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신흥국… 전문가 전망

입력 2020.05.29 03:00 | 수정 2020.06.0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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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코로나 사태로 최근 디폴트를 선언한 아르헨티나에서 시민들이 생필품을 사려 줄을 서고 있다. / 블룸버그 ② 터키 이스탄불의 한 상점 주인이 휴대폰을 쳐다보며 손님들이 다시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 블룸버그 ③ 베네수엘라에서 시민들이 석유와 물을 공급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 블룸버그 ④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시민들이 코로나 사태에 따른 봉쇄 조치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블룸버그 ⑤ 부채 규모가 급증하는 나이지리아에서 상점 직원이 돈을 세고 있다. / 블룸버그 ⑥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이후 첫 디폴트를 선언한 국가인 레바논의 한산한 시장 모습. / 블룸버그
"남아공 국채 이미 정크본드 단계… 러·사우디 원유전쟁 겹쳐 위기 가중"
카르멘 라인하트 하버드대 교수


무너지는 신흥국… 전문가 전망
카르멘 라인하트 하버드대 교수는 2009년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와 '이번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의 공동 저자로 잘 알려진 국제 금융 전문가다. 지난 800년간 66국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금융 위기를 분석한 결과, 금융 위기가 닥치기에 앞서 자산 가격 상승, 차입 규모 급증, 대규모 경상수지적자, 그리고 저성장 등 사실상 모든 경제지표가 비슷하게 움직였다는 주장을 담은 저서였다. 라인하트 교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각해진 올 초부터 로고프 교수와 '이번에는 진짜 다르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내며 또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만큼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신흥국 위기가 심각하다는 이유에서다. 라인하트 교수는 WEEKLY BIZ 인터뷰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되더라도 신흥국의 위기는 끝나지 않는다"며 "신흥국의 부채 유예 등 선진국 정부의 적극적 개입으로 불길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로고프 교수와 '이번엔 진짜 다르다'는 칼럼을 냈는데.

"올해 초부터 이번 위기의 심각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번 위기에는 정말 많은 신흥국의 디폴트(채무 지불 정지)를 목격할 것으로 보인다. 신흥국 기업들의 도산 건수도 상당할 것이다. 에콰도르는 이미 일부 빚을 갚지 못했고, 잠비아 등 사하라 이남 일부 취약 국가는 디폴트가 기정사실화됐다고 본다. 국제금융계에서 심각하게 바라보는 국가들은 이 같은 소규모 경제 국가뿐 아니라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다. 이미 금융·외환시장에서 한계에 몰리고 있는 이 국가들은 제각기 여러 복합적 문제를 안고 있다. 예를 들어, 남아공의 국채는 이미 정크본드(투자 부적격 채권) 취급을 받고 있다. 국가 재정이 워낙 엉망이었던 터라 코로나 발생 이전에도 문제가 많았다. 만성적 실업과 화폐 가치 추락 등 이미 터질 문제들이 앞당겨졌을 뿐이다. 터키는 2018년에도 리라화 가치 폭락으로 위기를 겪은 적이 있다. 이 국가들의 외환 보유액도 빠르게 메말라가고 있다."

―과거 위기와 비교해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

"개인적으로 피치, S&P, 무디스, 그리고 몇 개 중소형 신용평가회사의 보고서를 빠짐없이 살펴보고 있다. 눈에 띄는 흐름 중 하나는 신용평가 등급 강등 건수가 신흥국 신용평가가 활발해진 1980년대 이후 가장 많아 보인다는 점이다.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 전후로 상당수 신흥국이 타격을 입었을 때보다도 더 광범위하게 신용평가 등급 재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이미 불과 두 달 만에 1998년의 기록을 깼다. 이번 위기는 코로나 종식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공급망 붕괴, 식량 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

"이번 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는 성격이 다르다. 2008년 위기는 선진국 은행들이 위기 진원지였고, 그 여파가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그리스, 포르투갈로 번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엔 신흥국의 대외 부채가 이 정도로 많지 않았다. 1970년대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또한 심각한 달러 자금 경색은 있었으나, 중국이 두 자릿수의 높은 성장을 이끌며 원자재 가격이 올라 위기를 간신히 넘길 수 있었다. 지금은 1930년대 대공황과 비슷한 양태로 위기가 진행 중이다. 러시아와 사우디의 원유 전쟁은 가뜩이나 심각한 신흥국 경제에 씻을 수 없는 타격을 안겼다. 원유 시장의 혼란은 다른 원자재 시장에도 번지며 복합적 위기로 진화하는 양상이다. 1930년대 대공황 때도 2020년과 비슷하게 원자재 가격이 폭락했다. 2008년에도 물론 무역 규모가 감소하긴 했으나 감소 폭을 비교해보면 2020년의 위기는 대공황 충격과 더 비슷한 그림이 나온다."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는가.

"우선, 일부 신흥국에 일시적 부채 유예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빚 부담을 잠시나마라도 덜어줘야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대응할 여지가 생기고, 이 국가들이 정상 궤도로 돌아와야 결국 부채를 갚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부채 구조 조정도 필요하다. 일부 국가가 이런 위기 상황을 악용해 아예 빚을 안 갚으려는 도덕적 해이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을 이대로 방치하기는 어렵다. 매우 이례적이고 긴급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위기는 1930년대와 비슷하지만, 정부가 초기에 신속하게 대응했던 점은 분명한 차이점이다.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손해를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최근 급격한 주가 상승 흐름은 어떻게 보나.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이전까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는 긴축 기조를 고수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코로나로 인해 단숨에 바뀌었다. 지금 그 누구도 연준이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그것도 매우 오랫동안 말이다. 여기에 일부 기업은 위기 속에서도 꽤 괜찮은 실적으로 선방하고 있다. 이러한 변수들이 지금의 주가 상승을 이끌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불확실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침체 기간이 얼마나 길어질지도 불분명하다. 무엇보다 이번 위기로 인한 손실 규모를 아직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경기회복 성공해도 아르헨·베네수엘라 등 10여개국 디폴트 못 면할듯"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무너지는 신흥국… 전문가 전망
국제금융 분야의 석학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WEEKLY BIZ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각국 경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멈춘 지금의 상황을 "1930년대 대공황(Great Depression) 이후 전 세계가 동시에 침체에 빠진 첫 사례"라고 진단했다. 로고프 교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금융 위기의 평균 회복 기간이 4년이었고 대공황은 10년이 걸렸다"면서 전 세계 경제가 침체에서 빠져나오려면 최소 5년은 걸린다고 전망했다. 그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신흥국 부채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상당수 국가가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10여 국가 연내 부도 가능성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지난 4월보다는 상황이 다소 진정된 것으로 보인다. 일부 국가는 신규 채권을 발행하는 데도 성공했다. 그럼에도 아직 상황은 매우 아슬아슬하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이전에도 부채 규모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세계은행 통계를 살펴보면 신흥국의 대외 부채가 매우 가파르게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로 기업 쪽의 대외 달러 부채가 많이 늘었다. 이와 동시에 최근 수년간 신흥국의 경제성장률은 부채 증가율에 못 미칠 만큼 둔화하고 있었다. 여기에 전 세계 실업률과 교역 규모는 역사상 매우 전례 없는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교역 규모와 원자재 등 상품 가격은 1930년대에 버금갈 만큼 빠른 속도로 붕괴 중이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점은 탈(脫)세계화의 유령이 전 세계를 맴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나라들이 위험해 보이는가.

"바이러스의 확산을 가까스로 막아 경기회복에 성공하더라도 최소 10개가 넘는 나라가 1년 안에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할 것으로 예상한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와 같이 과거부터 아슬아슬했던 나라가 대표적이다. 이 밖에 남아프리카공화국, 멕시코, 터키도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원유 등 에너지를 수출하는 국가와 관광에 의존하는 신흥국은 씻을 수 없는 타격을 입을 것으로 판단한다. 주요 20국(G20)은 이미 최빈국에 자금 지원을 약속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빌려준 빚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2008년 위기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2008년 금융 위기를 종종 글로벌 금융 위기라고 부른다. 그러나 당시 위기는 선진국의 경제 위기에 가까웠다. 신흥국 시장은 빠른 회복 속도를 보였고, 금방 침체에서 벗어났다. 중국의 빠른 회복이 성장을 이끌었다. 그러나 2020년의 위기는 그야말로 진짜 글로벌 위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대공황 이후 처음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력은 1918년 스페인 독감 이후 최악이다."

―회복에는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는가.

"우리는 이미 최소한 150년 만에 최악의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겪고 있다. 90여년 전 전 세계가 대공황에서 벗어날 때까지 10년이 걸렸다. 미국은 1939년이 돼서야 1929년의 1인당 소득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2차 대전 이후 여러 금융 위기를 살펴봐도 회복 시기는 평균적으로 4~5년이었다. 이번 위기는 2008년 위기보다도 심각하다. 상당수 선진국도 2019년의 1인당 GDP를 회복하려면 5년에서 1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신흥국은 이보다 나쁜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한다. 전 세계가 작년만큼의 완벽한 회복을 이루는 데는 최소 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 상황에서 세계경제에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물론 바이러스 확산이 더뎌지는 것이다. 신흥국의 인구 구조가 선진국보다는 젊은 편이고, 기후도 따뜻한 편이라 이런 측면에 기대볼 수도 있다. 여기에 중국, 미국의 성장 궤도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면 분명 신흥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전제 조건은 너무나도 낙관적이다. 예를 들어,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젊은 층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인구 구조이지만 공중 보건 시스템과 인프라가 모두 엉망이다. 그래서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 국가에 치명적인 타격을 안겨줬다."

―경기회복을 위해 유럽, 일본에 이어 미국도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10년 넘게 마이너스 금리 도입에 대비해 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진국들이 이런 종류의 깊은 침체에 대응하려면 마이너스 금리를 염두에 둬야 한다. 매우 낮은 수준의 마이너스 금리(deep negative rate)는 기대 인플레이션을 높이고 (경기 회복에 기여해)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장기 금리를 높이게 된다. 현 시점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채권과 지방채 가격을 끌어올리면서 일종의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직접 금융 방식은 선진국의 복잡한 금융시스템을 감안할 때 오랜 기간 지속되기 힘들다. 마이너스 금리는 시장 중심적인 장치다. 만약 침체가 제2의 경제 대공황으로 이어진다면 마이너스 금리는 여전히 가능한 선택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전 세계 상당수 중앙은행도 미국의 뒤를 따라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운용하기 시작할 것이다."

"경기 침체·달러 유출… 아시아國 위태 미·중 무역갈등 악화땐 치명타 입을듯"
사와다 야스유키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


무너지는 신흥국… 전문가 전망
"겨우 일어서려던 아시아 신흥국들이 다시 휘청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와다 야스유키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WEEKLY BIZ 인터뷰에서 최근 코로나 사태로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아시아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아시아 국가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한 경기 악화에다 외화 자금까지 빠져나가는 이중 고통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급증하는 부채 문제는 이 지역의 새로운 뇌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대 교수인 그는 지난 2017년부터 필리핀 마닐라에 본부를 둔 ADB의 경제조사국장을 지내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 분석을 총괄하고 있다.

―현재 아시아 상황을 어떻게 보나.

"민간 부채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2008년 4분기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아시아 지역 은행들의 대외 순자산은 총 7조6000억달러에서 14조9000억달러로 늘어났다. 반면 부채도 6조달러에서 12조3000억달러로 증가했다. 민간 부채 비율이 빠르게 증가한 나라는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줄어들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한 글로벌 경기 침체도 아시아에 매우 큰 위협이다. 각국은 쪼그라든 민간 소비를 메우기 위해 천문학적인 나랏돈을 풀어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실시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경기 부양책은 GDP의 18%에 달하는 규모였다. 정부 지출로 이 나라들의 국가 부채가 급증하고 재정 건전성이 빠르게 악화될 수 있다. 반면 벌어들이는 돈은 줄었다. 선진국의 경기 침체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신흥국들의 수출 물량이 줄었다. 또 관광산업이 위축되고 해외에서 송금하는 외화 수입원도 타격을 입었다."

―특히 어떤 나라가 위험한가.

"무역과 금융의 개방도가 높거나 관광이나 서비스 부문에 의존하는 국가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로 창출한 서비스 비중이 높은 국가는 예외다. 또 만기가 짧은 대외 부채 비율이 높은 국가도 위험하다. 신흥국은 통화 가치나 자산 가격이 외부의 영향에 쉽게 흔들린다. 신흥국으로 몰려들었던 해외 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통화 가치는 더욱 급락하고 경기 위축으로 신흥국 주가나 자산 가격의 동반 하락을 불러온다."

―금융 위기로 확산할 가능성도 있나.

"달러 외채가 많은 신흥국은 위기의 진원이 될 수 있다. 글로벌 위험 자산 투자가 활발해진 상황에서 달러화 가치가 상승하면 달러 표시 부채 부담이 급증한다. 결국 아시아를 포함한 신흥국의 채무 부담을 가중시켜 디폴트(채무 지불 정지) 가능성을 높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역내 금융 안전망 협의체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M)를 통해 금융 위기 발생 때 빚어질 수 있는 외환 유동성 부족에 대비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난 10년 동안 아시아의 개발도상국들은 평균 6.5%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전 세계 생산 증가분의 거의 절반은 아시아 몫이었다. 또 아시아 국가들은 거시 경제의 기초 체력을 강화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보다 금융 부문은 자기자본 비율을 높였고 정부의 재정 수지도 탄탄해졌다. 하지만 부채 위기가 성장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초저금리 정책의 영향도 있나.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초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아시아 신흥국들의 정부, 가계, 비금융 기업과 금융회사의 총부채 규모는 지난 2009년 18조달러(GDP 대비 199%)에서 지난해엔 57조달러(GDP 대비 265%)로 급증했다. 특히 비금융 기업의 부채가 가장 가파르게 증가했다. 또 비(非)북미권의 글로벌 은행들이 저금리의 달러를 빌려 신흥국에 투자하는 달러 캐리 트레이드에 몰렸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미국 달러화의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는 주요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자금 대출을 줄일 것이고 이는 신흥국 전체에 번져 이 지역의 금융시장을 더 옥죌 수 있다."

―신흥국 위기를 악화시키는 최악 시나리오는.

"미·중 무역 갈등의 악화다. 지난 금융 위기에서 보듯 무역이나 경상수지 악화와 맞물린 경기 침체는 신흥국 경제에 치명타를 가했다. 이미 미·중 무역 갈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파괴되면서 국제무역이 타격을 받았는데 뒤이어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수요마저 급감했다. 여기에 다시 미·중 무역 갈등이 심해지면 가계나 기업 등 민간 부문이 디폴트 문턱에 진입하고 은행 등 금융 부문도 신용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신흥국 무역 금융 지원에 주력

―국제사회의 대응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재빠른 대응이 위기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 낮추고 있다. 외국 중앙은행이 미국 국채를 담보로 달러를 조달할 수 있는 대출 기구(FIMA repo facility) 거래 계약을 지난 3월 19일 한국 등 9국 중앙은행으로 새로 확대해 글로벌 대부 기관으로서 역할을 강화했다. 그 결과 시장의 긴장 상태도 어느 정도 완화됐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ADB는 어떤 대응을 하고 있나.

"수출에 의존하는 아시아 신흥국은 무역수지 개선이 가장 시급하다. 이에 맞춰 ADB는 위기 대응 수단인 24억달러 규모의 무역 금융 보증 프로그램(Trade Finance Program)을 마련했다. 지난 4월에만 역내 거래 총 500여 건에 4억2500만달러를 지원했다. 자금 융통 규모도 더 늘릴 계획이다."

2008년보다 대책 빨랐지만 늘어난 빚 때문에 더 불안

무너지는 신흥국… 전문가 전망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경기 침체는 위기 초반에 정부와 중앙은행 등이 과감하면서도 신속하게 대응했다는 점이 과거 신흥국 위기와 차이가 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는 수조달러 규모의 자금 지원책과 통화 스와프로 시장의 불안감을 잠재웠다. 미국·호주·중국·일본 등 주요국 정부는 지난 3~4월 추가 부양책을 신속하게 발표하며 다가올 침체에 맞섰다. 이번 위기 국면에선 선진국 정부는 물론 신흥국 정부도 발 빠르게 경기 부양책을 내놓으며 경기 침체에 대응 중이다. 태국과 말레이시아는 각각 800억달러, 596억달러의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는데, 이는 각국 국내총생산(GDP)의 16%에 이르는 규모다.

문제는 각국 정부, 중앙은행, 국제 금융기관들이 전례 없는 조치를 쏟아내는데도 불안감이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난 10년간 상당수 신흥국이 빚을 잔뜩 늘려온 터라 외채 비율이 높거나 GDP 대비 재정 적자 규모가 큰 신흥국에는 빨간불이 들어온 탓이다. 가령, 인도네시아는 경기 부양책을 마련하려 재정 적자 비율을 GDP 대비 3% 이내로 억제하겠다는 제한을 철폐했는데, 이는 되레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부추겨 루피아화가 폭락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신흥국 정부 부채는 10년 전에 비해 2.3배 늘어나며 같은 기간 선진국(1.4배 증가)보다 재정 여력이 축소됐다. 또 신흥국들은 가뜩이나 낮아진 통화 가치 탓에 금리 인하 등 통화 정책을 적극 활용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일부 신흥국의 국채 금리는 이미 연초 대비 1~2%포인트씩 올랐다. 선진국 시장 역시 여전히 불안정하다 보니 신흥국에서 발생한 위기를 얼마나 흡수할 수 있을지 예측하기도 어렵다는 것도 1997년 외환 위기 등 과거 신흥국 위기와 차이가 나는 점이다.

신흥국에서 달러 유출이 심해 일부 국가에서는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 화폐 수요가 폭증하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아르헨티나, 레바논 등 외화 규제로 달러화 매입이 어려운 일부 국가에서 자산 가격 방어를 위해 가상 화폐를 매집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가령 아르헨티나는 이달 초 비트코인 거래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배 넘게 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레바논에서도 거래량이 뛰며 비트코인이 글로벌 시장 가격의 2배에 거래되고 있다는 현지 언론 보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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