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팔아 번 돈, 오직 미래 세대를 위해…

입력 2020.06.12 03:00

노르웨이 국부펀드 1400조원을 굴리는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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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국
노르웨이 오슬로 금융가의 중앙은행 건물 안에 있는 '노르웨이 국부펀드(Government Pension Fund Global)' 본부. 1조1480억달러(약 1400조원·2019년 말 기준)를 굴리는 세계 최대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의 본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실내는 마땅한 장식품 하나 없이 검소한 분위기였다. 기자가 들어가자 개인 비서도 없는 최고경영자(CEO) 집무실에 턱수염을 기른 키다리 아저씨가 웃으며 등장했다. 세계 금융계에서 '1조달러의 사나이'라고 하는 윙베 슬링스타드(Slyngstad·58) 노르웨이 국부펀드 CEO였다.

세계 9200기업에 1400조원 투자

노르웨이 국부펀드 1400조원을 굴리는 사나이
국부펀드는 석유 판매 수익이나 외환 보유액 등 각국 정부 자산을 투자·관리해 불리는 국영 투자사다. 전 세계 65국이 국부펀드 94개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중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가장 크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한국 시장에도 영향력이 크다. 작년 4월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한국 국채를 투자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해 국내 금융시장이 출렁인 적이 있다. 이에 대해 묻자 슬링스타드 대표는 "신흥국 채권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조치였을 뿐 한국 시장을 불신한 것이 아니다"라며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한국 우량 기업들의 주요 투자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북유럽에 있는 노르웨이는 인구 500만명의 작은 나라다. 하지만 1400조원 규모의 국부펀드를 조성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 주요 기업 9200여 곳의 주요 투자자가 됐다. 북해 유전에서 나오는 석유를 판 돈으로 될성부른 글로벌 기업들의 주식을 산 것.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은 "노르웨이는 국민 1인당 2억8000만원씩 글로벌 자산을 연금으로 갖고 있는 셈"이라며 "국민 대부분이 국내 부동산에 노후를 맡기고 있는 우리나라와 차이가 크다"고 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실적도 좋은 편이다. 1998년 이후 연평균 수익률은 6.09%. 작년엔 19.95%였다. 1998년 30조원으로 시작한 국부펀드는 계속 불어나 20여 년 만에 47배가 됐다. 운용 방식은 국부펀드 중 가장 투명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체 자산 규모뿐만 아니라 개별 투자 내용까지 일일이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많은 나라가 노르웨이 국부펀드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는 이유다.

북유럽의 가난한 나라였던 노르웨이는 1969년 북해에서 유전이 발견되면서 상전벽해 수준으로 달라졌다. 1990년대 들어 노르웨이는 석유 수익을 대부분 국부펀드에 붓기로 했다. 이 돈은 모두 해외시장에 투자하도록 하고 정부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게 막았다. 슬링스타드 대표에게 어떻게 그런 합의가 가능했느냐고 물으니 갑자기 수산물 얘기를 꺼냈다. 노르웨이는 세계 2위 수산물 수출국이다. 특히 연어 양식 기술은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항상 거친 바다에서 살았습니다. 자연과 매우 가까운 민족이죠. 우리는 주변의 모든 것을 특정 세대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래 세대를 포함해 모든 세대의 자산이죠. 그래서 발견한 석유를 특정 회사, 특정 가문에 넘기지 않고 모든 사람이 똑같이 연금으로 갖기로 한 겁니다. 하지만 석유는 언젠가는 고갈될 겁니다. 그래서 (돈을 계속 불릴 수 있는) 국부펀드를 만든 거죠. 우리가 연어를 기르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그는 인터뷰를 하면서 '미래 세대'란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지난달 노르웨이 정부에 46조원 규모의 자금을 긴급 수혈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사태와 저유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르웨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다. 국부펀드가 정부 재정의 안전판 역할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1경(京)' 큰손들이 움직인다

전 세계 65국 국부펀드 94개의 총자산은 8조3000억달러(약 1경원). 전 세계 GDP의 10%, 한국 GDP의 5배다. 애플은 6개, 삼성전자는 31개나 살 수 있는 돈이다. 슬링스타드 대표는 "세계적으로 대형 국부펀드 시대가 열렸다"고 했다. 세계 1위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투자 원칙을 해부하고,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 싱가포르 국부펀드(GIC) 등 세계 주요 국부펀드들의 최근 동향을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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