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머리를 맴도는 최종 목표는 우주 지배?

입력 2019.12.20 03:00

[이철민의 Global Prism] (28) 아마존 왕국 베이조스의 '대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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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정다운
이 사람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그의 아마존닷컴은 미국 전자상거래의 40%를 차지하고, 상품 검색 건수는 구글을 능가한다. 또 수억 고객의 구매 정보를 이용한 맞춤형 광고 비즈니스는 IBM 전체 매출보다 크다. 동시에 전 세계 클라우드 서버 비즈니스의 절반, 종이 책 판매의 42%,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의 3분의 1을 지배한다. 아마존의 인공지능 스피커·조수인 알렉사(Alexa)는 미국 5000만 가구에 설치됐다. 올드 미디어인 워싱턴포스트와 우주로 로켓을 쏴 올리는 블루 오리진의 주인이기도 하다. 빌 게이츠와 더불어 세계 부호 1, 2위를 다투는 1100억달러 재산가(12월 17일 기준·블룸버그 억만장자 랭킹)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회장의 제국은 워낙 다양하고 방대해서 말 그대로 '만물창고(everything store)'다.

우주에 제국을 건설할 꿈을 갖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회장이 지난 2017년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열린 우주로켓 업체 블루오리진의 ‘뉴 쉐퍼드 시스템’ 공개 행사에서 웃고 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회장이 지난 2017년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열린 우주로켓 업체 블루오리진의 ‘뉴 쉐퍼드 시스템’ 공개 행사에서 웃고 있다. / 블룸버그
관심이 닿는 오지랖도 거의 국가 수준이다. 스스로 미국의 우주산업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자신의 아마존 주식을 판 돈 10억달러를 들여 발사 후 지구로 귀환해 다시 쓸 수 있는 로켓을 쏴 올린다. 도대체 올해 만 55세인 이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베이조스가 품은 궁극의 꿈은 2015년부터 '블루 오리진'의 로켓들이 계속 우주로 날아오르면서 지구의 중력(重力) 밖에 존재한다는 게 드러났다. 그는 1982년 고교 졸업생 대표 연설에서 "수백만 지구인을 우주 식민지로 옮겨 새 세계를 건설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인류 최후의 날은 세계 에너지 수요가 공급을 훨씬 웃돌아 성장을 멈출 때 찾아온다"며 "지구를 구하려면 우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태양계에 흩어진 많은 우주 식민지에서 수조 명이 살고, 그중에서 모차르트와 아인슈타인이 수천명씩 태어나 이룰 막강한 문명을 상상하라는 것이다. 언젠가 인류를 이 우주 식민지로 인도할 블루 오리진의 현재 로켓 이름도 '새 목자(New Shepard)'다. 그러나 이 계획엔 이 신세계의 지배 질서를 누가 결정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없다. 그 답은 베이조스가 이미 지구상에 구축한 제국에서 찾을 수 있다.

베이조스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끈질긴' '가차없는'이란 뜻의 'relentless'다. 인터넷에서 relentless.com을 치면 amazon.com으로 연결된다. 아마존에서 그가 가장 잘 쓰는 말은 "당신, 게으른 거야, 무능한 거야" "완전히 B급 팀이 작성한 서류군. A급 팀 서류 좀 갖다 줄 수 없어?" "왜 내 인생을 망치지?" 등이다.

아마존에서 '전략적 통찰력(insight)'만 얻을 수 있다면, 사업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아마존은 2014년 타사의 AI 음성 인식 기능을 빌려 자사 최초 스마트폰인 '파이어 폰(Fire Phone)'을 출시했지만 크게 실패했다. 결국 1억7000만달러를 손실 처리했다. 그러나 베이조스는 개발 책임자에게 "단 1분도 잠을 설치거나 슬퍼하지 말라"고 했고, 이 경험에서 AI 음성 인식 기능의 잠재성을 확인했다. 이후 아마존은 최고의 발성학 전문가와 AI 엔지니어들을 대거 고용해 영미의 온갖 방언과, 걸음마를 갓 뗀 아기와, 입에 음식을 넣고 말하는 부모의 발음까지 식별할 수 있는 음성 인식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했다. 이 AI 기술은 이후 알렉사에 들어갔다. 경쟁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자가 리모컨으로 알파벳을 입력해서 영화를 검색할 때 아마존 이용자는 "1970년대 진 해크먼이 출연한 영화 좀 찾아줘"라고 말로 주문하게 됐다.

수많은 영세기업이 희생당해

이렇게 구축된 지금의 아마존 제국은 '폐쇄 생태계'다. 아마존 스튜디오는 스트리밍 서비스로 얻은 수많은 고객 이용 정보를 분석해 얻은 데이터로 고객의 기호에 딱 맞는 영화·TV 드라마 시리즈를 제작한다. 1년에 99달러를 내고 이틀 내 배송 서비스를 신청한 아마존 프라임 고객에겐 이 영화가 공짜로 제공되고, 이는 더 많은 프라임 고객을 창출한다. 프라임 고객은 현재 1억명이다. 아마존은 페덱스·UPS와 같은 배송업체들과 협상에서 우위에 서게 된다. 배송비가 내려갈수록 아마존의 이익은 커진다. 이를 두고, 주간지 뉴요커는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계속 힘을 전달해 식민지를 세워가는 '플라이휠(flywheel) 멘털리티'라고 했다. 플라이휠 문화에서 정지(停止)는 곧 사망이다. 베이조스는 2017년 주주 보고서에서 "아마존은 비즈니스 첫날인 데이 원(Day One) 문화를 강조한다"고 했다. '데이 투(Day Two)'는 정지이고, 시장에서 외면당해 고통스럽게 쇠락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영세기업이 희생당한 것도 사실이다. 아마존은 300만 소기업에서 수수료와 광고료를 받으면서 상품 6억 개의 보관과 배송을 대행하지만, 모든 고객·판매 정보는 아마존이 보유한다. 이렇게 확보한 실시간 판매 데이터로 더 싼 가격에 같은 디자인의 아마존 제품을 내놓는다. 유럽연합은 지난 7월 "아마존이 수백만 소기업 제품을 판매 대행하면서 동시에 경쟁한다"며 불공정 조사에 착수했다. 아마존은 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인 소비자 선호 목록을 작성하고, 개인에게 맞춤형으로 추천한다. 아마존은 또 트럭과 항공운송으로 전 세계 물품 흐름을 안다. 한 사회가 자발적으로 쏟아내는 수많은 정보를 집약해 처리하는 시장의 힘을 이길 수 없다던 공산주의 계획경제가 지닌 한계를 한 기업이 넘어선 것이다. 애틀랜틱은 "마르크스가 살아나 아마존을 본다면 '드디어 이뤘다'며 경탄할 노릇"이라고 했다.

국가 업무를 장기 과제로 설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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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베이조스는 자선(慈善)은 자신이 인류에게 기여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계 5대 부호 중에서 유일하게 사후(死後)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부 서약을 거부했다. 아마존은 2018년 112억달러 이익을 냈지만, 미 연방정부에 세금을 단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종업원들에게 스톡옵션을 주면서 11억달러를 공제받고, 연구·개발비 4억9000만달러도 세금 우대 조치를 받았다. 해외 조세 천국 활용 등 세법의 온갖 허점을 활용했다. 미 연방거래위원회는 현재 아마존이 소기업들과 맺은 불공정 계약 내용과 아마존의 시장 집중화, 이해 상충 영업 관행 등을 살펴 반(反)독점 위반 사례를 찾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인들은 2018년 10월 조지타운대 조사에서 아마존을 미군(3.24)에 이어 둘째(3.12)로 신뢰하는 '기관'으로 뽑았다. 소비자의 신뢰와 편리성 제공에만 초점을 맞춘 결과 아마존은 법원·경찰·정부·정당·의회·언론·종교 등을 모두 앞지르는 미국의 인프라가 된 것이다. 베이조스가 현재 4200만달러를 들여 건설 중인 '롱 나우(Long Now)' 시계는 1세기에 한 번 침(針)이 움직이며 1만년간 작동한다. 그는 "인간이 장기적으로 생각할 수만 있다면, 결코 못 이룰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스스로 국가가 해야 할 장기 과제를 떠안았다. 하지만 그가 꿈꾸는 미래가 과연 민주적일까에 대해선 미국 내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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