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 발견후 외화 밀려들자 제조업 붕괴 재무부 '기금 만들자' 보고서, 의회 채택

입력 2020.06.12 03:00

노르웨이 국부펀드 역사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 있는 노르웨이 국부펀드. 노르웨이 중앙은행(Norges Bank) 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 있는 노르웨이 국부펀드. 노르웨이 중앙은행(Norges Bank) 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블룸버그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역사는 1969년 북해에서 유전이 처음 발견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유전 발견 사실이 발표됐다. 당시 바다에서 발견된 가장 큰 유전이었다. 국민은 대박 꿈에 들떴지만 석유가 완전한 축복은 아니었다. 석유 수출로 갑자기 막대한 외화가 유입되자 노르웨이 화폐 크로네의 가치가 뛰기 시작했다. 이는 제조업 붕괴로 이어졌다. 석유 수익을 신중하게 써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5년 뒤 노르웨이 재무부가 의회에 '노르웨이 사회에서 석유의 역할'이란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본격 논의가 시작됐다. 곧이어 오늘날 국부펀드와 같은 기금을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다. 석유로 벌어들인 외화를 정기적으로 모아두는 기금을 만들어 해외에 투자하고 정부는 그 운용 수익만 쓰자는 것. 이는 국내 통화 가치가 과도하게 뛰는 것도 막을 묘안이었다.

1990년 노르웨이 의회는 석유 펀드를 만드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펀드는 장기 투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필요할 때 끌어다 쓸 수 있게 했다. 유가가 떨어지거나 국가 경제가 위축될 경우 정부 재정에 여력을 주기 위해서다.

1996년 석유 수익이 처음으로 입금됐다. 그리고 1998년 중앙은행 산하에 별도 운영 조직인 'NBIM(Norges Bank Investment Management)'이 설립됐다. NBIM은 적극적인 투자 다변화에 나섰다. 주식 비율을 늘리고 영국 런던, 미국 뉴욕, 일본 도쿄 등의 부동산도 사들였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투자하는 기업에 대한 윤리 평가를 실시한다. 그 평가 결과에 따라 투자 대상에서 배제하기도 한다. 지난달에는 석탄 사용량이 많은 일부 원자재 기업에서 투자금을 빼기도 했다. 지속 가능한 기업이 장기적으로 수익을 보장한다는 생각에서다.

노르웨이의 이런 역사는 또 다른 산유국인 베네수엘라와 흔히 대비된다. 베네수엘라는 이른바 '네덜란드병(자원의 저주)'으로 나라 경제가 무너졌다. 1999년 출범한 우고 차베스 정부는 관련 산업을 국유화하고 그 수익을 당장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정책에 쏟아부었다. 공산품 등을 직접 만들기보다 석유를 판 돈으로 수입했다. 하지만 유가가 폭락하고 미국이 셰일가스 개발에 성공하면서 베네수엘라 경제는 순식간에 추락했다. 원유 발견이 오히려 독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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