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배터리 기업 약진, 중국의 도약, 업계 개편… 세계 자동차 산업 격변

입력 2020.06.12 03:00

[최원석의 業의 경쟁력] (6) 코로나 이후 세가지 변화

미국의 자율주행 스타트업인 뉴로(Nuro)는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자사의 무인 배송 차량을 이용해 소매약품 유통 체인인 CVS 고객에게 약품을 배달하는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비대면 서비스 수요가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미국의 자율주행 스타트업인 뉴로(Nuro)는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자사의 무인 배송 차량을 이용해 소매약품 유통 체인인 CVS 고객에게 약품을 배달하는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비대면 서비스 수요가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 AP
"2년 걸릴 디지털 변혁이 최근 2개월 만에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는 5월 19일(현지 시각) 자사 개발자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IT업계에 불어닥친 변화의 바람이 얼마나 거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 말이 IT업계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와 IT 업계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미래 자동차 기술 주도권 싸움의 향방에 대해서도 시사점을 던지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가 코로나 사태로 그로기 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IT 업계는 기술 개발에 날개를 단 형국. 이미 자동차 기술 개발의 중심은 기계에서 전자·소프트웨어로 이동 중인데 그 이동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코로나 이후 자동차 산업의 변화 방향을 세 가지로 분석했다.

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① IT·배터리 기업의 힘 더 세진다

IT·배터리 기업의 영향력이 더 빠르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사태로 신차 판매가 급감하면서 자동차 회사의 수익력 저하가 연구·개발비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반면 IT 기업은 오히려 매출이 늘었다. 연구·개발비도 풍부하며 신규 개발 인력도 대거 채용 중이다. 연구·개발 능력의 격차가 더 벌어지면 자동차 업계와 IT 업계의 기술 경쟁 주도권이 IT 쪽으로 쏠릴 것이다.

자동차 회사들은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세계 자동차 158사의 올 1분기 합계 최종 손익은 전년 동기보다 85% 줄었다. 2분기엔 적자 전락이 확실하다. LMC오토모티브는 올해 세계 자동차 공장의 평균 가동률을 49%로 전망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62%)보다 훨씬 낮다. 가동률이 70% 아래로 떨어지면 이익을 내기 어렵다. 가동률 49%라는 것은 돈 버는 것은 고사하고 살기 위해 버텨야 하는 수준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업체마다 허리띠 죄기에 들어가고 있다. GM은 자사 카셰어링서비스 '메이븐'을 올여름 폐쇄키로 했다. 볼보도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대폭 축소할 방침이다. 조사 업체 IHS가 유럽·북미·아시아 자동차 업체 140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올해 이들의 연구·개발 예산이 20% 감소할 전망이다.

반면 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은 1분기에 전부 매출 증가에 흑자였다. MS는 올해 1분기에 역대 1분기 중 최대 이익을 기록했다. 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등 중국 IT 대기업들도 실적이 좋았다. 연구·개발에도 더 힘을 쏟고 있다. 비대면 활동이 늘어날수록 IT의 역할이 커지기 때문이다. 최근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제품·기술 개발 인력을 1만명 추가 채용하겠다"고 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도 "코로나 위기가 지나가도 세상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미래를 위한 투자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의 영향력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코로나 사태로 자동차 판매가 격감하고 있지만 전기차만큼은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 시장을 이끌고 있는 유럽 주요 18국 1분기 전기차 판매 대수는 12만7331대로, 전년 동기보다 57%나 증가했다. 코로나 사태로 이 기간의 전체 신차 판매가 27% 줄어든 것에 비하면 엄청난 성장이다. 신차 판매 중 전기차 비율도 전년 동기보다 2.5포인트 올라 4.6%였다. 플러그인하이브리드는 2.3배 늘어난 9만6073대나 팔렸다.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가 전체 신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전년 동기보다 4.8%포인트 오른 8.1%에 달했다.

지난달 울산 북구 현대차 울산공장 야적장에서 선적을 기다리는 자동차들의 모습.
지난달 울산 북구 현대차 울산공장 야적장에서 선적을 기다리는 자동차들의 모습. / 뉴시스
② 중국, 車산업에 5G 기술 융합

중국은 연간 2500만대 시장을 무기로 자동차 기술 국산화를 추진해 왔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내연기관차는 블랙박스처럼 들여다보기 어려운 기술이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 IT 산업에선 중국이 기술 자립에 성공했다고 평가받는다. 세계 최고 5G 기술을 보유한 화웨이나 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처럼 자국의 거대 IT 기업을 제대로 성장시켰다. 전문가들은 이런 전략이 자동차 산업에 확대될 것으로 예측한다. 미국이 반도체 등 첨단 분야에서 중국을 계속 견제하겠지만, 그럴수록 중국은 자국 시장 규모가 워낙 커서 미국의 공격이 쉽게 먹히지 않는 자동차 산업의 IT·첨단화에 가속페달을 밟을 것이라는 얘기다.

전기차 분야에서도 더 큰 성장이 예상된다. 미국의 강력한 견제 이후에도 일본·유럽 기술 기업의 투자가 이어지는 것이 그 증거다. 니혼덴산(日本電産)은 6월 4일 "중국에 전기차 모터 개발 거점을 신설해 내년부터 가동한다"며 "개발 인력은 1000명으로 일본과 같은 규모"라고 밝혔다. 독일 자동차 부품 대기업인 콘티넨탈과 보슈도 내년까지 중국에 전기차용 모터 개발 거점을 새로 만들 예정이다.

중국은 전기차뿐 아니라 커넥티드·자율 주행 기술을 집중 개발해 미국 견제에 맞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동차와 교통 시스템을 연결하는 통신망(5G)의 업그레이드가 필수다. 5G 보급을 늘려 내수도 살리고 자동차 산업도 질적으로 도약시키는 일석이조 효과를 노리는 셈이다. 올해 중국 5G 전화 시장은 전 세계의 70%에 달할 전망이다. 중국 정부는 5G 통신 영역을 확대하는 내용의 신정책도 발표했다. 차이나모바일 등 통신 기업 3사도 투자를 확대 중이다. 올해 3사의 5G 투자 합계는 1800억위안(약 31조원)으로 전년의 4배가 넘는다.

세계 최대 5G 기술 기업인 화웨이도 중국 전기차 대기업 BYD나 독일 아우디 등과 제휴, 스마트폰 전용의 고품질 지도·음성 안내 서비스 등을 자동차에서도 쓸 수 있는 새 시스템을 연내 보급한다. 주력인 스마트폰에서 어려움이 예상되는 가운데, 자동차를 신성장 분야로 보고 사업 확대를 서두르는 것이다. 바이두도 최근 중국 최초로 일반인 대상의 자율 주행 택시 서비스를 시작했다. 후난성 창사시에서 시작해 전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③ '車기업+IT기업' 연합 가능성

자동차 회사는 고정비 부담이 크기 때문에 판매가 잘 안 돼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는 상태가 지속하면 곧바로 적자에 빠질 수 있다. 코로나에 경영 체력을 빼앗긴 자동차 회사들은 자율 주행 등 차세대 기술 개발 경쟁에서 탈락한다. 연간 연구·개발비를 10조원 이상 쓰는 도요타·폴크스바겐 정도를 제외하면, 기술 개발 경쟁에서 상당수가 도태되거나 인수합병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나카니시 다카키(中西孝樹) 나카니시자동차산업리서치 대표는 "자동차 각 사는 타 사와 제휴하지 않으면 차세대 자동차 기술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면서 "업계의 구조 변화가 단번에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 연간 1억대 내외인 글로벌 신차 판매량은 앞으로 15~20년 내에 절반 이하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차량 공유·자율 주행 기술 보급에 따라 차량 한 대당 사용률이 올라가면서 그만큼 신차 수요가 줄어든다는 것. 기술 개발비 부담을 이기지 못한 업체들이 경쟁력이 더 높은 업체들에 흡수 통합되면서, 두세 업체가 각각 연간 1500만~2000만대를 만들며 세계 시장을 나눠 가질 가능성도 있다. 업계에서는 폴크스바겐과 애플이 연합하는 자동차 업체와 IT업체의 빅딜 시나리오도 꾸준히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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