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5900조원 "중국판 뉴딜의 맛을 보여주마"

입력 2020.04.17 03:00

'코로나 폐허' 재건 나선 중국의 신기건(新基建) 부양책

7개 전략분야 선정
13만개 5G 기지국을 연내 60만개로 늘려
고속철도 2000㎞ 특고압 설비 12개도 올해안에 신설·착공
공공 전기차 충전소 4만8000곳 신설
데이터센터·AI에도 투자자금 쏟아붓기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지난 3일 중국 서부 충칭에서 '신(新)인프라 프로젝트' 착공식이 열렸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모처럼 열린 공식 행사였다. 참가자들은 전부 마스크를 썼고 일부는 화상 통화로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충칭시는 코로나 사태로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5G(5세대 이동통신) 기지국 확대 등 인프라 사업 28개에 총 1054억위안(약 18조14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현재 1만2700개인 5G 기지국은 연말까지 3만개 이상으로 늘어난다. 1년 만에 인구 3000만명인 충칭시 전체에 5G 통신망이 깔리게 되는 것. 전 세계가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확산세가 꺾인 중국에선 5G를 중심으로 인프라 투자 바람이 불고 있다. 현지에선 도로, 철도, 항만 등 기존 인프라 투자와 구별해 '신기건(新基建)'이라고 부른다. 이른바 신인프라 투자 프로젝트다.

남부 광둥성은 지난 6일 500억위안(약 8조6000억원)을 투자해 5G 기지국 6만개를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북부 허베이성은 연초 1만개 확충 계획을 1만5000개 이상으로 늘려 잡았다. 차이나모바일 등 국영 통신 3사도 올해 5G 투자 규모를 작년보다 4배 이상 늘어난 1803억위안(약 31조원)으로 발표했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제 중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중국은 지난 2월부터 크고 작은 부양책을 발표해왔는데 그동안은 강도 높은 인프라 투자 대신 세금 인하, 납부 기한 연장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했다.

5G ·고속철·AI 등 일곱 분야에 집중

신인프라 투자 계획이 공식화된 것은 지난달 4일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코로나 방역 및 경제 안정화 관련 회의. 이 자리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5G망 구축, 데이터센터 건설 등 신형 인프라 건설을 서둘러야 한다"고 천명했다. 상무위원회가 꼽은 신인프라 사업은 모두 7개로 5G 통신망 확충, 고속·도시철도 노선 연장, 산업인터넷(스마트공장) 확대, 특고압 설비 확충, 데이터센터 추가 건설, AI(인공지능) 투자, 전기차 충전소 확대 등이다.

이 중 진행 속도가 가장 빠른 분야는 5G 통신망 확충이다. 중국 당국은 AI,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 등 다양한 신산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5G 네트워크를 대표 신인프라로 보고 있다. 목표는 지난해 13만여개였던 기지국을 올해 5배 수준인 60만개 이상으로 늘리는 것. 이는 5G 서비스를 처음 상용화한 한국(10만개)의 6배 규모다. 코로나 사태 전 목표는 40만개였다.

다른 사업들도 속속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중앙정치국회의 자료 등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2000㎞ 이상의 고속철도 노선을 신설할 계획이다. 올해 착공·완공하는 특고압 설비는 총 12개로 투자 규모는 1500억위안(약 25조9000억원)이다. 중국 발전개혁위원회 산업발전부 차이룽화 부국장은 "올 한 해 전기차 충전기 분야에만 100억위안(약 1조7000억원)을 투자할 것"이라며 "전국에 공공 전기차 충전기 20만개와 개인 전기차 충전기 40만개를 만들고, 공공 전기차 충전소 4만8000곳을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정보통신연구원은 올해 산업인터넷 투자가 활성화하면서 중국 경제성장에 대한 산업인터넷의 기여도가 지난해 9.9%에서 올해 11%를 넘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신인프라 투자 프로젝트에 대해 1930년대 미국이 인프라 투자로 대공황을 극복한 것에 빗대어 '중국판 뉴딜'이란 말도 나온다. 션젠광 JD파이낸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 사태로 전 세계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신인프라 투자는 단기간에 일자리를 늘리고 내수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테슬라'로 주목받고 있는 전기차 제조업체 니오(NIO)의 상하이 쇼룸에 전기차가 전시되어 있다.
'중국의 테슬라'로 주목받고 있는 전기차 제조업체 니오(NIO)의 상하이 쇼룸에 전기차가 전시되어 있다. / 블룸버그
중국 전역에 5G 통신망이 깔린 모습을 형상화한 사진.
중국 전역에 5G 통신망이 깔린 모습을 형상화한 사진. / 바이두
코로나 사태를 디지털 성장 기회로

신인프라 투자는 5G 통신망, 데이터센터 등 신성장 산업의 기반이 되는 시설에 돈을 부어 코로나 충격 탈출과 미래 투자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시도다. 공격적인 부양책인 셈이다. 이에 대해 왕웨이중 광둥성 부서기는 "신인프라 건설로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성장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런쩌핑 헝다연구원 원장은 "중국 경제가 '중진국 함정'을 뛰어넘어 질적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중요한 지렛대"라고 했다.

코로나 사태가 신인프라 투자를 촉진했다는 분석도 있다. 샹리강 중국 정보소비연맹 이사장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격리된 중국인들은 처음으로 5G 등 신산업의 효율성과 필요성을 체감했다"고 말했다. 중국은 확진자의 격리와 동선 추적에 AI 기술을 적극 활용했다.모바일 메신저 위챗을 통해 QR코드 통행증을 발급하기도 했다.

투자 대상을 일곱 가지로 특정한 것은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오히려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경험 때문이다. 아티프 안사르(Ansar) 영국 옥스퍼드대 사이드 경영대학원 연구원은 "지난 30년간 중국이 투자한 인프라 사업의 절반 이상이 적자를 냈다"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썼던 4조위안대 초대형 부양책도 지방정부 부채 급증, 부동산 가격 폭등, 부실기업 양산 등 부작용이 더 컸다"고 말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도 "대규모 투자로만 경제성장을 자극하려는 시도는 이제 현실적이지 않다"며 "좀 더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인프라 투자가 눈앞의 효과만 노리는 비상 대책이 돼선 안 된다는 얘기다.

5900조원 부양책 발표도 임박

구체적인 투자 규모는 조만간 열릴 예정인 전국인민대표회의(한국의 국회 격) 이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언론들은 "여기서 신인프라 투자 등 역대급 경기 부양책을 발표할 가능성이 크다" "그 규모가 총 34조위안(약 590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는 중국 GDP의 30%가 넘는 수준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부양책(4조위안)의 8배가 넘는다. 시장에선 이 중 신인프라 투자액이 1조~2조3000억위안(약 172조~396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국은 지난달 27일 열린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재정 정책을 한층 적극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면서 "재정 적자율을 적절하게 높여 특별국채를 발행하고 지방정부의 특수목적채권(지방채) 발행 규모를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당국이 특별국채를 발행하는 것은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20여년 만이다.

중국 당국이 또다시 고강도 카드를 꺼내려는 것은 그만큼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17일 중국 국가통계국의 1분기 GDP(국내총생산) 발표를 앞두고 중국 내에서도 1분기 마이너스 성장 전망이 우세하다. 루정웨이 싱예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마이너스 4.1%, 량훙 중국국제금융공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마이너스 9.3% 성장을 예상했다. 지난해 6.1% 성장했던 중국 경제는 올해 6%는커녕 역성장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IMF(국제통화기금)도 14일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6.0%(올 1월 전망치)에서 1.2%로 하향 조정했다. 특단의 대책이 불가피한 상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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