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신발이 반나절만에 뚝딱…아디다스 속도 혁명

입력 2017.06.10 09:10

[Cover Story] '스피드팩토리' 승부 건 캐스퍼 로스테드 CEO
소비자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원하는 운동화를 24시간 안에 갖게 한다

캐스퍼 로스테드(Rørsted·55) 아디다스 최고경영자(CEO)가 자사의 최신 운동화인 검은색 '울트라부스트'에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났다. 서울 강남역의 한 빌딩 지하 1층에 위치한 아디다스코리아 내부 품평회장에서였다. 그는 작년 1월 아디다스 CEO에 내정돼 그해 10월 취임했다. 한 달 일정으로 미국과 아시아 시장을 도는 가운데, 한국을 만 48시간 동안 찾은 것이었다.

캐스퍼 로스테드 아디다스 최고경영자(CEO)는 열렬한 스포츠 팬이다. “매일 아침 출근 전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겨울에는 스키를 타러 간다”고 했다. 그가 아디다스 축구화 ‘에이스 17+ 퓨어컨트롤’을 들고 있다.
캐스퍼 로스테드 아디다스 최고경영자(CEO)는 열렬한 스포츠 팬이다. “매일 아침 출근 전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겨울에는 스키를 타러 간다”고 했다. 그가 아디다스 축구화 ‘에이스 17+ 퓨어컨트롤’을 들고 있다. /아디다스

로스테드는 아디다스 이사회가 회사의 향후 10년 혁신을 책임질 새 CEO를 찾기 위해 1년간 공들인 끝에 찾은 인물이다. 그의 CEO 내정이 발표된 날 아디다스 주가는 11% 올랐고, 그가 CEO로 있던 독일 화학 회사 헨켈(Henkel) 주가는 급락했다. 그가 맡았던 8년간 헨켈의 주가는 3배, 마지막 해 매출·영업이익은 사상 최대가 됐다. 그는 또 한 번 성공 신화를 노리고 있다. 아디다스는 1924년 창립해 93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1989년 당시 창립 20년도 안 됐던 '햇병아리' 나이키에 1위를 내준 이후 단 한 번도 정상을 밟아보지 못했다. 2012년부터는 성장이 멈췄고, 2015년에는 신출내기 언더아머(Under Armour)에 미국 시장 2위마저 내줬다.

'스피드팩토리' 자체가 최고의 상품

시작은 좋다. 작년 1월 그의 CEO 내정 이후 아디다스 주가는 두 배가 됐다. 올 1분기 아디다스의 순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분의 1가량 증가했다. 작년 미국에서 아디다스 점유율은 전년보다 83% 증가했고, 작년 2분기부터 다시 2위에 올랐다. 글로벌 매출은 2014년 18조2500억원에서 지난해 24조2300억원으로 2년 만에 33% 증가했다.

아디다스의 이런 약진을 뒷받침하는 일등공신은 뭘까? 로스테드 CEO는 "스피드(속도)"라고 한마디로 대답했다. 그는 "아디다스는 스포츠용품 업계의 누구보다 속도전에 강하며 앞으로도 속도로 승부를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디다스의 최첨단 공장인 '스피드팩토리(Speedfactory)'가 그 혁명의 최전선에 설 것이라고 했다.

스포츠 정신과 승리에 대한 열망, 자기과시의 혼합물처럼 보이는 스포츠용품 업계의 대표 CEO가 공장 얘기를 꺼낸 이유는 스피드팩토리가 단순한 공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어떤 업체든 시장조사 후 새 운동화를 기획·생산해 고객에게 내놓는 데 1년 반이 걸렸다. 그리고 창고 같은 대형 매장에 제품을 깔아놓은 뒤 1년이고 2년이고 고객의 손길을 기다리는 식이었다. 아디다스는 이 과정을 24시간 내에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올 하반기 본격 가동하는 독일 안스바흐 공장(연산 50만 켤레)과 미국 애틀랜타 공장(연산 50만 켤레), 즉 스피드팩토리의 등장이 가져올 변화다. 소비자가 스마트폰 등을 통해 주문하면 5시간 내에 맞춤 운동화가 완성된다. 공장 자체가 소비자에게 아디다스의 혁신과 속도와 '쿨(cool)함'을 전달하는 최고의 상품이 된다. 로스테드 CEO는 "제품 생산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소비자가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운동화를 손에 넣을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고객 주문 운동화 24시간 내 제작·배달

로스테드 CEO는 갑자기 뒷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고객 개개인의 수요에 맞춘 생산이 중요한 이유는 (개인 커뮤니케이션의 극단적인 발전 등으로) 세상이 그렇게 변화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그것도 즉시 원합니다. 여기에는 생산자와의 어떤 협상의 여지도 없어요. 결국 속도(가 빠른 기업)가 승리할 겁니다."

그는 '신발 공장'이 가져올 미래 스피드 혁명을 낙관했다. "2020년 실적 전망치도 높였다"고 했다. "원래 목표는 매년 9~10%씩 성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취임 후 매년 10~12% 성장으로 상향 수정했습니다."

아디다스 혁명
로스테드 CEO는 인터뷰 중 한 번도 아디다스가 나이키를 누르고 1위가 될 것이라고 얘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모든 설명이 나이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승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기업의 능력은 딱 전 분기만큼(이니 미래에 대한 속단은 금물)"이라면서 "앞으로 보여줄 게 더 많다"고 했다. "작년 같은 성장세를 이어가려면 몇 가지 변화를 제대로 추진해야 합니다." 그가 아디다스 성장 전략의 비밀을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로스테드 CEO와 인터뷰가 진행된 서울 강남역 한 고층빌딩 지하 아디다스 품평회장은 실리콘밸리 기술기업과 뉴욕·런던의 패션기업 내부를 섞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한쪽 방 안으로 스텔라 매카트니와 협업한 신제품들이 눈에 띄었다. 스텔라는 비틀스 폴 매카트니의 딸이자 에코 시크(eco chic·친환경적이면서 근사한 것)의 대명사로 불리는 유명 패션 디자이너다. 중앙의 큰 기둥 두 개에는 ‘조용히 믿음을 쌓아라. 그리고 네 실력이 말하게 하라.-제시카 에니스’ ‘목표만 정하지 마라. 꿈을 좇아라. 가장 빨라져라.-요한 블레이크’ 등의 영어 문구가 황금색 페인트로 쓰여 있었다. 165㎝ 단신인 제시카 에니스는 2012년 런던올림픽 육상 여자 7종 경기 금메달리스트, 요한 블레이크는 자메이카 출신 최정상급 단거리 육상선수다. 두 사람은 모든 경기에 아디다스 육상화를 신고 출전한다.

로스테드 CEO의 얼굴은 날렵해 보이는 옷차림과 달리 피곤해 보였다. 전 세계 스포츠용품 업계의 격전장 미국과 아시아 각국을 하루가 멀다고 이동하는 강행군으로 쌓인 피로 때문인 듯했다. 그러나 아디다스의 전략과 목표에 대한 설명만큼은 명쾌했다.

―작년 10월 당신이 CEO에 임명되면서 아디다스 성장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8년간 헨켈 CEO였는데, 헨켈에서의 성공을 아디다스에 가져올 수 있을까.

“의사가 다른 환자에게 같은 처방을 할 수 없듯이, 두 기업이 다르기 때문에 경영도 달라야 한다. 아디다스는 고(高)성장 기업인 반면, 헨켈은 저(低)성장 기업이다. 아디다스는 체계가 아직 덜 갖춰졌고 헨켈은 잘 갖춰졌다. 아디다스는 업종 특성상 소비자와 더 많이 소통해야 한다.(헨켈은 산업용 접착제 세계 1위 기업으로 기업 간 거래가 많다.) 물론 둘 다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에 헨켈에 필요했던 전략을 아디다스에 적용할 수도 있다. 첫째, 수요가 갑자기 늘었을 때 유연하게 대응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둘째, 누가 핵심 인재인지 파악해 각 인재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그에 따라 조직을 투명하게 운영하는 것이다. 셋째, 경영의 일관성이다.”

―아디다스가 지난해 선방했지만 아직 1위 기업 나이키와 격차가 크다.(아디다스의 작년 매출은 나이키의 3분의 2, 영업이익률은 나이키의 절반이었다.)

“시장은 테니스 경기장이 아니다. 나이키 말고도 무수한 경쟁자가 있다. 나이키를 뛰어넘는다고 1위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누군가를 이기는 것보다, 성장하고 영업이익과 점유율을 높이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작년에 우리는 거의 모든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였다. 아디다스의 강점은 젊다는 것이다.(아디다스 직원의 평균 연령은 30세다.) 엄청난 기회다. 앞으로 3~5년간 회사를 완전히 바꿀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의사 결정과 전략 실행 속도가 굉장히 빨라지고 있다. 최근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 ‘속도’ 덕분이다.”

아디다스 역사
1. 스피드팩토리

―스피드팩토리는 기존 공장과 어떻게 다른가.

“센서·로봇·빅데이터·인공지능 등 첨단 제조 기술을 동원한 공장이다. 기존 공장에서 맞춤형 신발을 제작하려면 제작에만 20일이 걸린다. 스피드팩토리를 통한다면, 앞으로 소비자가 스마트폰으로 주문하고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 하고 오후에 원하는 매장이나 장소에서 신발을 받는 것도 가능해진다.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맞춤형 제품을 시장에 도입할 최적의 방법이다.”

―틈새시장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두 가지다. 하나는 맞춤형 신발과 의류다. 다른 하나는 미국 래퍼 카녜이 웨스트와의 협업 브랜드 ‘이지(Yeezy)’처럼 소량 생산 제품이다. 이지의 경우 희소성을 위해 일부러 조금만 만드는데, 이럴 때 스피드팩토리가 최적이다.”

―앞으로 계획은.

“‘디지털화’에 주력할 것이다. 재료를 구하고 제품을 만드는 과정부터 내부 소통, 소비자와의 소통 방식 등을 전부 디지털 시대에 맞게 바꿀 계획이다. 둘째는 더 나은 인사 정책과 리더십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지금뿐 아니라 2020년에도 조직을 잘 이끌고 혁신을 도모할 리더를 발탁해야 한다. 셋째는 영업이익률 개선이다. 부품 조달망 최적화 등을 통해 이윤을 개선해 나갈 것이다. 현재 영업이익률이 7.5%인데 2020년까지 11%로 높이는 게 목표다.”

―2020년까지 온라인 매출을 지금의 4배 수준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자신의 아이폰을 들어 보이며) 오늘날 소비자의 주요 쇼핑 창구는 스마트폰이다. 소비자가 스마트폰 앱 등으로 구매하면, 우리가 소비자 특성을 반영한 더 좋은 제품을 내놓기도 쉬워진다. 지하철을 타면 이러고(사람들이 스크린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흉내 내면서) 앉아있다. 자사 제품이 지하철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제대로 인식되려면 모바일 인터페이스에 투자하는 게 당연하다. 소비자들은 제품을 국가별로 검색하지 않는다. 원하는 제품이 덴마크(로스테드 CEO의 모국)에 있든 한국에 있든, 원하면 반드시 가져야 한다. 내 딸들을 보니 이런 성향이 짙다. 아디다스가 스피드팩토리, 물류창고, 유저 인터페이스 등의 기술과 관련 인재에 투자비를 쏟아붓는 이유다. 아디다스에 엄청난 기회다.”

2. 도시 공략

캐스퍼 로스테드 CEO

―핵심 도시 공략을 강조하고 있다.

“우선 런던·파리·뉴욕·로스앤젤레스·상하이·도쿄 6곳을 핵심 도시로 정했다. 앞으로 10~20곳까지 늘릴 예정이다. 이 도시들에 강력한 프랜차이즈를 확립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거대 도시에는 부와 창의적 인재가 몰린다. 대부분 개별 국가보다 크다. 서울(수도권을 포함한 듯) 인구가 2000만명인데 덴마크 전체 인구는 500만명이다. 서울은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를 합친 것보다 크다. 거대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과 유행은 전 세계로 퍼진다. 서울은 트렌드를 주도할 뿐 아니라 디지털 분야에서 선두 주자다.”

―올해 미국 시장 공략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아시아 시장은 어떻게 접근할 생각인가.

“미국과 아시아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한국·중국에서 아디다스는 이미 선두 주자다. 이 지역에서 1위 자리를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 미국에서는 지난 2년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였다. 진전이 있어 기쁘지만 현재 위치에 만족하지 않는다. 아직 1위(나이키)를 따라잡아야 하는 입장이다. 미국은 전 세계 스포츠용품 판매의 37%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 지난 15년간 (나이키와) 벌어진 격차를 좁혀야 한다.”

3. 오픈 소스

아디다스는 2년 만에 ‘사고 싶은’ 브랜드로 탈바꿈했다. 신제품 개발을 사내에만 맡기지 않고 외부와도 협력하는 오픈 소스 전략이 주효했다. ‘이지’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카녜이의 힙합 감성이 접목된 이지는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특히 밑창을 첨단 소재로 만든 운동화 ‘이지 부스트’ 시리즈는 출시 즉시 완판됐는데, 한정품을 사 비싸게 되파는 ‘리셀러(reseller) 시장’에서 판매가의 2~10배 가격에 거래된다.

―아디다스의 성공 비결로 카녜이 웨스트와의 협업을 빼놓을 수 없다.

“오픈 소스 전략의 힘이다. 우리는 어떤 창의적인 개인·기업도 아디다스의 혁신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카녜이와의 관계는 2013년에 시작했다. 카녜이가 평소 즐겨 신는 아디다스 신발(부스트)의 판매가 늘자 카녜이가 직접 협업을 제안했다. 이지는 아디다스 제품 중 가장 브랜드 가치가 높다. 우리는 이런 차별화된 제품이 만들어내는 ‘후광 효과(halo effect)’가 얼마나 큰지 절감하고 있다.”

로스테드 CEO는 “앞으로 더 다양한 크리에이터·기업과 협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면서, 갑자기 검은색 ‘팔리(Parley)’ 신발을 들어 보였다.

“아디다스는 2년 전부터 해양환경보호단체 팔리와 협력해 해양 폐기물을 재활용한 신발을 만들고 있다. ‘바다에 방치되는 막대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어떻게 재활용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작년에 5만 켤레를 팔았고, 올해는 100만 켤레를 팔 계획이다. 축구팀인 바이에른 뮌헨과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도 팔리와 아디다스가 협업한 재활용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었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을 원한다. 우리는 쓰레기를 재활용해 제품을 만드는 몇 안 되는 스포츠용품 업체다. 팔리와의 협력은 소셜미디어에서 8억 건 ‘좋아요’를 받았다.”

―여성 리더십 육성에 관심이 많다.(그는 헨켈 시절에도 부사장급에 여성을 발탁하고 여성 리더 확대에도 힘썼다.)

“아디다스 내 리더급 300명 가운데 17%만 여성이다. 현재 중국·미국·유럽에서 근무하는 여성 직원 한 명씩에게 직접 멘토링하고 있다. 여성 리더를 내부에서 발탁해 키워내는 구체적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효과를 발휘하려면 5~7년은 걸리겠지만 CEO의 의지로 반드시 이룰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추가 의문이 생기면 이메일로 보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어떤 질문이든 보내주세요. 반드시 답을 얻을 겁니다.” 스피드팩토리의 광고 문구 같았다.

<이 기사에는 정예슬 인턴 기자(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한독과)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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