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은 드릴이 아니라 구멍 뚫는 도구를 원한다

    • 박기완 서울대 경영대 교수

입력 2020.06.12 03:00

[서가명강플러스 마케팅 인사이트] <2>

박기완 교수

사우스웨스트항공이나 라이언에어 같은 저비용항공사(LCC·Low Cost Carriers)가 등장하기 이전 대부분 항공사는 국적 항공사(FCC·Full-Service Carriers)였다. 사업 방식은 천편일률적이었다.

주로 대도시 지역에 취항하며, 허브 앤드 스포크(hub-and-spoke) 시스템으로 취항 경로를 설계한다. 승객 좌석은 일등석, 비즈니스, 일반석 3종류. 일등석·비즈니스석 고객을 위한 라운지가 있으며, 기내식은 티켓 가격에 포함되어 있다. 어찌 보면 ‘그게 뭐가 이상한가?’라고 되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원래 그랬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혁신은 일어나지 않는다. 

저비용항공사는 이런 관행을 뒤집었다. 중소 규모 도시에 취항하고, 이동 지점 간 직접 경로(point-to-point)로 날아간다. 항공기는 단일 기종, 좌석 등급도 단일하다. 비즈니스 라운지를 없애고 기내식이나 기내 오락물을 이용하려면 추가 비용을 내도록 했다. 당연하게 여기던 사업 방식을 새롭게 재편한 것이다. 

이제 새로운 시대 기업 마케팅 전략은 비정형 사고를 요구한다. 틀에 박힌 사고로는 혁신에 대응할 수 없다. 비정형 시대에 대응하는 마케팅 전략에는 어떤 통찰력이 필요할까. 

와해성 혁신 전략을 시도하라 

이케아가 속해 있는 산업은 명목상 가구 유통업이다. 이 업계에서는 어느 브랜드를 가든 가구는 완제품으로 배달∙설치해 주고, 매장에서는 친절한 직원의 컨설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소비자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편익을 누릴 수 있는 점은 좋지만, 경쟁 관점에서 보면 브랜드 간 구별은 별로 없다. 많은 브랜드들이 새로운 편익을 제공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지만, 이케아는 카테고리의 편익 더하기 방향과는 반대로 움직이는 ‘역(逆)방향 포지셔닝(reverse positioning)’을 택했다.

저비용항공사 제트블루는 다른 저비용항공사와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기내식 서비스, 퍼스트 클래스, 왕복 티켓 요금 할인 등을 없앴지만 전 좌석에 최고급 가죽 시트를 도입하고, 위성 TV 시스템을 사용하여 개인용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내 후방 영역에 있는 일부 좌석은 일반 좌석보다 훨씬 더 넓다. 사우스웨스트나 라이언에어가 서비스 제거를 통해 새로운 하위 카테고리를 만들었다면, 제트블루 항공은 이케아와 같이 편익 빼기 및 새로운 가치 제안 조합을 통해 기존 저비용항공사와 다시 한번 차별화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디자인한 것이다.

(카테고리)의 개념을 재정의하라

하버드대 테오도르 레빗(T. Levitt) 교수는 ‘마케팅 근시안’을 설파했다. 상품 중심 사고를 뛰어넘어 근본적으로 고객이 원하는 잠재적 니즈를 중심으로 카테고리의 본질을 파악하라는 주장. 사람들은 좀 더 나은 쥐덫을 원하는 게 아니라 쥐 잡는 솔루션을 원한다. 더 좋은 상품의 덫에 빠지는 오류를 ‘우월한 쥐덫 오류(better mousetrap fallacy)’라 부른다. 고객이 원하는 건 드릴이 아니라 뚫어진 구멍이다. 명목적인 상품 카테고리에 초점을 두면서 무엇을 팔지(what to sell)에만 매몰되지 말고, 고객들이 근본적으로 왜 사는지(why to buy)를 고민해 보자. 

레블론 창업자 찰스 레브손(Revson)은 “공장에서 우리는 화장품을 만들지만, 매장에서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판다”고 말했다.

핵심 고객을 재규정하라

노보 노르디스크가 개발한 인슐린 상품 노보펜은 타깃 고객을 재정의하면서 가치 혁신을 이뤘다. 제약회사 1차 고객은 병원이다. 그런데 실제 의약품을 사용하는 최종 소비자는 환자다. 의사와 환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품 속성은 다를 수 있다. 의사들은 치료 자체에 주로 관심을 두기 때문에 인슐린 순도에 주목한다. 

그러나 인슐린 정제 기술은 급격히 발전하여 더 이상 순도 위주 경쟁은 의미가 없어졌다. 환자가 인슐린을 바라보는 프레임은 다르다. 매번 정확한 양의 인슐린을 투약하는 건 여간 복잡하고 힘든 일이 아니다. 행여 주변에서 주사기로 다리에 인슐린을 맞는 장면을 보기라도 한다면 여간 창피스러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노보 노르디스크는 쉽게 휴대할 수 있고, 정확한 투약량이 내장되어 있으며, 누가 보더라도 주사기가 아닌 만년필처럼 생긴 노보펜을 개발해 대성공을 거뒀다.

①헬로 키티(Hello Kitty) 건강검진센터 ②제조일자 중심 시스템을 만든 서울우유 ③삼성전자 비스포크(bespoke) 맞춤형 냉장고 ④루이비통과 슈프림(SUPREME)의 컬래버레이션 제품 ⑤나이키와 애플의 공동 브랜드 나이키 플러스 ⑥BMW와 루이비통의 공동 브랜딩 캠페인 ‘여행의 기술(The Art of Travel)’.

특이한 파트너와 협업을 고려하라

공동 브랜딩(co-branding)은 일반적으로 둘 이상 브랜드가 모여 독립된 새로운 브랜드(복합 브랜드)를 만드는 전략이다. 여기에는 반드시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전략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공동 판촉(맥도널드 상품 구매 시 제공되는 디즈니 캐릭터)이나 간접제품광고(PPL·Product Placement)도 일종의 공동 브랜드 전략이다.

도리토스 로코스 타코스는 도리토스와 타코벨이 합작한 공동 브랜드 상품이다. 도리토스는 멕시코풍 토르티야 칩 브랜드. 타코에 들어가는 토르티야를 도리토스 칩으로 대체하면서 자연스럽게 타코와 상호 보완성을 확보했다. 토르티야 대신 사용한 도리토스 셸은 가능한 오리지널 맛을 유지하고, 그 안에 일반 타코처럼 다양한 재료를 넣어 만들었다. 이 제품은 출시 첫 해 10억개가 팔렸다.

나이키와 애플은 아이팟(iPod) 1세대가 출시된 2000년대 초기부터 협력해 왔다. 초기 협력 결과물은 나이키 상품(신발 및 의류)을 사용하는 운동자들에게 아이팟과 아이튠스(iTunes)를 통해 음악 서비스를 제공하는 Nike+iPod이었다. 이후 두 회사의 파트너십은 더욱 진화하여 나이키 플러스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가치 전달 수단을 재설정하라

로레알은 2012년 ‘와일드 옴브레’라는 가정용 염색 키트를 출시했다. 그동안 염색은 머리 전체를 한 색상으로 염색하거나 뿌리부터 머리카락 끝 부분까지 염색하되 일부분만 염색하는 하이라이트(마치 줄을 그은 듯한 모양으로 염색)가 전부였다. 그런데 구글과 협업을 시작한 로레알은 당시 구글 트렌드를 통해 새로운 유행이 태동하는 걸 발견한다. 소셜 미디어에 귀를 기울여 보니 옴브레, 딥 다이 등의 키워드 검색률이 급증하고 있었다. 이후 유튜브에서 해당 염색 관련 영상물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로레알은 간파한 트렌드를 활용하기 위해서 커뮤니티에서 소비자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던 용어인 옴브레로 브랜드 이름을 정했다. 일반적으로 복잡하고 힘든 염색 과정에 주목하여 옴브레 스타일을 쉽게 구현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사용이 편리하면서 옴브레 스타일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브러시를 고안하고, 옴브레 키트를 사용하는 염색 과정을 ‘심플렉시티(Simplexity)’라 명명했다. 이후 소셜 미디어에는 브러시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이 증가했다. 핵심 상품도 중요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보완재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을 입증한 사례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WEEKLY BIZ Lounge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