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주주를 위하여? 사회를 위하여?

입력 2020.05.15 03:00

[송의달의 Global Edge] <6> 코로나 이후 부각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

#1 올해 1월 21일부터 나흘 동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 포럼)의 주제는 '결속력 있고 지속 가능한 세계를 위한 이해관계자들(stakeholders for a cohesive and sustainable world)'이었다. 이 행사를 주관한 클라우스 슈바프 WEF 회장은 "기업계는 이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WEF는 이에 맞춰 1973년 이후 47년 만에 다보스 선언(Davos Manifesto)을 개정,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강조하는 새로운 기준을 명문화했다.

#2 미국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188명을 회원으로 둔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BRT)'은 작년 8월 말 선언문을 발표했다. "고객 가치 제공, 종업원 투자, 협력 업체와의 공정하고 윤리적인 거래, 지역사회 지원, 장기적인 주주 가치 창출 모두가 기업의 필수적인 목적이다"라는 내용이다. BRT가 종업원 등 다른 이해관계자들을 주주와 동일선상에 놓은 것은 기념비적 전환이었다. 이 성명에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와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팀 쿡(애플), 메리 배라(GM) 등 유명 CEO 181명이 서명했다.

"배당 줄이고 고용 유지하라"

송의달 선임기자
송의달 선임기자

1970년대 이후 세계 자본주의를 지배했던 '주주(株主) 자본주의'가 퇴조하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부상하고 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주주(shareholder)뿐 아니라 고객, 종업원(근로자), 사업 파트너, 지역 공동체, 사회 전반 등 모든 이해관계자(stakeholder) 만족을 기업 경영 목표로 중시한다. 쉽게 말해 주주를 위한 배당이나 임원 보수 증가보다는 종업원의 해고를 피하고 거래처를 우선 배려하는 것이다.

1950~60년대 인기를 모았던 이 이론은 1980년대 일부 경영학자의 '이해관계자를 위한 경영'으로 되살아났으나 소수 의견에 그쳤다. 경영자와 투자자 대부분은 그동안 "기업의 유일한 사회적 책임은 모든 가용 자원을 동원해 이익을 늘리는 것이며, 기업은 오로지 주주들에게만 책임을 진다"는 밀턴 프리드먼(197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 주창한 주주 자본주의를 신봉해 왔다. 하지만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 위기로 시장 만능주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게 분수령이 됐다. '1% 대 99%'로 상징되는 경제적 양극화와 환경 파괴 같은 주주 자본주의의 문제점도 불거졌다.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 같은 반(反)기업·반시장 정서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 폭발하면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부활한 것이다.

뵈르게 브렌데 세계경제포럼 총재(전 노르웨이 외무장관)는 "분기 실적에만 매달리는 기업보다는 직원과 협력 업체 복지, 환경보호, 지역사회 개발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이 궁극적으로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고 자본주의를 지속시킬 것"이라고 했다. 작년 8월 엘리자베스 워런 미국 연방 상원의원(민주당)이 발의한 '책임 있는 자본주의법(the Accountable Capitalism Act)'도 같은 입장이다. 연간 매출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 이상 대기업들을 상대로 한 이 법안은 근로자와 지역 공동체를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자를 고려한 기업 의사결정과, 이사의 40%를 근로자가 선출할 것 등을 의무화했다.

"실체 없는 이미지 홍보 수단" 비판

디지털 혁명과 코로나 19 확산 등으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최근들어 더 힘을 얻고 있다. 글로벌 호텔 체인인 메리어트그룹의 아니 소렌슨 CEO는 "(코로나 여파로) 그룹 회장과 나는 올해 급여를 받지 않을 것이며 임원들 보수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말했다. 직원 급여 감축을 극소화하는 대신 최고 경영진이 희생키로 한 것이다.

GM·JP모건·HSBC·엑슨모빌 등은 코로나 19 위기 상황에서 사회적 책임을 위해 배당 및 자사주(自社株) 매입 중단을 선언했다. 45국 연기금·자산운용사를 회원사로 두고 있는 국제기업지배구조연대(ICGN)는 지난달 23일 투자 대상 기업들에 "배당을 늘리기보다 종업원 해고를 막는 게 더 중요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기관투자자들의 이런 변화는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가 바뀌는 증거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실체가 없으며, 시위자들을 달래고 기업 이미지를 좋게 포장하기 위한 선전 홍보 수단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은 "이해관계자의 한 축인 정부가 포함되지 않고 구속력 있는 수단이 없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공허한 선언에 그칠 것"이라고 했다.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도 "광범위한 입법 노력이 없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논의는 말장난에 가깝다"고 말했다.

선진국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적용하는 독일 대기업의 경우 주주와 근로자 대표가 똑같은 비율로 이사회와 감사회에 참여해 중요 결정을 함께 내린다. 그러나 이로 인해 상당한 경영 비효율성과 폐해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많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해관계자들이 경영 결정에 직접 '참여'할 경우 그 기업은 사회주의로 변질된다"며 "빈부 격차 해소와 지역사회 발전, 환경오염 같은 문제는 정부 몫이며, 기업 지배 구조나 경영 목표를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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