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세계 최대 여행사, 중국 3세대 IT기업 '씨트립' 창업자 겸 회장 량젠장
1999년 미 소프트웨어 회사 오러클 중국 지사 부장으로 있던 30세 중국인 량젠장(梁建章)은 여행업에 관심이 많았다. 미국 체류 시절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Expedia)와 프라이스라인(Priceline)이 성공 가도를 달리는 걸 보곤 "중국에서도 언젠가 인터넷으로 여행을 계획하고 예약하는 시대가 올 것"이란 믿음에 오러클을 뛰쳐나와 여행 평가 인터넷 사이트를 창업했다. 시티은행·도이체방크를 거친 선난펑(沈南鵬), 벤처기업가 지치(季琦) 등과 의기투합했다. 씨트립(Ctrip)의 출발이었다.
하지만 창업 직후 공교롭게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씨트립은 고난의 대장정을 거듭했다. 투자 시장은 말라붙고 매출은 발생하지 않아 량젠장은 여행 정보에 호텔·비행기·버스 예약 서비스를 붙여가며 생존을 위해 거리로 나갔다. 직원들과 함께 주요 기차역·공항·호텔 앞에서 자사 전단과 쿠폰을 뿌려 겨우겨우 파산 위기를 넘겼다. 그러고 다시 투자 시장이 되살아나자 서비스를 정비하고 공격적 M&A(인수·합병) 전략을 앞세워 여행 시장을 잠식해갔다.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게'
첫 10년은 모방과 추격이 화두였다. 후발 주자들이 흔히 활용하는 '발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 서구에선 보편화됐지만 중국에선 낯설던 24시간 고객 응대 센터와 온라인 여행 예약 체계를 도입해 중국 내 경쟁자들을 하나씩 격파하고 영토를 넓혀갔다. 실리콘밸리 모델을 답습한 사업이다 보니 나스닥 상장도 2003년 무난하게 마무리했다. 그런데 또 위기가 닥쳤다. 2003년 중국을 휩쓴 '사스(SARS·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로 여행 산업이 직격탄을 맞은 것. 이 고비마저 극복하면서 씨트립은 '중국판 익스피디아'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독자 성장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2010년부터는 전 세계 여행 업체를 통틀어서도 선도적으로 모바일 서비스 개발에 진력했고, 제휴 호텔을 대폭 늘려 '규모의 경제' 실현에 앞장섰다. 2015년 중국 시장을 양분하던 2위 여행 검색 사이트 취나얼(去哪兒)을 인수하고 2017년 여행 검색 세계 최대 엔진 스카이스캐너를 17억4000만달러에 삼키면서 전 세계 여행 업계를 뒤흔들었다. 추격자에서 '선도자(First Mover)'로 도약하는 전환점을 일궈낸 것이다.
Google Earth, 그래픽=김현국
호텔·항공권 예약 70%를 챗봇이 진행
익스피디아를 닮고자 분투하던 씨트립은 드디어 지난해 총거래액(GMV·Gross Merchandise Volume) 기준으로 1048억달러를 기록, 익스피디아(997억달러)를 뛰어넘었다. 20년 만에 청출어람(靑出於藍)에 성공한 셈이다. 최근 서울에서 WEEKLY BIZ와 인터뷰한 량젠장 씨트립 회장은 옆에 있던 공책을 찢어 펜으로 손수 여덟 글자를 적어줬다. '携程在手 說走就走.' 씨트립(중국명 携程)이 손에 있다면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말 속에 씨트립 성장 비결이 담겨 있다. 고객이 원하는 곳은 어디든 보내드리겠다는 각오다. 그는 "사업 규모와 R&D(연구·개발) 비율에선 익스피디아를 뛰어넘었다"면서 "ABC에 집중해서 미래 여행업을 개척하겠다"고 강조했다. ABC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Big data),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앞자를 딴 용어로 4차 산업혁명 시대 씨트립의 미래 전략을 상징한다. 현재 씨트립 내 호텔·항공권 고객 서비스는 70% 이상 '챗봇(Chatbot)'이 진행하며, VR(Virtual reality·가상현실)을 통한 객실 선택, 안면 인식 기술을 활용한 호텔 체크인 서비스 등이 'ABC 전략' 핵심 병기(兵器)들이다.
중국 3세대 기업 대표 주자
씨트립은 중국 내에선 대표적 3세대 IT 기업 중 하나로 통한다. 징둥팡(BOE)과 레노보(Lenovo) 등 중국 1세대 IT 기업이 주로 서구 주요 IT 기업 하도급 제품이나 모조품을 만들면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했다면, 2000년대 중반 등장한 알리바바·텐센트·바이두 등 2세대 IT 기업은 실리콘밸리 대표 주자인 구글·페이스북을 따라 '문어발식 확장' 전략을 쓴 게 특징이다. 씨트립을 필두로 한 3세대 IT 기업은 우물을 깊고 넓게 파는, 본업에 몰두하면서 선택과 집중 전략을 내세운다. 이젠 서구 기업이 중국 기업 서비스를 모방하는 역전 현상도 종종 나타난다. 씨트립을 중심으로 중국 3세대 IT 기업들이 어떻게 세계시장을 개척하고 있는지 함께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