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디즈니 잡을 테니 기대하세요"

입력 2020.05.29 03:00

제이슨 카일러 美 워너미디어 신임 CEO

미국의 워너미디어는 지난 1일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훌루(Hulu)'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제이슨 카일러(49)를 새 CEO로 영입했다. 워너미디어는 CNN과 워너브러더스, 케이블 영화 채널 HBO, 카툰 네트워크 등을 거느린 엔터테인먼트 공룡. 지난해 매출은 335억달러(약 41조5000억원)였다. 그런 워너가 외부 인사를 CEO로 임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엔터테인먼트 기업 워너미디어 새 CEO(최고경영자) 제이슨 카일러. 넷플릭스와 아마존, 월트디즈니 등이 동영상 스트리밍 각축전을 벌이는 가운데 후발 주자 HBO맥스를 성공시켜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미국 엔터테인먼트 기업 워너미디어 새 CEO(최고경영자) 제이슨 카일러. 넷플릭스와 아마존, 월트디즈니 등이 동영상 스트리밍 각축전을 벌이는 가운데 후발 주자 HBO맥스를 성공시켜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블룸버그
제이슨 카일러 / 워너미디어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넷플릭스 등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가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방콕족'이 늘면서 스트리밍 수요에 더 불이 붙었다. 업계 1위인 넷플릭스에는 지난 1분기(1~3월)에만 1570만명의 신규 가입자가 몰렸다. 월트디즈니는 작년 11월 디즈니플러스를 출시하며 스트리밍 전쟁에 본격 참가했다. 6개월 만에 5400만명이 넘는 가입자를 끌어모으며 넷플릭스를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 업체 아마존은 지난 2월 마이크 홉킨스 전 소니픽처텔레비전 회장을 영입했다. 그는 아마존의 스트리밍 서비스인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지휘한다. 홉킨스 전 회장 역시 훌루 출신이다. 그는 2013년부터 4년간 훌루의 CEO를 지낸 뒤 소니로 자리를 옮겼다.

반면 두세 발 늦은 워너미디어는 지난 27일에야 새로운 스트리밍 서비스인 'HBO맥스'를 출시했다. 카일러는 스트리밍 빅뱅 속에서 워너미디어의 미래 성장 동력이 될 HBO맥스를 진두지휘하게 됐다.

동영상 스트리밍의 마당발

카일러는 현재 스트리밍 시장의 빅5 업체 중 3곳(훌루,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디즈니플러스)의 탄생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준 인물이다. 그는 전통적 엔터테인먼트 전문가라기보다 미디어·기술 기업을 키워내는 사업가에 가깝다. 디지털 미디어·광고 기술과 관련된 특허도 9건 갖고 있는 발명가이기도 하다.

1997년 하버드 MBA(경영전문대학원)를 졸업한 뒤 잡은 첫 직장도 1994년 문을 연 신생 기업 아마존이었다. 카일러는 하버드 수업 때 아마존의 설립자 제프 베이조스의 강의를 듣고 반했다고 한다. 그리고 일주일 뒤 바로 입사 원서를 냈다. 당시 아마존은 인터넷으로 책을 팔던 작은 회사였다. 하지만 카일러는 베이조스를 '최근 100년간 최고의 비즈니스 리더'라고 부르며 따랐고 아마존에서 선임 부사장까지 올랐다. 카일러는 당시 아마존의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 개발도 맡았는데, 이 소프트웨어는 아마존프라임의 기초가 됐다고 한다.

그러던 2007년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서비스를 내놓으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NBC유니버설, 뉴스코퍼레이션 등 기존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합작 벤처기업을 세웠는데 이 회사가 바로 훌루다. 이들은 훌루의 첫 CEO로 아마존의 카일러를 영입했다.

설립 단계부터 깊이 관여했던 카일러는 훌루에서 2013년까지 CEO로 활동했다. 스트리밍 시장 초기 훌루는 넷플릭스의 대항마로 쌍벽을 이뤘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10년 월 구독료 7.99 달러를 내면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2011년에는 첫 자체 제작 드라마 '어 데이 인 더 라이프'를 출시했다. 그해 구독자 100만명을 달성했고 현재는 3200만명까지 늘렸다. 최근에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독점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훌루는 지난해 월트디즈니의 자회사가 됐다. 훌루 지분을 일부 갖고 있던 월트디즈니는 스트리밍 확대 전략의 하나로 훌루 지분을 전부 인수했다. 훌루를 통해 스트리밍 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월트디즈니는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인 디즈니플러스도 시작했다. 월트디즈니는 스포츠 중계에 강한 훌루와 막강한 블록버스터 콘텐츠를 가진 디즈니플러스를 함께 운영하며 시너지를 낼 계획이다.

워너미디어 매출
후발 주자 워너의 백기사 될까

업계에서 카일러는 '틀을 깨는 CEO'란 평가를 받고 있다. 훌루 CEO 시절 카일러는 광고가 없는 넷플릭스와 달리 구독료를 내고 보는 콘텐츠에도 광고를 달았다. 다만 그 광고를 구독자가 직접 선택하게 했다. 광고의 길이도 8분에서 4분으로 줄였다. 훌루는 구독자별로 선택 패턴을 분석해 맞춤 광고를 제안했다. '구독자가 원하는 광고'는 바로 효과를 냈다. 훌루에 따르면 구독자의 96%가 자신이 선택한 광고를 끝까지 봤다고 한다.

그는 엔터테인먼트사에서 콘텐츠를 받는 대가로 로열티를 주는 대신 이 광고 수익을 나눴다. 그동안 TV 채널들이 돈 버는 방식을 깬 것. 이게 바로 카일러가 만든 '애드 스와프(광고 교환)' 혁신이다.

그리고 카일러는 이미 영화관에서 막을 내린 영화를 트는 대신 상영 중인 따끈따끈한 작품을 고집했다. 플레이어 화면을 크게 만들고 HD 고화질 콘텐츠로 채웠다. 콘텐츠를 공급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임원뿐만 아니라 실제 드라마 제작자들과도 만났다. 그 인연은 나중에 독점 콘텐츠 제작으로 이어졌다.

카일러는 2013년 유튜브와 비슷한 무료 영상 플랫폼 '베슬'을 공동 창업했다. 당시 실리콘밸리에선 카일러 모시기 열풍이 불었지만 그는 창업을 택했다. 미국의 경제 매체 CNBC에 따르면 당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테크 거물들이 스트리밍 시장을 개척한 그를 영입하려고 애썼다고 한다. 카일러는 베슬에도 구독 모델을 도입해 주목을 받았다. 월 2.99달러를 내면 인기 크리에이터의 영상을 남들보다 72시간 빨리 볼 수 있게 한 것. 베슬은 2016년 미국 최대 통신사인 버라이즌에 인수됐다.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의 후발 주자인 워너미디어는 이런 혁신 마인드를 가진 카일러가 백기사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카일러도 대결을 벼르고 있다. 그는 "전 세계 인구 80억명 중 동영상 스트리밍에 돈을 쓰는 구독자는 2억명"이라며 "잠재적 구독자가 아직도 많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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