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초 된 막걸리는 못먹지만 식초 탄 막걸리는 기가 막혀요"

입력 2020.04.03 03:00

박순욱의 술술경영 <5> 양주도가 김민지 부대표의 '상극(相剋) 경영'

'국민술' 막걸리의 상극(相剋)은 식초다. 막걸리는 식초를 만나면 본성을 잃고 곧바로 식초가 되어 버린다. 오래전부터 양조장에서 내려오는 얘기가 있다. '막걸리와 식초는 같은 양조장에서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양조장 한쪽에선 막걸리를 빚고, 같은 양조장 다른 공간에선 식초를 만든다고 하자. 결론은 두 곳 다 식초가 나온다. 막걸리가 식초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식초 제조 과정에서 생기는 미생물(식초균)들은 공기를 타고 막걸리 발효탱크로 옮겨 온다. 그러면 막걸리는 끝이다. 식초균들이 막걸리 발효에 개입해 막걸리 산도(신맛의 강도)를 급격히 올리기 때문이다.

막걸리와 식초의 '잘못된 만남'은 이뿐이 아니다. 여름철 마시다 남은 막걸리를 상온에 두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역시 막걸리 속 미생물들의 활발한 작용으로 막걸리는 거의 식초가 돼 버려 마실 수 없게 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막걸리 양조장에선 식초, 좀 더 구체적으론 미생물인 식초균의 침입(공기 중 유통)을 가장 경계한다. 막걸리를 망치는 주범 중 하나가 식초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주류 업체인 양주도가가 막걸리에 식초를 넣어 '별산막걸리'를 만든 것이다. 막걸리가 가장 싫어하는 식초를 넣어 막걸리를 만들다니? 별산막걸리는 이 독특한 제조법이 전문가 사이에 높은 평가를 받아 조선미디어그룹의 경제 전문 온라인 매체인 조선비즈가 주최한 올해 대한민국주류대상 행사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별산막걸리를 개발한 양주도가 김민지 부대표를 만나, 식초와 막걸리의 절묘한 조합을 어떻게 만들게 됐는지 물어봤다. 양주도가는 경기 북부의 소규모 신생 양조장이다. 양조장 설립 후 작년 9월 첫 제품으로 별산막걸리를 만들었다.

김민지 부대표
박순욱 기자
예전부터 막걸리와 식초는 상극

―별산막걸리는 어떤 술인가.

"다른 막걸리에서 맛볼 수 없는 독특한 신맛을 갖고 있다. 이 신맛이 단맛과 잘 어우러져 고급스러운 막걸리 맛을 낸다. 부드러운 바나나향, 은은한 풋사과향을 느낄 수 있다. 막걸리 발효 과정에 식초를 넣었다고 해서 신맛이 도드라지지는 않는다."

―어떻게 막걸리의 '상극'인 식초를 넣어 막걸리를 만들 생각을 했나.

"막걸리를 오래 두면 결국 식초가 되기 때문에 막걸리와 식초는 구조적으로 깊은 연관성이 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한때 막걸리에 홍초(마시는 식초)를 조금 넣어 마시는 게 유행했다. 완성된 막걸리에 식초를 조금 넣으면 막걸리 풍미가 깊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막걸리 발효 도중에 식초균을 넣으면 맛이 어떨까?' 생각해 보다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제품을 개발하게 됐다."

―막걸리는 실온에 두면 왜 식초가 되나.

"식초가 만들어지는 데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조건이 온도와 알코올 도수다. 식초가 좋아하는 환경은 온도는 좀 높아야 하고(섭씨 25도 이상), 알코올 도수는 10도 미만으로 낮아야 한다. 여름철 상온에 둔 막걸리 상태가 식초가 좋아하는 그 조건이다. 우선, 기온이 25도 이상이 되면 식초균 활동이 활발해진다. 막걸리는 대개 알코올 도수가 6도 내외로 낮은 편인데, 이 점도 '식초화'의 이상적 조건이다. 위스키처럼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은 여름철에도 거의 상하지 않는다."

별산
대동여주도
식초균 넣어 수백년 고정관념 뒤집어

별산막걸리 개발자 김민지 양주도가 부대표는 식초균 같은 미생물의 중요성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는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뒤 포천의 한 막걸리 회사에서 4년여간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곳에서 줄곧 제품 개발, 제품 관리 업무를 하면서 막걸리 제조 과정에서 '미생물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고 한다. 김 부대표는 "막걸리 필수 재료인 누룩에는 효소와 효모가 있는데, 이 미생물들이 막걸리 발효 과정에서 어떻게 활동하는가가 술맛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별산막걸리는 인공감미료를 전혀 넣지 않았지만, '식초 발효' 과정을 거쳐 '기분 좋은' 단맛을 내는 게 특징이다. ―식초균은 막걸리 발효 도중 언제 넣나.

"6년 숙성 감식초에서 식초균을 분리해 증식 배양한 후 막걸리 발효 도중에 일정량(구체적 수치는 미공개)을 넣는다. 그런데 수차례 실험을 해보니 식초균을 언제, 또 양을 얼마나 넣느냐에 따라 술맛이 확연히 달라졌다. 알코올 도수가 낮은 발효 초기에 식초균을 넣으면 식초균 활동이 너무 왕성해 신맛이 도드라졌다. 발효 후기에 넣으면 반대로 식초균 활동이 활발하지 못해 일반 막걸리와 맛에 차이가 없었다. 또, 식초균 함유량이 많고 적음에 따라 술맛에 큰 차이가 있었다. 결국, 1년이 넘는 연구 기간, 수십 포대의 쌀로 백 번 이상 술을 만들어 본 후에야 식초균의 적절한 함유량과 타이밍을 찾을 수 있었다. 막걸리 발효 언제쯤에 식초균을 넣느냐에 대한 해답을 찾은 것이다. 발효가 약 30%쯤 진행됐을 때 식초균을 넣으면 막걸리 향이 가장 좋고 술맛도 안정화된다는 걸 알게 됐다."

―신제품 개발 계획은.

"탄산이 들어간 스파클링 막걸리를 준비 중에 있다. 별산막걸리에 탄산을 섞으니 그 맛이 기가 막혔다. 기대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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