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이 한국 청년, 조용히 유니콘에 다가서다

입력 2020.05.01 03:00 | 수정 2020.05.01 18:39

[류현정의 New Innovators] <2> 김동신 센드버드 창업자 겸 CEO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기업용 채팅소프트웨어 개발 회사 센드버드(Sendbird). 한국 회사로 국내에선 다소 낯설지만  2017년과 2019년 미국 내 투자 유치에서 각각 1600만달러(약 197억원)와 1억200만달러(약 1255억원)를 조달,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 반열에 다가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에어비앤비와 슬랙, 드롭박스 등을 배출한 미국 굴지 창업사관학교인 Y컴비네이터 육성 대상에 진입하면서 창업 초기부터 화제를 뿌린 바 있다.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김동신 센드버드 대표를 만나기 위해 미 샌프란시스코와 새너제이 사이에 있는 산마테오로 향했다. 인구 10만명 정도 작은 도시 산마테오는 미국 실리콘밸리 창업 열풍에 힘입어 동반 성장하는 광역권 중 하나다. 집값 상승률이 샌프란시스코 일대에서 가장 높았고, 고프로(GoPro) 본사가 이곳에 있다. 센드버드 미국 사옥은 산마테오 역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다. 센드버드는 산마테오 말고도 서울, 뉴욕, 싱가포르, 런던, 벵갈루루에도 사무실을 냈다.
김 대표는 한국 게임업체 엔씨소프트에서 일하다 2007년 소셜 게임업체 파프리카랩을 창업, 5년 뒤 일본 업체 그리(GREE)에 매각했다. 2013년 워킹맘 육아 커뮤니티 스마일패밀리를 창업하면서 미국에 진출, 이후 스마일패밀리 메신저 기능을 기업용으로 발전시켜 센드버드를 만들었다. 
그는 "인증과 결제, 문자 전송, 채팅, 계좌 거래 등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따로 고르고 조립해서 최종 서비스를 만드는 시대가 왔다"면서 "소프트웨어를 자동차 부품처럼 거래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소프트웨어도 차 부품처럼 모아 조립

―소프트웨어가 부품처럼 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자동차를 생각해보자. 사실 100년 전 초기 자동차 회사들은 부품까지 직접 다 만들었다. 지금은 어떤가. 엔진 부품, 변속기, 섀시, 파워트레인, 타이어 등 주요 부품을 외부 업체에서 납품받아 조립한다. 
소프트웨어 산업도 자동차처럼 진화하고 있다. 인증 소프트웨어는 옥타(Okta)에서, 결제는 스트라이프(Stripe), 문자메시지는 트윌리오(Twilio)에서 받아 쓴다. 대부분 기업들은 이제 회사 운영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가져와 쓴다. 우리(센드버드)는 '채팅'이라는 부품을 만드는 회사인 셈이다. 
보통 기업들은 서비스에 필요한 채팅 기능을 직접 개발하지 않고 센드버드와 같은 전문 소프트웨어 회사의 제품을 온라인으로 가져와 쓴다. 세계 최대 신용카드 업체 비자가 은행 계좌 거래를 지원하는 플래드(Plaid)를 5조원 주고 인수하기도 했다. 이런 부품형 소프트웨어 기업 가치가 10조~40조원에 달한다." 
센드버드는 현재 야후, 딜리버리히어로, 레딧, 고젝, 라쿠텐, 페이티엠(Paytm), DHL, 국민은행, 퍼시스, 넥슨 등 한국은 물론, 외국 기업들을 주요 고객사로 확보하고 있다. 센드버드 소프트웨어 기반 채팅 서비스 이용자만 월 1억명에 달한다.

―소프트웨어가 일종의 부품처럼 진화하는 이유는

"글로벌 경쟁에서 기업들이 점차 핵심 서비스 개발에만 집중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게임 업체를 예로 들자면 그들은 게임을 잘 만드는 게 기본 목표다. 하지만 기업 활동을 하다보면 채팅이나 메신저 도구가 필요하다. 그걸 자사 인력으로 자체 개발할 것인가? 채팅 소프트웨어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상당한 개발 인력과 노하우를 투자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채팅 소프트웨어를 가져와 쓰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일반 사용자들은 센드버드 채팅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해당 서비스에 자연스럽게 연결돼 있어 별도 로그인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 기업이 마치 자체 개발한 채팅 프로그램인 것처럼 디자인을 바꾸기도 한다."
클라우드 덕에 'API 이코노미' 가능

―다른 회사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가져와 자기 서비스에 붙이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온라인으로 빌려 쓰는 클라우드의 광범위한 확산 덕분에 이런 게 가능해졌다. 기술적으로는 응용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를 이용하는 것이다. API는 서로 다른 소프트웨어와 서비스가 상호 교신할 수 있도록 한 일련의 규칙들을 말한다.

당신이 우버와 같은 택시 호출 서비스를 만드는 개발자라고 생각해보자. 구글 지도의 API, 트윌리오의 문자 전송 API, 스트라이프의 결제 API를 이용해 당신이 만드는 서비스에 이런 기능을 붙일 수 있다. 이런 조류가 만들어낼 거대한 생태계를 'API 이코노미'라고도 하는데 앞으로 소프트웨어업계 미래가 될 것이다."

―한국에선 API 이코노미 관련한 움직임이 잘 보이지 않는다.

"대기업이나 중견 기업 산하 SI(시스템통합) 업체들이 소프트웨어와 관련한 각종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라우드가 확산되면 양태가 달라질 것이다. 앞으로는 인공지능, 머신 러닝 소프트웨어도 부품 형태로 나올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에 도전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첫 번째 자금(시리즈 A)을 조달할 때 굉장히 힘들었다. 인맥을 통해 투자자들을 소개받아 일일이 만나고 안면을 트는 식으로 투자금 유치에 나섰는데 잘 통하지 않았다. 그건 한국식이었다. 미국 방식은 시스템과 프로세스로 움직이는 것이다. 시리즈 B를 조달할 때는 '투자사 상대 설명회 및 미팅 2주→후속 미팅 2주→투자협의서(termsheet·투자 조건을 요약한 문서) 검토→최종 서명'이라는 투자 업계의 표준 절차를 따랐다. 뉴욕에 있는 사모펀드 회사 타이거글로벌매니지먼트는 센드버드에 최종 5000만달러(약 615억원)를 투자했는데, 투자 담당자를 딱 한 번 만났다."
美 기업 인재채용 과정은 전쟁터

센드버드는 시리즈 B 유치 후 다자간 화상 통화 등 신제품 개발에 나섰으며 회사 성장을 가속화할 수 있는 임원급 인재를 끌어들이는데 총력을 쏟고 있다.

미국 채용 전문 회사(헤드헌터)와 계약을 맺고 임원 물색에 나섰다. 대형 헤드헌터들은 인사, 마케팅, 영업 담당 등 회사 마다 전문 채용 분야가 따로 있다. 십수 년 동안 해당 주특기를 가진 임원급을 끊임없이 관찰했기 때문에 인재 영입 과정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적다.
이들은 회사 성장 단계, 업종, 담당 분야를 꼼꼼히 분석해 최적 후보자들을 선별한다. 현재 센드버드는 직원수를 지금 200명보다 3~5배 늘릴 예정이라 이런 성장 과정을 직접 경험해본 직원을 선호한다. 
임원 후보자 평판은 5~10명까지 조사한다. 해당 후보자와 같이 일한 최고경영자(CEO), 팀장과 부하 직원까지 다양하게 장단점을 알아본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센드버드는 최근 인사, 마케팅, 영업 총괄을 각각 뽑았고 1명 당 평균 3개월 정도 걸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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