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은 없어 빨리 한쪽으로 갈라서!

입력 2020.06.12 03:00

'세계 2차 냉전' 긴급 진단… 더글러스 어윈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

'세계 2차 냉전' 긴급 진단…
"미국과 중국(G2), 둘 중 한 곳을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그 선택은 결국 G2 중 한 곳을 불쾌하게 만들 것이고, 선택에 대한 보복 조치에 글로벌은 혼란에 빠지게 될 겁니다. 2차 냉전(The Second Cold War)이 시작된 겁니다."

로널드 레이건 정부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 출신이자 무역 정책 역사 전문가인 더글러스 어윈(Irwin) 미 다트머스대 교수는 이같이 말하며 전 세계 국가에 2차 냉전 도래를 경고했다. 어윈 교수는 WEEKLY BIZ 인터뷰에서 "지난 몇 년간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수면 밑에서 조용히 진행돼 왔다"며 "최근 무역 전쟁 같은 일련의 사건들과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까지 겹치면서 그 갈등이 수면 위로 치솟았다. 전 세계 국가들은 2차 냉전에 하루빨리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중 갈등이 2차 냉전 기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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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국가적 대립은 ‘세계 2차 냉전’을 불러왔다. / 블룸버그
어윈 교수의 경고처럼 최근 미·중 갈등은 점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2018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중 무역 전쟁은 미국이 2019년 12월 중국을 상대로 한 1단계 무역 합의문에 합의하면서 잠잠해지는 듯 보였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당시 합의문은 90쪽 분량에 달했으며 중국에 진출한 미 기업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는 등의 문구가 구체적으로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 2월부터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미국을 강타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지난 4일 기준 미국의 코로나 확진자는 189만여 명에 달했으며 10만여 명이 사망했다. '코로나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나라'라는 오명마저 생겼다. 이에 미국은 지난 4월 중국에 코로나 사태에 대한 책임을 추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4월 27일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국에 코로나 확산에 대한 거액의 배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이에 대한 피해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영국 싱크탱크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는 주요 7국이 중국을 상대로 6조3000억달러(약 7604조원) 규모의 배상금을 청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등 중국 주요 매체들은 "미국 정부가 코로나 대응에 실패하자 비난의 화살을 우리에게 돌리려 한다"고 맞섰다.

미국의 중국 코로나 책임론 제기는 양국의 강한 충돌로 이어졌다. 미국이 지난달 15일 반도체 부품 조달 차단 등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에 대한 고강도 제재까지 발표하자 미·중 무역 전쟁이 다시 불붙었다. 중국은 화웨이 제재 등에 대한 보복 조치로 지난 1일 미국산 대두·돼지고기 수입 중단을 지시했으며 미국은 지난 4일 중국 여객기 취항 금지로 맞붙었다. 어윈 교수는 이런 갈등이 최소 연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어윈 교수는 "미국과 중국의 2차 냉전은 최소한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는 11월까지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미국의 두 정당은 외부에 있는 공공의 적을 만들어 표를 얻기 위해 중국을 꾸준히 공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또 "사태가 계속 이어져 중국 상황이 어려워지면 중국 내부에서도 무역 전쟁에 대한 '옳고 그름 논쟁'이 생겨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더글러스 어윈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
중국의 입법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지난달 28일 홍콩 보안법까지 통과시키면서 미·중 갈등은 글로벌 규모로 더욱더 커져갔다. 홍콩 보안법은 중앙 정부에 대한 반역이나 선동 행위 등을 처벌하는 내용을 담았다. 홍콩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惡法)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글로벌 금융 중심지로 꼽히는 홍콩에서 시위가 계속 이어지고 중국 본토의 감시까지 받는다면 전 세계 기업들의 탈(脫)홍콩 행렬이 생길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왔다. 중국의 움직임이 단순히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국가들 및 기업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 미 상공회의소가 작년 10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홍콩 주재 미국 기업 가운데 약 61%는 홍콩 철수를 고려하고 있다. "독재 국가에선 살 수 없다. 이민 가겠다"는 홍콩 시민들의 반대 시위도 이어지고 있다. 홍콩 이민컨설팅업체 미드랜드에 따르면 올해 1~4월 사이 2400여 명의 홍콩 시민이 대만 이주 신청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년 동기(950여 명)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다른 국가에서도 중국에 대한 비난이 이어졌다. 미국과 영국, 호주, 캐나다 등은 홍콩 보안법을 제정한 중국을 비난하는 성명을 지난달 발표했다. 이들은 "홍콩 보안법은 국제 협력과 각국 정부들 간의 신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달 29일 "홍콩에 부여한 특별 지위를 제거하는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홍콩 시민이 미국 이주를 신청할 경우 수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지난 2일 말했다. 어윈 교수는 이런 고래(미국과 중국) 싸움에 낀 새우(다른 국가)들이 피해보는 경우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어윈 교수는 "미국과 중국은 편 가르기를 강요하고 있다"며 "만약 화웨이 등 중국산 제품을 거부하면 중국으로부터 보복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코로나 발원 조사와 책임론을 중국에 제기한 호주가 중국으로부터 호주산 보리 관세 부과 등 경제적 보복을 당하고 있는 것을 들었다. 어윈 교수는 또 "홍콩 보안법 관련해 비난하는 입장을 표명한 국가들에 대해서도 중국의 보복 조치가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계 각국 탈세계화 정책 꺼낼 듯

그럼 2차 냉전은 언제쯤 끝날까. 해결 방법은 있을까. 어윈 교수는 "절대 알 수 없다"고 단언했다. 하루하루가 급변하는 정세이기 때문에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윈 교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권력을 유지하고 미국의 리더십 부재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양국의 사이가 절대 좋아지진 않을 것"이라며 "미국 정부의 머릿속에는 2012년부터 시진핑 국가주석이 미국 정책 결정자들과 미국 기업들을 괴롭혀온 기억들이 선명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상황 때문에 전 세계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편을 고르기보다 되레 문을 걸어 잠글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어윈 교수는 "전 세계 국가의 정책 결정자들은 미국이나 중국 등에 의존할수록 2차 냉전에 대한 피해를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탈세계화 관련 정책들을 꺼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리스크(위험)가 큰 편 가르기보다 자국의 무역 정책 수정으로 방향을 돌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하지만 결국 각 국가의 투자 결정과 무역 흐름은 정치적 계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며 "이런 분위기가 없어지는 데 수십년이 걸려 글로벌 무역 성장이 크게 정체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어윈 교수는 이런 탈세계화의 장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기업이 중국 공급망 한 곳에 의존했다면, 앞으로 탈세계화로 인해 공급망의 다양화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어윈 교수는 "단기적인 효율성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공급망 다양화는 무역 정책에 긍정적인 분위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며 "중국보다 더욱더 강력한 공급망이 여럿 생겨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더 많은 국가의 공급망이 유동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분명 무역 정세에 긍정적인 영향"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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