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애플·아마존·페이스북… 뒤에는 그가 있었다

    • 이지훈 세종대 교수

입력 2020.06.12 03:00

이지훈의 CEO 열전 <17> '1兆달러 경영 코치' 빌 캠벨

이지훈 세종대 교수
당신이 구글 제품 개발 책임자이고 이사회에서 신제품을 시연한다고 하자. 겉으론 환한 표정을 지으려 애쓰겠지만 진땀이 날 것이다. 좌중이 조용해 냉정하게까지 느껴지는 분위기라면 당장 주눅 들지 모른다. 그런데 누군가 일어나서 크게 손뼉 쳐준다면 어떻겠는가. 한술 더 떠 "정말 멋있어요"라는 찬사를 곁들인다면. 2015년 구글의 가상현실·증강현실 제품 책임자 클레이 베이버가 가상현실 헤드셋을 개발하고 겪은 일이다. 손뼉을 친 이는 정확히 말하자면 이사회 멤버는 아니었다. 구글 고위 경영진 팀 코치였던 빌 캠벨(Campbell)이었다.

베이버는 "그 박수는 정말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고 회고했다. 마치 아버지나 삼촌이 등을 두드려 주는 것처럼 말이다. 몇 년 후 캠벨은 세상을 떠났지만, 캠벨식 박수는 베이버가 이끄는 팀의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누군가 회의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내면 다른 누군가가 요란하게 박수 5회 치는 것이다. 신입 사원 오리엔테이션에서도 그 박수를 가르친다.

조직 결속의 '접착제' 역할

구글은 다른 어떤 기업보다 커뮤니티 같은 성격이 강했는데, 거기에 아교 같은 역할을 한 이가 빌 캠벨이었다. 경영자가 개인 코치를 두는 경우는 많지만, 고위 경영진 전체가 한 사람을 코치로 두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구글이 그랬다.

2016년 빌 캠벨의 장례식엔 빛나는 별 같은 기업인들이 운집했다. 래리 페이지를 비롯한 구글 최고 경영진은 물론이고, 제프 베이조스, 마크 저커버그, 팀 쿡도 왔다. 그들은 한결같이 캠벨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따뜻한 포옹과 악의 없는 욕설을 그리워했다. 그에게 10년 이상 거의 매주 코치를 받은 에릭 슈밋 구글 전 회장도 장례식장을 찾았다. 슈밋은 자신처럼 캠벨에게서 배운 80명을 인터뷰해 캠벨에게 받은 교훈을 정리한 '트릴리언(1조)달러 코치'란 책을 작년에 썼다.

빌 캠벨은 원래 기업인이 아니라 미식축구 코치였다. 재계엔 늦깎이로 입문했지만 애플의 자회사 클라리스와 소프트웨어 회사 인튜이트 등 몇몇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코치'가 됐다. 이번엔 스포츠팀이 아니라 기업인들 코치였다. 그는 스포츠팀 팀워크를 기업 세계에 심기 시작했다.

실리콘밸리 경영자들의 경영 코치였던 빌 캠벨이 지난 2012년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테크 크런치’ 콘퍼런스에 참석해 이야기하고 있다. /게티 이미지
회의는 '스몰 토크'로 시작하라

흔히 직장은 계약으로 맺어진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정의 자아와 직장의 자아는 별개라고 생각한다. 서구 기업 문화가 더욱 그렇다.

그러나 빌 캠벨은 결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가정의 자아와 직장의 자아를 분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모든 이를 전인(全人)으로 대접했다. 직업, 개인, 가족, 감정 등 모든 것의 결합체인 인간 말이다. 그는 관심과 배려가 조직에 기적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캠벨은 늘 '스몰토크(small talk)'로 대화를 시작했는데, 그것은 실제로는 결코 작지 않았다. 그것은 바쁜 일과에 파묻힌 사람들에게 숨 쉴 공간을 제공했고, 일터와 가정의 갈등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했다. 물론 기업은 결국 성과를 내야 하는 곳이다. 빌 캠벨이 치어리더 역할에 머물렀다면 그토록 많은 리더의 마음의 스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일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솔직했다.

지금은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셰릴 샌드버그가 2001년 구글에 입사하고 빌 캠벨을 처음 만났을 때 캠벨의 질문 중 하나는 "하는 일이 뭐예요"였다. 샌드버그의 첫 보직은 비즈니스 부문 상무였는데, 비즈니스 부문이 아직 없었기 때문에 사실 할 일은 없었다. 샌드버그가 "예전엔 정부 부처(재무부)에 근무했다"고 하자, 캠벨은 "아 그렇군요. 그래서 지금 하는 일이 뭔데요"라고 다시 물었다. 샌드버그가 앞으로 할 일이 뭔지에 대해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자, 캠벨은 "그런데 지금 하는 일이 뭔가요"라고 다시 물었다. 샌드버그는 결국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한 일이 없노라고. 샌드버그는 "그날 엄청나게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한 일, 앞으로 하려고 생각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애정 어린 비판은 가혹해도 무방

캠벨은 더 친한 사이에게는 욕설이 난무하는 피드백도 서슴지 않았다. 그의 친구이자 코치를 받았던 제시 로저스가 사모펀드를 창업한 뒤 웹사이트를 만들어 링크를 캠벨에게 보내주자마자 그의 전화가 걸려왔다. "네 웹사이트는 똥덩어리야!"였다. 그런 웹사이트로는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할 수 없다며 캠벨은 육두문자를 계속 퍼부었다. 그러나 캠벨이 그런 말을 해도 사람들이 상처 받는 일은 없었는데, 그것은 그 말이 거짓 없는 애정에서 나온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조직이든 누구나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먼저 말하지 않는 '방 안의 코끼리'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캠벨은 그걸 두고 보지 않고, 당장 꺼내 중앙에 내놓았다. 미식축구 경기에서 코치가 가장 약한 부분을 찾아내는 것처럼 그는 가장 어려운 문제부터 해결하려 했다.

누구나 캠벨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노력은 할 수 있다. 직원들 이름을 외우고,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면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라고 질문을 던져 보라. 캠벨급이 되려면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톰이 최근 축구 경기에서 잘 해냈어?" 혹은 "톰이 어떤 대학에 가고 싶어 해?"라고 물어야 한다. 출장 간 부하 직원이 갑작스레 입원했다면 비행기를 전세 내 배우자를 태워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잡스 애플서 쫓겨날때 반대… 베이조스도 구제

빌 캠벨은 천성적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지만, 그에게는 특별한 사랑이 있었다고 에릭 슈밋은 회고한다. 바로 창업자에 대한 사랑이다. 그는 기업을 창업하는 용기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마음으로 존중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날 때 반대했던 몇 안 되는 애플 임원 중 한 사람이 캠벨이었다. 훗날 애플에 복귀한 잡스는 캠벨에게 이사회에 들어와 회사를 살리는 데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잡스의 측근이자 절친이 됐고, 거의 매 주말 함께 긴 산책을 하곤 했다.

캠벨은 젊은 시절의 제프 베이조스가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에서 쫓겨날 위기에서 구해준 일도 있다. 이사회는 베이조스를 회장으로 물러나게 하는 대신 경험 많은 최고운영책임자(COO) 조 갤리를 CEO로 선임하는 것을 검토했고, 빌 캠벨에게 시애틀의 아마존 본사에 가서 상황이 어떤지 조사해 보라고 요청했다. 캠벨은 몇 주간 조사 끝에 베이조스가 계속 CEO를 맡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이사회에 전달했다. 직원들이 베이조스를 따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창업자는 아니지만 에릭 슈밋이 구글을 그만두려던 것을 캠벨이 막은 일도 있다. 이사회가 슈밋에게 회장직은 물러나고 CEO만 맡아달라고 하자 자존심이 상한 슈밋이 사직을 검토했다. 캠벨은 슈밋에게 “회사가 최선의 길을 가는 데 당신의 자존심이 방해가 되고 있다”고 만류했고, 일단 결정을 받아들이면 나중에 다시 회장직을 맡을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했다. 슈밋은 3년 후 회장직을 되찾았다.

캠벨은 창업자와 외부에서 영입된 전문 경영인이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다. 구글의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과 전문 경영인 에릭 슈밋을 함께 코칭한 일이 대표적이고, 트위터의 영입 CEO 딕 코스톨로에게 캠벨이 해준 조언도 “창업자들과 잘 지내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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