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거나 or 웃거나… 투자 大家들도 실적 갈렸다

입력 2020.05.15 03:00

무엇이 대가들 희비 갈랐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전 세계 증시가 요동친 가운데 월스트리트 투자 대가들의 투자 실적이 엇갈리고 있다. 미국의 대표 헤지펀드 투자자인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3월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증시 폭락장에서 파생 상품에 2700만달러(약 330억원)를 투자해 100배에 육박하는 3조원을 벌어들여 주목받았다. 2017년 캐나다 최대 제약업체인 밸리언트에 투자했다가 28억달러(약 3조4000억원)의 투자 손실을 냈던 터라 그의 화려한 부활이 미국 현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애크먼, 부도 가능성 베팅… 100배 수익

애크먼이 과감하게 베팅한 대상은 투자등급 기업과 고수익 채권을 기반으로 한 파생 상품이었는데, 기업의 부도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가격이 오르는 상품이다. 그는 파생 상품으로 막대한 수익을 거두자 이례적으로 즉시 주주들에게 편지를 보내 "우리 펀드는 지난 23일 시장에서 투자금을 회수하면서 26억달러를 벌어들였다"고 발표했다.

애크먼은 3월엔 코로나 사태의 추이를 두고 "지옥이 다가오고 있다. 한 달간 뉴욕 증시 거래를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파생 상품 투자 성공 이후엔 시장 전망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그는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연방 정부와 재무부가 전례 없는 방식으로 금융시장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한시적이지만 의회는 곧 막대한 충격에 도움이 될, 미국 경제와 근로자들을 위한 입법안을 통과시킬 것"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주가 하락에 베팅해 얻은 파생 상품 수익을 이젠 주가가 상승할 것으로 보고 기존 보유 주식을 늘리는 데 쓰고 있다. 지난달엔 미국 유통업체인 로우스 지분을 46% 늘렸으며, 버크셔 해서웨이는 39%, 호텔 체인 힐튼은 34%, 레스토랑 브랜드는 26% 늘렸다. 지난 1월 매각했던 스타벅스 주식을 7억2000만달러어치 사들이기도 했다. 반면, 치폴레 지분을 지난 2월에 기존보다 3분의 1가량 줄였다. 현재까지의 주가 추이를 볼 때 4월 랠리에서 파생 상품에 더해 큰 수익을 거둔 것으로 추산된다.

사이먼스는 '퀀트 투자'로 24% 수익

짐 사이먼스 르네상스 테크놀로지 CEO도 폭락장에서 수익을 낸 대표 사례다.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의 간판 펀드인 메달리언 펀드는 지난 4월 중순까지 약 24%의 수익을 낸 것으로 집계됐다. 역대 최악의 폭락장에서 홀로 두 자릿수 수익을 낼 수 있던 주된 요인은 사이먼스의 독특한 투자 철학이다. 그는 수학 이론과 논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알고리즘을 만들어 시장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아내고 미래를 예측하는 '퀀트 투자'에 집중한다. 물리학자와 수학자 320명이 1000만줄 넘는 알고리즘을 고안해 특정 자산의 적정 가격과 실제 가격의 괴리(乖離)를 찾아낸다. 가령, 특정 기업 주식이 과거 패턴과 여러 거시적 요건을 종합해 볼 때 적정 가격보다 떨어졌다고 판단되면 컴퓨터가 이를 재빨리 포착해 사들이는 방식이다. 투자에 감정 개입을 원천 봉쇄하려는 의도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성공한 투자가가 내세우는 펀더멘털 분석, 가치 투자, 직관 등은 끼어들 틈이 없다. 지난 3~4월에 주식은 물론 안전 자산으로 여겨지는 금값마저 폭락하던 와중에는 손실을 다소 보기도 했으나, 3월 말부터 수익을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소수 기업 주식을 장기 보유하기보다는, 시장가격이 하락할 때 주식·채권·원자재 수천 개를 공매도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냈다. 컴퓨터 알고리즘을 활용하는 상당수 펀드가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씩 투자를 반복하는 고빈도매매(high frequency trad ing)를 하는 것과 달리, 수일에서 길게는 수개월까지 자산을 보유해 매도 시점을 찾는 것 역시 사이먼 대표만의 성공 비결이다. 1988년부터 연평균 수익률이 39%에 달하는 르네상스 펀드는 공교롭게도 시장이 폭락했던 2000년과 2008년에 평균보다 높은 수익을 올렸는데, 이러한 패턴이 2020년에도 반복되는 것이다.

버핏, 항공사 투자했다 혼쭐

반면,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좀처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올해 1분기 497억4600만달러(약 60조6700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창사 이후 최대 손실 폭이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작년 같은 기간엔 미·중 무역갈등 와중에도 216억6100만달러(약 26조4200억원) 순이익을 기록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코로나 사태로 버크셔 해서웨이가 보유한 주식 가격이 지난 3월 급락하면서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다. 손실액 중 상당 부분은 애플,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보유 중인 주식의 평가손실이다.

특히 버핏의 항공사 투자 실패는 월스트리트의 최고 화젯거리다. 버핏은 2016년부터 미국 4대 항공사에 본격 투자했다. 작년 12월 기준 버핏이 보유한 아메리칸항공 지분은 10%(약 4250만주), 델타항공 지분은 11%(약 7190만주), 사우스웨스트항공 지분은 10.5%(약 5360만주), 유나이티드항공 지분은 7.6%(약 2190만주)였다. 작년 12월 31일 종가로 환산하면 평가액이 약 102억5100만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그는 "총 70억~80억달러를 투자했지만 매도 시점엔 그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팔았다"며 "이번 투자는 내 실수였다"고 털어놨다. 구체적인 매도 금액이나 시점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4대 항공사 주가가 올 들어 약 45~70%씩 내린 점을 감안할 때 최소 절반 즉 수십억달러의 손실을 낸 것으로 추산된다. 버핏은 "항공업 시장은 완전히 변했고, 각 항공사는 한동안 엄청난 고정비용 부담에 시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업계 전망이 밝지 않으면 주식을 일부만 매도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 전략을 완전히 바꾸는 게 내 투자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손정의도 소비·운송 투자 많아 피해

손정의 회장도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2019회계연도(2019년 4월~2020년 3월) 실적 전망치 발표에서 영업 손실이 1조3500억엔(15조48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연간 기준으로 영업 적자를 기록한 것은 15년 만이다. 직전 회계연도의 2조3539억엔 흑자와 비교하면 심각하게 악화한 것이다.

소프트뱅크의 대규모 적자는 주로 투자 부문에서 발생했다. 특히 주력 펀드인 비전펀드에서 회사 전체 영업 적자보다 큰 1조8000억엔의 손실을 기록했다. 2019년 4~12월 적자 규모가 8000억엔이었는데, 올 들어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1~3월에 추가 손실을 1조엔 낸 것이다. 지난해엔 사무실 공유 사업을 하는 위워크 상장 실패와 차량 공유 사업을 하는 우버의 주가 급락이 실적을 끌어내렸다. 소프트뱅크의 투자 포트폴리오가 소비, 여행, 운송 등 코로나 사태의 악영향을 크게 받는 업종에 집중돼 있다 보니 투자 기업 전반에 걸쳐 손실이 커지는 모습이다. 예를 들어 비전펀드가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투자한 영국 위성통신 스타트업 원웹은 지난달 파산 신청을 냈다. 15억달러를 투입한 인도 스타트업 호텔체인 오요도 코로나발 여행객 급감으로 막대한 손실을 내고 있다. 투자한 기업 중에 중국을 기반으로 하는 회사들이 많은 것도 실적 악화를 부채질했다. 손 회장은 주가 하락 등이 이어지면서 지난달에는 4조5000억엔 규모의 자산 매각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버핏 "저가 매수할 시기 아니다"… 레이 달리오 "현금 보유는 투자자의 치명적 실수"

4월 美 증시, 33년만에 최고 반등… 대가들 향후 전망도 엇갈려

미국 주식시장은 지난 4월 한 달 기준 1987년 이후 33년 만에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마이너스 성장’ ‘실업자 3000만명’ 등 비관적인 소식이 잇따랐으나 증시는 급등한 것이다. 단기간에 너무 컸던 낙폭에 대한 일시적 반등이라는 주장과 경제활동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선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지금은 미국 주식을 저가 매수할 시기는 아니라는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그는 최근 주주총회에서 “아직 투자할 만큼 유망한 주식을 못 봤다”고 강조했다. 지난 3월 말 기준 버크셔 해서웨이가 보유 중인 현금성 단기 투자 자금은 1373억달러(약 168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말보다 93억달러(약 11조원) 늘었다.

그럼에도 버핏 회장은 코로나19 충격으로 3월 주가가 출렁였을 때도 주식 매입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 그는 자사주 17억달러(약 2조800억원)어치만 매입했다면서 “주가 상승 여력이 크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2008년 금융 위기, 2011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국) 재정 위기 때 우량주를 공격적으로 매수했던 과거 행보와는 대조적이다.

반면, 일부 전문가는 중앙은행이 대규모로 돈을 풀고 있어 현금을 보유하는 것이 적절한 전략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지난해부터 ‘현금은 쓰레기’라는 주장을 되풀이해 온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의 레이 달리오 회장은 최근에도 “현금 보유는 투자자가 저지를 수 있는 최대 실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변동성이 클 때 현금은 유혹적인 투자 수단이지만,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연간 약 2%의 구매력(실질 가치)이 하락하는 셈”이라며 “현금은 항상 최악의 투자”라고 말한다.

상당수 투자은행도 주가지수가 지난 3월만큼 폭락할 가능성은 적다고 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3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S&P500지수가 2000선까지 내려앉을 수 있다”고 경고한 것과 정반대로 최근 보고서에서 “최악의 시장 하락은 지나갔다”고 분석했다. 모건스탠리도 4월에 낙관론으로 돌아서며 올 연말 S&P500 전망치를 2700에서 3000으로 올렸다. JP모건은 한발 더 나아가 S&P500이 내년 초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 모두 연준이 발표한 수조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주식 가격 상승의 결정적인 원동력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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