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의 유럽 진격을 막는 독일 패션 전사들

입력 2020.05.01 03:00 | 수정 2020.05.12 00:11

유럽 최대 온라인 패션몰 獨 잘란도

잘란도 경영진의 모습. 왼쪽부터 다비드 슈뢰더 CFO, 짐 프리먼 CTO, 루빈 리터 공동 CEO, 로베르트 겐츠 공동 CEO, 다비드 슈나이더 공동 CEO. /잘란도
독일 온라인 패션몰 세계에선 아마존보다는 이들이다. 2008년 독일 베를린에서 출발한 잘란도(Zalando). 청년 2명이 가정집 월세방에서 창업해 12년만에 유럽 최대 온라인 패션몰로 성장했다. 판매하는 패션 브랜드만 2000여개다. 
매출은 2013년 17억6200만유로에서 2017년 44억8900만유로, 2018년 53억8790만유로, 2019년 64억8250만유로(약 8조6800억원)로 수직 상승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가 추산한 독일 온라인 패션몰 거래량은 2014년부터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그 동력은 잘란도에서 나온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청년 2명이 월세방에서 창업

독일 오토 바이스하임 경영대학 동기인 다비드 슈나이더와 로베르트 겐츠는 미국 신발 소매업체 자포스의 고객 우선 서비스에서 착안해 신발 전문 온라인 쇼핑몰을 열었다. 처음엔 월세방을 사무실 겸 창고로 사용해 배송과 판매를 시작했다. 주택 지하실에서 상품을 포장하고 우체국에 직접 가서 택배를 부쳤다. 
초반엔 가시밭길이었다. 창업을 결심한 지 이틀 만에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지기도 했다. 잘란도는 그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말자는 의미에서 회사 좌우명을 '월세방에서 유럽 주식회사까지'로 잡았다. 2010년에는 대학 동기 루빈 리터가 세 번째 경영자로 합류했다. 이후 잘란도는 남성복과 여성복 등 제품군을 확장했고 성장세가 빨라졌다.

잘란도가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은 계기는 2010년 광고 캠페인 '행복의 외침'이 대박을 터뜨리면서다. 캠페인에는 자본주의 물신 사상을 비판하는 청년들이 나온다. 이들이 열심히 새로 생긴 자본주의 패션몰을 비난하고 있는데 그 중 한 여성에게 갑자기 잘란도 택배가 도착한다. 이 여성은 "단순히 샘플"이라고 변명하다가 소포에서 나온 예쁜 구두를 보고 환호성을 지른다. 이 유머러스한 광고에 대중들이 열광했고 잘란도 지명도가 높아지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그 바람을 타고 잘란도 매출은 2010년 한 해에만 600만달러(약 74억원)에서 1억5000만달러(약 1852억원)로 25배 뛰었다.

잘란도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탈리아와 영국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물류 시스템에 투자,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브리제랑에 첫 번째 물류센터까지 설립했다. 다음으로 과감하게 시도한 게 무료 배송과 무료 반품 서비스.
처음에는 비용만 증가하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무료 반품 서비스는 치수나 색상 등 문제로 실제 상품을 보기 전까진 살까 말까 망설이던 고객들이 대거 잘란도 쇼핑몰에서는 '일단 사고 보자'는 식으로 쇼핑 행렬에 가세하면서 유동 고객을 끌어모으는 '신의 한 수'가 됐다. 델핀 무소 잘란도 마케팅 담당 부회장은 "반품률이 높다는 건 그만큼 사람들이 더 많은 제품을 쇼핑 카트에 담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아마존 물류 전략 모방과 명품 판매

잘란도 대표 사업 전략으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아마존 모방'과 '원스톱 쇼핑'. 먼저 잘란도는 자동화 물류 센터를 구축하고 확장하는 데 집중했다. 미국 아마존 물류 방식을 열심히 따라 했다. 아마존처럼 잘란도 직원 절반 이상이 유럽 전역 물류 센터에서 일하고 있을 정도다. 작년에는 2억유로(약 2650억원)를 들여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14만㎡ 규모 유럽 최대 수준 자동화 물류센터 구축을 시작하기도 했다. 마소 두소 독일 경제연구소 교수는 "잘란도는 아마존 배송 물류 체계를 모방해 경쟁사들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도 조직적인 배송이 가능하게 하면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대표 전략인 '원스톱 쇼핑'은 립스틱부터 속옷, 외출옷 등 패션의 모든 것을 제공하는 내용이다. 뷰티 사업부에서는 300여 브랜드에서 1만개 이상 화장품을 제공한다. 패션 사업부 등에서도 수만여개 제품을 공급한다. 하지만 단순히 많은 물품을 판다는 것이 성공의 요소가 될 순 없다. 잘란도 경영진도 이를 인식하고 있었다.
경영진이 주목한 것은 명품 사업이었다. 잘란도의 2019년 전체 수익은 2018년보다 20%대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명품 사업 수익은 30% 넘게 증가했다. 작년에만 고객들이 잘란도 홈페이지에서 명품을 200만번 이상 검색할 정도였다. 이에 잘란도는 본격적인 명품 시장 진입을 발표하면서 취급하는 명품을 기존 20개에서 40개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잘란도 플러스’는 고객의 집까지 방문해 직접 반품할 물건을 수거해 가는 서비스다. /잘란도
중고 상품 앱 출시해 새 시장 개척

하지만 패션 산업 포화로 판매량이 떨어지는 위기도 겪고 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잘란도 고객 1인당 평균 구매 비용은 작년 57.10유로에서 56.60유로로 하락했다. "이미 고객들 옷장에 옷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상품 주문량은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패션 제품 구매 시 환경보호를 생각하는 청년들이 늘어난 것도 구매 비용 감소에 영향을 끼쳤다.
이에 잘란도는 2018년 '잘란도 옷장' 앱을 선보이고는 고객들이 중고 패션 제품을 거래할 수 있게 했다. 중고 제품도 패션의 한 분야이며 환경 보호에 잘란도가 신경 쓰고 있음을 어필한 셈이다. 루빈 리터 잘란도 공동 CEO(최고경영자)는 "'지속 가능성'이란 화두는 환경운동 뿐 아니라 기업에게도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Strategy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