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디스플레이 밀린 뒤 電裝에 올인했다가 자동차와 함께 추락

입력 2020.07.10 03:00

[최원석의 業의 경쟁력] (7) 코로나 이후 걱정 더 커지는 일본 전자산업

반도체·디스플레이에서 경쟁력을 잃고 고전했던 일본 전자 대기업들이 코로나 사태로 다시 위기다. 미국 IT 업체들이 비(非)대면 비즈니스 증가로 오히려 기회를 맞았고, 서버 수요 등의 증가에 힘입어 반도체가 주력인 한국·대만 전자기업의 실적이 오르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파나소닉은 올해 3월 결산에서 전장 사업 영업적자가 전년 121억엔에서 466억엔으로 크게 늘었다. 사진은 파나소닉의 쓰가 가즈히로 사장이 자사 주최의 한 포럼에서 발표하는 모습.
파나소닉은 올해 3월 결산에서 전장 사업 영업적자가 전년 121억엔에서 466억엔으로 크게 늘었다. 사진은 파나소닉의 쓰가 가즈히로 사장이 자사 주최의 한 포럼에서 발표하는 모습. / 블룸버그
반도체 등의 부진을 딛고 경영 재건을 해오던 도시바는 자동차용 반도체 사업 부진으로 타격을 입었다. 사진은 도쿄의 도시바 본사 건물에 회사 로고가 크게 걸려 있는 모습.
반도체 등의 부진을 딛고 경영 재건을 해오던 도시바는 자동차용 반도체 사업 부진으로 타격을 입었다. 사진은 도쿄의 도시바 본사 건물에 회사 로고가 크게 걸려 있는 모습. / 블룸버그
미쓰비시전기는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를 전년의 절반도 안 되는 1200억엔으로 발표했다. 전장 사업에 집중 투자한 것이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미쓰비시전기 나고야 제작소.
미쓰비시전기는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를 전년의 절반도 안 되는 1200억엔으로 발표했다. 전장 사업에 집중 투자한 것이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미쓰비시전기 나고야 제작소. / 위키피디아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인 대만 TSMC는 지난 5월 매출이 전년 동월보다 17% 올랐다. 이로써 TSMC의 월별 매출은 12개월 연속으로 증가했다. 사진은 대만 타이중에 있는 TSMC 생산 시설.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인 대만 TSMC는 지난 5월 매출이 전년 동월보다 17% 올랐다. 이로써 TSMC의 월별 매출은 12개월 연속으로 증가했다. 사진은 대만 타이중에 있는 TSMC 생산 시설. / 위키피디아
올해 3월 결산에서 소니·파나소닉·샤프·히타치·도시바·미쓰비시전기·NEC·후지쓰 등 일본 전기·전자 대기업 8사 가운데, NEC·후지쓰를 제외한 6사의 순이익이 전년보다 떨어졌다. 샤프는 LCD에 올인했다가 아직도 수렁에서 못 빠져나왔고 파나소닉은 전장·전기차배터리를 돌파구로 삼았다가 고전하고 있다.

일본 경제주간지 '도요게이자이(東洋經濟)'에 따르면, 전자 8사 가운데 지난 20년간 누적 순이익이 1조엔(약 11조원)을 넘는 곳은 소니·히타치·미쓰비시전기 단 3곳뿐이다. 게다가 20년간 누계 순이익이 가장 컸던 미쓰비시전기조차 그 액수가 2조4000억엔(약 27조원)으로, 같은 기간 30조엔(330조원)을 벌어들인 삼성전자에 비하면 규모의 경제에서 크게 밀린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실적 악화가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다. 일본 전자업체들이 택했던 전장(電裝·자동차용 전기·전자부품) 집중 전략이 코로나 사태 이후 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도요게이자이는 "과거의 거액 적자로 입은 상처가 겨우 아물어가는 중에 일본 전자업계에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고 최근 전했다.

전장 올인이 결정적 패착

일본 전자 대기업 8사 경영실적
일본 전자업계 부진이 올 들어 심화한 것은 자동차 판매 감소와 연관이 크다. 일본 전자업계는 가전 분야의 수익력 악화,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대규모 매출이 발생하는 분야의 경쟁력 상실 등으로 최근 20년간 업계 전체의 생산 규모가 계속 쪼그라들어 왔다. 일본 전자산업의 생산액은 2000년 26조엔으로 정점을 찍은 이래 2018년 11조6000억엔으로 축소됐다.

그런 전자업계가 매출·이익 축소를 만회하기 위해 택한 것이 전장 분야 집중이었다. 일본은 자국과 해외에서 연간 3000만대 정도의 자동차를 생산해 왔는데, 단일 국가의 총 생산 규모와 경쟁력을 따졌을 때 세계 최고 수준이다. 특히 최근 자동차는 전동화나 반자율주행 시스템 보급 등으로 전장 비중이 급증하고 있다. 일본 자동차회사의 연간 생산량 3000만대는 세계 자동차 생산의 3분의 1에 달한다. 일본 전자업계가 일본 자동차 회사의 전장만 차지해도 안정적인 매출·수익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최근 들어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전장은 일본 전자업계의 매출 감소분을 메워줄 최적의 분야였다.

그런데 올 들어 코로나로 자동차 판매가 반 토막 나면서 일본의 자동차와 전기·전자가 동반 추락하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파나소닉은 이미 올해 3월 결산에서 매출은 전년 대비 6% 감소한 7조4906억엔, 영업이익은 29% 감소한 2938억엔으로 실적이 악화했다. 일단 가전 부문에서 중국 공급망 붕괴, 글로벌 수요 감소 등으로 판매가 급감한 게 컸지만 결정적으로 발목을 잡은 게 전장 사업이었다. 올 3월 결산에서 이 부문 영업적자가 전년의 121억엔에서 466억엔으로 대폭 증가했다.

반도체 등의 부진을 딛고 경영 재건을 해오던 도시바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타격을 받는 것이 자동차용 반도체 사업이었다. 올해 매출·영업이익의 예상 하락분 가운데, 이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이 각각 40%에 달할 전망이다.

히타치는 지난 10년간 성공적으로 구조 조정을 해왔고 올해에도 3350억엔 이익을 낼 것으로 최근 발표하는 등 그나마 사정이 좋은 편이었다. 역시 전장이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의 이익 감소를 만회하기 위해 전장 사업에 본격 진출해 왔는데, 올해 전장 부문 이익이 30% 이상 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히타치는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도 특히 고전 중인 닛산자동차가 주요 고객이기 때문에, 향후 피해가 현재 예상보다 훨씬 커질 수도 있다. 히타치는 회사 전체의 매출에서 전장이 차지하는 비율을 10%에서 20%까지 높일 계획이었다. 이는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 리스크(위험)가 더 커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2분기 이후 실적 하락 불 보듯

국제경제전문기자
국제경제전문기자
일본 전자업계의 실적 악화는 올해 2분기(4~6월, 일본 기준 1분기)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전자업계의 전장 부품 매출은 대부분 일본 자동차회사와의 거래에서 일어나는데, 일본차의 생산이 올 2분기부터 반 토막이 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자동차 8사의 지난 5월 국내·해외 생산 합계는 전년 동월보다 61.6%나 감소한 91만2377대에 불과했다. 하락 폭은 2008년 이후 역대 최대였던 4월(60.5% 감소)보다도 더 악화해 역대 최대 하락 폭을 경신했다.

제조사별로는 스바루의 올해 5월 생산이 전년 동기보다 82%나 감소해 1만6062대에 머물렀다. 스즈키도 81% 감소한 4만9221대였다. 일본 최대 메이커인 도요타조차 54% 감소한 36만5909대를 생산하는 데 그쳤다. 세계 자동차 시장이 회복되지 않으면 일본 업체들의 생산이 계속해서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일본 전자업계 우등생인 미쓰비시전기조차 내부적으로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미쓰비시전기는 전자 대기업 8사 가운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에도 적자를 내지 않는 유일한 업체였다. 그러나 자동차 판매 격감이 지속될 경우 미쓰비시전기마저 적자에 빠질 수 있다.

미쓰비시전기는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를 전년 대비 절반도 안 되는 1200억엔으로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영업이익률은 전년의 5.8%에서 2.9%로 낮아진다. 당초 미쓰비시전기의 중기 계획에 따르면 올해 영업이익률은 8% 이상을 내는 것으로 돼 있었지만 그 3분의 1에 불과한 것이다. 이익률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최근 전장 부문에 집중투자를 했기 때문이었다. 최근 5년간의 누적 설비투자액 중 자동차·산업 부문 비율은 40%로, 다른 부문을 압도한다. 특히 차량이 계속 전동·전자장비화되는 추세에 맞춰 전장 부문에 대대적인 선행 투자를 해 온 것이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후지필름·캐논은 헬스케어로 선방

일본 전자 대기업 8사의 경우 상당수가 전장에 집중했다가 큰 피해를 입고 있지만, 이들보다 규모가 작은 기업 가운데 코로나 이후를 잘 대비하고 있는 기업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후지필름과 캐논 등이다.

후지필름은 과거 주력이었던 사진 필름 사업이 소멸된 이후에도 디지털카메라나 사무복합기 등으로 사업을 유지해 왔는데, 최근 헬스케어 분야를 성장축으로 삼고 꾸준히 투자해 온 것이 열매를 맺고 있다. 현재 후지필름의 헬스케어 분야는 전체 매출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올해 3월 결산에서는 헬스케어 부문의 매출이 전년보다 4% 증가한 5041억엔을 기록, 코로나 사태로 다른 사업 부문이 일제히 매출이 줄어든 가운데 유일하게 매출 증가를 기록했다.

후지필름과 함께 헬스케어 사업을 강화하고 있는 곳이 디지털카메라 세계 최대 기업인 캐논이다. 2016년 도시바의 의료기기 자회사였던 도시바메디컬 시스템을 6655억엔에 매수하면서 헬스케어 부문을 키우기 시작했다. 캐논 역시 헬스케어 분야가 호조를 보이면서 최근 디지털카메라 부문의 매출 부진을 만회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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