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간 유리만 다듬어왔다, 어찌 1등을 아니 하리오

입력 2020.06.26 03:00

일본 드립커피 업체 '하리오'의 100년 장수 비결

/ 하리오 제공
하리오(Hario)는 일본의 대표적 히든챔피언 기업이다. 히든챔피언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각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우량 기업을 뜻한다.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의 저서 '히든 챔피언'에서 유래했다. 하리오는 글로벌 커피 업체인 독일의 밀리타(Melitta)와 함께 커피를 추출할 때 사용하는 종이 필터 부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브랜드 중 하나다. 또 일본 도쿄에 본사를 둔 유리 제품 제조 전문 기업이기도 하다. 1921년 창업, 3대째 가업을 이어가는 100년 가족 기업이다. 공장은 도쿄 외곽의 이바라키현 한 곳으로 '메이드 인 재팬'을 고집한다.

하리오는 스타벅스 커피 매장에서 팔리는 대표적 커피용품 브랜드 중 하나다. 세계 커피 애호가들 사이에선 커피용품 전문 기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커피를 추출할 때 쓰는 깔때기 모양 드리퍼(dripper), 커피를 담는 포트, 주전자, 그라인더(원두를 가는 도구) 등 거의 모든 핸드드립 커피용품을 직접 디자인하고 제조·판매한다. 제품군은 4000원대의 커피 종이 필터 묶음부터 12만엔대(약 135만원)의 커피 추출기까지 다양하다. 미국의 유명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인 블루보틀이나 스텀프타운, 인텔리젠시아 매장도 하리오의 단골이다.

하리오는 내열 유리 제조 기술을 발판으로 글로벌 커피용품 브랜드로 입지를 굳혔다. 매출은 심한 기복 없이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작은 유리 기업이 세계 커피용품 시장에서 인지도 높은 브랜드로 성장한 비결은 뭘까.

①유리 기술 활용해 사업 다각화

하리오는 B2B(기업 대 기업) 사업에서 수익을 내다가 일반 소비재 사업으로 확대했다. 창업 당시엔 학교나 연구 기관에서 쓰이는 화학 실험용 비커와 플라스크를 제조하는 전문 업체로 출발했다. 그러다가 1940년대부터 열에 강한 내열 유리 기술을 커피용 내열 포트나 전자레인지용 유리 식기 등 가정용 제품에 접목하며 성장을 이어갔다. 1980년에는 공업용 유리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공업용 부문은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사용되는 비구면 렌즈와 의료용 유리 소재 등으로 구성돼 있다. 비구면 렌즈는 주요 글로벌 자동차 기업에 판매하고 있다.

②커피 전문 용품으로 성장 기반

하리오의 성장을 이끄는 제품은 커피용품이다. 72년 전인 1948년 커피를 추출하는 기구인 유리 사이폰의 개발팀을 꾸려 커피용품 시장에 도전했다. 당시 일본식 찻집 문화가 시작되면서 열에 강한 내열 유리를 고부가가치 제품에 응용해보자는 아이디어에서였다. 2005년엔 유리로 만든 커피 드리퍼를 내놓았다. 처음 5년 동안 이 드리퍼의 매출은 미미했다. 하지만 2009년 스타벅스가 시애틀에 문을 연 찻집 'Coffee & Tea'가 하리오의 핸드드립 제품으로 커피를 만들면서 인지도가 상승했다. 드리퍼의 각도를 60도로 만들고 표면에 회오리 모양의 볼록한 선을 그려 넣은 게 신의 한 수가 됐다. 종이 필터를 끼워 물을 부어도 드리퍼 표면에 달라붙지 않아 물을 머금은 원두 가루가 충분히 부풀어오르고 원두의 풍미와 향기를 그대로 살린 커피를 만들 수 있어 커피 전문가들의 극찬을 받았다.
2010년엔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바리스타가 하리오의 드리퍼를 사용한 것이 알려지며 화제가 됐다. 이즈음 유튜브와 페이스북 같은 SNS에선 바리스타와 일반 커피 애호가들이 하리오 제품을 사용하는 동영상이 퍼지면서 미국과 유럽 시장 매출이 크게 늘었다. 미국은 하리오 전체 해외 매출의 약 25%를 차지하는 주요 시장으로 미국 시장 매출의 약 80%가 커피 관련 용품에서 나온다. 현재 하리오는 전세계 국가와 지역 75곳에 커피용품을 수출하고 있다.

③독보적인 유리 제조 원천 기술

하리오는 유리 제조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다. 유리는 천연 광물로만 정제한 소재를 섞어 만들어 환경 친화적이다. 또 유리 생산 과정에서 생기는 기포를 없애기 위해 화학제를 쓰지 않고 천연 소금을 사용한다. 유리 제품에 새겨 넣는 잉크도 열을 가해도 유해 물질이 나오지 않는 소재를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안심할 수 있는 유리 업체로 인정받은 하리오는 아기 젖병과 어린이 놀이 시설 등 법인용 시장에도 판로를 마련했다.

일본 도쿄 니혼바시에 위치한 하리오의 유리공방. 내열유리 기술로 액세서리나 식기 등을 제조하고 있다. / 하리오
하리오는 일본에서 내열 유리 공장을 가진 유일한 기업이다. 유리 원료를 녹일 때 석유를 태우지 않고 전기를 사용해 가스를 뿜지 않는 '굴뚝 없는 공장'을 이미 1972년에 갖췄다. 공장도 다품종·소량생산 방식을 도입했다. 하리오는 "원천 기술을 진화시키면서 다양한 제품의 수평 확장을 시도할 수 있는 점이 제조 기업 하리오의 가장 큰 무기"라고 밝혔다. 제품을 10가지 만들면 1~2가지만 히트 상품이 되는 치열한 소비재 시장에서 막강한 기술과 제조 부문은 하리오의 성장에 큰 밑거름이 됐다.

④마니아의 취향 소비 정조준

하리오는 '작은 브랜드'로 시작했다. 하지만 마니아의 취향을 '정조준'한 제품으로 해외 소비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커피를 마시는 문화 커뮤니티의 특성을 감안한 제품 기획 덕분이다. 하리오는 커피용품 개발 초기에 바리스타들에게 지속적으로 아이디어를 요청했는데 이를 토대로 플라스틱의 대체 소재인 내열 유리와 금속으로 만든 드리퍼를 개발했다. 또 영국의 유명 바리스타인 제임스 호프먼의 의견을 받아 커피 추출량과 시간을 동시에 측정할 수 있는 드립 저울도 내놓았다.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주던 바리스타들은 실제 제품이 출시되자 자발적으로 제품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하리오의 커피용품은 '커피 전문가들이 이용하는 용품'으로 단시간에 널리 알려졌다.

커피의 문화적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제품에 대한 글로벌 수요도 증가했다. 스탠퍼드 대학의 이타마르 시몬슨 경영대학원 교수는 그의 저서 '절대 가치'에서 소비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제품 리뷰 등 제품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한 '절대 가치'를 기반으로 구매 의사 결정을 내린다고 주장했다. 하리오도 홍보나 광고에 거의 돈을 들이지 않았지만 하리오의 명성을 알고 있는 해외 소비자들이 열광적 반응을 보인 대표 사례로 꼽힌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Analysis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