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6000명 재택근무, 한국 '배달의 민족' 인수, 연례 콘퍼런스 온라인 개최…

입력 2020.07.10 03:00

위기 속 선방하는 독일 기업들

독일 통신업체인 도이체텔레콤의 로고 형상물. 오른쪽 사진은 팀 회트게스 도이체텔레콤 최고경영자(CEO).
독일 통신업체인 도이체텔레콤의 로고 형상물. 아래쪽 사진은 팀 회트게스 도이체텔레콤 최고경영자(CEO). /블룸버그
팀 회트게스 도이체텔레콤 최고경영자(CEO).
①도이체텔레콤

유럽 통신업계는 코로나 바이러스 발생 초기 황당한 소문에 곤혹을 치렀다. 유럽 5세대(5G) 통신망 확장과 관련, 휴대전화 방사선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일으켰다는 음모론이 제기되면서다. 영국과 네덜란드에서는 루머에 분노한 시민들이 5G 안테나를 불태웠다. 사회 전반적으로 통신 수요가 줄어들면서 통신업계의 실적도 갑작스레 악화됐다. 독일경제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유럽 3대 IT·통신업체 모두 수요 감소를 겪고 있다. 올해 통신사들의 B2B 모바일 매출은 12%, 기존 거래 기업 대상 B2B 매출은 10%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3월부터 11월까지 전 세계적으로 최대 250억달러(약 29조원)의 로밍 수익이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많은 통신사가 2020년 실적 예측치를 수정하거나 예측치 발표를 전면 중단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도이체텔레콤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고객 유지와 업무 효율화를 위해 비디오 채팅이나 전화 통화로 이뤄지는 원격 근무 체제로 즉시 전환해 비즈니스 연속성을 유지했다. 1만6000명에 달하는 고객 상담사들에게는 재택근무를 지시했다. 이를 위해 온라인 컨설팅으로 시스템을 전환하는 등 콜센터를 통합했다.

재택근무와 이동 제한으로 빨라진 디지털화는 도이체텔레콤의 또 다른 성장 발판이 됐다. 재택근무에 따른 화상 회의로 화상 통화량은 120% 증가했고, 이미지 스트리밍, 온라인 게임 등 모든 수치가 증가했다. 인터넷 트래픽은 3월 중순 초당 800GB(기가바이트)에서 9.1TB(테라바이트)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1테라바이트는 1024기가바이트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도이체텔레콤은 현재까지는 직원 공개 채용 공고를 낼 만큼 이익을 내고 있다. 도이체텔레콤의 유럽 로밍과 이동전화 매출은 손실을 입었으나, 고정 고객의 통화 수익은 크게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 제한 기간에 휴대폰 이용량이 크게 늘어났는데, 기존 고객의 이탈을 막고 잘 유지한 덕분이다. 독일 경제 신문 한델스블라트의 조사에 따르면 독일 내 통신업체 중 도이체텔레콤은 고객 84%를 유지했다. 반면 나머지 회사들은 20% 이상의 고객이 통신업체를 바꿨거나 바꾸겠다고 응답했다.

독일 배달업체 딜리버리히어로 사무실 풍경.
독일 배달업체 딜리버리히어로 사무실 풍경. 아래쪽 사진은 니클라스 외스트베르크 딜리버리히어로 CEO. /블룸버그
니클라스 외스트베르크 딜리버리히어로 CEO.
②딜리버리히어로

배달업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소비자 수요가 급증한 대표 업종이다. 거리 두기 정책으로 집에서 음식을 시켜 먹는 양이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대표 배달업체인 딜리버리히어로는 코로나 바이러스 위기를 회사 성장의 기회로 삼고 있다. 우선, 핵심 서비스엔 비대면 주문인 '컨택트리스 딜리버리'를 추가했다. 미리 온라인에서 결제하면 라이더가 집 앞에 음식을 두고 가는 방식이다. 현금 결제가 보편적이었던 유럽에서는 덕분에 온라인 선결제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이 급격히 늘어났다. 3월 마지막 3주 동안 배달 주문이 폭증하자 전 세계 5만곳이 넘는 레스토랑과 1500개의 식료품점·기타 지역 비즈니스와 연결된 배달 메뉴가 추가됐다. 주문량과 고객 수가 자연스럽게 폭증하자, 마트 배달 서비스도 재빨리 출시했다. 20분 이내에 식료품 등을 배달해주는 빠른 상거래 카테고리를 추가했다. 딜리버리히어로는 세계 전역에 100여 거점을 활용해 배달 속도를 대폭 단축했다.

그 결과, 올해 1분기 딜리버리히어로의 주문량은 2억3900만건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하루에 약 300만건이 몰린다. 특히 아시아 지역의 주문 건수는 1년 전보다 260.5% 증가했다. 1분기 매출은 5억1500만유로(약 6964억원)로 전년 대비 92% 늘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행보는 공격적 인수·합병(M&A)이다. 딜리버리히어로는 지난해 한국의 '배달의 민족'을 인수한 적이 있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둘째로 큰 배달업체 그럽허브 인수도 검토 중이다. 배달 사업을 키우려는 우버가 최근 그럽허브 인수를 추진했지만 독과점 우려에 따른 규제 당국의 반대로 인수합병 딜이 무산될 가능성이 흘러나오자 기회를 엿본 것이다. 이매뉴얼 토머신 딜리버리히어로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경제 위기가 찾아왔음에도 2020년 우리 그룹의 실적 전망은 변함없다"고 강조했다.

독일 생명보험회사 알리안츠 로고가 적힌 깃발.
독일 생명보험회사 알리안츠 로고가 적힌 깃발. 아래쪽 사진은 올리버 베테 알리안츠 CEO. /블룸버그
올리버 베테 알리안츠 CEO.
③알리안츠

보험 회사 알리안츠는 지난해까지 5년 연속 매출과 영업이익이 동시에 증가한 우량 보험사로 꼽혔다. 올 초까지도 영업이익 목표치를 전년 동기 대비 4.3% 늘어난 120억유로로 잡을 정도로 안정적 성장을 기대했다. 그러나 전 세계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1000만명에 육박함에 따라 알리안츠도 9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1분기 영업이익이 이미 22% 감소했다.

각종 악재 속에서 알리안츠는 3월부터 업무의 90%를 재택근무로 전환하며 분투 중이다. 상담 업무는 고객과의 개인 접촉을 재택근무를 활용한 온라인 상담으로 대체해,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 이후에도 부분적으로는 재택근무를 확대 시행할 예정이다. 올리버 베테 알리안츠 최고경영자(CEO)는 "재택근무를 시행하면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사무실 면적의 3분의 1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객 회사들의 파산을 막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알리안츠 자회사인 무역보험 회사 율러헤르메스는 보험료 수입의 65%를 정부에 이양하는 대가로 정부 지원을 받는 방식으로 300억유로에 달하는 기업 채무가 부도나는 사태를 막았다. 프랑스, 벨기에 정부와도 비슷한 방식으로 협업해 기업 파산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모회사 알리안츠 역시 기업발(發) 손실을 막기 위해 분투했다. 중소기업의 타격 완화를 위해 알리안츠 스페인은 최대 120일간 보험료 납부를 유예하는 등 여러 지원책을 펼쳤다.

독일 소프트웨어 기업인 SAP 본사 건물.
독일 소프트웨어 기업인 SAP 본사 건물. 아래쪽 사진은 크리스티안 클라인 SAP CEO. /블룸버그
크리스티안 클라인 SAP CEO.
④SAP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은 독일 기업 중 하나가 IT 기업인 SAP다. SAP는 업무 중단된 지역사회 지원, 300만유로 상당의 코로나 바이러스 긴급 기금 마련, 학생들을 위한 디지털 학습 콘텐츠 제공, '사파이어 나우' 콘퍼런스 온라인 중계, 고객을 위한 비즈니스 연속성이라는 다섯 분야에 집중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대응하고 있다.

SAP는 지난달 17일 연례 최대 IT 콘퍼런스인 SAP 사파이어 나우(SAP SAPPHIRE NOW)를 최초로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크리스티안 클라인 SAP 최고경영자(CEO)는 이 행사에서 비대면 사회 도래에 따른 클라우드 생태계 조성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아마존 웹 서비스 AWS나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등과 달리 SAP는 각 기업에 적합한 특화된 클라우드 설루션을 도입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델스블라트에 따르면 행사가 시작되자마자 프로그램에 오류가 뜨는 등 행사 진행 초반에 일부 차질이 있었지만, 시청자가 3만명 몰릴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행사 이틀 뒤인 19일 SAP의 주가는 코로나 사태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클라우드 사업 외에도 소프트웨어 사업은 코로나 타격에서 벗어나 주 수익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현재 44만 이상의 고객사를 확보한 SAP는 이 분야에서 지난해 115억유로(약 15조원) 규모의 수익을 냈다. 컨설팅, 교육, 결제 서비스 등을 통한 수익은 지난해 45억4000만유로(약 6조원)로 1년 전보다 11%가 늘었다. 한델스블라트는 SAP가 각종 위기 속에서도 재정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코로나 바이러스에도 불구하고 올해 안정적인 기업 운영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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