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거의 모든 조직이 혁신이냐 쇠퇴냐 갈림길에 놓여

입력 2020.05.01 03:00

코로나 이후 비즈니스 전망

'창의 경영의 大家' 게리 해멀 런던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인터뷰

경영 전략가 게리 해멀 런던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가 2009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월드 비즈니스 포럼’에서 강연하는 모습. 해멀 교수는 “요즘도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자주 만난다”며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영의 미래에 대해 다들 고민이 많다”고 했다.
경영 전략가 게리 해멀 런던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가 2009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월드 비즈니스 포럼’에서 강연하는 모습. 해멀 교수는 “요즘도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자주 만난다”며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영의 미래에 대해 다들 고민이 많다”고 했다. /블룸버그
게리 해멀 런던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는 학술 논문을 다수 출판하는 정통 학자라기보단 경영 전략에 대한 현실적 조언을 글로 풀어내는 컨설턴트에 가깝다. 1995년 경영 컨설팅사 스트래티고스를 손수 세워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2000년 두 번째 책 '꿀벌과 게릴라(Leading the Revolu tion)'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명성을 얻었다. 이후 월스트리트저널, 이코노미스트, 포천에서 잇따라 '세계를 선도하는 경영 전략 전문가'에 뽑힌 이래 지금까지 활약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이번 코로나 사태 이후 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우선 코로나 확산으로 기업과 대학, 사회가 전반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얻게 됐다는 측면을 눈여겨봤다. 오는 8월 이런 통찰을 종합적으로 담은 신간 '인간주의(Humanocracy)'를 펴낼 예정이다.

현금 사용 줄고 대학도 온라인 강의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 물론 더 빨라진다. 해멀은 "뭘 살 때 지폐나 동전을 주고받다 보면 바이러스가 묻어 자기도 모르게 전파될 우려가 있지 않냐"면서 "신용카드나 스마트폰 결제, 온라인 상거래는 그런 위험을 극적으로 줄인다"고 설명했다.

원격 근무? 그동안 적잖은 대기업은 해보지도 않고 "만나서 얼굴 보고 일해야 한다"면서 원격 근무를 원천 봉쇄했다. 그런데 해멀이 최근 다수 글로벌 기업 담당자와 얘기해 보니 다들 "(사무실로 나오나 원격으로 하나) 뜻밖에 큰 차이가 없더라"고 전했다. 결국 원격·재택근무가 확산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얘기다.

대학도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학생들은 집에서 온라인으로 강의를 들어도 배우는 게 크게 다르지 않다면 굳이 비싼 수강료에 집세까지 물면서 학교 강의실로 찾아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수업료가 높은 경영대학원은 코로나 이후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수퍼 포털'이라고 하는 온라인 상거래 업체들 성장세는 로켓에 올라탔다. 그나마 온라인 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조차 이번엔 상당수가 어쩔 수 없이 온라인에 발을 들였다. '어 이거 생각보다 간단하고 더 편하네' 하고 깨달았다. 해멀은 "근근이 연명하던 전통 소매 업체, 기업들에 코로나 사태는 재앙이자 시한부 선고"라며 "사람들은 소비 습관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꾼 다음엔 좀처럼 오프라인으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직 경영에 주는 네 가지 시사점

사실 해멀은 이런 산업 생태계 변화보다 코로나 사태가 조직 경영에 어떤 시사점을 줄까를 놓고 분석을 거듭했다. 해멀이 이번 코로나 사태로 기업들이 각성해야 할 요소로 든 건 뭘까.

①데이터(data)의 중요성이다. 코로나 사태에서 데이터를 장악하고 있는 나라는 현명하게 대처했다. 어떤 식으로 바이러스가 작동하고 감염자가 어떤 경로로 이동하는지 알고 있어야 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데이터를 빠르게 확보하지 못하고 업데이트 주기도 들쭉날쭉하다면 위기 때 뒤처질 수밖에 없고 사태는 악화한다.

②속도(speed)다. 한국은 모범적이다. 새로운 코로나 검사 방식을 빠르게 승인하고 실행에 옮겼다. 이탈리아에선 관료주의가 코로나 확산 주범이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위원회를 만들고 토론을 거친 다음 처방을 내놓는 건 사태를 키울 뿐이다.

③순발력(improvisation)이다. 위기 상황에선 뭐가 맞는지 처음엔 모를 수 있다. 전문가들도 우왕좌왕한다. 그래서 다른 전략을 시도하고, 그게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변화가 오는지, 뭐가 사실이 아닌지, 빠르게 파악하고 즉석에서 수정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미국뿐 아니라 독일과 스위스 같은 나라도 이런 발 빠른 대처에 미흡했다. 마테호른이나 에베레스트를 등반할 때 정상으로 가는 길을 한 번에 찾기란 쉽지 않다. 여러 갈래 길을 탐색하고 조사한 다음 시도해보고 아니라면 과감히 돌아서야 한다. 지금 우리는 그런 갈림길에 서 있다.

④의사소통(communication)이 중요하다. 한국은 이번에 그 장점을 잘 발휘했다. 정보가 중앙 집중화되어 있고 활용할 수 있는 권한 폭이 넓은 것도 유리하게 작용했지만, 위기 상황에서 하향식을 고집하지 않고 현장에서 올라오는 정보를 새롭게 취득하고 적용하는 과정이 돋보였다. 미국은 관료주의의 전형을 보여줬다. 트럼프 행정부는 소통하지 않고 잘못된 정보에 바탕을 둔 판단을 계속 내려보내다 실패했다.

관료주의 폐해 수술할 기회

해멀은 코로나 사태가 기업이나 정부의 조직 문화에서 관료주의의 약점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강조했다. 전례 없는 위험에 직면했을 때, 관료주의의 나쁜 특성은 빠르게 불거진다. 그 가장 큰 위험은 리더에게 있다. 수많은 최고경영자(CEO)는 그들이 틀리는 순간에도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래서 구성원들은 복잡한 조직 꼭대기에 있는 초월적 자아를 가진 리더에게 끌려다닌다. 종종 위험하고 오만하면서 자신의 지혜와 힘을 과장하는 리더는 현실을 왜곡하고 최악의 결과를 가져온다.

해멀은 자신이 아는 미국 보건복지부 간부가 트럼프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기 한 달 전, 코로나 위기가 곧 닥칠 것이란 경고를 백악관에 전달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다소 일찍 경고한 탓에 트럼프 대통령의 비위만 상하게 했고, 결과적으로 예방 조치가 제때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탄했다는 것이다.

기업도 다르지 않다. 코로나 사태는 조직 질서에 급진적 혁신이 필요한 시기라는 뼈아프면서 값비싼 교훈을 줬다고 해멀은 말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화상 회의가 일상화하고 있다. 비즈니스 문화나 모델의 전환기다. 대기업은 과연 이 사태를 새로운 출발점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해멀은 조직 전체 직원의 17%만이 업무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고 했다. 나머지는 상상력을 발휘해 주도권을 가지고 일에 참여하려 하지 않는다. 지시하는 일만 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코로나 사태 같은 위기를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게 확인됐다고 해멀은 강조했다. 그는 "새로운 접근법과 새로운 해결책을 가지고 작은 실험을 할 때가 됐다"며 "코로나 사태는 전 세계 조직들이 혁신을 구축할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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