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반드시 두번째 도전을 극적으로 이겨낸다

    • 이지훈 세종대 교수

입력 2020.05.15 03:00

[이지훈의 CEO 열전] <16> 스냅 창업자 에번 스피걸의 변신

스타트업 행사인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2019’에 참석한 에번 스피걸 스냅 창업자가 미소 짓고 있다.
스타트업 행사인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2019’에 참석한 에번 스피걸 스냅 창업자가 미소 짓고 있다. / 블룸버그
신화 속 영웅이 한 번의 도전으로 영웅의 반열에 오르는 경우는 없다. 영웅은 반드시 두 번째 도전을 맞는다. 이 도전은 첫 번째 도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생사를 좌우하는 가장 위험한 싸움이다.

두 번째 도전은 승리를 채 음미하기도 전에 너무 빨리 다가오기도 한다. 모바일 메신저 스냅챗(snapchat)을 운영하는 소셜 미디어 회사 스냅 창업자 에번 스피걸(Spiegel)이 그랬다. '10초 안에 사라지는 사진 주고받기'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창업해 투자를 이끌어내고, 거대 경쟁자 페이스북의 치명적인 추격을 물리치면서 기업공개(IPO)에 성공, 27조원짜리 회사를 만든 건 영웅이 보검(寶劍)을 얻은 것에 비교할 만했다.

실적 악화로 주가 곤두박질

승리의 축배는 오래가지 않았다. 생사를 위협하는 위기가 쓰나미처럼 닥쳤다. 스냅챗의 새로운 서비스들이 외면받고 앱 디자인 개편이 실패작으로 평가받으면서 사용자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2018년 한 해 동안 스냅챗 일일 사용자는 500만명 줄어들었다. 게다가 기업공개를 한 2017년 3월부터 2018년 말까지 17명의 고위 임원이 회사를 떠났다. 스피걸의 독선적인 리더십이 구설에 올랐다.

투자자들은 스냅이 돈을 벌 수 있을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2017년 매출은 전년보다 104% 증가했는데, 이익을 내기는커녕 적자가 6.7배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때 29.44달러까지 치솟던 주가가 4.82달러로 84% 곤두박질쳤다. 한 평론가는 이 회사를 자동차에 치여 죽은 동물에 비유했다. 총체적 난국이라 부를 만했다.

스피걸은 이 연옥에서 3년 가까운 사투를 벌였다. 그리고 지금 그는 두 번째 승전보를 울려도 이상하지 않은 지점에 와 있다. 2019년 한 해 동안 스냅챗의 일일 사용자는 3100만명 늘었고(2020년 3월 현재 2억2900만명), 매출은 45% 늘었으며, 주가는 196% 급등했다. 지난 3월 미국 경영 매거진 패스트컴퍼니는 가장 혁신적인 회사 50개를 발표하면서 스냅을 1위로 올렸다. 코로나19로 메신저 앱 사용이 늘면서 2020년 1분기 실적이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생각하기 힘든 대역전이다.

증강현실로 기존 한계 극복

스냅이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해 만든 각종 얼굴 사진 특수효과 서비스.
스냅이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해 만든 각종 얼굴 사진 특수효과 서비스. / 스냅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물론 훌륭한 판단과 결정, 그리고 혁신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증강현실(AR) 기술에 초점을 맞춘 콘텐츠 혁신이 주효했다.

스냅은 초기부터 증강현실 기술을 폭넓게 활용해 왔다. 스마트폰에서 이 앱을 열면 카메라 화면부터 나타나고 자신의 얼굴이 뜬다. 화면을 누르면 하단에 다양한 특수 효과 아이콘이 등장한다. 이를 이 회사는 '렌즈'라고 부른다. 원하는 렌즈를 누르면 얼굴에 특수 효과를 입힐 수 있다. 내 얼굴에 강아지 귀와 코가 달린다. 혀를 내밀면 강아지 혀처럼 쑥 내밀어진다.

스냅은 이 기술을 광고주에게 팔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에서 스냅챗 카메라를 열고 코카콜라 캔이나 맥도널드 감자튀김 쪽으로 향하게 하면 북극곰이 갑자기 테이블 위에 나타나는 식이다. 맥도널드는 자사 점포를 방문하는 경우에만 이런 기능이 작동하게 할 수도 있다.

스냅의 또 다른 신병기는 오리지널 콘텐츠다. 스냅은 공중파 채널이나 넷플릭스처럼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단순히 사용자 간 커뮤니케이션 매체에 머물지 않고, 사용자들이 콘텐츠를 즐기는 공간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는 드라마, 쇼, 다큐 등 장르상으로는 기존 콘텐츠와 다르지 않지만, 모바일에 최적화됐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스냅의 최고 인기 시리즈 중 하나인 '끝없는 여름(Endless summer)'은 이용자가 어디 있든 증강현실을 통해 드라마 주인공들과 함께 해변의 모닥불을 즐길 수 있게 했다. 이용자가 이 회사가 만든 10부작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이용자와 그 친구들이 각기 심슨 가족 비슷한 캐리커처를 만들어 등록하면 그것들이 마치 그들의 아바타인 양 드라마에서 연기한다. 똑같은 드라마인데 주인공만 이용자에 따라 바뀐다.

내면 성숙이 재기 발판

이지훈 세종대 교수
이지훈 세종대 교수
이런 신선한 혁신들의 이면에는 더 깊고 잘 보이지 않는 변화가 있다. 올해 만 서른을 맞는 젊은 리더 스피걸의 내면 성숙이 그것이다. 스피걸은 두 번째 시험을 겪으면서 많이 달라졌다. 예전의 그는 스티브 잡스의 나쁜 점만 본떴다는 평가를 받았다. 회사 모든 결정은 스피걸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중앙집권적이었다. 그는 비판을 싫어해 직원들이 솔직한 말을 하기를 꺼렸고, 변덕이 심해 결정을 번복하기 일쑤였다. 그는 파티광(狂)이지만, 공적인 공간에선 잘 어울리지 않고 몇몇 사람하고만 커뮤니케이션하는 내향적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스피걸은 회사의 문제들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많은 걸 새로 배워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경영자 코치로 유명한 스티브 마일스를 영입해 코칭을 받고, 경영서와 자기계발서를 읽기 시작했다. 아마존, 구글, 맥도널드, 허핑턴포스트, 21세기폭스 등에서 경험 많은 '올스타' 고위 경영팀을 영입했고, 이사회 멤버이자 전 P&G 회장인 AG 래플리 같은 원로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스티브 마일스는 패스트컴퍼니 인터뷰에서 "스피걸이 훨씬 더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분산된 리더십 모델로 진화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스냅의 회의는 예전처럼 일대일 형식이 아니라 대부분 팀 회의로 이뤄진다.

신화 속 영웅이 큰 시련을 극복하는 또 하나의 힘은 상극(相剋)을 융합하는 힘이다. 스피걸은 10초 안에 사라지는 소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과 영속적인 조직을 만드는, 어찌 보면 모순된 일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 그는 공동 창업자 바비 머피와 둘이서 일하던 벤처 기업의 창의성과 대기업 조직의 효율성이란 서로 다른 장점을 결합시켜야 한다. 이 과업은 아직 한 번도 이익을 내지 못한 스냅이 첫 이익을 내는 것보다 힘든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성공할 때 그는 비로소 진정한 영웅이 될 것이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CEO in the News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