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위기야… 너를 딛고 또 한번 도약하리라"

입력 2020.07.10 03:00

무역전쟁·코로나 맞서 분투하는 베르너 바우만 獨 바이엘 회장

무역전쟁·코로나 맞서 분투하는 베르너 바우만 獨 바이엘 회장
그래픽=김현국
독일 제약산업의 혁신을 상징하는 아스피린(Aspirin)은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문헌에까지 기원이 닿아있다. 기원전 5세기쯤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는 해열과 진통 효과를 얻기 위해 버드나무 껍질의 즙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양인들은 이러한 기록을 토대로 오래전부터 버드나무류 껍질과 조팝나무에 담긴 살리실산(salicylic acid)이 열과 고통을 줄여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두 식물을 날것으로 먹으면 맛이 워낙 역했던 데다, 위장 장애 등 부작용 때문에 대중화되지는 못한 채 민간요법으로만 전해져왔다.

히포크라테스의 민간요법이 다시 주목을 받았던 것은 19세기 초 과학자들이 살리실산의 화학 구조를 발견하면서다. 1863년 염료공장으로 출발한 바이엘은 이 연구를 토대로 살리실산을 대중 치료법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바이엘 연구원이었던 펠릭스 호프만은 버드나무에서 추출한 살리실산의 화학구조를 일부 바꿔 위 점막 자극을 줄인 아세틸살리실산을 합성해 이를 알약으로 만들어내는 대량생산 방법을 발견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쓰는 아스피린이다.

바이엘 150년의 성공 비결들

아스피린 혁신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바이엘의 아스피린은 첫 출시 무렵 해열·진통제로 쓰였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한 분야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해내고 있다. 최근에는 뇌졸중과 심근경색 예방은 물론 암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왔다. 이제 전 세계인이 하루에 1억알을 복용할 정도로 범용성을 가지면서 100년 넘게 바이엘의 캐시카우(현금 창출 수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바이엘은 아스피린을 시작으로 한 제약업뿐 아니라, 20세기 초엔 폴리카보네이트와 폴리우레탄을 최초로 개발해 산업화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그 결과 합성 고무, 코팅, 페인트, 접착제 원료, 슬라이드 필름, 태양전지 등 첨단 소재를 또 다른 사업축으로 키웠다.

바이엘 150년의 성공 비결은 뭘까. 베르너 바우만(Baumann·57) 바이엘 회장은 WEEKLY BIZ와 가진 한국 언론 첫 인터뷰에서 "바이엘은 창업 때부터 과학 기술 혁신이 곧 회사의 미래라는 흔들림 없는 믿음이 있었다"며 "실험실의 새 발견을 썩히지 않고 제품의 혁신으로 이어낸 것이 바이엘의 성장 동력"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거대 제약사들은 신약 한 종류를 내놓기 위해 평균 13년에 걸쳐 평균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쏟아붓는다. 그런데도 신약이 출시에 성공하는 확률은 5% 남짓하다. 시장에 나왔다 할지라도 신약 특허 기간이 만료되면 복제약이 쏟아져 살벌한 경쟁이 벌어진다. 게다가 많은 선진국이 건강보험 지출을 대폭 줄이는 바람에 제약 업체들의 수익성도 타격을 입었다.

이런 가운데 바이엘은 경쟁 제약사 평균의 4배 가까운 돈을 쏟아가며 연구·개발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강수를 두고 있다. 바우만 회장은 "연구·개발에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을 투입하고 있다"며 "지난해 한 해에만 53억유로(약 7조1400억원)를 투자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전체 직원 가운데 10%가 넘는 대규모 인력 구조 개편 방안을 내놨지만, 연구·개발 인력과 예산은 전년보다 늘렸다. 연구·개발은 결코 '밀실'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바이엘은 본사 소재지인 독일 레버쿠젠 인근의 병원·대학·연구소·벤처기업은 물론 환자와 경쟁사까지 모두 협력 파트너로 삼고 있다. 이러한 강점을 토대로 바이엘은 2016년 이후 꾸준히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제약 회사' 타이틀을 지켜내고 있다.

위기에서 빛나는 獨 기업 저력

한때 전 세계를 호령하던 독일 간판 기업들은 미·중 무역전쟁과 코로나 사태 등 양대 위기의 여파로 2~3년 전부터 혹독한 시련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독일의 대표 자동차 기업인 폴크스바겐과 벤츠부터, 독일 최대 투자은행인 도이체방크, 제조업 강자인 티센크루프 등 상당수 '블루칩' 기업들이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독일의 간판 제약·화학 기업인 바이엘도 2016년 인수한 미국 종자 회사 몬샌토의 제초제가 암을 유발했다며 제기된 소송에 직면해 있다. 그럼에도 바이엘을 포함해 상당수 독일 기업들은 악재 속에서도 견조한 실적을 내고 있다. 양대 위기 속에서 분투하고 있는 독일 기업들의 저력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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