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안보고 ROE만 보고 날던 항공사 다 추락한다

입력 2020.05.15 03:00

최원석의 業의 경쟁력 <5> 코로나 사태로 드러난 ROE 경영의 한계

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국제경제전문기자
코로나 사태로 단기 성과만 중시하던 기업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하면 극단적인 자기자본이익률(ROE) 중시 경영을 펴왔던 미국 기업들의 장기 경쟁력이 손상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 델타항공은 보유 현금(2019년 말 기준 약 28억달러)이 고갈되면서, 54억달러의 정부 지원을 받아들이기로 지난 4월 14일 결정했다. 아메리칸항공· 유나이티드항공도 각각 58억달러와 50억달러 지원을 미 정부에 요구, 정부가 항공업계를 위해 마련한 250억달러가 순식간에 소진될 처지다.

세계적으로 여객 수요가 사라지면서 항공사 직원들의 대량 실직을 막으려면 정부 지원은 불가피하다. 다만 미국 항공사들이 가장 먼저 백기를 들게 된 것은 1970년대 이후 미국에서 확산한 주주 가치 최우선 자본주의에 너무 경도됐기 때문이다. 그 상징이라 할 수 있는 ROE만을 좇아 비정상적 저금리 속에서 부채에 의존하는 레버리지(차입) 경영에 빠져들었다가 코로나 사태로 매출이 소실되면서 기업 자체가 무너질 위기에 놓인 것이다.

미국 항공사들이 자기자본이익률(ROE)만을 쫓다 코로나 사태로 정부에 손 벌리게 됐다. 4월 캔자스시티 공항에 세워져 있는 델타항공 여객기.
미국 항공사들이 자기자본이익률(ROE)만을 쫓다 코로나 사태로 정부에 손 벌리게 됐다. 4월 캔자스시티 공항에 세워져 있는 델타항공 여객기. /AP연합뉴스
주주만 바라보다 미래 경쟁력 잠식

기업조사업체인 QUICK·팩트셋 데이터에 의하면 아메리칸항공은 2019년까지 5년간 자사주 118억달러어치를 매입했다. 이 결과 자본이 쪼그라들었고, 이익을 자본으로 나눠 산출하는 ROE는 2018년 약 75%로 아시아권 기업 평균의 7~8배에 달하는 높은 성적을 올렸다. 한편 자사주 매입의 자금 부담 등으로 이자를 내야 하는 부채는 2019년 말 334억달러로 5년 전보다 80% 넘게 증가했다. 자기자본은 마이너스이고 재무 상태는 취약해진 것이다. 델타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도 지난 5년간 부채가 70% 안팎으로 증가했다.

최근 미국 등을 중심으로 빚을 지렛대 삼아 경영하는 레버리지(leverage) 경영에 적극적인 기업이 많았다. 세계 상장기업 7500여 개(금융 제외)의 총자산 중 이자를 내야 하는 부채 비율은 2012년 이후 계속 상승, 2019년 32%로 18년 만에 가장 높았다. 미국 주요 500대 기업의 자본잠식액은 모두 약 700억달러로 2008년 이후 가장 크다. 미국 등의 항공사 외에도 극단적인 ROE 중시 경영을 펼친 미국의 일부 식음료·소비재·호텔 기업도 위험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금융회사의 과잉 레버리지 경영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불렀다면, 이번에는 코로나 사태로 일반 기업의 레버리지 경영이 문제가 된 것이다. 당장은 주주 이익이 많으니 좋아 보이지만 이런 근시안적 경영에 대해 기관 투자자들도 비판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예상보다 세계경제에 훨씬 큰 충격을 주면서 예상 밖 큰 손실을 볼 경우 완충재 역할을 해 줄 자기자본이 너무 적은 것의 문제점이 극명해졌기 때문이다. 자기자본이 너무 적으면 위기 대처 능력이 약화해 장기 성장 능력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재무 건전성이 장기성장능력을 좌우
자기자본 비중 클수록 이익 많이 내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세계 상장 기업을 대상으로 1999년 자기자본비율(총자산에서 자기자본이 차지하는 비율)이 어느 정도였는지 5단계로 분류한 뒤 지난 20년간 이익 증가율을 비교했다. 이익 증가가 가장 적었던 것은 5단계 중 자기자본비율이 가장 낮은(20% 미만) 1단계 기업들이었다. 이익이 3.4배 증가하는데 그쳤다. 실적이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경영이 흔들려 위기 이후 경쟁력을 높일 기회를 놓치기 쉽기 때문이다. 반면 자기자본비율이 60% 이상~80% 미만이었던 4단계 기업들은 이익이 6.5배 늘어나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불황 때에도 경영이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대규모 투자로 점유율을 확대하는 등의 공세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 기업이 초(超)저금리 환경에서 부담 없이 자금을 조달해 자사주를 매입하고 ROE를 올리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합리적인 재무 전략이었을 수 있다. SMBC닛코증권 모리타 조타로 수석전략가는 "글로벌 금융 위기의 원인은 의심할 여지 없이 미국 가계 부문의 과도한 레버리지였지만, 이번 위기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코로나 바이러스이며 기업 부문 레버리지 문제는 어디까지나 부산물"이라면서도 "코로나 사태의 종식이 늦어져 기업 손실이 더 커지면 자본 부족에 빠져 기업 파산이 늘어나고, 이를 기점으로 경제 위기가 더 심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주주 편중 경영 수정 움직임

ROE를 중시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오래 보유하고 싶은 기업에 투자하는 워런 버핏 역시 ROE가 높은 기업, 즉 계속 높은 이익을 창출하는 기업을 선택해 왔다. 그러나 고객에게도 지역사회에도 지지를 받는 것이 대전제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의 주요 역할 중 하나인 일자리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이 다양한 이해관계자(stakeholders)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은 미국에서도 확산해 왔다. '주주에게만 너무 치우쳤다'는 반성과 함께 수정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 공항의 유나이티드항공 티켓 카운터. 마스크를 쓴 직원이 혼자 서 있다.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 공항의 유나이티드항공 티켓 카운터. 마스크를 쓴 직원이 혼자 서 있다. / AP 연합뉴스
주주 최우선 경영 방침을 바꾸는 미국 기업들도 나오고 있다. 지나친 이익 중시 경향을 반성하고 직원 등 이해관계자나 환경·사회문제를 더 배려하는 것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브라이언 모이니핸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기업은 주주 환원이냐 공익이냐의 어느 한 쪽이 아니라 모두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고 말했다. ESG(환경·사회·지배 구조 개선) 투자가 각광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연기금과 자산운용자들 사이에서도 ESG 정보를 기반으로 투자 기업을 선별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 자기자본이익률(ROE)

경영자가 기업에 투자된 자본을 사용하여 이익을 어느 정도 올리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기업의 이익창출능력. ‘Return On Equity’의 첫 글자를 딴 줄임말이다. 기업의 수익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다. 당기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누어 산출한다. ROE가 높으면 주주가 맡긴 돈을 잘 활용해 돈을 많이 버는 회사로 평가받는다. ROE를 높이려면 제품·서비스를 개선해 계산식의 분자인 순이익을 늘리면 된다. 분모인 자기자본을 작게 해도 ROE는 오른다. 이 때문에 은행 차입으로 얻은 자금 등으로 자사주를 사들여 자본을 줄여 ROE를 끌어올리는 기업도 미국 등에서는 눈에 띈다. 세계적으로는 ROE가 10%를 넘으면 기업 경영을 잘한 것으로 본다. 주요 기업 기준으로 보면 미국은 18%, 유럽은 13% 이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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