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이후처럼… 산업 대격변 온다"

입력 2020.05.01 03:00

경영의 대가, 게리 해멀이 본 코로나 이후 비즈니스 트렌드

"세계 경제가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려면 적어도 2년은 걸릴 겁니다. 그것도 백신이 개발된다는 전제를 충족하면 말이죠." '창의 경영의 대가(大家)'로 불리는 게리 해멀(Hamel) 런던대 경영대학원(LBS) 객원교수는 일단 신중하면서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코로나19 전염병이 촉발한 경제·사회 위기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타격이 큰 사건"이라고 단언했다.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정치·사회·국제적으로도 지대한 후유증을 낳을 것이란 분석이다. 백신이 제때 개발되지 않는다면? 물론 회복 속도는 더 느려진다.

중국 의존 낮추는 계기

해멀은 앞으로 6개월은 전 세계 주식시장이 하향세를 면치 못하고, 미국 경제 회복은 전문가들 예상보다 더딜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로나 사망자가 일부 영국 감염학자 예상처럼 50만명(영국)이나 200만명(미국)까진 이르지 않겠지만, 경제 전반이 입는 충격은 더 깊고 더 오래갈 것이란 진단이다.

해멀은 이 과정에서 한 가지는 확신했다. 전 세계 생산 공정에서 중국 의존도가 본격적으로 낮아진다는 것. 이미 미국에선 트럼프 대통령을 필두로 중국 견제론이 거세게 일고 있어서 중국 기지들이 속속 철수하고 있었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가 불을 붙이고 있다는 것. 그 불길이 유럽으로 번질 것이란 관측도 덧붙였다.

이는 단지 중국에 국한한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공급망의 중대한 변화를 암시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싼 임금을 찾아 개발도상국으로 흩어졌던 글로벌 기업 공장들이 다시 자국으로 귀환하는 '온쇼어링(onshoring) 또는 리쇼어링(reshoring)' 현상이 심화된다는 의미다. 의료산업을 비롯한 주요 핵심 산업에 대해 이런 압력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이번에 미국은 마스크 제조분야 세계적 기업인 3M를 보유하고 있지만 생산공장은 대부분 해외에 있어 마스크 공급에 애를 먹는 역설적인 상황을 맞은 바 있다. 해멀은 "중국과 서구의 관계가 재구성(reset)되는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해멀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기업들이 소수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는 관료주의 모델을 타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료주의 의사결정 모델이 조직의 복원력과 창의성에 가장 큰 위협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백신을 개발할 창의력이 풍부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지만, 복잡하고 낡은 의사결정 과정 때문에 새로운 것을 시도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면 사태는 재앙이 된다. 대기업 같은 큰 조직의 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때가 됐다는 주장이다. 조직을 더 작은 단위로 쪼개서 바닥에서 실험하는 직원들에게 힘을 더 지원할 수 있도록 조직 구조를 분산해야 한다고 해멀은 강조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통제를 위한 조직이 아니라 창의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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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현국
기업이 새판 짤 기회

세계 3대 컨설팅사 중 하나인 베인앤드컴퍼니 파트너들은 "(코로나 사태가 지나간 뒤인) 2021년 세계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지택 대표는 "미국 포천 500 기업의 절반이 불경기에 생겼다"며 "지금 같은 불경기가 기업 입장에서는 새판을 짤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말했다. 파트너들은 특히 "지난 10년간은 스타트업들이 업계 선도기업의 점유율을 잠식하는 구도였지만, 당분간은 월마트, 네슬레, 코카콜라, P&G 등 전통의 선도기업들이 점유율을 늘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유통업에선 온라인 쇼핑이 완벽한 주류가 됐다고 분석했다.

코로나 사태를 통해 그동안 온라인쇼핑을 이용하지 않았던 고객까지 대거 유입되며 영향력이 더 커진 것. 월마트, 테스코 등 오프라인 강자들도 그동안 온라인쇼핑을 판매 채널을 다변화하는 수단 정도로 취급했지만 이제는 온라인에서 어떻게 돈을 벌지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코로나 위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을까. 해멀은 '겸손(humble)'이란 단어를 꼽았다. "그동안 인류는 오만했습니다. 거대 기업은 더 그랬죠. 세상을 부유하게 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자만에 가득 찼지만 결과적으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앞에서 무기력했을 뿐입니다. 무한 성장을 맹신했던 옛 세대들은 더욱 깨닫는 게 많았을 겁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인간은 좀 더 겸손해질 수 있고, 생태와 자연의 힘을 존중하게 될 겁니다." 
해멀은 이어 "이번 코로나 사태는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현실과 유리됐던 도시와 공동체가 서로 결집하고 사회적 응집력을 발휘하면서 곤경에 처한 이웃에 대한 공감대를 더 키우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인류에 대한 중대한 시험인데, 우리는 무사히 합격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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