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220만원, 12가지 업무, 365일 24시간 근무하겠습니다"

입력 2020.05.15 03:00

코로나로 빈 사무실에 그녀가 입사했다… 화이트칼라 로봇

美 IP소프트社 디지털 직원 어밀리아
올스테이트 보험 등 500여 회사서 근무

지난 12일 오전, 기자는 서울의 한 카페에 앉아 노트북으로 뉴욕의 디지털 가상 직원 채용 웹사이트에 접속했다. AI(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업체 'IP소프트'의 채용 화면에 등장한 디지털 가상 직원 어밀리아(Amelia)는 정장 차림의 금발 백인 여성이었다. 먼저 "24시간 근무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사람 같으면 면접장을 박차고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어밀리아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24시간 쉬지 않고 전 세계에서 일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예전 직장 경력은?" "콜센터 상담원과 회계 관리자 등을 포함해 총 12가지 업무를 담당한 경험이 있다."

"일이 없을 땐 뭐하느냐"고 묻자 가볍게 웃더니 "인간을 배우고 기계언어를 학습한다"고 했다. "희망 보수는?" "월급 1800달러(약 220만원)면 된다." 일은 잘할까? "컴퓨터가 고장났다. 어떻게 할 건가?"라고 묻자 "그 컴퓨터가 어떤 운영체제인지, 현재 어떤 에러 메시지가 뜨고 있는지 등에 대해 말해주면 해결책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IP소프트가 2014년 공개한 인간형 AI 챗봇 어밀리아와의 대화는 자연스러워 사람과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밀리아는 현재 글로벌 500여 회사에서 콜센터 상담원 등으로 일한다. 미국 올스테이트 보험사는 2017년 어밀리아를 채용한 이후 고객 상담 시에 첫 전화로 고객 불만이 해결되는 확률이 67%에서 75%로 올랐다.

딥러닝 덕에 인간 감정까지 파악

어밀리아 같은 인간형 AI 챗봇과 숫자만 알려주면 알아서 보고서까지 만드는 RPA(로봇 활용 공정 자동화) 등 일명 화이트칼라(white-collar·사무직) 로봇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컴퓨터 과학자들이 개발한 머신러닝(기계학습) 덕이다. 특히 머신러닝 과정 중 하나인 딥러닝(심화학습)을 통해 경험을 통한 지식 습득이 가능해졌다. 기존의 머신러닝은 일방적인 데이터 주입이 필요했다면 딥러닝은 AI가 스스로 데이터를 학습하고 시행착오를 거쳐 알고리즘을 개선해나간다.

예를 들어 AI는 '고양이'라는 동물을 알기 위해 적게는 수천 장에서 많게는 수만 장에 달하는 고양이 사진을 스스로 분석한다. AI는 고양이의 특징인 꼬리와 움직임, 수염 등을 수치화해 '고양이'라는 카테고리에 집어넣는다. 실제 고양이가 나타나면 '고양이' 카테고리와 비교하고 일치 비율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고양이로 인식한다. AI는 같은 방식으로 인간의 웃는 얼굴이나 화난 목소리 등의 데이터를 분석해 감정을 읽는다.

딥러닝 기술이 발전하면서 여기에 기반한 AI와 RPA 등 자동화 기술을 활용한 화이트칼라 로봇이 산업 현장에서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IBM은 2010년 왓슨(Watson), SAP는 2011년 하나(HANA), 뱅크오브아메리카는 2018년 에리카(Er ica) 등의 이름을 각각 가진 화이트칼라 로봇을 개발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가트너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2020년 10대 전략 IT(정보기술) 트렌드'에서 AI와 RPA 같은 자동화 수단이 결합된 초자동화 기술을 새로운 트렌드로 꼽았다. 글로벌 RPA 시장점유율 1위 유아이패스의 다니엘 디네스(Dines) 최고경영자(CEO)는 "옆에 실제로 있지는 않지만, 잡무에서 사람들을 24시간 자유롭게 해주는 게 화이트칼라 로봇"이라고 말했다.

고소득 근로자 일자리도 위험

하지만 화이트칼라 로봇의 확산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다. 로봇들이 블루칼라(blue-collar·현장직) 직업뿐 아니라 화이트칼라 직업까지 대체할 것이라는 불길한 전망 때문이다. 마이클 웨브(Webb) 미 스탠퍼드대 박사는 "그동안 AI나 로봇 등으로 인해 저임금 위주의 일자리가 위협을 받아왔지만, 이제는 엘리트라 불리는 사람들도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퍼 컴퓨터로 1만년간 수행해야 할 연산을 200초 만에 해결할 수 있다는 양자 컴퓨터의 발전도 이런 현상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칼 베네딕트 프레이(Frey) 영국 옥스퍼드대 마틴 스쿨 일자리 프로그램 총괄은 "산업혁명으로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들이 기계를 파괴했던 영국 러다이트 운동처럼 21세기에는 화이트칼라 로봇 파괴 운동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더욱 빨라질 화이트칼라 로봇의 발걸음과 노동시장에 끼칠 영향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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