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속에서도 전세계를 닌텐도 열풍에 빠지게 한 사나이

입력 2020.04.17 03:00

'닌텐도의 힘' 보여준 후루카와 슌타로 사장

26년 전 닌텐도에 직접 편지 써 입사한 경영·판매 기획通… 개발엔 일절 관여안해
텐센트와 파트너십… 두 번 실패한 중국門 활짝 열어젖혀
"오락 비즈니스엔 천국과 지옥뿐… 잘나갈 때 고삐 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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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도쿄에서 열린 경영방침 설명회에 참석한 후루카와 슌타로 닌텐도 사장. 그는 게임 개발자의 고유 업무에 관여하지 않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내세우면서도 미래 수익 모델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 블룸버그
코로나 사태로 세계 곳곳에서 외출 자제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이른바 '집콕 소비'가 확대되고 있다. 일본의 게임 명가 닌텐도는 최대 수혜 기업 중 하나다. 지난 3월 20일 출시한 가정용 게임기 닌텐도스위치의 '동물의 숲' 게임 시리즈는 발매 16일간 일본에서만 게임소프트 판매 303만1784개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한국에서도 한정 판매 수량이 품귀 현상을 빚었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공급에 차질을 빚자 지난 8일 닌텐도는 게임기의 일시 출하 중지를 발표했다. 닌텐도는 수퍼마리오, 포켓몬고에 이어 동물의 숲으로 다시 한 번 저력을 입증했다.

게임 개발 경력 없는 회계·기획 전문가

닌텐도의 힘을 보여준 경영 수장은 누구일까. 올해로 3년째 닌텐도를 이끌고 있는 후루카와 슌타로(古川俊太郞·48)사장이다. 동물의 숲이 열풍을 일으키면서 그의 경영 행보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는 지난 2018년 취임 발표 기자회견에서 "(주력 제품인) 닌텐도스위치의 판매 확대가 최우선 목표다"라고 포부를 밝혔는데 '동물의 숲'의 인기로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다.

기미시마 다쓰미 전 사장은 후루카와 사장의 오랜 경영 관리 경력과 풍부한 해외 경험을 높이 사 일찍이 그를 사장 적임자로 발탁했다. 기미시마 전 사장은 그를 "경영 전반을 두루 내다보고 지시를 명확하게 내린다"고 평가했다. 수학에 밝았던 후루카와 사장은 1994년 입사 후 줄곧 회계를 전담하며 2015년 경영기획 총책임자 자리까지 오른 실무 전문가다. 게임 개발 경력은 없지만 제품 판매 기획에 뛰어난 수완을 발휘했다. 그는 지난 2017년 닌텐도스위치의 판매기획 총책임자로 판매 확대에 공헌했다. 또 독일 현지법인에 11여년간 주재하며 2006년 발매된 운동형 게임기인 '위(Wii)'의 유럽 시장 판매 확대에도 크게 기여했다.

게임광… '닌텐도 키즈' 출신

후루카와 사장의 닌텐도 인연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닌텐도는 1983년 당시로선 획기적이던 가정용 게임기인 '패미컴'을 시장에 내놓으며 세계적으로 게임 열풍을 일으켰다. 후루카와 사장도 학교 수업을 마친 후 곧바로 집으로 달려가 바닥이 닳아질 정도로 앉아서 게임에 열중한 '닌텐도 키즈'였다. "잘하는 분야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교육 원칙을 가진 그의 아버지는 게임광인 아들을 말리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만화영화 '철인 28호' 초기 제작에 참여한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작가인 후루카와 타쿠(古川タク)씨다. 아톰의 원작자 데즈카 오사무가 초대 회장을 지낸 일본 애니메이션협회의 현 회장이기도 하다. 후루카와 사장은 와세다대 졸업을 앞두곤 채용공고도 내지 않았던 닌텐도 인사 담당자에 직접 쓴 편지를 보내 합격한 일화도 있다.

닌텐도의 주력 제품인 가정용 게임기 '닌텐도 스위치'.
닌텐도의 주력 제품인 가정용 게임기 '닌텐도 스위치'. / 닌텐도
닌텐도 매출·영업이익 추이 / 주력 제품 '닌텐도 스위치' 판매
게임 개발자 업무에 전혀 관여 안 해

후루카와 사장은 지난 1월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뷰에서 "게임은 생활필수품이 아니어서 변덕스러운 고객은 언제라도 이탈할 것이고 이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락 비즈니스는 천국과 지옥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조직이 잘나갈 때일수록 더 고삐를 바짝 죌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닌텐도는 신형 게임기의 제품 수명을 약 5년으로 잡는다. 현재 주력 제품의 위세와 인기가 영원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동물의 숲 열풍이 일어나기 전인 지난해 12월 골드만삭스는 닌텐도의 주식투자 등급을 낮추기도 했다. 닌텐도는 항상 치열하고 냉혹한 오락 시장의 최전선에 서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후루카와 사장은 "흥미롭고 새로우며 놀라운 경험을 제공하는 캐릭터와 놀이를 계속해서 개발한다면 닌텐도를 원하는 수요는 지속할 것"이라면서 자신감을 내비쳤다.

닌텐도는 중장기 경영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수익 위주의 목표는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하는 참신한 게임 개발에 장벽이 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후루카와 사장은 닌텐도의 기존 경영 원칙을 그대로 따라 게임 개발자의 업무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또 선대 경영자들의 경영 좌우명인 '잘 안 풀릴 때 서두르지 말고 침착하게, 잘나갈 때 담담하고 묵직하게(失意泰然得意冷然)'도 지켜가고 있다.

구독 모델과 캐릭터 사업 새로 도입

후루카와 사장은 새로운 수익 모델로 닌텐도의 경쟁력 강화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구독형 수익 모델과 캐릭터 사업이 대표적이다. 그는 "닌텐도가 성공하려면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해야 한다"면서 "이는 자금 흐름을 탄탄하게 하고 닌텐도가 꾸준히 성장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후루카와 사장의 지적은 닌텐도가 가진 수익 모델의 근본적 한계 때문이다. 닌텐도는 지난해 전체 매출의 90% 이상을 게임 기기·소프트웨어 판매에서 벌었다. 게임기 판매 상황에 따라 닌텐도의 전체 실적이 요동칠 수밖에 없어 수익 구조가 취약하다.

후루카와 사장은 이미 두 번이나 실패를 경험한 세계 최대 게임 시장인 중국의 문도 다시 두드렸다. 승부수는 중국의 최강 IT 기업인 텐센트와의 파트너십이었다. 그는 텐센트가 가진 대화 앱과 동영상 플랫폼을 활용해 닌텐도의 킬러 콘텐츠인 수퍼마리오와 포켓몬스터 등 캐릭터 사업을 키우겠다는 야심을 밝혔다. 그가 2018년 9월 시작한 구독형 온라인 게임 서비스 '닌텐도 스위치 온라인' 이용자도 지난해 6월 1000만명을 넘었다. 매달 일정한 요금을 받는 수익 모델 덕분에 352억엔을 벌어들였다. 지난해 11월엔 미국 뉴욕에 이어 도쿄 시부야에 세계 두 번째 닌텐도 캐릭터 판매 직영점을 열었다. 이곳에서 다양한 캐릭터 제품을 판매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올해 안에는 오사카 테마파크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전용 테마 공간도 마련할 계획이다.


한 개발자가 19년간 공들인 '동물의 숲' 게임

닌텐도의 신작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사진>은 일본과 한국뿐 아니라 미주 시장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20일 기자가 '모여봐요 동물의 숲'을 직접 70여 시간 동안 해 보고 게임 요령을 알려 주는 기사를 실었다. 닌텐도의 열풍을 반영하는 진풍경이다. 미 경제지 포브스는 지난달 "닌텐도의 골수팬들은 다시 한 번 기상천외한 모험의 세계에 푹 빠졌다"면서 인기 요인을 분석한 기사를 실었다. 영국은 동물의 숲이 출시된 첫 주 게임기 판매 대수가 전주보다 3배 이상 급증했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 게임 모형.
'모여봐요 동물의 숲' 게임 모형. / 닌텐도
닌텐도 게임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게임을 만든 주역들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발매된 동물의 숲은 닌텐도의 개발프로듀서인 노가미 히사시(野上恒)와 게임디렉터인 교고쿠 아야(京極あや)가 지난 2012년 11월부터 7년 동안 개발에 매진해 탄생했다. 지난 2001년 4월 처음 선보인 동물의 숲은 닌텐도 특유의 '긴 호흡'이 결실을 맺은 대표적 사례로도 손꼽힌다. 노가미 프로듀서는 무려 19년 동안 이 게임 개발을 지휘하고 있다. 덕분에 2013년 '튀어나와요 동물의 숲'과 2015년 '동물의 숲 해피홈 디자이너' 등 후속작들도 시장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동물의 숲은 시리즈마다 특유의 세계관을 제공하며 게임 입문자가 즐기기에도 손색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동물들이 모여 사는 외딴 섬에서 재료들을 모아 생존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고,무인도를 원하는 공간으로 꾸미는 일에 사람들은 푹 빠졌다"라고 전했다. 교고쿠 디렉터는 지난달 한 인터뷰에서 "마치 새로운 세상에 들어온 듯한 몰입감을 게임 개발에서 가장 중요시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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