다.

이번에 카타르항공은 과감한 티켓 정책도 선보였다. 예약한 티켓의 날짜와 목적지를 언제, 어느 곳이든 무료로 바꿀 수 있게 했다. 7월 들어 코로나 확진자가 다시 늘어나자 기내 위생 조치를 더 강화했다. 승객들에게 마스크, 장갑, 손세정제 등이 든 키트(꾸러미)와 햇빛 가리개 모양의 '페이스 실드'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승객들은 여행 내내 마스크뿐만 아니라 페이스 실드도 써야 한다. 보안경과 장갑, 마스크를 썼던 승무원들은 유니폼 위에 가운도 입는다.

세계 최고 비즈니스클래스 상(스카이트랙스 선정)을 받은 카타르항공의 'Q스위트'.
세계 최고 비즈니스클래스 상(스카이트랙스 선정)을 받은 카타르항공의 'Q스위트'. / 카타르항공
요금보다는 신뢰성·유연성이 중요

카타르항공은 작년 9월 중동의 라이벌 에미레이트항공의 부사장을 지낸 안티노리를 영입했다. 그리고 회사의 최고 전략·변화 책임자 자리를 맡겼다. 뛰어난 서비스에 민첩성과 효율성을 버무려 세계 최고 자리에 오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안티노리는 에미레이트항공을 세계 1위 항공사로 키워낸 인물이다. 당시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세계 항공사들 사이에서 공적(公敵)으로 불릴 정도였다. 항공 전문가들 사이에선 "중동에서 한판 승부가 벌어질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안티노리는 코로나 사태 이후 세계 항공 시장이 크게 재편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항공사의 수와 규모가 줄고, 지원금을 준 정부의 영향력은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해외여행의 추세도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제 승객들은 항공사의 안전(safety), 신뢰성(reliability), 유연성(flexibility)을 더 중시할 것"이라며 "5달러, 10달러를 아끼기 위해 (가격 비교 앱을) 찾아 헤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어 인사를 자연스럽게 건네는 그는 세계적인 항공사 최고위 임원인데도 기아 옵티마(K5)를 탄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유쾌한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의 별명은 '미스터 강남'. 한국인 친구가 붙여준 별명이라고 한다. 가수 싸이를 좀 닮기도 했다.

"우리 한 번밖에 안 살잖아요. 좀 재미있게 일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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