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자율주행 서빙 로봇… 한국에 공장 세웁니다"

입력 2020.06.26 03:00

[류현정의 New Innovators] (5) 하정우 베어로보틱스 창업자

시니어 커뮤니티 시설 제공 업체인 모리슨 리빙이 서빙 로봇 '페니'를 시범적으로 도입, 성능을 테스트하고 있다.
시니어 커뮤니티 시설 제공 업체인 모리슨 리빙이 서빙 로봇 '페니'를 시범적으로 도입, 성능을 테스트하고 있다. / 베어로보틱스
"한국에 로봇 공장 설립을 위한 9부 능선을 넘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베어로보틱스(Bear Robotics)가 당면한 과제는 서빙 로봇 '페니(Penny)'의 대량생산이다. 이 회사는 지난 1월 소프트뱅크와 롯데 등으로부터 3200만달러(약 373억7600만원) 규모에 달하는 자금(시리즈 A)을 유치했고, 1만대에 달하는 선주문도 받아놓은 상태다.

그동안 미국 하드웨어 스타트업은 프로토타입(시제품)을 만든 후 중국에서 대량생산에 나서는 게 일반적이었다. 미국에는 중국 공장을 알선해 주는 회사도 많다. 하지만 베어로보틱스는 제조업에 부는 탈(脫)중국 바람을 고려해 한국에서 공장을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류현정 조선비즈 실리콘밸리 특파원
류현정 조선비즈 실리콘밸리 특파원
하정우 베어로보틱스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제조=한국'이라는 새 등식을 만들 기회가 왔다는 것을 베어로보틱스가 보여 줄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도 "최종 확정까지는 시일이 조금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인 하 대표는 실리콘밸리에서 한식당 '강남순두부'를 2년간 운영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하 대표는 실전 경험을 살려, 2017년 음식을 나르는 로봇을 만드는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베어로보틱스는 대형 외식 업체인 컴퍼스(Compass), 피자 레스토랑 '아미치스', 카지노 업체 등에 서빙 로봇 페니를 공급했다. 한국에서도 롯데GRS가 운영하는 레스토랑(TGI 프라이데이스, 빌라드샬롯)에서 페니를 볼 수 있다. 베어로보틱스 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 레드우드시티의 외진 창고형 건물에 있었다. 2층에 올라갔더니 샌프란시스코만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장애물 피해가며 자동 배달

―페니를 소개해달라.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는 세계 최초 자율주행 로봇이다. 종업원이 테이블 번호만 입력하면 페니가 최단 경로를 통해 주문한 요리를 배달한다. 사전에 저장된 식당 지도와 라이다(LiDAR) 센서·3D 카메라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장애물을 요리조리 피한다. 미국 외식업계의 이직률은 80%에 달한다. 종업원들이 서빙을 하느라 하루 8㎞씩 걷는 것은 보통이다. 나 역시 식당을 운영하면서 다리가 후들거리는 경험을 했다. 나는 반복되는 고된 노동을 줄여주면, 서빙도 접객이 중심이 돼 많은 사람이 하고 싶은 '커리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페니(Penny)
주인님, 오늘부터 홀서빙은 제게 맡기세요
―한국에 양산 공장을 가동하기로 한 이유는.

"내가 한국인 CEO라서 그렇게 결정한 것은 아니다. 여러 조건을 따져봤더니, 한국이 회사에 유리했다. 미·중 무역 전쟁 격화로 중국에서 생산된 로봇 제품을 미국에 수출하려면 관세를 25%나 내야 한다. 반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덕분에 한국 생산 제품에 대한 관세는 0%다. 수백만 대씩 만드는 공산품이 아닌 경우, 중국의 제조 단가가 의외로 높다는 점도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미·중 무역 전쟁, 코로나 대유행 등으로 글로벌 분업 시대가 저물고 있다. 미국도 '리쇼어링(제조국 본국 회귀)'을 유도하고 있지 않나.

"로봇 제조의 경우, 제조사별로 스펙이 천차만별이고 스펙이 곧 기밀인 경우가 많다. 사람이 제조에 참여하는 비율도 높다. 100% 자동화가 어려워 인건비가 비싼 미국에서 스타트업이 로봇 제조 공장을 가동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하정우 베어로보틱스 창업자.
하정우 베어로보틱스 창업자. / 류현정 특파원
중국 로봇보다 성능 뛰어나

―소프트웨어 전문가인데, 로봇이라는 하드웨어 스타트업에 도전했다.

"PC 라우터 제조 업체에서 병역 특례를 할 때 본의 아니게 공장 설립 업무를 맡은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내가 맨땅에 헤딩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잘하고 즐기는 것 같다. 일단 구글부터 그만두고 창업팀을 꾸렸다. 구글 출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로봇 커뮤니티에서 만난 하드웨어 엔지니어가 창업 멤버로 합류했다. 스타트업 행사에서 내 옆자리에 앉은 미국인은 내 발표를 듣고 바로 합류 의사를 밝혔다. 팀이 만들어지고 3개월 만에 서빙 로봇이 나왔다. 당시 운영하던 식당(강남순두부)에서 필드 테스트를 8개월 동안 진행했다."

―전미 외식협회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협회 직원 2명이 베어로보틱스에 대한 소문을 듣고 시카고에서 순두부집으로 날아왔다. 창업 1년 남짓 만에 이 협회가 주최하는 트레이드 쇼에서 기조 강연을 했다. 소프트뱅크가 베어로보틱스에 투자한 계기도 트레이드 쇼였다. 이 행사에 마침 소프트뱅크 투자 담당 직원이 참가했다. 최근 개인 거주지도 텍사스 댈러스로 옮겼다. 댈러스에는 80여곳에 달하는 미국 외식 업체의 본사들이 몰려 있다. 영업을 위해서 고객과 가까이 있어야 한다."

하정우 / 베어로보틱스

―세계 최대 IT 전시회인 'CES 2020'에 가보니, 중국 서빙 로봇 업체들의 추격도 만만치 않더라.

"중국 업체가 만든 서빙 로봇들은 100% 자율주행이 안 된다. 식당 구조에 따라서는 천장에 별도 장치를 달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음식을 배달한 후 인간이 귀환(return) 버튼을 눌러야 제자리로 돌아온다.

안전 운행 측면에서도 페니에 못 미친다. 페니는 바닥에 떨어진 작은 지갑이나 테이블에 걸친 손님 팔꿈치 등도 인식한다. 다른 회사 제품들은 손님들의 발을 밟고 지나가기도 한다. 100% 자율주행과 효율적인 안전 주행을 위해서는 인공지능 기술이 필요하다. 그 부분에서 우리가 중국 업체보다 앞서 있다. 양산 체제가 시작되면 미국과 한국뿐만 아니라 소프트뱅크가 있는 일본에서도 적극적으로 영업에 나설 예정이다."


'하드웨어가 훨씬 어렵다'

실리콘밸리서 성공 例 드물어
하정우 대표 "비용관리에 신경"


'하드웨어는 어렵다(Hardware is hard).'실리콘밸리에서는 이 문장이 일종의 속담처럼 쓰인다.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엄청난 주목과 투자를 받고도 문을 닫은 하드웨어 스타트업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규모 인력으로 제품을 개발,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대부분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의 사례다.

2017년 피트니스 밴드 제조업체 조본은 총 9억3000만달러(약 1조1245억원)를 투자받았으나, 창업 10년 만에 문을 닫았다. 2018년엔 총 1억500만달러(약 1814억원)를 투자받은 리싱크로보틱스가 폐업을 신고했다. 비슷한 시기에 지보, 메이필드로보틱스 등 꽤 유명했던 로봇 회사들도 사업을 접었다.

'하드웨어가 어렵다'고 비명을 지르는 것은 자금과 인력이 넘치는 구글도 예외가 아니다. 구글은 보행 로봇 개발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를 2013년 인수했다가 소프트뱅크에 되팔았다. 이 회사는 모바일 기기 제조업체 모토로라를 사들였다가 중국 레노버에 매각해야 했다. 모토로라가 보유한 특허권을 빼고 팔았다고는 하지만, 매각가는 인수가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어려운 이유는 ①개발 및 생산 비용이 높고 ②소비자의 실제 수요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뛰어난 엔지니어와 노트북만 필요한 소프트웨어 스타트업과 달리, 하드웨어 스타트업은 금속과 전자 부품 등을 다룰 줄 알아야 하고 수십, 수백 개의 협력업체도 관리해야 한다. 하정우 베어로보틱스 대표도 "하드웨어 스타트업은 지출 규모가 크기 때문에 비용 관리에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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