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한대 없이, 독일 출발해 유럽 돌고 미국으로… 플릭스버스 '세계 일주'

입력 2020.06.26 03:00

獨 시외버스 점유율 95%… 돌풍의 버스

독일 베를린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 앞을 달리는 플릭스버스(Flixbus). 독일에서 탄생한 플릭스버스는 이제 유럽 곳곳과 미국을 누비고 있다.
독일 베를린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 앞을 달리는 플릭스버스(Flixbus). 독일에서 탄생한 플릭스버스는 이제 유럽 곳곳과 미국을 누비고 있다. /플릭스버스
세계적으로 자율주행차, 차량 공유, 전기차 등 모빌리티 산업이 급성장 중이다. 그런데 저비용 항공사(LCC), 고속철도에 밀려 사양산업이 된 시외버스에서 모빌리티 기업을 일궈낸 스타트업이 있다. 유럽 최대 버스 스타트업 '플릭스버스(Flixbus)'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2개월간 운행을 중단했던 플릭스버스는 지난달 말 독일 노선부터 운행을 재개했다. 최근에는 여름휴가 철을 맞아 크로아티아 노선이 다시 운행을 시작했다.

버스 한 대 없는 버스 회사

플릭스버스는 2011년 글로벌 기업을 다니던 독일 청년 3명이 의기 투합해 만들었다. 안드레 슈베믈라인과 요헨 엥게르트는 글로벌 컨설팅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의 컨설턴트, 다니엘 크라우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IT 전문가 출신이다. 저마다 세계적 회사를 박차고 나온 것.

플릭스버스는 상식을 깨는 버스 회사다. 버스 회사지만 직접 운행하는 버스가 한 대도 없다. 기존 버스 회사와 달리 지역의 중소 버스 회사를 모아 네트워크를 만들어 운영한다. 일종의 시외버스판 프랜차이즈 사업인 셈이다. 버스는 운수 전문가인 파트너 버스 회사가 매일 운행하고 플릭스버스는 예약 앱과 홈페이지 운영, 노선 확장, 마케팅 등을 맡는다. 그래서 창업자들은 플릭스버스를 '전자상거래 업체' '데이터 회사'라고도 부른다.

수익은 플릭스버스와 파트너사가 대략 1대3으로 나눈다. 물론 모든 버스에 똑같이 초록색을 입혔고 소비자들은 한 회사 버스처럼 이용할 수 있다. 파트너 계약은 3~5년으로, 서비스 등을 평가해 갱신 여부를 정한다.

이 비즈니스 모델의 강점은 빠른 확장성이다. 돈이 되는 노선을 조사해 파트너 버스 회사들을 모으면 짧은 시간에 네트워크를 늘릴 수 있다. 초기 투자 비용을 아끼고 규모의 경제를 활용하기 쉽다는 얘기다.

플릭스버스는 2013년 첫 운행을 시작한 이후 3년 만에 독일 시장의 80%를 장악했다. 2015년 경쟁사 마인페른 버스를 인수했고 독일 밖으로 발을 넓혔다. 2014년 350만명이었던 승객이 1년 만에 2000만명으로 늘었다. 2017년부터 흑자를 내기 시작했고 이젠 유럽 최대 장거리 버스 회사가 됐다. 현재 독일과 미국 등 32국 2500곳이 넘는 지역을 연결한다. 매일 40만회 이상 운행한다. 지난해 승객은 6200만명에 달했다. 이는 전년 대비 37%가 늘어난 것. 독일 내 시장점유율은 95%에 달한다. 스타트업이라고 하기엔 너무 빨리 거인으로 성장한 것.

유럽 최대의 시외버스 스타트업 플릭스버스(Flixbus)를 만든 청년 3인방. 왼쪽부터 다니엘 크라우스, 요헨 엥게르트, 안드레 슈베믈라인.
유럽 최대의 시외버스 스타트업 플릭스버스(Flixbus)를 만든 청년 3인방. 왼쪽부터 다니엘 크라우스, 요헨 엥게르트, 안드레 슈베믈라인. /플릭스버스
플릭스모빌리티
무료 와이파이, 좌석마다 콘센트

공동 창업자 3명 모두 버스 업계와는 특별한 인연이 없었다. 슈베믈라인은 자가용차도 없다고 한다. 이들은 2011년 창업을 결심하며 어떤 사업을 할지 양말부터 온라인 플랫폼까지 후보 50가지를 꼽았는데 이 중에도 시외버스는 없었다고 한다. 독일 정부는 그해 국영 철도 회사 DB(도이체반)가 독점해온 시외버스 사업을 민영화한다고 발표했는데 이 소식이 그들의 인생을 뒤바꿨다.

당시 독일의 시외버스는 인기가 없었다. 터미널 창구에 줄 서서 표를 끊어야 했고 버스 안에서 마땅히 시간을 보낼 것도 없었다. 슈베믈라인은 "우리는 시외버스 시장의 모든 것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온게 당시로선 꽤 획기적이었던 플릭스버스의 고객 서비스다. 플릭스버스는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예약·취소할 수 있다. 출발지, 도착지, 날짜, 승객 수만 넣고 검색을 누르면 된다. 예약하면 이메일로 티켓을 보내주는데 티켓의 QR 코드를 찍고 버스를 타면 된다. 출발 15분 전까지 취소할 수 있다.

시외버스 타면서 선택할 옵션이 다양하다. 자전거를 실을 수도 있고 여행자 보험에 들 수도 있다. 추가 요금 2.99유로(약 4000원)를 내면 좌석을 지정할 수 있는데 경치가 좋은 2층 앞자리, 4인 가족이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테이블석은 좀 더 비싸다. 짐은 비행기처럼 캐리어 1개, 핸드캐리어 1개까지 무료이고 추가하면 3.99유로를 더 내야 한다. 앱을 통해 버스의 실시간 운행 정보를 볼 수 있어 연착 때 밖에서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앱에는 여행 정보도 깨알같이 들어 있다.

무료 4G 와이파이, 전기 콘센트가 있어 차 안에서 일을 할 수도 있고 영화를 볼 수도 있다. 일부 버스에선 비행기처럼 영화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플릭스테인먼트' 서비스도 제공한다. 미국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인 아마존프라임비디오도 볼 수 있다. 차 안에는 화장실도 있고 과자와 음료도 판다. 저비용 항공이나 고속철도에 비해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는 약점을 보완한 것.

플릭스버스의 버스는 대부분 깨끗한 최신형이다. 중앙 센터에선 각 버스의 운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교통 정보를 알려주기도 한다. 반면 요금은 경쟁 상대인 저비용 항공이나 고속철도의 절반도 안 된다. 7시간 정도 걸리는 베를린~뮌헨 구간 편도 요금이 직통 기준 15유로(약 2만원)부터다. 저비용 항공사는 50유로, 고속철도는 40유로가 넘는다. 이를 두고 엥게르트는 "우리가 기존 회사들과 달랐던 것은 이 산업을 철저하게 고객 중심으로 다시 본 것"이라고 했다. 잘란도, 딜리버리히어로의 투자사인 홀츠브린크 벤처스와 다임러 모빌리티 서비스 등이 설립 초부터 플릭스버스에 돈을 대며 날개를 달아줬다.

사업 초 가장 큰 난제는 실제 버스를 운행할 파트너 버스 회사를 찾는 것이었다. 사업을 결심하고 파트너사를 찾는 데만 1년이 걸렸다. 규제가 풀리며 민영화란 바람이 불긴 했지만 버스 회사들도 선뜻 스타트업의 손을 잡기 어려웠던 것. 창업자들은 독일 곳곳을 다니며 버스 회사 사장들을 설득했다. 이제는 300여개 버스 회사가 플릭스버스의 파트너다. 시장이 살아나면서 버스 회사들도 활기를 찾았다. 버스 설비에 투자할 여력도 생겼다.

플릭스버스(Flixbus)엔 소비자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많다. 추가 요금을 내면 4인 가족이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테이블석을 예약할 수도 있다. 좌석마다 전기 콘센트도 있다.
플릭스버스(Flixbus)엔 소비자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많다. 추가 요금을 내면 4인 가족이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테이블석을 예약할 수도 있다. 좌석마다 전기 콘센트도 있다. /플릭스버스
플릭스모빌리티
초고속 글로벌 확장

플릭스버스의 야심은 유럽 최대 버스 회사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이 꿈꾸는 것은 유럽 여행을 넘어 대륙 간 버스 여행이다.

이를 위해 2018년 미국에 진출했고 작년에는 터키 최대 시외버스 회사를 인수했다. 그리고 지난 2월에는 프랑스에서 아프리카 모로코까지 새 노선을 뚫었다. 유럽에서 2000㎞ 넘게 떨어진 아프리카로 시외버스 여행을 떠나는, 꿈같은 이야기를 현실화한 것.

이 외에 폴란드~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노선, 영국과 포르투갈 국내 노선도 계획하고 있다.

플릭스버스는 시외버스 외 다른 교통수단에도 관심이 많다. 그래서 2016년 회사 이름을 플릭스모빌리티로 바꿨다. 2018년 기차 시장에도 진출했다. 독일은 한국과 달리 다양한 민간 철도 회사가 있는데 플릭스버스처럼 몇 곳을 모아 한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현재는 독일 슈투트가르트~베를린, 함부르크~쾰른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스웨덴에서 플릭스트레인을 운행할 계획이다. 2015년부터 시작한 전세 플릭스버스는 지난해 이용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작년 말에는 프랑스에서 새로운 카풀 플랫폼인 '플릭스카'를 출시했다.

하지만 노선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소비자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서로 다른 버스 회사가 참여해 같은 품질을 내는 것이 목표인데 품질 관리에 일부 허점이 생기는 것. 요금 인상 등 독점 폐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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