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프는 부러지지 않는다, 다만 구부러질 뿐이다

입력 2020.05.15 03:00

재기 노리는 일본 샤프

2018년 샤프가 선보인 휘어지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표시장치.
2018년 샤프가 선보인 휘어지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표시장치. / 블룸버그
지난 4월 15일 애플은 기존 신형 스마트폰보다 가격을 대폭 낮춘 보급형 스마트폰 모델 '아이폰SE'를 출시해 화제를 모았다. 이 스마트폰에 탑재된 액정패널의 공급업체는 일본 기업인 샤프와 JDI(재팬디스플레이) 2곳이었다. 또 삼성전자가 TV에 사용하는 액정디스플레이(LCD) 일부를 샤프의 액정패널 운영회사인 SDP를 통해 올해 하반기부터 조달할 예정이라는 일본 언론 보도가 이달 초 흘러나왔다. 지난 2016년 거래를 중단한 지 4년 만이다. 샤프는 글로벌 전자기업의 주요 공급업체로 다시 자존심을 세웠다.

샤프는 2016년 아이폰 하도급업체이자 대만 전자기업 폭스콘에 인수됐다. 이후 액정 분야의 강점을 살린 제품 등을 내놓으며 끊임없이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샤프에서 33년간 근무했던 나카다 유키히코 리쓰메이칸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출간한 '샤프의 재건' 저서에서 "샤프의 서비스 기획과 고부가가치 기기의 개발 능력을 폭스콘의 생산 거점과 결합하는 것만이 재기의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액정분야 강점 살려 스마트폰 제작

재기 노리는 일본 샤프
샤프는 액정 분야의 강점을 살려 일본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샤프는 거의 무명에 가깝다. 애플과 삼성의 독무대 속에서 맥을 못 추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샤프의 스마트폰 아쿠오스(AQUOS)는 지난해 일본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13.3%로 애플 아이폰에 이어 2위를 굳혔다. 일본 국내 스마트폰 업체 1위를 지켜오던 소니의 엑스피리아(Xperia)도 제쳤다. 샤프는 세계 최초로 LCD TV를 직접 개발했던 강점을 스마트폰 제조에 최대한 활용했다. 선명한 고화질에 절전형의 IGZO(이그조) 액정이 대표적이다. 샤프는 자신들의 핵심 역량이 적극적인 해외시장 공략이나 마케팅보다 기술력에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전통적으로 자국기업 제품을 구매하는 것에 익숙한 일본 소비자의 기존 성향과 맞물리며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재기 노리는 일본 샤프
모기업인 폭스콘이 모바일 부문을 샤프에 전적으로 위임했던 전략도 효과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샤프의 고바야시 시게루 통신사업본부장은 "샤프가 가진 기술을 살려 완벽한 방수기능을 갖추거나 가격을 더 낮춘 모델 등 스마트폰 시장에서 승부 가능한 기술 요소들이 아직 남아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부문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해 4~12월 ICT(PC·스마트폰 등) 부문 매출은 2677억엔으로 전년 동기 대비 51% 늘었다. 샤프의 8K에코시스템(액정패널·액정TV 등) 부문의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7.6% 줄었음에도 전체 영업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8% 늘어나면서 선방했다. 스마트폰을 포함한 ICT 부문이 전체 영업이익을 끌어올린 것이다.

첨단 IT 기업으로 재기 노려

2000년대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액정패널과 가전기업 대표주자였던 샤프는 첨단IT(정보기술) 기업으로 변신 중이다. 이를 주도한 건 2016년 8월 취임한 다이정우 사장이다. 그는 IT 부문을 샤프의 최대 약점으로 보고 2018년 도시바의 PC 부문을 인수했다. 그러면서 샤프의 다음 성장을 위한 핵심 역량으로 샤프 액정패널의 장점을 살린 8K(고화질)와 IoT(사물인터넷)를 내걸었다. 이시다 게이히사 부사장은 지난해 6월 사업설명회에서 "미래 사업 운영의 기본 틀은 초고화질 8K 기술을 입힌 제품들과 차세대 초고속통신인 5G의 조합"이라고 말했다. 이 2개의 키워드를 사업에 버무려 보안과 스마트오피스, 헬스케어, 교육, 스마트홈 등으로 사업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대표적 사업이 샤프의 TV와 에어컨, 스마트폰 등 각종 전자기기를 묶어 제공하는 스마트홈 서비스 '코코로홈'이다. 이 플랫폼 안에 서로 연결된 샤프의 전자제품만 271개(지난해 7월 기준)에 이른다. 또 보안업체인 세콤과 통신업체 KDDI, 전력 기업 등의 연계 기능을 얹어 소비자에게 필요한 서비스도 종합 플랫폼 안에서 한꺼번에 제공하고 있다.

플랫폼 설루션 부문도 점차 확장하고 있다. 지난달 8월에는 AI(인공지능)와 IoT의 소프트웨어 부문을 독립시켜 클라우드 설루션 전문회사인 'AIoT클라우드'를 설립했다. 이 자회사는 '일본판 슬랙(slack)'이라 불리는 기업용 화상회의 시스템인 '링크비즈'를 지난해 내놓았다. 최근 코로나 감염 확대로 온라인 수업이 확대되자 샤프는 지난달 일본의 일부 지자체 학교 65곳에 이 화상 시스템을 제공하기도 했다.

콘텐츠·교육·의료 부문 B2B 확대

샤프는 지난해 애플과 손을 잡고 아이폰의 액정패널 생산업체인 일본 JDI의 하쿠산 주력 공장 인수에 나섰다. 글로벌 시장에서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ODM(제조업체개발생산) 업체로서 더욱 기반을 닦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마카베 아키오 호세이대학원 교수는 최근 "글로벌 시장 환경에 대응하는 전략의 부재로 샤프는 글로벌 기업들의 하도급업체라는 이미지가 강해졌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이정우 샤프 사장은 지난해부터 기업 간 거래에 초점을 맞춘 B2B 부문의 매출 구성을 끌어올리는 중장기 경영 실험에 나섰다. 고화질 대형 화면 TV나 가전 등 기존의 소비자 비즈니스(B2C) 부문과의 매출 비율을 50:50으로 맞추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B2B 부문은 전체 매출의 35% 수준이다. 이를 위해 샤프는 콘텐츠와 교육, 의료 부문의 수요를 고려한 고화질의 8K 카메라나 편집 작업용 설루션 같은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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