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충격' 이어 산유국 치킨게임… 세계 유가 대혼란

입력 2020.04.17 03:00

석유 전쟁
한국엔 저유가 찬스?

러·사우디 증산 경쟁… 유가 한때 10달러대
사우디·러시아·미국 원유 생산비 9:19:35
한국, 일시적으론 호재… 장기화 땐 수출 격감
美 셰일업체 줄도산에 트럼프 "제발 감산을"

이미지 크게보기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2018년 11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주요 20국(G20) 회의 개막식에서 서로 쳐다보고 있다. / 블룸버그
지난달 중순 스위스계 에너지 기업인 머큐리아는 미국 와이오밍산(産) 고유황유(아스팔트용)의 매입 가격으로 '-19센트'를 제시했다. 미국 석유 생산업체인 셰일가스(원유) 채굴 기업들이 넘치는 원유를 저장할 곳이 마땅치 않자 돈을 받고 원유를 가져가겠다는 제안을 내놓은 것이다. 글로벌 원유 가격이 30년 만에 최대 폭으로 떨어지는 등 최근 원유 시장이 요동치자 벌어진 진풍경이다.

전 세계를 뒤흔드는 '역(逆)오일쇼크'의 발단은 지난달 6일 열린 'OPEC(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 회의(OPEC+ 주요 산유국 10곳)였다. 감산 시한을 연장하는 안에 러시아가 어깃장을 놓으며 협상이 예상치 못하게 결렬됐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주축으로 한 OPEC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비(非)OPEC 국가들의 글로벌 '감산 동맹'이 3년여 만에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원유 시장의 맏형 격인 사우디는 예전처럼 중재에 나서는 대신 국영기업인 아람코에 즉각 증산(增産)을 명령, '치킨 게임'의 총성을 울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이에 질세라 즉각 원유 생산량을 늘리며 맞받아쳤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가뜩이나 원유 수요가 격감하던 와중에 시장에 원유마저 흘러넘치자, 올 초까지 배럴당 50달러 선에서 움직이던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지난달 말 배럴당 10달러 선까지 추락했다. 배럴당 30~40달러 선에서 거래되던 캐나다·미국 등지의 셰일가스도 배럴당 4달러, 즉 커피 한 잔 값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국제 원유 시장이 패닉(공황) 상태에 빠졌다.

1000만 배럴 감산안, 유가 안정에 미흡

그동안 국제 원유 시장의 안정적인 흐름을 지탱해온 것은 사우디와 러시아의 동맹이었다. 2010년 무렵부터 미국이 셰일가스 생산을 본격화하자, 두 나라는 2016년 떨어지는 국제 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하루 100만배럴 감산에 전격 합의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 5년간 셰일가스 채굴량을 늘리며 세계 1위 산유국으로 등극했다. 그 바람에 원유 3강(强)의 셈법이 지정학적 요인과 함께 한층 더 복잡해졌다.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은 역시나 맏형 격인 사우디이다. 사우디의 원유 생산 비용은 배럴당 9달러, 러시아는 19달러, 미국 셰일가스는 35달러 수준으로 여겨진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표밭'이자 미국의 원유 패권을 지탱해 온 셰일가스 기업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미국 대형 셰일가스 업체인 옥시덴탈은 설비투자를 절반으로 줄이고 종업원의 급여를 30% 깎아 간신히 생산 단가를 20달러 선으로 끌어내렸다. 그러나 조달 금리가 연 9%까지 치솟는 등 한계에 내몰리고 있다. '와이팅' 등 일부 중소형 셰일가스 기업은 파산 신청을 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결국 지난 9일 러시아와 사우디 모두 약 한 달간의 '치킨 게임'을 견디지 못하고 1000만 배럴 규모의 감산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세계 원유 시장엔 여전히 불안감이 맴돌고 있다. 감산 규모가 국제 유가를 30달러 선에서 방어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의 여파가 여름까지 이어질 경우 수요 격감으로 감산 효과가 희석될 수 있다는 뜻이다. 세계 에너지 분야 최고 전문가인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파티 비롤 사무총장은 WEEK LY BIZ 인터뷰에서 사우디와 러시아가 하루 1000만배럴 감산을 이행하더라도 코로나 사태로 인한 수요 붕괴가 회복되지 않으면 유가 회복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美, 수입 축소땐 아시아로 원유 흘러들어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원유 정책 브레인'으로 활동했던 로버트 맥널리 래피던에너지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을 살리기 위해 원유 수입 축소 조치를 취하면 사우디 등지서 흘러넘치는 원유가 아시아나·유럽으로 향하면서 한국 등 대다수 원유 수입국의 유가가 더 큰 하락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원유 수입국인 한국은 국제 유가가 하락하면 휘발유 가격과 전기료를 내릴 여지가 생기고 국내 기업들의 생산 원가 부담도 줄어든다. 다만 이번 유가 폭락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글로벌 경기 침체 영향도 커서 호재 효과는 작을 전망이다. 산유국과 신흥국이 저유가 충격을 받으면 정유업체 등 한국 기업의 수출이 큰 폭으로 감소하기 때문이다. 사우디·러시아·미국이 삼국지를 벌이고 있는 석유 전쟁의 배경과 전망을 짚어 봤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Cover Story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