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코로나 방역이 실패했다고?… 가을 2차 유행 와봐야 안다

입력 2020.05.29 03:00

[이철민의 Global Prism] <33> 스웨덴 코로나 방역의 역설

이철민 선임기자
코로나 바이러스 광풍에 휩싸인 유럽 대륙에서 스웨덴의 방역 성적표는 '실패'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1010만명밖에 안 되는 인구 중에서 무려 4029명(5월 26일 현재)이 코로나로 숨져, 희생자 수는 전 세계 20위 내에 든다. 같은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있는 이웃 노르웨이·덴마크·핀란드와 비교하면 더욱 초라하다. 모두 1670만 명이 사는 이 3국은 코로나 초기부터 학교와 상점 폐쇄, 외출 금지 등의 강력한 봉쇄(lockdown) 정책을 취해 전체 사망자가 스웨덴의 27%인 1106명에 그쳤다.

스웨덴의 방역 원칙은 기본적으로 '자율 방임'이다. 손 씻기, 타인과 2m 거리 두기, 불필요한 외출 자제 등 생활 지침만 알리고 준수 여부는 국민 각자에게 맡겼다. 50인 이상 집회 금지, 술집에서 바(bar) 착석 금지 등 기초적인 제한은 있었다. 하지만 유아원부터 16세(중3)까지 학교는 계속 수업을 했고 상점·음식점도 문을 열었다. 개인이 코로나 증상이 의심된다고 무조건 진단을 받을 수도 없고, 감염이 확인돼도 방역 당국은 접촉 동선을 엄격하게 추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100만명당 사망자 수(396명)는 두 달 가깝게 나라 전체의 문을 철저하게 걸어 잠근 벨기에(81명)·스페인(614명)·영국(555명)·이탈리아(544명)·프랑스(424명) 등 다른 유럽 나라들과 비교하면 그렇게 엉망도 아니다. 다만 벨기에의 인구 밀도는 ㎢당 376명이고 스웨덴은 25명. 따라서 단순 비교할 순 없지만 스웨덴은 자율 방역 덕분에 다른 나라들이 겪은 의료시설 마비 사태나 소규모 상점 도산, 대량 해고, 국민의 정신적 스트레스 등은 다소 피할 수 있었다.

"장기 봉쇄 불가능"… 자율 방역 실시

이런 스웨덴 모델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막대한 희생자 탓에 "전 국민을 상대로 한 도박 실험"이란 비판도 받는다. 스웨덴은 왜 소극적인 방역 정책을 택한 것일까. 스웨덴 공공보건청은 기본적으로 코로나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유효성이 입증되고 국민 대다수가 이를 접종하기까지는 앞으로 수년이 걸릴 것으로 봤다. 이런 상태에서 장기적인 봉쇄는 사회·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적극적인 감염 진단과 격리 프로그램은 오히려 의료시설 마비를 초래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또 노년층을 제외하고는 코로나 감염 증세가 치명적이지 않아 인구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수학적 모델을 따랐다.

실제로 언론에 일부 소개된 것처럼 스웨덴 전체가 무분별하게 술과 댄스파티를 벌인 것도 아니었다. 구글이 스마트폰 위치 추적을 통해 이용자들의 '지역사회 이동성'을 조사한 것을 보면 쇼핑센터·극장·식료품점 방문이나 대중교통수단 이용, 자택 거주 시간 등에서 드러난 스웨덴 국민의 이동성 감소는 강압적인 봉쇄 정책을 취한 스칸디나비아 3국 국민과 별 차이가 없다. 열명 중 아홉명이 타인과 1m 이상 거리를 둔다고 답할 정도로 정부 지침에 대한 스웨덴 국민의 신뢰도와 준수율은 매우 높다.

또 각국 정부가 이제 학교 수업을 재개하고 음식점·상점 영업을 점차 허용하면서 봉쇄 정책을 완화하려 하자 해당 국 국민의 불안감도 커지지만 봉쇄를 겪어 본 적이 없는 스웨덴에선 이런 혼란이 없다. 5월 중순 조사에서 영국인의 49%는 정부의 봉쇄 완화 조치에 우려를 표했고 미국인도 55%가 일부의 해제 캠페인에 반대했다.

물론 스웨덴 모델엔 분명한 실패도 있었다. 무엇보다 노년층 희생이 너무 컸다. 특히 요양시설에 사는 노인들에 대한 방역에 소홀했다. 이곳 감염자들은 산소 호흡기와 같은 일차적인 응급치료도 받지 못했다. 이 탓에 5월 중순까지 전체 코로나 사망자의 48.9%가 양로원에서 발생했다. 또 대형 병원들은 생존 가능성이 낮은 80세 이상 고령 감염자는 아예 앰뷸런스 후송을 막았다. 스웨덴의 디지털 뉴스매체인 '로칼'은 "전체 노인 사망자 중 5%만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지난 4월 18일 스웨덴 스톡홀름의 니토르게 공원에서 젊은이들이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스웨덴의 많은 청년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증상이 치명적이지 않아 두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Redux
인명 피해 크고 경제 피해도 못 줄여

'자율 방임형 방역'의 목적 중 하나는 경제 피해 최소화였지만, 이 역시 장기적으론 다른 유로존 국가들과 별 차이가 없을 전망이다. 확산 초기인 3월만 해도 유로존 경제가 3.8% 축소된 데 비해 스웨덴은 0.3%만 줄었다. 그러나 스웨덴 중앙은행인 리크스뱅크는 올해 국내총생산(GDP)이 7~10%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유럽연합(EU) 집행기구인 유럽위원회가 올해 예측한 유로존 GDP 7.5% 감소 수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스웨덴은 경제 대외 의존도가 높은 제조업 위주 국가이기 때문이다. 볼보 트럭은 부품 공장이 있는 다른 나라의 봉쇄 조치와 시장 침체로 스웨덴 본사 공장도 3주간 가동을 중단해야 했고, 4월 말에는 1300명 해고를 발표했다.

지난 22일 사이언스 매거진은 "스웨덴 방역은 통계자료도 없는 실패한 국가 실험"이라고 비판했다. 이제 학교를 정상화하려는 각국의 감염병 전문가들에게 정상 수업을 유지한 스웨덴 학교의 감염 실태는 귀중한 데이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스웨덴 보건 당국은 관련 조사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코로나 확산의 주요 통로가 될 가능성은 낮다고 지레 결론을 내린 것이다. 존스홉킨스대 블룸버그 보건대학원의 애니타 시서로 교수는 "무증상 어린이와 성인 사이의 감염 경로를 파악할 드문 기회였는데 자료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스웨덴 국민의 70%는 정부의 이런 '소극적' 방역을 지지한다. 당장의 희생은 컸지만 바이러스가 광범위하게 번져 젊은 층과 건강한 인구 층의 코로나 면역력을 키웠기 때문에 가을에 2차 코로나 폭풍이 닥쳐도 이미 최악은 지났다고 본다. 따라서 스웨덴 모델에 대한 최종 평가는 코로나와의 긴 마라톤 끝 '결승선'에서 내릴 문제라는 것이다.

안데르스 테그넬
"아프면 집에서 쉬길"

'집단 면역' 설계 안데르스 테그넬

스웨덴 방역 당국이 시인한 적은 없지만 결국 추구하는 것은 집단면역(herd immunity)이다. 인구의 60% 이상이 코로나 바이러스 항체를 갖게 되면 백신이 없어도 장기적으로 코로나 재발에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집단면역 설계자이자 스웨덴 방역 정책의 총사령탑은 스웨덴 공공보건청의 수석 감염병학자인 안데르스 테그넬(64·사진)이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스에 “5월 말이면 스톡홀름 시민의 40%가 항체를 갖게 돼 자발적 거리 두기를 계속 유지하면 스웨덴은 다른 나라들보다 2차 코로나 폭풍을 훨씬 잘 감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의 방역 정책은 이런 긴급 상황에 대비해 오래전에 수립한 것이다. 그는 24일 더타임스 인터뷰에서 “희생자가 급증해도 애초 계획에서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스웨덴 과학자·의학자 22명은 지난 4월 중순 “집단면역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바이러스에 취약한 노년층의 생명을 앗아갈 권리를 국가에 부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그런데도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테그넬의 인기는 치솟는다. 그의 얼굴을 새긴 문신도 유행한다. 지난달 17일 테그넬의 생일엔 곳곳에서 사람들이 축하 건배를 했다. 남성 패션 잡지는 그의 옷 스타일을 해부하는 기사를 낸다.

테그넬은 마스크 쓰기도 권하지 않는다. 그는 “아프면 집에서 자가 격리를 해야지 마스크 쓰고 외출하면 결국 남을 감염시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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